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충걸의 “갖고싶은 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웃다가, 중간쯤에는 잡지 에디터는 돈이 많은가 생각하다가, 마지막에는 아, 그래. 요시나가 후미가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에서 “내가 먹는 데 그만큼 인생을 바쳐왔으면, 먹을 것도 나에게 조금쯤은 보답을 해 줘도 된다고 생각한다만.” 같은 말을 했듯이, 예쁜 걸 사는 데 이만큼 진심으로 인생과 돈을 바쳐 왔으면 예쁜 물건들도 이 사람에게 보답을 해 줘야지.”하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대한 감상도 대충 비슷하다. (아니, 그러고 보니 “갖고싶은 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가 나온 게 언제야, 대체.) 표지부터 범상치 않게 생긴 옷걸이 같은 것에 어린이의 흉상 같은 게 붙어 있는 현대미술 같은 게 있다 했더니, 이것도, 저것도, 표지에 나온 “예쁘지만 어지간한 집에 두면 공간이 혼란스러워질 것 같은, 하지만 홍대 카페 같은 데 있으면 진짜 감각적으로 보일 것 같은” 물건들이 전부 저자가 충동구매한 물건들이었다.
나이가 들면 성숙해져서 소비로부터도 자유로워지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성숙해지는 건 당신의 마음이 아니라 지갑이다.
그러고 보니 전에 집수리를 하는데 조명을 너무나 사랑하는 우리동네 인테리어 사장님께서 침실에 자꾸 색온도 낮은 등(전구색……)을 달려고 하시고, 나는 집에서도 책 봐야 하니 색온도 높은 걸 달아달라고 하고(주광색이나 주백색), 사람이 어떻게 집의 모든 공간에서 책 볼 생각을 하느냐 Vs. 내 집에 TV도 없는데 책 정도는 아무데서나 볼 수도 있지 않느냐고 언쟁을 벌였는데 결국 둘 다 달았다. 부부침실에는 원래 간접조명으로 분위기를 살려야 하는데 내가 조명에 신경쓸 것 같지 않으니 전구색 보조 조명을 달아 주겠다며(……) 전기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 조명에 대해서는 오직 책 보는데만 관심이 있는 나의 몰취미를 타박하셨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왜 인테리어 사장님이 “어떻게 침실에 주백색 같은 소리를 할 수가 있느냐”며 경악하신 게 이해가 갔다 ㅋㅋㅋㅋㅋ 그러니까 김도훈이 연인의 집에 가서 밤을 보내려는데 형광등 불빛 아래 잡티 등등이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말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데스커 책장이 휘는 건 600이 아니라 1200을 사셨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씀드린다. 사실 데스커는 꽤 잘 만들어진 물건이라서 600 사이즈면 어지간해선 휘지 않는다….. 하지만 1200은 휜다. 사 봐서 하는 소리다. “야마가 있는” 물건이라서 미식축구광이 기숙사 벽에나 걸 것 같은 블랭킷을 질러버리는 호쾌함과, 한정판이라는 말에 향초도 제일 큰 것으로 질러놓고는 아까워서 불을 못 붙이는 이야기 등등을 미친듯이 웃으면서 읽다가, 나는 갑자기 진지해졌다. 예쁜 멀티탭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모자라서, 독일에서 예쁜 목제 멀티탭을 샀다는 이야기에. 물론 독일산 멀티탭은 훌륭하다. 근데 목제라니. 그리고 예쁜 멀티탭 말인데, 그런건 대학때나 사회 초년생 때 처음 독립해서 예쁜 방을 꾸며보겠다고 한두개 샀다가 끊어지거나 에어컨 돌리다가 픽 떨어지는 꼴을 보고서 내다 버려야 마땅한 물건이지, 멀티탭은 자고로 피복이 두꺼워야 하고 속의 전선도 두꺼워야 오래 쓰고 안전한 법이다. 쓰지 않는 멀티탭 콘센트에는 덮개를 씌워야 하고, 비싸더라도 3600W 이상 고용량 멀티탭을 살 것이며, 플라스틱도 싼 거 쓰지 않아야 하고, 먼지가 많은 데 둘 거라면 안에 소화 캡슐이 내장된 걸 추천한다. 전기가 불안정하고 잘 떨어지는 동네라면 서지가 붙은 걸 사면 더 좋은데, 이왕이면 LS 전선이나 현대일렉트릭에서 나온 걸 사면 좋다. 멀티탭은 소모품이고 예쁘게 만든다고 전선 가늘게 뽑은 멀티탭은 내 눈에는 그냥 1회용이어서, 우리집에서는 초등학생 학습용 태블릿 충전용으로도 사지 않는다. 아니 그런데 예쁜 멀티탭 정도도 아니고 원목 멀티탭이라니 대체 이것은 무슨……. 그건 그렇고 대체 왜 내가 남의 지름 이야기를 읽다가 왜 예쁜 멀티탭에서 정색도 아니고 개정색을 하고 이러고 있지. 나도 참.
모든 사람에게는 수치스러운 순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2000년대 패션의 한가운데에서 트렌드를 좇았던 순간은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치의 정도를 넘어선다. 그러니 당신이 나를 정말로 미워한다면 내 부고 사진으로 그 사진을 꼭 쓰시길 바란다. 나는 편한 마음으로 죽지 못한 채 원귀가 되어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니트 볼레로로 당신의 몸을 묶고 샤기컷으로 눈을 찌르며 부츠컷 청바지로 목을 조일 것이다.
읽으면서 미친듯이 웃었는데 어쩐지 2000년대 패션의 한가운데에서 체크무늬 셔츠와 IT업체 티셔츠만 입고 다녔던 사람이 승리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드는 대목이다. ㅋㅋㅋㅋㅋㅋ
그건 그렇고 김도훈 선생님은 우리에게 이런 귀중한 증언을 남겨 주셨는데, 남자들이 자기는 살림 할 줄 모른다며 청소 빨래 시켜놓았더니 이상한 짓을 할 때 옆에서 읽어줄 만한 훌륭한 문장이다. 이건 군대 다녀오신 분이 하신 말씀이시니 “나는 살림을 못 한다”고 주장하던 남성 제위께서도 감히 반박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믿는다. (웃음)
한국 군대는 남자를 만드는 곳이 아니다. 살림꾼을 만드는 곳이다. 사실 후방 부대에 근무하던 남자들은 총을 쏠 기회도 거의 없었다. 군대에 간 남자들이 진정으로 배우는 것은 일평생 한 적이 없던 살림하는 법이다. 매일매일 내무반 구석구석의 먼지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방법을 배운다. 구두를 백설공주 계모의 거울처럼 닦는 방법을 배운다. 연병장의 먼지로 더러워진 티셔츠와 속옷과 수건을 갓 태어난 북극곰 새끼처럼 하얗게 빨래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수건을 가장 완벽한 직각으로 접는 방법을 배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