
제목을 보고 지난 번 읽었던 천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에서 잇포도를 언급한 것 같았는데 싶어 읽게 되었다. 차를 좋아하니까, 유서깊은 전통 차 상점의 이야기에 호기심도 갔다. 하지만 좀 그뿐이었다. 그냥 전에 읽었던 만화 초밥집 여사장님이 자꾸 떠올랐다.
이를테면 이런 정서 말이다.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전통을 따라가는 일본의 노포, 그 집안에 시집온 며느리가 나중에 그 노포의 안주인이 되어가면서 그 전통을 소중하게 지켜나가더라 하는 것. 양장이나 구두가 낯설 만큼 기모노를 입고, 그 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일을 하고, 심지어는 결혼식에도 웨딩케이크를 자르는 대신 차 통을 개봉하는 것으로 결혼을 축하하고. 전통을 따른다고 말하지만, 결국은 시가의 규칙을 따라 나가는 것, 대단히 가부장적인, 개혁이라고는 없는 모습. 모르겠다. 한 10년쯤 전에 읽었다면 이런 글에서 아름다움을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초밥집 여사장님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답답함이 남았다. 이런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글쎄. 명절 때 종가집 종부가 차리는 차례상을 찍으며 종부를 추어올리는 방송에서 느껴지는 구태의연함을 다시 느꼈다.
관광객의 입장에서 흥미롭고 체험해 보고 싶은 일이라는 것 말고, 일본 사람들은 정말로 그 모든 것을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생각할까?
그게 아니면, 이것은 아름답다고 환상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부분은 슬프게도, 잇포도에서 구입한 차를 두 스푼씩 담고 우리라는 것. 비싼 차라고 아껴서 마신다고 찻잎을 찔끔찔끔 넣어봤자 차를 데쳐 건져낸 밍밍한 물이 되는 거니까, 이것만큼은 확실히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물론 그것 말고도 소소하게 새로 알게 된 부분들이 있었다. 말차는 단순한 가루녹차를 말하는 게 아니라, 말차용으로 따로 빛을 가려 차광재배를 한 것, 그리고 가루녹차는 그냥 녹차잎을 가루로 분쇄한 것도 포함된다는 것이라든가. 오래된 차를 덖어서 호지차로 마시는 방법이라든가. 그리고 처음에 “규스”라고 언급했을 때, 나는 이게 다관인가 숙우인가 조금 헛갈렸다. 더 읽다 보니 다관을 말하는 게 맞았지만. 새 단어를 알게 된 건 좋았지만, 주석이 있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중간중간 외국인 관광객이 와서 홈스테이를 할 때 느껴지는 순진한 자부심은, 아아, 읽으면서 곤란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정말로 “우리 문화가 최고예요. 외국에서 온 청년들도 이걸 알아 주었으면 좋겠는데.”하는 감정이 느껴져서. 글쎄, 내가 살아갈 일 없는 모습이니까 아름답게 느껴질 수는 있겟지만…. 정말 아름답고 이상적인가? 그렇게 “전통을 따라가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삶” 같은 것만이? 아니, 그보다 좀 더 근본적으로. 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이 시대에 어떤 의미인 걸까. 가끔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