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만드는 법

에세이 만드는 법 – 이연실, 유유

유유출판사 책들을 좋아한다. 레이아웃이 너무 전자책 최적화 되어 있어서 종이책에서는 조금 빽빽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얇고 알차고 좋은 책들을 낸다. 언젠가 유유에서 에세이를 내고 싶다. 뭘 쓸 지 주제도 정해놓았다. 올해는 너무 바쁘니, 내년이나 내후년쯤 컨택해 보아야지.

어쨌든 유유에서 에세이를 내고 싶은 사람이, 문학동네에서 에세이를 맡은 편집자가 유유에서 낸 에세이를 읽는 것은 꽤 흥미로운 경험이다. 생각해 보니 편집자들의 에세이는 대개 자기가 근무하는 출판사에서는 나오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전에 북스피어 대표가 썼던 에세이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는 어크로스에서 나왔다. 멀쩡히 자기 출판사 두고 뭐 하는 거야, 하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거기서 낸다면 자기가 쓴 에세이를 자기가 손질해서 책으로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와,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그런 차원에서, 매일 얼굴 맞대는 직장동료가 내 에세이를 편집한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도망치고 싶은 일이긴 할 것이다.

문학동네면 내 친구가 거기서 일하는데, 아는 사람일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잠깐 했다. 김난도, 김이나, 김훈, 이슬아, 하정우 등의 에세이를 만든 편집자라. 편집자로서 타율이 높은 사람이다. 그들의 에세이를 떠올려 보고, 어떤 저자의 책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젓고, 어떤 저자의 책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마음에 남는 책도, 그렇지 않은 책도 있지만, 책 표지와 내용들이 머리에 떠오르는 걸 보면 그만큼 내가 다 읽어 봤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의 손이 가게 책을 만드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생각했는데.

김이나 작가님의 첫 책 『김이나의 작사법』 띠지 문안을 나는 매우 빨리 썼다. 독자에게 보여 주어야 할 정보가 분명했다. ‘대한민국 작사가 저작권료 1위.’ 게다가 이 책에는 아이유·윤종신·윤상 등 쟁쟁한 뮤지션들의 추천사까지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 확실한 정보들을 담은 띠지 문안을 보자마자 김이나 작가님에게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으악, 연실아 제발!”

으악은 읽는 저도 으악입니다. 아니, 나쁜 사람이네. 김이나 작가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읽는 나는 웃긴데, 당하는 작가님 입장에서는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이냔 말이다. (나도 내 의도와 상관없는 띠지나 뒷표지 홍보멘트에 비명을 지른 적이 몇 번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사람이 ‘팔리는 에세이’, ‘독자에게 선택받는 에세이’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는 거다.

책은 작품인 동시에 상품이다. 작가는 작품을 쓴다. 편집자는 그것을 상품으로 만든다. 김이나 작가님의 “수치는 왜 작가님의의 몫인가”싶었을 재난(……)과는 별개로, 저 띠지는 책을 잘 팔고 싶은 편집자의 마음이 담긴 회심의 한 줄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가장 유행하는 장르인 동시에 순식간에 매대에서 밀려나는 장르인 에세이에서, 홍보비를 추가로 들이지 않고도 한 권이라도 더 독자의 눈과 손을 사로잡으려는. 그것은 띠지나 뒷면의 홍보 멘트 한 줄, 온라인 서점의 홍보멘트, 표지와 내지의 디자인까지. 더 좋은 에세이를 만들기 위해 덕질을 업무와 연결짓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고, 크라우드 펀딩이나 독립출판물에도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무엇보다도 작가를 사랑하는, 그래서 작가라는 작자들의 행각마저 사랑하게 되는 편집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지금 쓰는 원고들과 앞으로 책으로 나올 원고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도 나와 일하는 분들을 생각해서, 좀 더 착하게 지내고, 마감도 잘 지켜야지….. 때로는 비명 지를 만한 일들도 생기겠지만, 이야기를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런 애정과 노력이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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