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으면서 무척 즐거웠는데,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이야기 자체가 2000년대 초반의 오컬트 만화들을 연상하게 하는 면이 많아서였고, 또 하나는 역시 2000년대에 퇴마물을 썼던 사람이 느끼는 감정 때문이었다. 작년과 재작년에 “월하의 동사무소”를 개정하면서 참고문헌 등을 재확인하며 몇 번이나 수치사(死) 할 뻔 했는데 작가님도 그러셨을 듯. 요즘은 큰 부연설명 없이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대목들에 설명이 길게 붙은 부분들을 보며, 그때는 애초에 비전공자가 접할 만한 자료의 수 자체가 적었다. 출간된 것도 적고, 논문 사이트가 지금처럼 광범위하게 찾아주는 것도 아니고, 일본쪽 자료들이나 일제강점기 때 자료들도 지금처럼 번역되어 있지 않았지 하는 생각을 했다. (민속원에서 무라야마 지쥰의 책들을 꾸준히 내준 것이 2000년대 이후 한국 오컬트 판타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나 생각하기도 한다.)
이전의 소설과 만화, 이우혁의 “퇴마록”이나 이빈의 “포스트모더니즘 시티”, 윤인완+양경일의 “아일랜드”, 말리의 “도깨비 신부” 등의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의 한국형 오컬트판타지의 영향이 여기저기 보인다. 특히 바닷가에서 풍어를 기원하며 도깨비에 고사를 지내고, ‘김 서방’을 부르는 장면들은 말리의 “도깨비 신부”에서 만신이었던 외할머니가 용왕굿을 지내고 도깨비를 부르는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민속학과 대학원생인 혜린은 지도교수를 따라, 어린 시절을 보냈던 부산에 돌아온다. 이곳은 혜린이 어린 시절 흰 말의 정령이자 강한 양기를 지녀 귀매를 쫓는 능력이 있는 비적을 만난 곳이기도 했다. 조사 중 동료인 성진이 도깨비와 약속을 해 버리는 바람에, 혜린은 이 지역의 귀매들을 흩어내기 위한 조사에 돌입하지만, 비적이 깃든 목걸이를 빌려주었던 친구는 귀매에 씌어 목숨을 잃고 비적 또한 사라진다. 스스로를 지킬 힘은 부족한 상태로 보는 능력만으로 상황을 타개해야 하는 혜린은 성진의 도움을 받아 수수께끼를 풀어 나간다.
본문중에서 신경에 거슬릴 정도로 한국과 일본 민속을 비교하는 부분들이 있는데(홍살문 이야기를 하는데 도리이 이야기가 나온다거나) 이는 이야기가 한국, 일본의 대립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장치로 쓰인다. 학교의 구조가 기묘하게도 날 일자를 음각으로 파 놓은 형상을 연상하게 하는 것 역시 그런 장치로 보인다. 실재하는 배경인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을 배경으로 하는 이 이야기에서 주된 악역은 가문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기둥에 신을 봉인하고 신녀로 하여금 그를 섬기게 하는 부유한 남성인 임재호와, 그와 손잡고 혼백만 남은 신녀인 지영주를 죽이고 새로운 신녀를 들이기 위해 비적을 부리는 혜린을 점찍은 일본인 신관 도요조다. 후반부에 성진이 붙잡히고 혜린이 지영주의 영혼에게 죽거나, 혹은 지영주를 죽이고 새로운 신녀가 될 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그들이 잡혀와 있던 신당은 일본 양식으로, 금줄에 고헤이가 걸려 있는 형태로 봉인되어 있다. 그런 묘사까지 보지 않더라도, 조부 때 부터 큰 부를 이루어 왔던 임재호의 집안은 시기로 볼 때 친일파의 자손으로도 볼 수 있다. 임재호의 집안은 증조부인 임용명 때 지역의 신을 가문의 신으로 모시고, 신녀인 지금자를 신과 혼인시키는 한편, 임용명과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낳게 했다. 하지만 임씨 집안은 그렇게 태어난 사생아인 지영주를 호적에도 올리지 않고, 도깨비 새끼라고 부르며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증조부가 사망하고 조부 대에 이르러서는 신녀를 계승하기 위해 지영주의 손으로 친모인 지금자를 죽이게 한다. 이들은 조부가 세상을 떠나고, 집안에 부를 가져다 준 신과 죽은 신녀의 영혼을 다 봉인해 버린 뒤부터 가족들이 죽어나가자, 새로운 신녀를 들여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들의 불온한 움직임으로 인하여 이 지역에는 귀매들이 날뛰고, 산에서는 도깨비들이 내려오지 못해 연안에서 물고기가 제대로 잡히지 못한다.
지영주를 대신하기 위해 데려온 마하칼리의 화신인 혜린과 지영주가 사랑했던 남자의 자손인 성진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죽은 뒤에도 신녀로서 봉인되어 있어야 했던 지영주의 한은 풀린다. 원한이 봉합되고, 도요조는 사라지고, 임재호는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신세가 된다. 정의는 구현되었고 이야기는 제대로 초점을 유지한 채 마무리된다. 그리고 의문은 다시 빙 돌아 제목의 “귀매”에게로 돌아간다. 약속으로 묶인 계기는 도깨비이고, 그 이전에 비적이 있었으며, 일의 뿌리는 가문의 번영을 위해 죽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신녀로 묶인 지영주와 임씨 가문의 탐욕이었는데, 뒷표지에서 귀매를 “자연의 음기가 뭉쳐 만들어진 정령”이라고만 설명하는 건 앞부분에서 귀매를 “내지의 오바케나 오니에 해당한다”고 설명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해석이 아닌지. (용재총화 같은 데 보면 심지어는 조상귀로 분류해야 할 고모 귀신조차도 나타나서 패악을 부리고 있으면 귀매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귀매라는 말도 어느정도 맥락으로 해석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PS) 앞부분에 오노다 히로오라는 학자가 쓴 “조선의 귀매”라는 책을 인용하는 설명이 있는데, 뒷부분에 참고문헌이 없기도 하지만 실재하는 학자나 책은 아닐 것이다. 1930년대에 총독부 촉탁을 받아서 조선 민속을 연구하고 다닌 학자라면 무라야마 지쥰이냐 아키바 다카시가 유명하고…… 오노다 히로오는 전쟁이 끝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필리핀에서 학살을 계속하다가 결국 일본으로 돌아간 군인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