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원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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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논문 참고자료] (7) 여성 원혼의 존재양상과 신격화의 의미 -서울지역 호구를 중심으로-, 권선경 ( Sun Kyung Kwon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65권(2014.11.30.), 319 ~ 344쪽, 2014
320쪽 “무속에서는 비정상적으로 죽음을 당한 경우 원혼(冤魂)이 된다고 생각한다. 비정상적인 죽음이란 통과의례를 제대로 거치지 못한 경우와 수(壽)가 다하여 자기 집에서 죽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경우를 일컫는다. 아주 어려서 죽거나 혼인을 하지 못하고 죽거나 혼인은 하였으나 자손 없이 죽는 경우가 전자에 해당된다. 후자에는 죽음을 집밖에서 맞는 모든 경우와자신의 수(壽)를 다하지 못하고 죽게 되는 교통사고와 같은 사고사(事故死) 등이 속한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죽은 존재는 저승으로 천도되어 정상적인 조상으로 좌정하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 존재로 여겨진다. 서울굿에서는 이러한 존재를 영산이라고 한다.” (조상이 아니므로 자신을 위한 의례가 따로 없고, 늘 배가 고픈 상태) 김태곤, “한국무가집” 1(집문당, 1971), 49-51면. “어-꿋자/부리 영산에 신에 영산이라/산에 올라 호영산요/들에 내려 객사영산이요/만경은 청파에 수살영산 아니시리/네에 이번에 고픈 배 불여 가구 마른 목 적시어서/00가중에 신사덕 입혀 도와 가며/어-꿋자/나는 모두-/독감에두 가든 영산이요/얼어 쓸어 가던 영산/늑망념에 가던 영산 복막념에 가던영산/치통에 지통에가던 영산/개 물녀 가던 영산/소에 받쳐 가던 영산 말에 치어 가던 영산/전차나마차나 자동차 기차에 치어 가던 영산/상문 영산에 집안은 진주에 원주 영산에 집주 영산 아니시랴/아무쭈룩에 오늘 모두 만이 먹구 잔뜩 먹구 내가 놀구 나리다/얼씨구나 어-꿋자-/나는 시들어 말나 가던 영산이요./이름 달나 가던 영산 성달나 가던 영산/위장병에 가던 영산 자궁병에 가던 영산/시스데리에 간질병에 가던 영산/생살은 부시럼에 가던 영산/굶을 질에 가던 영산/못다 입구 뭇다 목구/한많구 원 많어 가던 영산/네-청춘은 영산에 소년두 영산이오/두령두 영산에 호구두 영산이라/원주루 영산에 집주 영산/상문 영산이 아무쭈룩에 뒤루 뒷전에 고픈배 불녀 가구/이러네 말이 없구 저러네 탈이 없구/문전에서 달내구 보채는 수전없이/꿈자리 몽사에 비끼는 수전 없이 받뜰어서 상덕 입혀 도와 주리다” 323-324쪽 “여기서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은 통과의례를 거치지 못한 것을 의미하는데, 통과의례란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거치게 되는 탄생, 성년, 결혼, 장사(葬事) 등에 수반되는 의례이다. (중략) 통과의례 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혼사와 후손의 존재 여부이다. 따라서 총각귀신인 도령영산과 처녀귀신인 호구영산 외에 자주 등장하는 영산이 임신 중이나 출산하다가 죽은 하탈 영산이다. 죽었을 당시에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인해 발생하게 되는 원혼의 경우 남성은 총각귀신만이 등장하지만 여성의 경우는 처녀귀신 외에 임신이나 출산 중에 죽은 영산까지 포함된다. 임신과 출산의 주체가 여성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혼인과 함께 임신․출산을 통해 후손이 확보되지 못했을 경우 처녀 귀신과 동일하게 불안정한 상태로 보는 것이다.“ 324-325쪽 “총각귀신과 처녀귀신은 사후혼사굿이라는 진혼(鎭魂) 방식 외의 진압(鎭壓)을 통해 원혼을 다스리고자 하는 경우도 있다. 처녀의 경우 처녀로 죽으면 무덤을 만들지 않고 입에 인절미를 물리고 사거리 복판에 엎어서 묻었다고 한다. 말썽을 부리지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인절미를 입에 물린 것은 말을 하지 못하게 막은 것이고, 거꾸로 엎어서 묻은 것은 일어나는데 시간이 걸리게 한 것이다. 사거리 복판에 묻은 것 역시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에 묻어 사람들에게 자꾸 밟혀서 일어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총각 귀신도 진압의 방식이 존재하지만 처녀귀신의 경우가 좀 더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330~331쪽 “수풀당 애기씨호구”, “살군당부군애기씨호구” 수풀당과 살군당은 왕십리 일대에 존재하는 아기씨당이다. 아기씨당의 주신인 아기씨는 당신화와 당굿을 통해 마마를 앓다가 죽은 젊은 여성신 즉 호구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신화에서 아기씨는 북쪽의 공주로 나라가 망하자 왕십리쪽으로 다섯 형제가 피신을 나왔다가 봄에 찔레꽃을 입에 물고 삶을 달리했다고 한다. 그 후 왕십리 일대에 마을이 생겨나고, 마을의 전염병을 돌게 하는 등의 변고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마을 유지에게 현몽하여 자신을 모셔줄 것을 부탁한다. 그후 마을에서는 행당동 아기씨당에 한 분, 수풀당에 세 분, 양지당에 한분의 아기씨를 모시고 마을신으로 섬겼다고 한다. 천연두의 치료제의 하나였던 찔레꽃을 입에 물고 죽었고, 자신의 존재를 전염병으로 알리며 무엇보다 현재 호구거리의 호구와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아기씨가 호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31쪽 “물건너 화(하)주당의 송씨부인과 나씨부인” 화주당은 사후 혼사굿을 했던 곳으로 유명한 곳. 화주당을 언급할 때 무가에서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물건너’라는 표현이다. 처녀와 총각이 죽으면 그 혼을 말명 상자)로 모셔서 이곳에 안치했는데, 안치된 말명 중에서 서로 궁합이 맞는 경우 이곳에서 사후 혼사굿을 했었다. 332쪽 “화주당의 송씨 부인과 나씨 부인” 남한산성 축조의 한쪽을 담당했던 이회대감(홍대감)이 축성자금을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처형되었는데, 이회대감은 자신이 결백하다면 목을 벨 때 목에서 매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처형 당시 이회 대감 목에서 매 한 마리가 튀어 나왔고, 이회 대감의 신이한 죽음으로 사람들이 그의 결백을 믿게 되었다. 실제로 추후 관(官)의 조사로 이회 대감은 청렴결백했음이 밝혀져 신원(伸寃)되었다. 그 후 사람들이 그의 넋을 기리기 위해 남한산성 안에 청량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주었고, 화주당은 부인들을 모신 당이다. 처형 당시 이회 대감 목에서 나온 매가 날아가 앉은 자리가 화주당 자리라고도 한다. 한편 이회대감의 부인들은 남편을 위해 삼남(三南)지방에서 축성미(築城米)를 모아 가지고 뚝섬 근처로 오던 중 남편의 처형 소식을 듣고 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고 한다. 이후 부인은 원혼(冤魂)이 되어 배가 파선되도록 이끌었고, 이에 부인을 모시게 된 곳이 화주당이라고 전한다. 현재는 이회대감도 함께 모시고 있다. 그런데 이 중 작은 부인인 나씨 부인은 자결 당시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산활호구라고 한다. 333쪽 “호구거리에서 중요한 호구로 모셔지는 아기씨와 송씨 부인, 나씨 부인은 모두 젊은 여성이다. 혼기가 찼으나 혼인하지 못했거나 혼인은 했으나 후손을 생산하지 못하고 죽은 존재들이다. 혼인이라는 통과의례 자체를혹은 임신․출산을 통해 후손의 확보를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는 데에서 모두 동일하다. 따라서 호구는 후손을 남기지 못한 채 죽은 젊은 여성신을 말한다. 여기서 젊은 여성신이란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가임기 여성을 말하며 생산이 가능하지만 생산을 실현하지 못한 존재를 호구신으로 본 것이다.“ 335쪽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젊은 여성의 한스러운 죽음이라는 데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죽음의 원인이 사회적 의미를 얻었을 때 본 과정의 호구로 신격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기씨 : 천연두 / 송씨, 나씨부인 : 축성역의 괴로움-> 해당 지역의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338쪽 : “아기씨와 송씨 부인 나씨 부인의 죽음을 젊은 여성의 죽음이라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해당 지역의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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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논문 참고자료] (6)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과 고전 여성문학 ; 원귀의 해원 형식과 구조의 안팎, 조현설 ( Hyun Soul Cho ), 한국고전여성문학회,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7권, 2003 65 ~ 96쪽
69쪽 “원혼형 설화 속에서 여성 자아의 위치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한의 응결체인 원귀들이 원한을 해소하는 방식이다. 물론 해원의 방식은 결원(結怨)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결원이 반드시 해원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주체의 태도에 따라 과거와 미래가 조정되는 것이 아닌가. 중요한 것은 해원을 시도하는 원귀의 태도인 것이다.” 69쪽 “결원과의 관계를 고려하면서도 해원의 방식에 주목해야 원혼형 설화의 문제 지점이 분명히 드러나리라고 생각한다.” 70쪽 “간접 해원은 타자를 경유한 해원이다. 원귀는 스스로 해원에 나서지 않고 해원의 중재자를 찾아가 해원을 호소한다.” (아랑형 전설) 71쪽 “라깡에 따르면 상징계란 분리의 기능을 수행한다. 유아는 어머니로부터 ‘분리’ 되어야 상징계에 진입하게 되는데 이 상징계는 근친상간 금지라는 문화의 명령을 체현하는 기표인 ‘아버지의 이름’을 통해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이 상징계에 거주한 자아는 ‘아버지의 이름’이 요구하는 바를 자신의 행위 양식으로 추인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상징계 내에서 자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욕망은 욕망 자체로부터 ‘소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71쪽 “말하기에 대한 원귀들의 욕망은 집요하다. 관리들이 죽어나가도 죽지 않는 관리가 나타날 때 까지 피를 흘리며 나타난다. 마치 원귀들은 다른 쪽에는 해원의 길이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71쪽 “아랑의 실부는 딸을 제대로 훈육하지 못한 자신을 문책하며 낙향하지만 아랑은 또 다른 아버지, 다시 말해 상징적 아버지의 이름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71~72쪽 “아랑형 설화 내에서 상징적 아버지는 질서의 표상인 국가이고, 국가를 대신하는 관리이다. 상징계 내에서의 문제 해결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문화적 질서, 다시 말해 중세에서 발원하여 근대에 이르도록 지속되고 있는 유가적 가부장제 내부에서의 해원이다. 이들의 욕망은 상징계를 구성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는 대타자 내에 고착되어 있는 듯 하다. (중략) 원귀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이런 의미에서 원귀는 리비도의 변형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귀는 환상의 영역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계 속에서 새로 오는 관리를 만나고 죽이고, 죽이고 만나는 방식으로 현실계에 ‘관여’한다. 원귀는 환상일 수도 있고 환각일 수도 있지만 현실에 관여하는 한 그것은 ‘실제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원귀가 실제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부분 충동과 관련된 실재적 대상인 ‘대상 a’의 드러남, 다시 말해 상징계 안에 동거하고 있던 ‘실재’의 드러남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이름 아래 억압되어 있던 리비도의 출현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이 ‘낯선 현실’은 상징계에 위협적이다.“ 72쪽 “칼을 들지도 않았고 죽이지도 않았지만 원귀는 관리를 죽인다. 원귀들은 이미 존재 자체로 기존의 상징적 질서를 살해하는 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72~73쪽 “원귀의 흐름 혹은 리비도의 누출은 ‘죽지 않는 관리’의 등장으로 재빨리 봉합된다. 잠시 열렸던 실재계의 닫힘, 탈영토적 흐름의 재영토화,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재영토화 속에서 존재 자체로 칼이었던 여귀는 다시 칼집 안으로 포획된다. 다시 정절을 장식하는 ‘은장도’가 되는 것이다. 이 유형의 이야기가 남성들에 의해 ‘편집된’ 조선 시대 문헌들 안에 두루 수록된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재영토화야말로 조선시대 가부장적 남성들, 혹은 왕조의 당연한 정치적 요구였을 테니까 말이다.” 73쪽 “그런데 문제는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이 문을 닫는 것이, 실은 원귀 앞에서도 죽지 않는 관리가 아니라 아랑-원귀 또는 기생-원귀 자신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원귀들은 ‘아버지의 이름’에 편집증 환자처럼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랑이든 기생이든, 원귀 아랑이든 원귀 기생이든 이들은 이미 아버자의 이름이 “네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거야”하고 제시하는 상징계의 질서를 자신의 ‘자연’으로 신체에 등록하고 있는 주체인 것이다. 따라서 이 해원을 통해서 재구축되는 것은 아버지의 이름이고 문화적 질서일 수 밖에 없다. 해원이 끝나도 질서는 거기 건장한 사내처럼 또 다른 해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랑형 원귀설화의 대표 귀신 아랑은 ‘열녀’의 이름으로 재영토화된 오이디푸스적 주체일 뿐이다.“ 73쪽 주석 “아랑은 밀양 지역 권번(기생)들에 의해 재발견되어 추모제로 이어졌고, 지금은 <아랑제>(매년 5월)라는 지역 축제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제의에서 아랑은 ‘열녀’ 아랑이다. 도청이나 교육청 등의 후원을 받아 열리는 이 축제에서는 미스코리아를 선발하듯이 정절의 상징이라는 진·선·미 아랑을 선발하고 이들이 제관이 된다. 이처럼 열녀 아랑에 매여 있는 한 아랑은 오이디푸스적 주체를 재생산할 뿐이다. 이는 아랑 전설과 같은 맥락에 있는 신원형 가정소설 <장화홍련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장화와 홍련은 가부장적 국가에 신원을 호소할 뿐이다.”(“남성 지배와 장화홍련전의 여성 형상” 2003/ 조현설) 74쪽 “직접 해원은 간접 해원과 달리 원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간접 해원에 보이는 대타자가 없다.” (상사뱀형 설화, 신립장군형 설화) 77쪽 “문제의 핵심은 ‘피해자인 여성’이 원귀가 되어 해원을 하는 방식이다. 상사뱀형에서 뱀의 형상으로 나타난 귀신은 애정 또는 성욕의 대상에 달라붙어 대상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중략)“원귀들은 다른 무엇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해원을 이룩한다. 그것도 부정적인 파괴의 방식으로 해원에 이르는 것이다.” 77~78쪽 “아랑형이 해원을 통해 자신을 살해한 세계를 재구축했다면 이들(상사뱀형)유형들은 해원을 통해 자신을 자살에 이르게 한 세계를 파괴한다” 78쪽 “아랑형 원귀설화 : 강간, 살해와 같은 범죄행위 피해자->남성질서 내에서도 남자의 행동은 위법 / 상대 남성의 윤리적 결함을 폭로함으로써 집단 내에서 비판받게 하고 뉘우치게 한다->법적 절차를 통한 해결” “상사뱀형, 신립장군형 원귀설화 : 남성의 윤리적 결함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법적 위반은 문제가 되지 않음 / 자살은 여성 스스로의 결정. 사법적 질서에 문제의 해결을 호소할 수 없음” 78-79쪽 “원귀들의 직접 해원은 여성의 주체의 문제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상사뱀형이나 신립장군형 신원설화의 여성들 역시 아랑형에 등록된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유가적 가부장적 질서 내에서 정념의 억제를 당위로 훈육당한 존재들임에 틀림없다. 유가적 남성지배 사회에서 일단 통정을 하고 나면, 여성이 남성을 직접 찾아가고 나면 그때 여성은 이미 자신의 위치를 포기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여성들의 행위는, 그것이 낯선 사내에게 몸을 허락한 것이든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웃의 사내를 연모한 것이든, 이미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금지’의 선을 위반한 것이 된다. 선을 넘어선 이상 여서은 자신의 애정의 대상이 된 남성을 통해서만 존재의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 되돌아올 길은 없다. 따라서 이들의 자살은 상징적 질서 안에, 다시 말해 유가적 상징계 안에 있는 여성들의 불가피한 선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해원은 상징계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상징계를 넘어서려는 이들의 행위가 상징계의 질서 안에 갇힌 남성의 거부에 의해 좌절당했기 때문이다.” 79-80쪽 “직접 해원에 도전하는 여귀들은 자신들의 신체를 문화적으로 구성하고 있던 ‘아버지의 이름’을 지워버린다. (중략) 라깡의 개념을 빌려 다시 말하자면 아버지의 이름 아래 금지되어 있던 ‘주이상스’로의 역행, 혹은 그것의 침입이 여기 있는 셈이다. (중략) 자신을 거부한 남성에 대해 견딜 수 없어 하는 여성의 자아는 상사계로의 역전이를 통해 사랑과 증오, 혹은 애정과 공격성이라는 극단적으로 대립된 정서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는 이중성을 특징으로 갖는 분열된 주체로서의 모습을 연출하게 되는데 상사뱀형, 신립장군형 원귀설화의 여귀들의 증오와 공격성이 그런 것이다. 여귀들의 증오와 공격성은 고통 속에서 느끼는 쾌락, 쾌락 원칙을 넘어서 쾌락, 곧 주이상스의 표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