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 러네이 엥겔른, 김문주 역, 웅진지식하우스

우리는 아름다움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올해 초 정도부터 계속 이야기가 나오던 것 중 하나가 “탈코”다. 여성이 받는 사회적 압력, 여자는 화장을 해야 하고 다이어트를 해야 하고 불편하고 높은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거나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강요된 꾸밈노동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내게는, 그건 늘 해오던 것이라서 낯선 개념은 아니었다. 귀찮아서 머리를 짧게 깎고 다녔고, 화장도 남의 결혼식에 갈 때 아니면 잘 안 하니까. (하도 안 하다 보니 성장이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하지 못해서 따로 조금 배워야 하긴 했지만.) 메이크업 때문에 여름에 더울 때 회사에서 세수도 못 한다는 게 답답했다. 다만 내게는 이게 어디까지나 실용주의적인 접근이었고, 이걸 “탈코”라고 개념화한 것은 아니었다.

요즘 탈코 플로우는 분명 필요한 부분이다. 화장을 하고 꾸미는 것이 디폴트가 아니라 옵션이 된다는 거것. 편해서 하는 것부터 진지한 투쟁으로서 탈코를 선택하는 것도, 실용적인 면에 집중하고 꾸밈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많은 부분에 집중시키는 것도, 혹은 자신이 필요할 때에는 자신을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한껏 화려한 모습으로 꾸밀 수 있되 그것이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선택으로서만 작용하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모두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게 개인의 각성에 그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애초에 꾸밈”노동”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서비스 업종 같은 데서 고용의 조건으로 그런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를 예쁜 숏커트 정도가 아니라 빡빡 깎고 출근하는 데는, 어느정도 안정적인 고용이 선행되어야 한다. 모두가 화장품을 버리기 위해 생계까지 버릴 수는 없으니까. 이런 문제가 노동문제로서 좀 더 적극적인 논의(와 항의와 나아가 불매까지)가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 문제에 대해 처음 생각했던 것은 그 정도였다.

문제는 지금 성장하는 세대였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SNS를 통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문제가 심각해서 깜짝 놀랐다. 한편 우리집에는 미취학 어린이가 있는데, 이 아이를 데리고 마트 장난감 코너를 다니다가 산더미만큼 많은 어린이용 코스메틱 제품을 보며 앞날을 걱정하게도 되었다. 압력은 더 강해졌고, 나는 몇 년 안에 이 문제에 대해 우리집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설령 이 어린이들이 여자도 화장 안 하고 바지 정장을 입고 출근하고 뿔테 안경을 쓰거나, 남자도 치마를 입을 수 있다는 걸 엄마 아빠와 집에 놀러오는 어른들을 보며 충분히 보고 배웠다고 하더라도, 또래집단의 압력이라는 것은 언제나 강력하니까. 그럴 때 아이에게 뭐라고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할 까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걸 읽었다.

캣콜링, 쌍둥이 간에도 서로 아름다움을 비교하는 경우, 엄마는 실용적인 옷차림을 하고, 대신 공부나 일에 몰두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쳤지만 아빠가 딸에게 아름다움에 신경쓸 것을 부추길 때 벌어진 일이라든가, 여성 교수에 대한 강의평가에 옷차림 평가나 적고 있는 남학생, 우리가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시선의 권력과 여성을 대상화하는 사회 현실들, 계속되는 모욕. 그런 것을 언어로 구체화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본인이든 자녀든, 꾸밈의 사회적 압력과, 그 비용이 여성들에게 전가되는 문제 등, 우리가 이미 몸으로 체험하고 뼛속깊이 알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 말과 글로 다시 정리한 것 자체가 고민이나 실천에 도움이 된다. 개인개인의 경험이, 모이고 그룹화되고 정제되어 언어로 정리가 되면 “명확한 근거”로써 인용될 수 있는 것이니까.

PS) 중간에 화려한 분홍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여성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스타일과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외모 가꾸기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한 외모 가꾸기 사이에 존재하는 회색지대”에 대한 대목을 눈여겨 보았다. 페미니스트로서 정체화하고 그와 관련된 만화도 그리고 있는, 그러나 언제 만나도 화려한 차림인 민서영 작가가 충돌하는 지점 중 하나가 요 문제일 텐데.

PS2)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은 내용이 많아서 읽다가 종종 리디북스 공유 기능으로 내보냈는데, 그런 대목이 좀 많아서 그랬는지 SNS에서 부적절한 접근이 일어났다며 계정이 잠기는 불상사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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