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소설을 쓰면서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했다. 아, 그래. “포스트 김지영은 바로 나의 이 소설이 될 지도 모르지.”같은 뻔뻔한 생각 말이다. 그리고 완고를 넘기고 조판이 된 것을 확인하고 뭐 대충 그런 상태에서 이 책의 제목을 들었다. 그리고 분명 같은 여자가 입는 옷이 틀림없는데도 사이즈 자체가 다른 티셔츠와 캐미솔이 눈에 들어왔다. 표지만 보고 알았다. 졌다. 쓸데없는 야심 갖지 말고 얌전히 이 책을 읽어야겠다. 그리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그녀였다! 사 년 전에 공항에서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했던 그녀. 내 연애 역사상 최대치의 치명적인 상처와 잊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겨줬던 그녀. 내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 사실상의 첫사랑. 그녀가 ‘메갈’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이런 끝내주는 오프닝을 보고, 이 책을 더 넘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주인공은 4년 전 유학을 간다며 떠났고, 그의 여자친구는 그때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주인공과 친구들은 그때의 그 여자친구를 “나쁜 년”이고 매정하며 “알고보면 바람 피웠을 것”이라고 씹고 있었고. 돌아온 주인공은 이 여자 저 여자와 소개팅을 적당히 하거나, 혹은 여자와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는 이제 우리 사귀는 거냐고 물으면 “우리 사이를 틀에 맞추는 건 별로다”며 어물쩍 넘어가고 도망치는, 뭐 그저그런 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소개팅을 하고 돌아가던 중 이 남자는, 4년 전의 그녀를 만난다. 페미니즘 시위 현장 앞에서.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말했다. “아, 세상이 나를 페미니스트로 만드는데 어떡해?”
섹스하고 났는데 자신이 다른 여자들을 밀어낼 때와 똑같은 대사에다, “서른 먹고 너도 참”하고 어린애 취급하며 자신을 밀어내는 그녀를 보며 주인공은 영 기분이 더럽다. 그리고 매달린다. 그녀는 주인공이 먼저 헤어지자고 하면 100만원을 받아 여성단체에 기부하기로 하고 다시 사귀기 시작한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주인공은 그녀의 기준으로는 “한남”이고, 로맨스 드라마의 박력 넘치는 주인공처럼 굴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에게 감점만 당한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여자들은 회사에서 흔히 여성성을 어필하며 일하고, 결혼할 때 부담되는 것은 남자이며, 여자들은 다들 결혼하고 싶어서 서른 근처가 되면 조급해지고, 자기와 결혼하면 그녀가 회사에서 겪은 성희롱 같은 것도 없어질 것 같은데, 한국은 치안이 좋은 나라이고, 미투 같은 것은 꽃뱀들이 하는 짓이며 무고죄를 강화해 하고, 다른 남자가 내 여친을 쳐다보는 건 싫지만 남들이 쳐다볼 만큼 예쁜 여자가 내 여친인 건 우월감이 느껴져서 좋은데다, 얘가 결혼 안 하겠다고 자꾸 버티면 노콘으로 하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데, 그녀는 절박하다. 그녀가 말하는 성희롱, 몰카 촬영과 유포, 스토킹, 협박, 성추행, 폭행, 살인, 미성년자 성매매, 성폭력 가해자의 무죄 선고 등에 대한 뉴스나 회사에서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당한 일들을 들을 때 마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성적인 말투로 피해자 입장에서만 들으면 안된다고 말하다가 연락이 안 되기도 한다. 자기 이야기에 맞장구칠 게 아니라면 이야기하지 말라는 건지, 이러니까 페미나치 소리를 듣는 게 아니겠느냐고 화라도 내고 싶지만, 애초에 자신이 페미 탈출을 시키려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할 말이 없어지긴 한다. (그리고 여기서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이 남주는 적어도 상위 5% 안에는 드는 인간이다. 불행하게도.) 하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은 항변한다.
“근데 나는 남자잖아. 그런 얘기 듣다 보면 남자는 다 잠재적 가해자인 것 같고, 꼭 나를 탓하는 것처럼 들려서 괴롭단 말이야.”
그녀는 “남의 일이 아니니까”, 피한다고 피해지는 게 아니라 공기같은 거니까 맞서 싸우는데다 대고 무슨 사회운동가냐 정치인이냐며 말한들, 먹히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은 시위대가 외치던 “내 몸, 내 선택” 그 말의 의미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간절함을 곱씹어 본다.할아버지의 팔순잔치에집안 여자들이 음식을 마련하는 상황에서 문득 그런 생각도 한다.
할아버지와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여자들이 차린 음식이 상 위에 차려졌다.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그녀를 “갱생”시켜 자신과 결혼하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도 하고, 왜 자신이 이 여자와 사귀고 있는지 모르겠어서 혼란스럽게도 하던 이 남자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베스트셀러 저자 미투’로 이름이 오르내리면 남자친구인 자신이 바보처럼 보일까봐 걱정하고 그녀가 밤길에 맞닥뜨릴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생각은 하지만 대신 그녀를 일찍 집에 들어오게 해야겠다는 방향으로만 머리가 돌아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친구 결혼식에 그녀를 데려가 자신과 그녀의 관계를 좀 공고히 해 보려 한다. 물론 그녀가 4년 전 그 여자이며 지금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친구들은 “메갈을 사회화하는 일”이라며 흥미를 보이고, 파국의 시간은 다가온다. 부부동반으로 출석한 주인공의 친구들은 그녀를 시험하듯 한 마디씩 말을 던지고, 그녀는 전부 받아내는 것은 물론 이런 자리에서는 예의를 갖추느라 행복한 부부인 듯 굴던 주인공의 친구들 부인들에게 할 말을 하게 만든다. 친구 중 한 명은 비혼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다며 따지지만, 그녀는 각자 추구하는 행복이 다른 것 뿐이라고 대답한다.
너무 화가 났다. 이 정도로 괜찮은 내가, 이렇게 너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이렇게 설득하려고 노력하는데, 너도 나를 좋아하는 게 분명한데, 왜 너는 변하지 않겠다는 거야? 사람을 돌게 만들어도 유분수지.
솔직히 말하면 주인공은 그저 그녀의 호감에 매달린 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자신이 그녀를 변화시킬 수 있고 자신이 생각하는 평범한 삶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신나게 착각한 것 뿐이다. 하지만 둘은 헤어진다.
“몰라서 물어? 엇나가는 거, 삐딱한 거. 메갈, 페미! 진짜 지긋지긋하다고!” 오늘 하루 동안, 아니 그동안 그녀와 만나면서 쌓인 것들이 갑작스럽게 폭발해 버렸다. 그러나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착각하지 마. 그건 그만하고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냐. 난 절대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아.”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가며 노력했는데, 그녀가 여기까지 와서 기어코 내 희망을 확인사살하듯 무참히 밟아버렸다.
당연히 헤어져야 마땅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서도, 이 새끼가 그녀를 때릴까봐 걱정하며 읽어야 했다. 그게 읽으면서도 마음이 아프고 쓰라렸다. 어쨌든 그는, 헤어지자마자 부모님께 전에 만나보라고 했던 여자를 만나겠다고 하고, 모든 것은 순조롭게 돌아가는 것 같다. 결혼을 전제로 누군가를 만나고, 익숙하게 살고. 주인공은 ” 다시는 ‘메갈’을 사회화시키겠다는 생각 같은 건 안 할 거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것만으로도 제법 큰 소득이 아니겠는가?” 같은 독백을 하며 잘 살아갈 듯 보였다. 하지만 광화문에서 하던 소개팅 중, 시위대가 폭행을 당했다는 뉴스가 올라오고 그는 그녀를 찾아 달려간다.
그녀한테는 이렇게 당연한 것이, 우리 남자들은 왜 이렇게 알기가 어려울까? 그게 이 모든 문제의 비극인 것 같았다. 근데 사실 알고 싶어했던 적도 없었다. 그보다는 주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정말 남자들이 더 힘든 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힘쓰는 일은 우리가 다 하고.”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응, 그냥, 오늘은 좀 닥쳐.”
읽고 나서, 다시 맨 앞 페이지를 한 번 더 본다. “나의 전남친들에게”라는 헌사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그나마 이 연애가 가능했던 것은, 그녀에게 그야말로 옛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주인공은 조금 변했지만, 시대를 따라올 만큼 변하진 못했다. 그녀가 강을 거슬러 오르듯 걸어간다면, 그는 안온하게 동동 떠내려갈 뿐이다. 그 격차를 좁히거나, 혹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강을 걸어 올라가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없다면, 그는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없을 거다. 지금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서른 살들이지만, 그 다음 세대들은 더. 시대를 따라갈 수 없는 남자들은 그렇게 도태될 것이고, 지금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개중에는 아주 부드러운 사랑과 이별을 한 셈이 될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이야기조차 강성해서 눈뜨고 볼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이 이야기는 어쩐지 읽는 내내 “엽기적인 그녀”의 차태현 같은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는 듯한 소설이었고, 무척 생동감이 느껴졌다. 그야말로 “그 다음, 의 이야기”라는 느낌이었다.
PS) 82년생 김지영과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이 (쉽게 믿어지지 않지만 따지고 볼 때) 상위 5%, 10% 안에 드는 남자라는 사실이 가장 한심하고 답답하며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