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임

  • [망한논문 참고자료] (2) 백문임, 『월하의 여곡성 – 여귀로 읽는 한국 공포영화史』, 서울:책세상, 2008

    [망한논문 참고자료] (2) 백문임, 『월하의 여곡성 – 여귀로 읽는 한국 공포영화史』, 서울:책세상, 2008

    15-16쪽 (2003년 “여관방 몰카에 잡힌 혼령의 정체:라는 자극적인 홍보 문구로 관객을 유인했던 <목두기 비디오>(윤준형, 2003)에 대해) “제작진은 그 고등학생의 가족사를 파헤쳐 실제의 살인자가 버젓이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영화를 마무리했고, 흥분한 관객들은 이 살인사건을 방송국에 제보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 해프닝에서 흥미로운 것은 ‘귀신의 힘을 빌려 사건을 해결한다’고 하는 옛 공안(公案) 이야기의 서사가 21세기 인터넷 공간에서도 통용되었다는 사실이다.” 51쪽 “한국 공포영화는 설화나 민간 신앙에 나타나던 원귀(冤鬼), 그중에서도 여성 귀신을 괴물로 등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억울한 사연을 품고 죽은 여성이 현실에 돌아와 잔인한 복수극을 펼치는 내러티브를 장르적 특질로 형성했다.” 16쪽 “<장화홍련전>이나 <김인향전>처럼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가 원귀가 되어 사또나 어사 등 관(官)의 힘을 대신할 사람 앞에 나타나 신원(伸冤)해줄 것을 청하고, 판관을 이를 해결하여 공공질서를 바로잡는 공안 이야기와 <목두기 비디오>의 차이라면 원귀가 사람 앞에 직접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캠코더라는 시각 매체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사또나 어사가 아니라 비디오 저널리스트가 사건을 조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이 기괴스러운 이미지와 그에 대한 반응이 상호 증식하면서 담론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21쪽 “젊은 여성의 귀신이 가장 비천하고 사악한 존재로서 귀신의 위계에서 최하위에 위치하면서 가장 큰 두려움을 주었다는 것은, 유교적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이 타자들을 어떤 식으로든 ‘호명’할 필요가 있었다는 의미인 동시에 그 ‘호명’을 통해서도 이들을 제어하기가 어려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21쪽 “원시종교에서부터 귀신은 숭배의 대상이었지만 인귀(人鬼)는 선한 귀신인 조상귀신과 악한 귀신인 사귀(邪鬼)로 구분되었고 그중에서도 여자 귀신은 가장 사악한 귀신으로 간주되었다. 인귀의 종류를 나누고 위계화하는 관념은 본격적으로 성리학이 유입되었던 고려 말부터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죽어 선한 귀신이 되는가 악한 귀신이 되는가는 이승에서의 삶의 양상이나 죽음의 방식, 즉 성리학적 세계관이 규정하는 ‘정상적인’ 삶과 죽음의 방식에 의거해 결정되었다. 가장 정상적인 죽음은 오래 살다가 자기 집에서 죽는 것을 말하고, 단명(短命)에 죽거나 객사하거나 자살 또는 타살로 죽는 것은 이상사(異常死)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죽어서 자손들의 봉제사(奉祭祀)를 받는 선한 조상신이 되는 조건은, 통과 의례를 거쳐 환갑 이후까지 장수하고 자녀를 두되 특히 아들을 낳아 가계를 이은 뒤 자택에서 죽는 것이었다. 반대로 이러한 ‘정상적인’ 조건에서 벗어난 삶 또는 죽음을 경험하면 원귀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혼인이라는 통과 의례를 겪지 못하고 죽은 ‘처녀귀신’의 원한이 가장 크다는 통념이 존재했던 것은, 윤리 질서나 규범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점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같은 질서와 규범에서 벗어난 존재들에 대한 두려움이 무척 강했음을 반증한다.” 55쪽 “의미심장하게도 이 괴물들은 ‘가족’과 ‘기억’이라는 카테고리를 끈질기게 문제시하는 방삭으로 근대화 시기의 극장에 나타났다. 가족과 공식적인 기억은 역시 근대적인 제도로 재편되고 담론화되는 과정에서 ‘과잉 억압’을 파생시켰고, 일상과 욕망에 한계와 제한을 가하면서 그로부터 이탈된 자질들을 ‘타자’화했다.” 52-53쪽 “전래 귀신담의 여귀는 ‘차이’를 구현하는 여성인 동시에 지배 질서에 부합하는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죽은 존재로서 두려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교훈과 경계를 목적으로 하는 서사적 틀에 의해 여귀는 지배 질서의 대행자인 유력자 혹은 가부장에게 신원(伸冤)을 하소연하는 가엾은 희생자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녀들의 존재 자체는 두려운 것이지만, 서사적 틀은 그녀들을 현세 질서의 보조자로서, 공권력의 조력자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53쪽 “공포영화의 괴물을 ‘억압된 것/타자’의 개념적 이중 쌍으로 설명한 앞의 시각을 따른다면, 한국 공포영화의 여귀 역시 당시 사회문화가 부과한 과잉 억압을 지시하는 형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여성이 불러일으키는 근원적인 두려움과, 박정희의 근대화 프로젝트에서 ‘과잉 억압’된 가치들에 대한 매혹과 불안이 중첩되어 있다.” 53쪽 “반면 공포영화에서의 여귀는 희생자나 조력자의 이미지를 벗어나 스스로의 분노와 원한을 풀기 위해 가해자에게 직접 복수를 하는 존재로 변화한다. 이때 복수의 범위는 점차 가해자의 집안 자체로, 나아가 무고한 사람들 전체로 확장되기 때문에 여귀는 귀신담에 존재하지 않던 과잉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시각적인 차원에서도 여귀는 단일하고 통합된 근대적 자아의 신체경계를 위반하고 해체하는 이미지를 지닌다. 그녀들은 고양이나 여우와 같은 짐승의 신체로 변형되기도 하고, ‘자아’가 결여된 시체의 신체로 등장하기도 하며, 가부장적 질서를 ‘거세’하는 공격적인 신체를 지닌다. 신체의 표면을 뚫고 나오는 이빨, 손톱, 머리카락은 단일하고 통합된 신체의 관념을 와해시키고, 서구 드라큘라 영화에서 유입된 ‘흡혈’ 행위를 통해 타인(특히 남성)을 상징적으로 ‘거세’할 때에는 성적 정체성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특히 ‘흡혈’은 한국에서 여귀의 행위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섹슈얼리티의 발현이라는 의미를 파생시킨다.” 55쪽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도 이러한 젠더화가 나타났지만, 가까운 과거에 생산된 여성 원귀를 등장시킨 공포영화는 이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동시에 그러한 젠더화에 내포된 ‘과잉 억압’의 흔적을 드러낸 정르이기도 하다. 근대적 이상이 전근대의 귀신을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매장한 후, 특히 국가적인 차원에서 근대화가 획일적으로 추진될 무렵, 공포영화라는 첨단 매체를 통해 다시 등장한 여귀는 칸트가 숭고한 대상의 속성으로 언급했던 “크고 위력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공포영화는 때로는 이들을 전근대의 맥락 속에서 개념화화기도 하고, 때로는 이들에게 전면적이고 역동적인 마성을 부여해 공포를 스펙터클화 하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55쪽 “우드가 1970년대 미국에서 ‘정상성’의 경계를 이루는 목록으로 정리했던 것, 즉 “일부일처제-이성애주의-부르주아-가부장주의-자본주의자” 외에 1960년대 이후 한국에는 “민족주의-근대화주의자”라는 경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 경계는 상충하면서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여기에서 벗어나는 존재들, 그중에서도 여성들은 한국 공포영화에서 무시무시하고 흉측한 괴물들로 변형되었다.” 56쪽 “따라서 공포영화의 여귀들은 근대적 가족 제도의 재편 및 민족적 기억의 공식화 담론과 관련하여 새롭게 ‘타자’로 등장한 존재들, 자질들을 표상한다고 말할 수 있다.” 81쪽 “여기에서 한수의 참회 방식이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독립운동가로 만드는 것’ 이라는 점은 그의 참회가 단순히 아내 월향의 정절을 의심하여 죽게 만들었다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월향의 죽음 한수 자신의 ‘변절’을 상징하는 것이며, 한 집안에서 일어났던 참극은 이 순간 민족적인 차원의 비극으로 지평이 확장된다. 이제 <월하의 공동묘지>라는 공포영화는 여귀를 ‘민족적 원한’의 담지자로 만들며, 그녀의 복수를 근대적 가치와 제도들에 대한 응징으로 변화시킨다.” 95쪽 “공포영화 형상기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질은 가부장적 가족 관계에서 원한을 품고 죽은 여성이 여귀로 귀환하여 벌이는 복수극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초창기에는 다양한 경향의 공포영화가 시도되지만, 1965년경부터 한국의 공포영화에서는 여귀의 복수극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125~126쪽 “전래 설화에서 공포영화로의 변이, 그리고 그 중간을 매개하는 ‘신파’의 역할. 이는 한국 공포영화에 있어서 핵심적인 특질이라고 할 수 있다. (월하의 공동묘지, 두견새 우는 소리 예시)” 95쪽 “초기 공포영화에서 여귀가 구현하는 가치들은 무엇보다 ‘신파’와 멜로드라마라는 정서적 매개를 통해 관객에게 호소력을 가졌다. 1975년까지 공포영화에는 원한을 품고 죽음에 이르게 된 여성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그녀가 여귀로 귀환했을 때 벌이는 복수극에 카타르시스 효과를 부여하기도 했다. (중략) 1975년 이후 공포영화에서 여귀는 동정과 연민보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으로 변화되고, 내러티브에서는 여귀를 ‘퇴치’하는 모티프가 강화되게 된다. 여귀의 행위가 카타르시스보다는 공포를 제공하게 되고 여귀가 동정과 연민보다는 섹슈얼리티와 외래성(外來性)을 환기하게 됨에 따라 공포영화는 동시대 여성에 대한 불안감이 노골적이고 생경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장(場)이 된다.” 106=107쪽 “한국에서 전설과 사화, 민담 등의 이야기는 근대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생산/재생산되었으며, 1960년 전후의 시점에서도 『한국 야담, 사화 대집성』(1959년 9월 간행)과 같은 형태로 집성되거나 월간 『야담과 실화』, 『소설계』와 같은 대중 문예지를 통해 재생산된다. 이는 공포 영화의 이야기 소재 및 내레이터의 내레이션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문제로, 좀 더 광범위한 차원에서의 이야기 전승이라는 지평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아랑형 전설’이라든가 ‘불가사리 전설’ 같은 것은 공포영화로 직접 옮겨지지만, 여타의 이야기들은 전체 스토리 차원보다는 개별 모티프들의 차원에서 공포영화에 계승된다. (중략) 이는 구비문학이 문서 형태로뿐만 아니라 시청각적인 방식으로 전승 혹은 재창조되는 하나의 형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씨받이로 들어갔다가 본처에게 죽임당한 여자의 이야기, 과거 보러 가던 유생이 깊은 산중에서 여자들만 사는 집에서 하룻밤 머물게 되는 이야기, 계모에게 죽임당한 전처 자식들 이야기 등) 122~123쪽 “1965년과 1966년에 성공한 이용민의 영화들에 힘입어 1967년에는 공포영화가 붐을 이루게 된다(중략) (월하의 공동묘지, 한, 처녀귀신, 백발의 처녀 언급) 이 작품들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여귀가 한국 공포영화의 주인공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해외 공포영화의 장르적 관습보다는 전통적인 서사 혹은 동시대 서사들의 관습이 우위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108쪽 “이와 관련하여 이야기 소재와 형식 모두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되는 MBC의 라디오 드라마 『전설따라 삼천리』의 중요성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존속해왔던 이 드라마는 각지의 전설을 이야기 형식으로 꾸며 들려주는 것으로, 여기에서 내레이터가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방식은 공포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변사 또는 내레이터의 이야기 전달 방식으로 계승되고, 또 최근까지 방영되었던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도 계승된다.” 120쪽 “1960년대 공포영화의 주 관객층이 “시어머니의 인가를 받아 외출을 시도한 동네 아주머니 부대”였다는 점은 한국 공포영화가 멜로드라마와 관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근대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생산되던 가족 비극류, 즉 ‘신파’와 멜로드라마의 이야기 원천으로서 ‘가족’내 여성들간의 갈등은 공포영화라는 신생 장르에서 낯설게 변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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