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그의 빛

위대한 그의 빛 – 심윤경, 문학동네

“위대한 개츠비”를 늘 싫어했다.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붙여도 개츠비가 사모하고 동경하는 데이지가 말이 좋아 첫사랑이지 그냥 트로피여서. 인형처럼 예쁘고, 날씬하고, 부유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부유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다시 자신에 대한 욕망으로 부자가 되어 돌아온 첫사랑의 사모와 동경을 받고 있지만, 그것뿐이다. 데이지라는 인간은 온실속 화초처럼 지내며 결혼생활에 불만을 품고 있다가 첫사랑이 ‘부자가 되어’ 돌아오자 다시 이끌렸다가, 교통사고를 내는. 주인공을 매혹시키고 다시 파멸시키는 구제불능적인 여자. 그런 점에서 스콧 피츠제럴드가 대문호라는 말에도 동의 안 하는 것이, 작가가 데이지에 대해 묘사하는 것은 물론, 하다못해 개츠비가 데이지에 대해 말하는 것만 봐도 이 인간이 묘사하는 데이지라는 인간이 정말 종이인형만큼의 입체감도 갖고 있질 않다. 우리집 유치원생이 자기 애착인형을 두고 연습장에 깨작깨작 쓰고 그리는 토끼인형의 여행 이야기 쪽이 훨씬 더 입체적이겠다 싶을 정도다. 이 이야기 속 뉴욕 부유층 남자들의 생생하게 속물적인 모습과 달리, 데이지는 그냥 장치일 뿐이다. 사건을 일으키는 장치. 그리고 스콧 피츠제럴드가 온 힘을 다해 짜증내는 대상.

사실은 그랬기 때문에, “위대한 그의 빛” 역시 기대없이 시작했다. 닉 캐러웨이가 이규아라는, 성수동 토박이이자 남부럽지 않은 학벌을 지니고 뉴욕에서 생활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40대 여성으로 바뀌었어도, 읽으면서 속으로 빈정거리고 있었다. 그럭저럭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닉 캐러웨이도 뉴욕의 신흥 부자들이 사는 곳에서, 개츠비의 옆집에 살았지. 성수동 재개발로 집안이 쫄딱 망한 듯이 말하고 있지만, 저 사람이 대학을 다니고 유학을 간 시기에 한국은 IMF…… 말해 무엇하리지, 유학생이 유학가서 고생한 이야기에 IMF로 집안이 좀 어려워졌다는 엄살이 더해져서, 돌아와서는 땅값 비싼 성수동에 뉴욕 스타일의 와인바를 하고 있냐 하면서.

닉이 부유하고 아름다운 데이지와 친척이고 그 시대에 예일대 나와서, 데이지의 남편인 톰과 동창이었듯이, 이규아 역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사는 사촌 유연지와, 그의 남편이자 규아와 서울대 동창인 이광채와 만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차별화라 할 만한 부분은 여기부터다. 연지와 규아가 사촌이지만 친자매처럼 가까운 사이였고, 규아가 지금의 연지와 광채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동시에 연지에게는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 화자가 여성이 되며, “위대한 그의 빛”이라는 제목은 개츠비의 패러디가 아니라, 그(개츠비=제이 강)가 바라보던 초록빛, 데이지의 집 선착장의 초록색 불빛과 마녀머리 성운을 떠올리게 하는 연지의 집 초록색 샹들리에를 뜻하게 된다. 이야기의 화자가 규아, 중심이 연지가 된 가운데, 올드머니를 상징하는 연지와 광채의 세계와, 오직 연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한 대에 걸쳐 부를 쌓아올리고 돌아온 규아의 후배 제이 강(강재웅)의 세계가 규아의 와인바에서 교차된다.

집착조차 오래전에 잊었다는 듯 무덤덤한 그의 목소리는 그 재회의 장면을 실현하기 위해 그가 이 순간까지 신화적인 인생의 한 발짝 한 발짝을 내디뎌왔음을 분명히 암시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개츠비의 셔츠들과 눈물을 글썽이며 “정말로 아름다운 셔츠들이야.”라고 말하는 데이지가 나오는 장면인데, 그 장면을 그림이나 영상으로 떠올려 보면 정말로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사실 글로 읽고 있으면 대책이 없다 못해, 이것들은 혹시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가, 하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다. 그리서 재웅의 펜트하우스에 방문한 연지와 규아가 연지의 집 초록색 불빛이 보이지 않는 그의 방과 드레스룸에서 수천 장의 셔츠를 발견했을 때, 대체 이 장면이 어떻게 변주되나 싶어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그 셔츠들 안쪽으로 이어지는 것은 다락방이었다.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던 재웅이 연지와 사랑의 도피를 했던, 그 창고의 다락방을 재현해 놓은, “한 사람의 집요한 기억이 박제되어 물질로 몸을 얻고 하나의 성전을 이룬”, 연지의 집 북쪽 창이 바로 바라보이는 좁고 낡은 방. 적어도 부자가 되어 돌아온 첫사랑의 귀환에 눈물을 쏟으려면, 아름다운 셔츠보다는 이쪽이 합당하다 싶을 만큼 로맨틱한 공간이겠지만, 작가는 독자를 이 로맨틱한 공간과 첫사랑과의 재회 속에 내버려두지 않고, 바로 규아를 통해 의문을 제기한다. 연지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25년쯤 같이 산 남편 광채와 성인이 된 아들을 버리고 도망칠 만큼 불행한가에 대해.

“연지 누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했어요. 그러느라 조금 오래 걸렸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 의문과 함께 나온 재웅의 대사에서 독자는 멈춰선다. 연지=데이지는 과거 가난했던 재웅=개츠비를 사랑했다. 데이지는 전쟁 이후 본격적인 여성해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는 하나 전통을 고수하는 상류계층에서는 여성이 그저 결혼의 도구이자 가정의 천사 노릇을 하던 시대, 개츠비를 사랑하면서도 한계를 알고 있었고, 힘들었던 시기에 개츠비가 떠나가고 좌절을 겪자 현실적인, 자신에게 부유한 삶을 이어가게 해 줄 비슷한 계층의 남자인 톰과 결혼했다. 연지 역시 본격적인 여성해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성적으로 보수적이었던 1990년대의 여성이고, 그런 면에서 재웅과의 사랑에 많은 것을 걸었다. 하지만 개츠비도 재웅도, 가난한 자신은 연인 앞에 당당해질 수 없다고, 그를 두고 도망치고 부자가 되어 돌아온다. 이십대 초반의 순수했던 그 마음으로 첫사랑을 그리워한 순정이자,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계급사다리를 넘어 신흥 부자가 되어 돌아온(설령 그 발 밑은 불안하게 흔들릴지라도) 남자의 사랑. 하지만 이것이 그때 상처받은 채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도 자조적으로 딸에게 “바보가 되길”/아들에게 “바보가 되겠지” 하고 말하는 여자가 원하는 것일리가. 그때 도망친 남자가, 또다시 도망치지 말라는 법도 없는데.

“연지 누나는 행복하지 않아.”

이 멍청하고 자기본위적인 남자는 자신의 순정을 빌어 상대의 삶을 단정하기까지 한다. 누군가를 자신의 “삶의 목적”이자 “모든 것을 걸고 되찾아야 할 목표”으로 인식해버린 이상, 그것은 상대를 독립된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일임을 모르고.

“위대한 그의 빛”은, 그리하여 첫사랑과의 재회에 잠시 흔들렸다가, ‘제이 강을 발목잡은 국민 썅년’이 되어버린 연지가, 사랑하는 재웅과 부부로 살았던 광채, 마약을 하고 페라리를 몰다 연지의 코 앞에서 죽어버린 아들의 명예를 위해 사람들의 비난 앞에 침묵하고 스스로 무명으로 걸어들어가며 끝난다. 여기에서 독자는 다시 한번 “위대한 개츠비”를 떠올린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낸 사고를 뒤집어쓰고 명예를 잃고 살해당하며 어쨌든 제 나름의 순정한 사랑에 스스로 몸을 바친 제물이라도 되었을 지 모르지만, 제이 강은 사랑의 제단에 다시 한번 모든 것을 올렸다가 아들마저 잃고 절망하는 연지를 두고 다시 사라져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는 K-영웅” 노릇으로 도망친다. (뭔가 너무나 한국남자스러워서 할말이 없다. 근데 재웅이 자신이 모든 것을 뒤집어썼으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비현실적이겠지.) 그리고 남은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던 현실에서 사랑에 모든 것을, 두 번 걸었다가 무릎꿇고 좌절하는, 아마도 두 번 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일이 없을 사람의 이야기다.

다만 이 이야기가, 굳이 수많은 모티브를 “위대한 개츠비”에 기대며 나올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모두가 “위대한 개츠비”를 아는 세계에서는 그것도 괜찮은데, 한국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제목은 많이 들어봤지만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 소설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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