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귀신

  • [망한논문 참고자료] (6)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과 고전 여성문학 ; 원귀의 해원 형식과 구조의 안팎, 조현설 ( Hyun Soul Cho ), 한국고전여성문학회,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7권, 2003 65 ~ 96쪽

    [망한논문 참고자료] (6)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과 고전 여성문학 ; 원귀의 해원 형식과 구조의 안팎, 조현설 ( Hyun Soul Cho ), 한국고전여성문학회,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7권, 2003 65 ~ 96쪽

    69쪽 “원혼형 설화 속에서 여성 자아의 위치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한의 응결체인 원귀들이 원한을 해소하는 방식이다. 물론 해원의 방식은 결원(結怨)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결원이 반드시 해원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주체의 태도에 따라 과거와 미래가 조정되는 것이 아닌가. 중요한 것은 해원을 시도하는 원귀의 태도인 것이다.” 69쪽 “결원과의 관계를 고려하면서도 해원의 방식에 주목해야 원혼형 설화의 문제 지점이 분명히 드러나리라고 생각한다.” 70쪽 “간접 해원은 타자를 경유한 해원이다. 원귀는 스스로 해원에 나서지 않고 해원의 중재자를 찾아가 해원을 호소한다.” (아랑형 전설) 71쪽 “라깡에 따르면 상징계란 분리의 기능을 수행한다. 유아는 어머니로부터 ‘분리’ 되어야 상징계에 진입하게 되는데 이 상징계는 근친상간 금지라는 문화의 명령을 체현하는 기표인 ‘아버지의 이름’을 통해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이 상징계에 거주한 자아는 ‘아버지의 이름’이 요구하는 바를 자신의 행위 양식으로 추인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상징계 내에서 자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욕망은 욕망 자체로부터 ‘소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71쪽 “말하기에 대한 원귀들의 욕망은 집요하다. 관리들이 죽어나가도 죽지 않는 관리가 나타날 때 까지 피를 흘리며 나타난다. 마치 원귀들은 다른 쪽에는 해원의 길이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71쪽 “아랑의 실부는 딸을 제대로 훈육하지 못한 자신을 문책하며 낙향하지만 아랑은 또 다른 아버지, 다시 말해 상징적 아버지의 이름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71~72쪽 “아랑형 설화 내에서 상징적 아버지는 질서의 표상인 국가이고, 국가를 대신하는 관리이다. 상징계 내에서의 문제 해결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문화적 질서, 다시 말해 중세에서 발원하여 근대에 이르도록 지속되고 있는 유가적 가부장제 내부에서의 해원이다. 이들의 욕망은 상징계를 구성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는 대타자 내에 고착되어 있는 듯 하다. (중략) 원귀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이런 의미에서 원귀는 리비도의 변형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귀는 환상의 영역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계 속에서 새로 오는 관리를 만나고 죽이고, 죽이고 만나는 방식으로 현실계에 ‘관여’한다. 원귀는 환상일 수도 있고 환각일 수도 있지만 현실에 관여하는 한 그것은 ‘실제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원귀가 실제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부분 충동과 관련된 실재적 대상인 ‘대상 a’의 드러남, 다시 말해 상징계 안에 동거하고 있던 ‘실재’의 드러남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이름 아래 억압되어 있던 리비도의 출현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이 ‘낯선 현실’은 상징계에 위협적이다.“ 72쪽 “칼을 들지도 않았고 죽이지도 않았지만 원귀는 관리를 죽인다. 원귀들은 이미 존재 자체로 기존의 상징적 질서를 살해하는 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72~73쪽 “원귀의 흐름 혹은 리비도의 누출은 ‘죽지 않는 관리’의 등장으로 재빨리 봉합된다. 잠시 열렸던 실재계의 닫힘, 탈영토적 흐름의 재영토화,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재영토화 속에서 존재 자체로 칼이었던 여귀는 다시 칼집 안으로 포획된다. 다시 정절을 장식하는 ‘은장도’가 되는 것이다. 이 유형의 이야기가 남성들에 의해 ‘편집된’ 조선 시대 문헌들 안에 두루 수록된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재영토화야말로 조선시대 가부장적 남성들, 혹은 왕조의 당연한 정치적 요구였을 테니까 말이다.” 73쪽 “그런데 문제는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이 문을 닫는 것이, 실은 원귀 앞에서도 죽지 않는 관리가 아니라 아랑-원귀 또는 기생-원귀 자신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원귀들은 ‘아버지의 이름’에 편집증 환자처럼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랑이든 기생이든, 원귀 아랑이든 원귀 기생이든 이들은 이미 아버자의 이름이 “네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거야”하고 제시하는 상징계의 질서를 자신의 ‘자연’으로 신체에 등록하고 있는 주체인 것이다. 따라서 이 해원을 통해서 재구축되는 것은 아버지의 이름이고 문화적 질서일 수 밖에 없다. 해원이 끝나도 질서는 거기 건장한 사내처럼 또 다른 해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랑형 원귀설화의 대표 귀신 아랑은 ‘열녀’의 이름으로 재영토화된 오이디푸스적 주체일 뿐이다.“ 73쪽 주석 “아랑은 밀양 지역 권번(기생)들에 의해 재발견되어 추모제로 이어졌고, 지금은 <아랑제>(매년 5월)라는 지역 축제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제의에서 아랑은 ‘열녀’ 아랑이다. 도청이나 교육청 등의 후원을 받아 열리는 이 축제에서는 미스코리아를 선발하듯이 정절의 상징이라는 진·선·미 아랑을 선발하고 이들이 제관이 된다. 이처럼 열녀 아랑에 매여 있는 한 아랑은 오이디푸스적 주체를 재생산할 뿐이다. 이는 아랑 전설과 같은 맥락에 있는 신원형 가정소설 <장화홍련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장화와 홍련은 가부장적 국가에 신원을 호소할 뿐이다.”(“남성 지배와 장화홍련전의 여성 형상” 2003/ 조현설) 74쪽 “직접 해원은 간접 해원과 달리 원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간접 해원에 보이는 대타자가 없다.” (상사뱀형 설화, 신립장군형 설화) 77쪽 “문제의 핵심은 ‘피해자인 여성’이 원귀가 되어 해원을 하는 방식이다. 상사뱀형에서 뱀의 형상으로 나타난 귀신은 애정 또는 성욕의 대상에 달라붙어 대상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중략)“원귀들은 다른 무엇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해원을 이룩한다. 그것도 부정적인 파괴의 방식으로 해원에 이르는 것이다.” 77~78쪽 “아랑형이 해원을 통해 자신을 살해한 세계를 재구축했다면 이들(상사뱀형)유형들은 해원을 통해 자신을 자살에 이르게 한 세계를 파괴한다” 78쪽 “아랑형 원귀설화 : 강간, 살해와 같은 범죄행위 피해자->남성질서 내에서도 남자의 행동은 위법 / 상대 남성의 윤리적 결함을 폭로함으로써 집단 내에서 비판받게 하고 뉘우치게 한다->법적 절차를 통한 해결” “상사뱀형, 신립장군형 원귀설화 : 남성의 윤리적 결함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법적 위반은 문제가 되지 않음 / 자살은 여성 스스로의 결정. 사법적 질서에 문제의 해결을 호소할 수 없음” 78-79쪽 “원귀들의 직접 해원은 여성의 주체의 문제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상사뱀형이나 신립장군형 신원설화의 여성들 역시 아랑형에 등록된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유가적 가부장적 질서 내에서 정념의 억제를 당위로 훈육당한 존재들임에 틀림없다. 유가적 남성지배 사회에서 일단 통정을 하고 나면, 여성이 남성을 직접 찾아가고 나면 그때 여성은 이미 자신의 위치를 포기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여성들의 행위는, 그것이 낯선 사내에게 몸을 허락한 것이든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웃의 사내를 연모한 것이든, 이미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금지’의 선을 위반한 것이 된다. 선을 넘어선 이상 여서은 자신의 애정의 대상이 된 남성을 통해서만 존재의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 되돌아올 길은 없다. 따라서 이들의 자살은 상징적 질서 안에, 다시 말해 유가적 상징계 안에 있는 여성들의 불가피한 선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해원은 상징계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상징계를 넘어서려는 이들의 행위가 상징계의 질서 안에 갇힌 남성의 거부에 의해 좌절당했기 때문이다.” 79-80쪽 “직접 해원에 도전하는 여귀들은 자신들의 신체를 문화적으로 구성하고 있던 ‘아버지의 이름’을 지워버린다. (중략) 라깡의 개념을 빌려 다시 말하자면 아버지의 이름 아래 금지되어 있던 ‘주이상스’로의 역행, 혹은 그것의 침입이 여기 있는 셈이다. (중략) 자신을 거부한 남성에 대해 견딜 수 없어 하는 여성의 자아는 상사계로의 역전이를 통해 사랑과 증오, 혹은 애정과 공격성이라는 극단적으로 대립된 정서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는 이중성을 특징으로 갖는 분열된 주체로서의 모습을 연출하게 되는데 상사뱀형, 신립장군형 원귀설화의 여귀들의 증오와 공격성이 그런 것이다. 여귀들의 증오와 공격성은 고통 속에서 느끼는 쾌락, 쾌락 원칙을 넘어서 쾌락, 곧 주이상스의 표출인 셈이다.”…

  • [망한논문 참고자료] (5) 텔레비전 역사드라마의 야담(野談) 수용 과정 연구, 박상완 ( Sang Wan Park ),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학연구 91권, 85 ~ 117쪽, 2013

    [망한논문 참고자료] (5) 텔레비전 역사드라마의 야담(野談) 수용 과정 연구, 박상완 ( Sang Wan Park ),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학연구 91권, 85 ~ 117쪽, 2013

    91쪽. “야담은 사료의 측면에서 보면 존재하지 않은 역사이지만 가능성의 측면에서는 존재하는 역사를 통해서, 우리 내면의 공통된 감정구조에 호소하는 속성을 지닌다. 이러한 속성은 역사가 국사로, 과거의 모든 사실이 민족적·지리적 경계 안에서만 다뤄지는 우리의 현실 상황에서 보다 본질적인 역사의식을 담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고정화된 의미 속에서 죽은 사료와 대화하지 않고, 역사화되는 현재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과거에 비추어 이해하는 능동적인 성찰행위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윤석진, 「2000년대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장르 변화 양상 고찰 1」, 『한국극예술연구』, 제38집, 한국극예술학회, 2012, 304면 참조 (“조선왕조 오백년”등 정사 사극이 나오기 전 1970년대 사극이 야담을 반영한 것을 언급하며) 96~97쪽 “하지만 공포·액션·코믹·멜로·수사 등의 장르적 이야기를 풀어냄에 있어서 과거라는 배경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다면 야담이 지니는 본래의 현실 반영적 속성이 구현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같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것이 20세기 현재에서 벌어지느냐, 아니면 15세기 조선에서 벌어지느냐에 따라 주제와 텍스트의 의의는 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중략) “오히려 방송 초기부터 역사 드라마의 중심에 놓여있었던 야담은 1980년대 들어 주변 담론으로 밀려나는 와중에도 나름의 영역을 확보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과거를 선택하고 서술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차이는 현실을 은유하는 거울로서의 과거라는 역사적 상상력 하에서 텍스트적 가치로서의 의미만을 지닐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야담이 어떤 이야기로 재탄생되든 그것이 우리의 기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이상, 역사의 어느 지점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21세기 현재와 필연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차이, 그럼에도 최소한으로나마 공유되는 기억으로부터 이후에 야담이 역사드라마에 재위치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105쪽 “야담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한 상상의 공간을 창조함으로써 과거를 현재를 은유하는 공간으로서, 극적 사건을 주체의 성찰을 이끄는 재해석된 이야기로서 만드는 것이다.” 105쪽 “수많은 야담 중에서 ‘구미호’ 서사와 ‘처녀귀신’ 서사가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것은 그것들이 2000년대 역사드라마에 적합한 성찰적 속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구미호는 전국 곳곳에 존재하던 설화가 TV 드라마에 의해 재정리된 경우이고, 처녀귀신은 우리 기억 속에서 가장 오래된 비인간적 존재 중 하나다. 그만큼 구미호와 처녀귀신 서사는 역사드라마에서 가장 빈번하게 채택된 야담이었는데, 이는 두 이야기에 사회의 모순을 성찰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106쪽. “‘처녀귀신’은 인간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 한풀이를 꿈꾸는 존재다. 구미호 서사와 달리 여기서는 처녀귀신의 한풀이가 반드시 이뤄진다. 역시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세 번째 단계(세 번째 부임한 사또, 세 번째 증거의 확보)에서 처녀귀신은 한풀이에 성공한다. 처녀귀신이 죽음을 당하는 이유는 돈과 성욕이 대표적이지만 살해자의 삿된 욕망이 빚은 참극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이때 희생자인 처녀는 욕망에 때묻지 않은 순수성을 상징하며, 그의 죽음은 타자화된 존재가 권력에 의해 희생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처녀귀신 서사에서 중요한 것은 한풀이가 이루어져 인간다움이 회복된다는 점, 그리고 그 한풀이가 반드시 사또라는 공권력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106쪽 “‘구미호’는 인간이 아닌 존재이지만 인간이 되고픈 욕망을 지닌 존재다. 그러나 구미호 서사에서 구미호는 인간이 되는 데에 반드시 실패한다. 지역적 특색과 각색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마지막 단계(100번째 간을 먹지 못하거나, 100일 또는 10년째 되는 날에 정체가 드러남)에서 구미호의 인간되기는 실패한다. 구미호의 실패는 대부분 남편, 혹은 마을 사람들로 인해 발생한다. 이들은 가부장제 사회의 경직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외부인이 공동체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한다. 즉 구미호 서사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은 존재의 좌절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치부를 드러낸다.” 107쪽 “구미호 서사는 가부장제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처녀귀신 서사는 권력구조라는 보다 보편적인 모습으로써 사회의 모순을 폭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표면적으로는 인간이 아닌 존재의 사적인 이야기이지만, 사회에 의해 희생된 개인의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라는 보다 이데올로기적인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107쪽 “구미호 서사가 가부장제의 모순을 들춰내는 데에 치중하는 고발의 서사라면, 처녀귀신 서사는 모순을 드러내고 봉합하면서 사회 안정에 기여하는 순응의 성격을 지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구미호 서사는 구미호를 주인공으로 두고 어떻게 인간되기에 실패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적인 구미호와 비인간적인 인간의 대비를 통해 인간다움을 묻는다. 반면 처녀귀신 서사에서 주동인물은 사또이고, 그가 어떻게 처녀귀신의 한을 풀어주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억울하게 죽은 인간의 인간다움 회복과 공권력의 정당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 [망한논문 참고자료] (1) 최기숙, 『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서울:문학동네, 2010

    [망한논문 참고자료] (1) 최기숙, 『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서울:문학동네, 2010

    13쪽 “귀신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녀)가 소속이 불확실한 ‘경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생과 사의 어느 한 쪽에도 안착할 수 없는 떠돌이, 부유하는 난민이다.” 13쪽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이승과 저승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음이 비로소 드러난다. 이로 인해 이승과 저승이 완전히 다른 세계이며 서로 넘나들 수 없다는 상식은 전복된다. 귀신은 생사의 경계에서 삶과 죽음이란 이원론적 구분을 조롱한다. 이제껏 현실을 지탱해 온 합리와 이성의 법칙을 부정하는 것이다.” 14쪽 “귀신을 보는 일은 마치 눈을 뜬 채로 저승을 보는 것과 같다. 동시에 귀신을 목격한 자는 그 사실만으로도 귀신이 현실에 출현한 이유를 알아야 할 운명에 처한다. 목격자는 산 채로 사후 세계를 미리 체험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는 동시에, 귀신의 불운에 동참해 귀신과 운명 공동체를 이룬다. 목격자의 공포는 이러한 운명을 오직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개인성’을 확인하는 데서 증폭된다. 귀신의 요청을 거부하는 자에게 남겨지는 것은 죽음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귀신은 산 자의 생기를 먹고 사는 사신의 기호다.” 14쪽 “귀신을 목격한 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귀신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잔혹하다. 그것은 귀신의 음성이 사후 세계와 닿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귀신이란 결국 냉정하고 잔혹한 현실이 만들어 낸 가학적 증거물이라는 확인에서 비롯된다. 귀신에 대한 공포는 결국 모순투성이의 잔인한 현실을 확인하는 데서 비롯된다. 17쪽. “논어”인용. 술이편, 선진편, 옹야편 15쪽 “처녀귀신의 전통은 뿌리깊다. 그것은 15세기에 김시습이 창작한 『금오신화』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로 거슬러 올라가며, 더 멀게는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수이전』에 수록된 「최치원」으로 소급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귀신은 모두 여성이고, 스무 살이 넘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를 가로막는 세상에 저항하기 위해 자결한 슬픈 사연의 주인공들이다. 그 때문에 귀신은 공포에 앞서 슬픔을, 분노보다 큰 애상감을 불러온다. 이들은 오직 순수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아주 먼 옛날, 귀신은 함부로 마음을 열지 않는 수줍음 많은 처녀였으며, 현실과 타협할 줄 모르는 강한 자의식의 소유자였다. 처녀귀신은 꿈을 간직한 순수한 영혼이었지만, 죽은 뒤에야 그 꿈을 이룬 소망의 존재, 비운의 주인공이다.” 15쪽 “고소설에서 자살한 여성 인물이 환생하는 비율은 31% 정도다. 자살한 남성 인물이 환생하는 이야기는 한 편도 없다. 이 중에서 자살한 원귀의 환생에 해당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김인향전」, 「유치현전」, 「장화홍련전」, 「접동새」, 「정을선전」 등 5편이 확인된다.” 16쪽 “처녀귀신은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죽음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전복시킴으로써 공포의 표상이 되었다.” 16쪽 “한국 문화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해온 죽음의 형식은 노화의 궁극적 지점에서 맞는 자연사다. 처녀귀신이란 이에 대한 욕망과 기대를 일시에 배반한 불온한 문화 기호로 자리매김한다. 여성에게 혼례란 성인식과 동일시되었으므로, 처녀귀신은 미처 성인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한 실패자의 표상이기도 했다.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귀신의 슬픔이 ‘공포’로 자리바꿈한 데에는 이러한 내력이 작용하고 있다. 응축된 한의 밀도는 감당하기 어려운 공포로 감지되는 것이다.” 16쪽 “유교에서 조상에게 올리는 제례의식은 죽은 뒤에도 영혼이 살아있다는 귀신 문화를 인정하는 차원이 아니라, ‘예’를 존중하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차원에 근간을 둔다.” 19쪽 “귀신은 사후 세계, 즉 저승이라는 상상 속 공간에서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동시에 오직 목격자에 의해서만 존재 증명이 가능하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출현한 귀신은 귀신이 아닌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귀신은 포획된 타자다.” 19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야담집에는 귀신 이야기가 전한다. 물론 그 분량은 미미하다. 대개 야담집을 창작하고 읽고, 다시 편집하거나 전했던 이들이 사대부 남성이기 때문이다. 후기로 가면서 한글로 쓰인 야담집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주된 향유층은 여전히 한문을 읽고 쓰는 사대부 남성이었다. 공부하는 선비나 관리들이 여가에 읽던 심심풀이 독서물인 야담집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주인공이 사대부 남성, 벼슬하는 관리라는 점은 독자층과 텍스트 내용 사이의 상관성을 입증한다.” 19-20쪽 “이야기에 등장하는 귀신은 두 부류다. 하나는 현실의 불완전성을 해결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등장한 귀신이다. 다른 하나는 순탄한 죽음을 맞지 못한 원귀(冤鬼)다. 이야기 속에서 이들은 정확히 남자와 여자로 구분된다. 말하자면 무서운 원귀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성이 독점한 셈이다.” 20쪽 “그러나 성별을 막론하고 죽은 뒤에도 현실과 관계를 맺으며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것은 이들의 공통점이다. 이유없이 등장하는 귀신이란 없는 것이다.” 20쪽 “귀신은 한의 증거인 동시에 의지와 욕망의 표상이다. 이들은 삶과 죽음, 현실과 사후 세계의 단절성을 해체한다. 동시에 그 경계에 위차한 인간의 욕망과 의지의 지점들을 포착해내는 타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 22쪽 “여자 귀신들은 거의 대부분 남자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22쪽 “남자 귀신 이야기가 여자 귀신 이야기에 비해 많은데도 더 오래 기억되고 널리 회자되는 것은 여자 귀신 이야기, 그중에서도 단연코 처녀귀신 이야기다. 그것은 처녀귀신 이야기가 갖고 있는 독특한 ‘한’의 정서에 기인한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던 여자들이 귀신이 되어서야 비로소 ‘말하는 입’을 갖게 되었고, 이야기는 바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확성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오늘날 처녀귀신 이야기가 귀신 이야기로서의 ‘정통성’을 확보하게 된 데에는 이러한 상황적 요소, 억압된 것을 풀어주는 활력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22~23쪽 “여자 귀신들이 사대부 관리에게 모습을 드러낸다는 설정은 사대부들이 귀신의 억울함을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능력’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23쪽 “남자 귀신이 조상신으로 영원히 기려지는 데 비해, 여자 귀신은 권력자가 억울함을 풀어주면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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