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에 대한 권리는

원해서 병원 쫓아다녀 가면서 임신을 했고, 다행히도 아이 키울 여건은 되는 상황이고, 배우자는 육아에 무척 적극적이다. 이런 행복한 상황이라도 임신 초기 내 몸이 정말 죽을 만큼 아플 때, 그리고 아이의 양수검사를 할 때, 낙태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었다. 양수검사를 하며 의사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던 중, 설령 만에 하나 아이가 그냥 장애 정도가 아니라 무사히 태어나지 못하거나 태어나도 의학적 조치로 살려낼 수 없는 종류의 심각한 문제(장기가 없거나 하는)가 있더라고 한국 법으로는 낙태가 되지 않는다는 것, 결말을 알면서 고통을 기다리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같이 분개했다. (여자 선생님이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저는 일본에 가는 수 밖에 없겠네요.”
“그렇죠. 그런데 대부분은 현실적으로 그게 또 쉽지 않지요.”
“하물며 낳아 키울 수 없는 상황인 사람들은 정말 어쩌라고 법이 이따위일까요. 21세기에.”

헌재에서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굳이 아이를 만들기 위해 시간과 돈과 노력을 감내하는 난임전문병원의 의사와 환자가 누워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게 약 넉달 전의 일.

이 기사(산부인과 의사들이 ‘인공임신중절 수술 전면 거부’ 선언하며 한 말)에도 나오지만, 설령 무뇌아를 임신해도 한국 법으로는 낙태할 수 없다. 모체는 물론 태아조차도 존중하지 못하고 있다. 섹스 중 콘돔을 빼버리는 놈들을 강간으로 처벌하는 것도 아니고, 연인이 임신하자 연락 끊고 도망치는 놈들을 끝까지 잡아 양육비를 받아내는 것도 아니다. 이 시대에 아직도 임신공격으로 여자 발목 잡으려는 놈들, 남의 인생보다는 콘돔의 이물감이 더 큰 문제인 줄 아는 무책임한 놈들, 인구 통계의 문제에만 흥미가 있는 국가만 생각하고, 정작 살아가야 하는 여자/어머니와 태어날 아이의 행복과 권리에는 관심이 없는 무신경한 자들이 법을 만들고 행정을 하고 있다. 그렇게 생명권이 중요했으면 90년대에 성비가 그 지경이 날 때는 대체 뭘 했냐. 점 보고 와서 태어날 아이가 딸인 것 같다며 싫다는 며느리를 병원에 끌고 가던 시부모들이 존재하던 시기에 나라는 대체 산모와 아이를 위해 뭘 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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