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쯔타오(다이윈)은 문화대혁명 이전, 중국 공산당이 막 대륙을 장악하며 자본가들에 대한 공격이 한참 진행되던 1952년 봄, 기억을 잃은 채 발견되었다. 그는 자신을 살려내고, 자신이 혼수상태일 때 중얼거리던 “딩쯔”라는 말에서 따와 딩쯔타오라는 이름을 지어 준 의사 우자밍의 소개로 류진위안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다가, 몇년 뒤 아내를 잃고 혼자 된 우 의사와 재회하여 결혼했다. 우창 탄화린의 임대주택에서 함께 살게 된 두 사람은 주말에 성당에 갔고, 우 의사는 그때마다 “이 세상의 우리는 모두 원죄가 없어요. 당신과 나 모두.”라고 속삭이곤 했다. 문화대혁명 시기를 조용히 넘어가고, 아들인 칭린을 낳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중 우 의사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딩쯔타오는 자기도 모르게 절규한다.
“연매장은 안 돼요! 그 사람을 연매장할 수는 없어요!”
딩쯔타오는 가정부로 일하며 칭린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마침내 성공한 칭린이 평생을 저 임대주택에서 살아온 딩쯔타오를 “마치 지주의 집처럼 보이는” 호화로운 새 집으로 모셔갔을 때, 딩쯔타오는 갑자기 “체런루”와 “싼즈탕”을 찾고, 고풍스러운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을 부고 남북조 시대의 시를 읊었으며, 침대의 보라색 이불을 보고 붉은 비단 이불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친정에서 데려온 샤오차라는 하녀를 찾았다. 무엇 하나, 칭린이 알고 있던 어머니 딩쯔타오와는 거리가 먼 일들 뿐이었다. 그리고 딩쯔타오는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한다. 칭린의 친구인 룽중융의 부친은 그를 두고 “그녀의 영혼은 현세에 없다”고 말한다.
칭린은 대학원생들과 함께 후베이성 서쪽의 지주 저택들을 조사하는 룽중융을 따라갔다가 다수이징이라는, 불과 몇십년 전 까지도 융성했던 장원에 방문한다. 칭린은 자신의 보스인 류샤오안의 부탁을 받아 그의 아버지, 류진위안을 모시고 그의 추억의 고장들을 방문하고, 류진위안의 젊었을 때의 비적 소탕 등의 활약을 듣다가, 류진위안의 지식인 출신 부하였던 후링윈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교양있는 문인 집안이었던 후씨 저택의 문패명인 “체런루”라는 이름을 다시 듣게 된다.
지금이야 사회가 진보했지만, 그때는 누구도 몰랐네. 그러다보니 순식간에 선을 넘어간 거야. 일단 선을 넘으니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어 엉망이 되었고. 상부에서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명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이 죽은 뒤였네. 자네도 그 대저택을 봤지? 그러면 부자가 얼마나 부유했는지 알았겠지.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가난했는지는 모르잖나.
한편 딩쯔타오는 꿈 속에서 과거의 기억들을 돌아보게 된다. 체런루 후씨 집안의 딸인 다이윈은 루씨 집안의 둘째아들 루중원과 결혼하고 아들 팅쯔를 낳았다. 다이윈의 아빠인 후링윈은 정부를 위해 일하며 군량미를 모았지만 부모를 구하러 돌아오다가 살해당했고, 싼즈탕 장원의 주인 루씨 집안도 공산당에 많은 식량을 내놓았지만 투쟁대회에 끌려갈 처지에 놓인다. 원래는 혁명을 지원해 존경을 받았을 루씨 집안 사람들이 투쟁대회에 끌려가 모욕을 당하게 된 것은 공산당 간부가 되어 돌아온 후씨 집안의 옛 하인이자, 과거 이 지역의 지주의 후예였던 왕진뎬의 복수였다. 루씨 집안은 모두 자기가 누울 구덩이를 파고 그 자리에서 자결한다. 어린 손자와 며느리 다이윈,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딸인 후이위안만을 남겨 둔 채로.
샤오차, 미안해. 나는 싼즈탕을 영원히 잊어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한편 류진위안은 옛 고향과 옛 동지였던 우 의사를 그리워하다가, 국수집에서 만난 라오치라는 동향의 남자가 우 의사의 사진을 보고 의대를 졸업한 지식인이었지만 혁명 때 집안이 변을 당하고 도망쳐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자신의 사촌과 닮았는데 그는 둥 씨였다는 말을 듣고, 그제야 우자밍이라는 이름이 이름도 집도 없다는 뜻임을 알게 된다. 칭린은 아버지 우자밍의 유품인 일기를 읽고 아버지가 본래 둥 씨 지주의 자손이었고 상하이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달려온 사촌인 샤오치가 그를 떠나보내며 둥씨 가문의 대가 끊어지면 안 된다며 절대 죽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것, 그를 구해 준 약초꾼 우 노인의 성을 따서 우자밍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 류진위안과 만나 그의 신원보증으로 의사로 지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아들인 칭린의 이름이 아버지 둥푸칭과 어머니 전린에게서 따온 이름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우자밍은 아이에게 부모님의 흔적을 남기면서도 이 아이를 둥씨로 키우지 않겠다고, 둥씨 집안과는 아무 관련도 없을 거라고, 이 아이는 우한 사람에 우씨 성을 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아들인 칭린에게도 자신의 과거를 알리지 않으려 한다.
칭린, 내 아들아. 너에게 이 글을 쓴다. 네가 이 글을 본다면 나는 이미 죽은 뒤겠지. 여기에는 비밀이 들어 있단다. 내 글은 일상을 기록하는 습관일 뿐 네게 알려주기 위해 쓴 게 아니다. 이 모든 것을 네가 모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니까. 사실 지금은 이 기록을 없앨 생각이 없다. 그저 네가 이 글을 볼 때 이미 어른이 되었거나 세상이 변했기만을 바란다. 그러면 많이 놀라지 않을 테니까.
칭린은 아버지의 일기와 어머니가 정신이 나간 채 중얼거렸던 이야기들, 그리고 류진위안과 함께 다니면서 보고들은 혁명 시대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마침 양쯔강 중류 지역의 옛 장원들을 연구하려 하던 룽중륭의 도움을 받아 기억을 잃은 어머니의 과거를 재구성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맞닥뜨린 것은 혁명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사회에 의한 한 문명의 파괴이자 폭력이었다. 다이윈은 살아남기 위해 투쟁대회에서 친정 가족과 관계를 끊었다고 말하며 가족들을 자기 손으로 때려야 했다. 그의 오빠였고 충칭에서 대학을 나온 지식인인 후링윈은 살해당했다. 친정인 후수이당 장원은 댐이 건설되며 사라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모든 가족이 살해당하고, 집안의 글과 그림, 책이 며칠동안 불탔으며 불타고 남은 재까지도 비료가 되었다. 루씨 집안 가족들이 투쟁대회에 끌려나가 굴욕을 당하고 살해당하는 운명을 피하기 위해, 차라리 자결하고 관에도 들어가지 않은 채 연매장되는 것을 택했을 때, 시아버지는 다이윈과 손자 팅쯔만은 살아서 도망치기를 바랐다. 유학 중이라 집에 없던 루중원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소 세월이 흘러 둘째 도련님, 루중원이 돌아왔을 때, 가족은 몰살당했고, 처가는 수몰되어 마을 자체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떠날 때 ‘영원히’를 세 번 말했다는 거야. 영원히 돌아오지 않겠다. 이곳을 영원히 고향으로 여기지 않겠다. 자손들에게 이곳을 영원히 모르게 하겠다. 이 얼마나 지독한 말이냐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겠다, 자손들에게 영원히 이곳을 모르게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루중원만이 아니었다. 아들인 칭린에게 둥씨 성을 물려주지 않고, 영원히 돌아가지 않고 후손들에게 그곳이 어딘지도 알려주지 않겠다고 기록했던 우자밍도, 기억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된 다이윈, 딩쯔타오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격변 속에서 삶의 뿌리를 뽑히고 가족들의 참혹한 죽음과 맞닥뜨리며 고통받았던 이들은 관이라는 보호막도 없이 곧장 흙에 묻히며 내세조차 기약하지 않는 죽음으로 절규하거나, 또는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기억을 지우려 한다.
아, 사람이 죽은 뒤 관이라는 보호막도 없이 곧장 흙에 묻히는 것이 연매장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이 과거를 단호하게 끊어내고, 이를 봉인하거나 내버린 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기억을 거부하는 것도 시간에 연매장되는 것이다. 일단 연매장되면 영원히, 대대손손 누구도 알 수 없다.
한편 살아서 그 시대를 겪었던, 피해자가 아닌 이들의 기억은 저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되어 있다. 다함께 광란의 열기에 휩쓸려 있던 것은 잊고, 한 사람의 복수심 때문에 벌어진 일로 쉽게 매도한다. 싼즈탕이 있던 마을의 사람은 자기 넷째 할아버지가 원래는 루씨 가문의 쯔핑이라는 하녀를 아내로 맞을 생각이었는데 그만 그 하녀도 지주를 따라 죽어버렸다고, 하녀들까지 투쟁대회에 끌려나오는 것도 아닌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하지만, 과거 쯔핑을 비롯한 하녀들은 투쟁대회로 장원이 해체되고, 그 집안의 하녀들이 마치 물건처럼 열성분자라 불리던 남자들에게 분배되어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당의 열성분자로서 힘을 갖게 된 당원 남성들이 여성을 물건처럼 분배하고 아내로 삼으려 한 것은, 자본가가 농민들의 토지에 대해 취한 태도와 다른가? 그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다. 죽은 하녀가 안타깝다고만 말할 뿐이다. 기억은 휘발되고 왜곡된다. 본인의 의지에 의해, 때로는 세월이 흐르며 풍화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조하면서. 그 기억을 다시 꺼내어야 하는가? 들추어야 하는가? 다이윈은 자신이 저지른 부끄러운 실수에 대해 “이 일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거야.”라고 하녀에게 당부했다. 칭린은 “몰랐던 것을 왜 굳이 알려는 걸까.”하고 말하며 어머니와 얽힌 과거들을 조사하는 일을 중단하려 한다. 하지만 그가 멈추려 할 때, 학자인 룽중융은 마을 사람이 말했던 “연매장”이 아니라 “안 죽었어”라는 메아리소리를 듣고 다시 생각하고, 어쩌면 이 집안 사람들 중 누군가가 살아서 도망쳤을 지 모른다는 증거, 과거 다이윈이 도망쳤던 비밀통로가 어디로 향해 있는지 가 보기로 한다. 망각으로 흐려지고 때로는 단절되고 왜곡되고 풍화된 기억이 아니라, 그 현장에 남아 있는 물증을 뒤쫓아서. 설령 그 결과로, 이곳의 영혼들이 더이상 죽음과 함께 망각 속에 가라앉지 못한다 해도, 그는 증거와 기록을 바탕으로 과거를 밝혀내기를 선택한다.
“누군가는 망각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기록을 선택해. 우리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살아가면 되는 거야.”
문득 만화 “숲의 이름”의 결말이 생각났다. 처음에 그 만화를 읽을 때는 마지막에 권영희가 “(이 집안의 비밀을)알고 싶지 않아. 그러면 슬퍼질테니까.”하고 중얼거리는 장면에서 잠시 “왜지?”하고 생각하는 장면을 보면서, 피해자의 자손이자 가해자의 자손이고 현재는 재벌가의 하나뿐인 손자로 남은 그가 왜 그렇게 나오는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이기적인 발상에서 나온 말인가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는 영희 자체가 역사의 모순을 상징하는 인물이어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연매장”에 나오는, 혁명의 한복판에서 끌려나간 “지주 일가”라는, 구체제의 상징이자 한편으로는 격변기에 시대와 원한에 의해 희생된(그 희생성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는 다이윈의 본가와 시가 모두, 농민들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고, 공산당에 기부를 했고, 아들이나 친척이 혁명에 투신했고, 그래서 원래는 그런 숙청 대상까지는 가지 않았을 사람들이었다는 배경 설명을 덧붙인다. 그렇지 않으면 이 폭력과 학살에 대해 말할 때 “농민들을 착취하던 지주니까.”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클 테니까.) 인물들이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싼즈탕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사람이) 안다는 삼지(三知)에서 온 말이다. (원래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안다, 는 말이 더 유명하다.) 알고 싶지 않다고 해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누군가는 기억하고 기록할 것이다. 아들이 과거를 모르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그간의 일을 세세히 기록했던 우 의사의 일기처럼, 비밀통로로 가 보겠다는 룽중융처럼, 그리고 이 책의 작가와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