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나가 후미의 오오쿠 14권을 읽은 것은 트위터에 해 놓은 메모에 따르면 지난 11월 말이다. 적면포창이라는, 남자만을 감염시켜 죽게 만드는 가상의 질병으로 남자의 인구 수가 줄어들고, 에도 막부의 쇼군이나 다이묘들이 여자에게 세습을 시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실제 역사와 얽어 교묘하게 빚어낸 이 만화의 시대는 어느덧, 드라마 “오오쿠”나 “아츠히메” 등으로 알려진 막부 말기, 이에사다 쇼군의 시대로 넘어가 있었다.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 대부분이 언제나 그렇듯, 내용도 대사도 연출도 훌륭했다. 격정적인 대사와 시대를 담담하게 담아내는, 선이 절제된 그림이 좋은 조화를 이루었다.
만화를 보며, 이분이 이제 눈이 나빠지셨구나. 작은 컷에서 디테일이 깨져나가는 부분들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하지만 컴퓨터로 확대해서 그 부분을 메운다 한들, 오히려 선의 굵기와 비례가 맞지 않아 어색해지는 부분도 있을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는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친부에게 수도없이 추행과 강간을 당하고, 겨우 쇼군이 되고 혼인을 했지만 친부가 전남편들을 죽여버리는 비극을 겪었던, 그래서 자신의 그런 내막을 알고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아베 마사히로에게 의지하던 여쇼군 이에사다와, 쇼군의 후계자 지목에 간여하라는 시마즈 나라아키라의 밀명을 받고 미다이도코로가 된 타네아츠의 관계가 그렇다. 사츠마의 밀정이, 이에사다는 자기 아버지와도 잠자리를 한 여자라고 알렸을 때 타네아츠의 대처라든가, 그가 이에사다에게 전쟁터에서 싸워 살아남은 장수와 같다고 말해주는 부분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만화를 읽고 두 달이 지났고, 그 사이 몇년 전 일어났던 #XX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는 #Me_too 운동으로 다시 돌아왔다. 검사가 검찰 내에서 벌어진, 자신이 겪은 성추행 사실에 대해 폭로했다. 그럴 수 있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알면서도 허탈했다. 지금은 성추행하는 놈들이 있더라도 열심히 해서 성공하고 더 높이 올라가면 그래도 그런 일을 덜 겪지 않을까. 억울하면 성공하라고들 말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백일하게 밝혀진 셈이니까. 그 일이, 이 만화와도 겹쳐 보인다.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여쇼군 이에미츠도, 그리고 이에사다도, 쇼군씩이나 되어도 추행을 겪고 강간을 당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그녀를 비난하는 데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상의 자리에 서 있어도. 이 만화 속의 “여쇼군”들은 물론 실제 역사와 다른 가상의 인물들, 같은 시대에 같은 이름을 한 다른 인물들이지만, 문득 마음이 아팠다. 작가 요시나가 후미가 본, 현대 일본 여성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썩고 곪아가면서도 그래도 비명을 지르며 하나둘씩 고개를 드는 동안, 계속 짓눌리고 있는 그들은. 그래서 에도성에서 정상의 자리에 서서, 삼천 미남을 거느렸다는 설정의 여쇼군들조차도, 강간을 당하고, 아이를 낳지 못하여 고통스러워하고, 많이 배우고 세상에 대해 널리 아는 것보다 아름다움을 갈고 닦는 일을 더 중시할 것을 요구받는 모습으로 그렸을 것이다. 그게 새삼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나고, 한편으로 서늘해졌다. 이야기 속에 현실을 담아내는 그 기술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