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제조일기

환관제조일기 – 김달, 레진코믹스

“여자제갈량”, “달이 속삭이는 이야기”의 김달 작가의 세번째 연재작. 장편으로는 처음으로 완결을 낸 작품이기도 하다.

서태후 시대를 배경으로(실제 역사와는 다소 다른 점이 있으나 대체로 그렇다. 중간에 현대문물들이 나오긴 하지만 개그컷이라 그건 큰 의미는 없고.) 소년들을 환관으로 만드는 도자장을 주인공으로 한 퓨전 사극, 이라고 말하면 사실은 새빨간 거짓말. 황태후에게 억압당하고, 연상의 황후에게도 어려움을 느끼며, 총애하는 후궁이 황태후에게 사사되어도 저항조차 할 수 없는 황제. 여자 도자장 손에 고자가 되어, 궁에 들어가서는 후궁들을 모시며 후궁들의 노리개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소년 내시들. 강하고 권력을 쥔 여자들과 유약하고 자신의 운명을 이끌어나가지 못하는 남자들이 나오는, 약자와 강자가 전복된 이 세계는 일면 “이갈리아의 딸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 만화의 전복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권력을 쥔 황태후는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고, 도자장의 딸로 가업을 물려받은 주인공 오룡은 겉으로 보기에는 남자처럼 보인다. 후궁들 중 가장 총애받아 황제의 서재에도 출입하는 진비는 황제의 곁에 가기 위해 남장을 해야만 한다. 여성은 상대적으로 힘과 권력을 가졌을지라도, 남자의 상징을 입어야만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환관제조일기는, 전작인 여자 제갈량이나, 작가가 블로그에 한 편씩 올리던 짧은 만화들과 마찬가지로, 페미니즘에 대한 복잡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한편 약자였던 이들이 불완전하나마 힘을 갖게 되는 계단으로서, 작가는 “지식”을 들고 있다. 태후는 학식도 교양도 높고 정사에도 직접 관여하는 여걸이다. 근비는 말괄량이이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성품인 동시에, 황제와 대등하게 정사를 논할 수 있는 지적인 여성이다. 출세하여 아내까지 거느린 태감 포종 아저씨는 장부를 쓸 줄 안다. 보천동경반이라 불리는 환관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다. 도자장인 오룡에게는 지식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지만, 오룡은 글을 쓸 수 있으며 시대에 비해 꽤 많은 책을 갖고 있다. 미스 그레이가 동양까지 와서 이곳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글을 쓸 수 있는 지식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지식은, 초반부터 등장했던 어린 환관 기문에게 전해진다. 기문은 실수를 하여 궁에서 쫓겨나고, 오룡의 집에서 집안일을 하다가 그녀에게서 글을 배운다. 그리고 이 환관제조일기의 이야기는, 결국 기문과 미스 그레이의 기록이었다. 기록은, 기록한 사람, 권력을 쥔 사람, 해석을 한 사람의 귄위에 따라 선별되고 바뀌고 때로는 버려지므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역사 속의 여자에 대한 기록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역사는, 더 큰 힘과 권력을 쥐었던 이들의 손과 입맛에 맞게 다듬어지고 덮여나갔을 것이라는, 당연하고도 씁쓸한 여운과 함께.

한편으로 나는, 그 지식에 대해 생각한다. 역전을 불러일으켰던 그 힘에 대해서. 사실상 지식은, 약자가 자신의 계급을 조금이나마 상승시킬 수 있는 몇 안되는 수단 중 하나다. 현대 사회에서, 여자들이 정말 죽도록 공부하고 스펙을 갖추려 드는 것도 바로 그 이유고.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높은 스펙을 갖추어도, 동등한 것을 손에 넣기 힘들다. 그래서 같은 자리를 차지한 남자와 여자를 비교했을 때, 여자가 더 많이 배웠다고 해서, 이 문제를 단순히 계급의 문제로 치환하려 드는 것은 위험하다. 똑같이 서민 집안에서 태어난 아들과 딸이 있었을 때, 이들이 똑같이 대학을 졸업했을 때 남은 것은 학비 융자 뿐이라고 해도, 적어도 아들은 결혼할 때 집에서 보태주거나, 부모가 살던 집을 물려받을 가능성이라도 있다. 딸이 생존하는 데는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와중에도 남자 형제를 위해 착취당하기도 하는 상황에서, 여자가 더 지식을 갖췄다고 “이건 남녀 문제가 아니라 계급 문제다”라고 단순히 말하고 도망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역전을 이루었지만 그 역전을 위해 죽을 만큼 배웠을 이 만화의 인물들은, 여전히 한참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근데 그런 식으로 말하는 분들은 아마도 이 만화를 보고, 황태후가 권력을 쥐었고 부유한 여자 도자장이 사내아이들의 양물을 자르며 돈을 번다는 이유로, 이 만화를 단순한 남녀역전물의 변종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서 입이 쓰다. 바로 엊그제, 한 아티스트가 자신의 “여성혐오”는 물론 “리벤지 포르노를 다운받아 보는”, 생산 유통 소비 전과정이 문제 투성이인데다 엄연히 피해자까지 있는 행동에 대해서 자신의 가난과 무지를 핑계로 대며, “가난한 남자는 이게 보통이다”라고 말한 것과, 그를 옹호하던 몇몇 남자들이 여기에 계급론을 끌어다 붙이는 것을 보며, 아아, 당신들도 이 만화를 잘못 읽겠구나, 싶어 속이 쓰렸다. 아니, 애초에 읽지도 않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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