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배명은,서계수,전혜진,김청귤,이하진,김이삭,코코아드림발행
구픽발행일
2022-02-06책소개
음력 1월 16일 한국의 핼러윈 귀신날, 우리의 귀신들이 모이는 밤 호러적 상상력으로 꿈틀대는 일곱 명 장르 작가들이 한 권의 앤솔러지에 모였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매해 음력 1월 16일은 한국의 세시풍속 중 하나로 이날은 일을 하거나 남의 집에 가면 귀신이 따른다고 믿고 바깥출입을 삼가고 집에서 쉬며 액운을 막기 위한 풍습을 행했다. 한국의 핼러윈이라고도 불릴 만한 이 귀신날을 소재로, 바로 지금 장르 소설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인과 기성 작가들이 각자 깊은 내면에서 이끌어낸 공포의 단편들을 선보인다. 실제 전승되는 설화를 소재로 한 이야기에서부터 어두운 이 사회의 이면과 가장 가까운 내 이웃의 이야기까지, 변화무쌍하고 으스스한 귀신날 그 하룻밤의 공포 속으로 초대한다.관련 이미지
주요사항
목차
- 1월 16일생(배명은)
- 산이 있었다(서계수)
- 창백한 눈송이들(전혜진)
- 주인 잃은 혼례복(김청귤)
- 시간의 거품(이하진)
- 풀각시(김이삭)
- 제목 미정(코코아드림)
수록작 소개
창백한 눈송이들
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사람이 죽으면서 자기 목숨을 걸고 고발하듯이 유서에 가해자들을 적어 놓아도, 처벌 같은 것은 없다고, 그냥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 말하는 거야? 사관학교씩이나 나온 엘리트가 죽어도 그 짝이 나니까, 고등학교만 겨우 나온 나는, 그리고 내 친구들은 그냥 입을 다물고 참으라는 거야?”추천사 ∙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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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논문 참고자료] (8) 『무당, 여성, 신령들 – 1970년대 한국 여성의 의례적 실천』, 로렌 켄달, 김성례·김동규 번역, 일조각, 2016.
11쪽(서문). “구조주의적 분석이 아니었다면 내가 놓쳤을지도 모르는 몇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친족에 대한 일반적 서술에서는 여성의 친정 가족이 남편 집안일에 끼어들지 않는다고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굿에서는 여성들의 살아 있는 친척, 신령, 조상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60쪽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전씨 할아버지를 위해 거행된 행사에서 전씨 할아버지가 최소한만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굿은 여성들의 잔치였다. 전씨네 할머니가 굿을 처음부터 준비하고 신령 및 조상과의 농담을 주도했다. 신령들 또한 며느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는데, 아들의 가정 역시 그 굿을 통해 복과 운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부계제(patrilineal)와 부거제(patrilocal)에 근거한 한국의 마을에서, 이미 출가한 전씨네 딸이 친정 집안의 신령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대신할머니가 올라 무감을 추었는데, 전씨 집안의 대신할머니가 그녀의 남편 가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전씨네 할머니도 전씨 집안으로 시집올 때 친정집 대신할머니의 영향력을 함께 가져왔다.”(주석 : 이것이 절대적 혈연관계가 아님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아들과 딸은 전씨네 할머니의 친자식이 아니다.) 61쪽 “(이웃과 친구들에 대해. 공수나 사탕을 받으며 돈을 조금씩 서고 춤을 추었다고 말하며) 이 여성들은 결코 소극적인 구경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모두 애정을 가지고 하나의 코러스를 이루었다. 이들은 신령들이 성가실 정도로 조르기도 하고, 진행되던 굿 드라마의 비평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슬픈 분위기에서도 자신들을 울지 않게 할 만한 재미난 것들을 찾아냈다. 이 여성들은 일상에서 그러하듯이 신랄한 말투와 유머 그리고 눈물로써 신령과 조상들을 대했다.” 66쪽 “전씨 가족의 굿에서 여러 종류의 신복을 입은 신령들이 나타난 곳은 여성의 세계이다. 여성 만신이 신령을 청하여 신의 말을 전하고, 만신이 아닌 일반 여성들은 신령에게 소원을 빌고 흥정을 하거나 때로는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 가정신령들이 잠잠해지면(가정신령을 대접하는 굿거리가 끝나면 – 옮긴이) 일반 여성들은 만신의 옷을 입고 자신들의 몸주신에 실려 춤을 추면서 가벼운 희열 상태에 들어간다.” 66쪽 I. M. 루이스 “신령의 성적 편향성(Sexual bias of the sprits), (Lewis, 1966, 309)” 1907년 보고라스의 기록 “대부분의 척치 족 샤먼들은 여성이지만 척치 족 사람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트랜스에 쉽게 빠진다고 보기 때문에 남성 샤먼들이 더 많은 특권을 누린다고 한다.”(Bogoras, 1907, 414) “트리니다드 샹고 의례에서 신이 들린 신자들의 75%는 여성” “케냐의 와타이타 족의 신 사카, 에티오피아의 신 자르, 서아프리카 하우사 족의 신 보리는 모두 여성에게만 내림. 일본의 샤먼과 아프리카의 랑고 족 점술가, 나트 신을 모시는 버마의 영매도 대부분 예외없이 여성.” 67쪽 “루이스는 신들림에 대한 수많은 민족지들을 종합적으로 연구하여, 여러 신들림 사례들이 마법 송사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사회적 틀 안에서 기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Lewis 1969, 27~28) 그는 여성 샤먼과 신들림 컬트 신도들이 남성의 옷을 입고 역할전도를 극화하는 상화엥 대해 ‘모방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형태의 아첨이 아닌가’라고 하면서 남성의 지위와 권력, 그리고 그에 따른 여성의 상대적 박탈이 암묵적으로 승인되고 있음을 발견했다.(앞의 책, 109)” (I. M. 루이스 “신령의 성적 편향성(Sexual bias of the sprits), (Lewis, 1966, 309)) 67~68쪽 (Lewis 1969에서, 루이스의 주장) “여성은 신들림을 일종의 전략으로 활용하는데, 평소에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트랜스 상태에서 말하는 것이다. 치료 의례에서 제도화된 신들림은 ‘여성이 고통을 통해서…… 스스로의 이익을 보호하고 자신들의 주장과 포부를 드러낼 수 있는 수단’(Lewis 1966, 322)이 된다.(중략) 그에 따르면 신들림 컬트는 ‘페미니스트 하위문화’의 전위 조직으로서, 그 안에서 여성은 남성 세계에 완곡한 형태로 저항한다는 것이다(Lewis 1969, 89)” 68쪽 “하위 문화로서의 신들림 컬트라는 루이스의 정의는 ‘지배적 도덕성의 종교’와 ‘주변적 컬트’라는 이원론적 구분에 근거한다. (중략) ‘주변적 컬트’는 복합 사회의 지배적인 도덕 종교 외부에 존재한다. 이 컬트의 신령들은 공식적으로는 폐기된 고대 신앙의 잔존물이며, 이제는 여성의 ‘주변적인’ 사회적 위치에 대한 보상으로서 여성의 시계에 남아 있다.(Lewis 1969, 34, 148)” 68쪽 뒤르켐 : “공동체가 가진 열망이 가장 잘 표현된 것으로서의 ‘교회’와 개인적 상황과 필요에 따른 주술의 구체적 적용들로서의 ‘컬트’를 구분(Durkheim (1915)1966, 59-62)” 68쪽 “주변적 여성들은 주변적 신령들에게 고통받는데, 그 신령들은 ‘사회에서 주목받는다 하더라도 사회의 도덕적 규칙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신령들은 앙심과 적의로 가득 차 있지만, 희생자들의 도덕적 특성이나 행위와는 상관없이 단지 변적이 심해 희생자들을 공격한다고 믿어진다.” (Lewis 1969, 30-31) 68~69쪽 “나는 그(루이스. 주변적)와는 상반된 주장, 즉 전씨 가족의 굿에 등장한 신령과 혼령들이 한국의 가족과 마을 종교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 종교 체계에서 여성과 샤먼은 남성들이 주도하는 의례들을 보완하는 대단히 중요한 의례들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여성의례에 대한 연구는 한국 지식인들이 토속문화를 오랫동안 불편해하고 유교 이념상 여성의 가치를 절하해 왔기 때문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엘리트라면 여성의례를 무시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국인이 겪은 복잡한 종교적 경험의 결과이다. 그러나 여성들의 활동이 한국인의 의례생활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남아있다는 사실 역시 그러한 종교적 경험의 결과이다.” 68쪽 “남성이 ‘중심 권력의 위치를 안정적으로 독점하고 여성의 법률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은 ’주변적‘일 수 밖에 없다.” (Lewis 1966, 321)“ 70쪽 “사회사학자들은 한국에서 ‘유교화’는 최근에 일어났으며 인위적 과정을 거쳤다고 주장한다. 15세기 초 건국된 조선왕조의 신유학 개혁가들은 한국 사회의 철저한 변화를 추구했는데, 이것은 매우 상이한 사회질서를 위에서 아래로 강요하는 것이었다. (Deuchler 1977, 1980.)” 70쪽 “현재 우리가 ‘전통적인 한국’이라고 연상하는 사회 패턴은 불과 16세기 혹은 17세기까지도 확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했다. 상당히 최근까지 한국의 친족은 부계에 제한된다기보다는 방계를 포함했을 가능성이 높다. 양반 계층의 딸들은 땅과 노비를 상속받았고, 가끔은 부친 조상의 신위에 제사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상속받았다. 조상숭배는 아직까지 엄격하게 유교적인 의례가 아니었다. 딸의 자식들은 출가한 집안의 족보 뿐 아니라 친정의 족보에도 기록되었다. 남편은 부인의 친정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여성은 남편의 친족에 어머니와 부인으로서 합류하여 시어머니의 자리를 계승하거나 혹은 여성 자신의 가정을 형성했다. (박병호 1974, 323-354; Duechler 1977; K. K. Lee 1977, 289-292; Peterson 1983l Wagner 1983) 70~71쪽 “최근에 한국학자들은 유교화의 범위와 정도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한국 여성이 실천한 비유교적 의례들은, 비록 지금까지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유교와 한국인 사이에 이루어진 타협을 이해하는 데 유리한 점들을 제공한다.” 71쪽 “초기 민족지학자들은 한국의 가정 종교가 가진 이중 구조에 대해 기술했다. 남성은 경건함 속에서 조상을 모시는데, 이것은 매우 엄숙한 의례다. 여성은 가정의 신령들을 모시며 잡귀들을 몰아낸다. (중략) 남성의례는 보통 유교적이라고 서술된다. 여성의례는 영혼숭배, 샤머니즘, 민속신앙, 미신이라고 불리었다.” 71쪽 “한국학자들은 여성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관례가 뚜렷한 사회에서 어떻게 사제 역할을 하는 여성 무당이 두드러지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만신은 여성이며 모든 만신은 여성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남성 샤먼(박수무당)은 굿을 할 때 여성의 옷을 입으며, 속바지는 하늘거리는 치마와 속치마 속에 감춰져 있었다.” 72쪽 “한국의 여성의례 연구는 반드시 무당을 언급하는데, 무속의례를 이해하려면 무당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일반 여성들을 빼놓을 수 없다. 가정 신령 및 조상들과 여성의 관계는 대부분의 무속의례의 토대가 되는데, 이것은 덕이 높은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효자가 남성의례의 기본적 토대를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73쪽 “사실상 불교적이라고 정확하게 명시하지 않거나, 혹은 유교 경전에 직접 기인하지 않은 모든 의례들이 무속적이라고 규정되는 경향이 있다. 학자가 아닌 일반 한국인들은 이러한 활동들을 미신이라고 부르는데, 이 용어는 문자 그대로 보면 ‘잘못된 신앙’이라는 뜻이다. 미신이라는 용어는 학자들에 의해 편견이 덜 가미된 채 사용되는 ‘무속적’이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신조어로서, 대략 19세기 말 동아시아에 기독교와 근대사상이 유입되던 때에 출현하였다.” 73쪽 “미신은 무속의례뿐만 아니라 조상숭배까지 포함해 모든 전통적 관습을 조롱하기 위한 용어였다. (중략) 여성의례에 대한 고유언어가 없기 때문에 만신들은 미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여러 명의 무당들과 손님들이 가끔 이렇게 묻곤 했다. ‘미국에도 이런 미신이 있냐?’ 한 만신은 자신의 손님을 ‘미신을 잘 지키는 집’이라고 칭찬했다.” 76~77쪽 “빈센트 브랜트는 한국 사회의 모순적인 모티프들에 대한 논의에서 ‘위엄 있는 선비에게 모범이 되는(중략) 고요한 평정 상태와 신들린 무당의 거칠고 격정적인 활동’을 병렬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대립이 ‘한국의 역사, 민속, 문학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라고 주장한다. (Brandt 1971, 28)” 77쪽 “선비와 무당의 대립은 남성과 여성, 엘리트와 일반인, 한학자와 토착 관습의 담지자라는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지난 500년동안 한학에 정통한 엘리트 남성으로서 ‘위엄 있는 선비’들은 자신들을 무당의 적으로 선언해 왔다. 그 시기 동안 위엄 있는 선비의 부인들은 무당을 계속해서 후원해왔다.” 79쪽 “대부분의 한국 양반들은 신령들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생각을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부인이 저급한 의례에 집착하는 것에는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헐버트) “다음과 같은 남성들도 많다. 일상생활에서는 잡신을 조롱하지만 막상 자기가 병상에 눕거나 누군가가 고통스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이 잡신에게 많은 뇌물을 지불함으로써 이전에 가졌던 회의적인 태도와 타협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Hulbert (1906)1970, 406) 77쪽 “여성들의 의례에 대한 사대부들의 의심은 이중적이었다. 여성은 아들과 아버지의 도덕 질서 외부에 있는 예측 불허의 존재였다. 여성이 가정의 신령들에게 행하는 의례와 여성 무당의 자극적인 의례는 경전에서 인정된 올바른 의례가 아니었다.” 81쪽 “점잔을 떠는 태도와 관련된 한국과 중국의 유사성 때문에, 중국 종교연구의 발전이 한국학 연구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중국학 연구자들은 엘리트 집단의 구성원들이 공적으로 표현하는 올바르고 정통적인 행동에 대한 집착과 사적으로 용인하는 다양한 믿음과 행동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Welch 1970; Yang 1961, 275-277; Freedman 1974,38) 한국의 경우 비유교적 의례들이 여성의례라는 사실 때문에 적절한 종교적 행위와 적절하지 못한 종교적 행위에 대한 엘리트의 차별이 강화된다.” 82쪽 “어떤 학자들은 가정의 신령들에 대한 한국 주부들의 지속적인 열의와 무당에 대한 후원이 가족 내에서 계속된 여성의 취약성에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여성은 자신의 친족과 마을을 떠나 낯선 외부인으로서 남편의 가족에 들어간다. 여성들은 시집가서 아이를 못 낳으면 수치심을 안고 친정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왔다. 아들 출산은 여성의 첫 번째 성공이며 자신이 쫓겨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한다. 그러나 여성은 안정적인 노후와 조상 대접을 보장받기 위해서 자식들을 건강하게 양육해야 했다. 이런 압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은 신비한 수단을 통해서라도 아들 임신과 순산, 그리고 아들의 장수를 위해서 기이한 관습에 의존한다. (Akamatsu and Akiba 1938, 2:193; T.H.Kim (1948) 1969, 145-146; Chung, Cha and Lee 1977) 182쪽 “죽은 자들–안식을 취하지 못하는 조상(조상말명)과 귀신(영산, 잡귀)-은 고통의 흔한 원인이 된다. 죽은 자들 가운데에는 자기 가족 출신으로서 신원이 확실한 망자인 조상과 귀신이 있다. 또한 익명의 귀신들이 있는데 이들은 끊임없는 갈망으로 인해 자기들을 알지도 못하는 가정으로 이끌린다.” 182쪽 “조상은 남자아이를 생산하고 자손으로부터 제사 음식과 제주를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지만, 영산이나 잡귀는 결혼을 하지 못해 자식도 없이 죽거나 집 밖에서 돌연히 혹은 비참하게 죽은 존재이다.” (물에 빠져 죽은 영산, 총 맞아 죽은 영산,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은 영산, 처녀귀신, 몽달귀신 등이 무가에 나옴) (중략) 만족스럽지 못한 죽음 때문에 이들은 분노와 좌절 속에서 자신들의 비통함을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드러낸다.“ 183쪽 “조상은 영산이나 잡귀보다 훨씬 운이 좋은 존재로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았으며 살 만큼 살다가 가족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조상들조차 한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만신에 실려 자신들이 살아 있었을 때 이루지 못했던 모든 것들로 인해 통곡한다.” (손자를 안아볼 수 없거나, 살아생전 늘 가난했거나) (중략) “한국인의 사회 통념에 의하면 이러한 모든 욕망은 정당하지만 운명적으로 좌절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183쪽 “정서적 애착 때문에 죽은 자가 산 자에게 이끌리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비록 조상에게 악의적인 의도가 없더라도 그들의 등장이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중략) 가족의 영적 방어수단이 약해지거나 가정신령들의 보호가 멈출 때문 이러한 조상들 중 누군가가 들썩거리게 되며 결과적으로 가족이 위험해질 수 있다. 만신은 ‘조상손은 가시손이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조상이 산 사람들의 몸을 만질 때 마다 상처가 생기게 된다.” 193쪽 “살은 전이 상황에 존재하는 의례적인 위험에서 발생한다. 전이 상황이 중요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경우일수록 훨씬 치명적인 살이 발생한다. (중략) 주요한 전이 상황에는 잔치가 따르기 마련이며 이러한 잔치에서 발생하는 살은 광범위한 사회적 영역에서 발생한다. 결혼식, 환갑잔치, 혹은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 만약 그 사람의 운이 나쁘다면 – 살에 맞을 수 있다.” (출산은 산모와 아이 사이의 일. 새 생명이 태어나지만 이로 인해 성인들의 사회적 관계가 재배열되진 않음.) 193~194쪽 “결혼과 환갑은 개인이나 가족 모두에게 중요한 통과의례이다. 여성은 자신의 가정과 마을을 떠나 다른 가정과 마을로 들어간다. 부모는 삶의 모든 주기를 완성한 후 조상이 된다. 죽음은 모든 전이 상황 가운데 가장 돌이킬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가장 큰 위험이 발생한다. 한 성인이 – 신부가 그러하듯이 – 가정과 마을을 떠날 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세계를 떠나게 된다. 시신은 산으로 옮겨지며, 남성과 여성의 세계로부터 멀어진다.” 205쪽 “조상을 모시는 효자 아들이 남성의례의 기본틀을 제공하는 것처럼, 가정신령을 모시는 주부는 무속의례의 기본틀을 제공한다” 205쪽 “고사에서 주부는 술과 떡 접시를 들고 집 곳곳을 다니며 신령들을 대접하여 신령이 그곳에 있음을 드러낸다. 제일 큰 팥시루떡 한 켜를, 때로는 시루째로 성주를 모신 대들보 아래와 터주대감을 모신 집 뒤편 굴뚝 아래에 놓는다. 술안주로는 말린 생선을 대접한다. 더 공들인 고사일 때는 석쇠에 구운 고기를 바치지만, 비용을 더 들인 경우에는 삶은 돼지 머리를 통째로 바친다. 식욕이 왕성한 남성 신령들과 달리 임신, 출산, 양육의 수호신인 삼신할머니는 안방에서 흰떡과 옥수(정화수), 채소, 견과류, 사탕을 대접받는다.” 208~209쪽 “성주는 집의 수호신이다. 또한 성주는 남성 가장에 초자연적으로 상응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곡식을 담은 가장의 밥그릇이 성주에게 바치는 제물의 일부분인 것이다. (중략) 성주는 대청마루의 대들보에서 군림하며 가장은 대청마루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 (중략) 남성 가장이 성주를 ‘받는다’고 이야기되지만 가장을 대신해서 성주를 불러내는 의례를 하는 이는 여성이다. (중략) 가장이 직접 성주를 불러서는 안 된다.” 211쪽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과 도당은 가정의 성주와 집합적으로 등가인 존재이다. 한 마을이 굿을 하여 도당신을 대접하고 해로운 힘들을 몰아내고자 할 때 행하는 도당굿은 가정굿의 양식을 따르며, 다만 성주의 위치가 마을의 도당신으로 대체된다. 여성들은 마을 내 여러 가정의 신령들 앞에서 각 가정을 대표하며, 각 가정의 조상들이 초청되어 만신을 통해 말을 할 수 있다. (중략) 한 노부부가 남서낭과 여서낭을 불러들이기 위해 나뭇가지를 잡았다. 부인이 붙잡은 나뭇가지가 더 격렬하게 흔들렸고, 그 나뭇가지에 실린 여서낭으로 인해 서낭당에서 내려오는 내내 부인이 남편을 앞장섰다.” 215쪽 “가정에서는 한 명의 여성, 보통은 연장자 여성만이 고사를 지낸다. 시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맏며느리가 고사나 다른 종류의 여성의례를 올리는 것은 시어머니가 죽거나 적극적인 관리자 역할에서 은퇴했을 때의 일이다. 맏며느리가 아닌 여성들은 자신들의 집을 세워 ‘살림을 할 때부터’ 고사를 지낸다. 고사를 드리는 여성은 집의 안주인으로서 자기 집 가정신령들에게 자기 자신과 남편 그리고 가정의 안녕을 빈다.” 215쪽 “한국인 주부가 가정의 신령들을 불러내어 빌고 가정에서 사제의 권위를 부여받는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차이점) 일본 : 가족의 음식과 신령의 제물을 같이 준비한다. 사람들을 먹이듯이 신령을 먹이며 사제로서의 역할은 함의X 중국 : 남성들이 가정에서의 권위를 드러내며 조왕신을 모심 한국의 경우 : “성주가 남성 가장과 동일시된다 하더라도 여성은 남성의 권위가 아닌 자신의 권위를 가지고 성주신에게 빈다.”(215쪽), “여성이 신령들에게 대접하는 제물은 가족에게 내가는 음식과는 다른 특별한 음식들로 구성된다.”(216쪽) 217쪽 (고사에서 여성은 남편의 대리인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여성은 가정을 대표하지, 남편을 대신하지 않는다. 남성들 스스로 고사를 지내는 상황도 있기 때문이다.” 218쪽 “집은 여성들의 공간이며, 여성은 가정신령들 앞에서 가정을 대표한다” (예외) 강원도의 어떤 마을에서는 남성이 성주를, 여성이 조왕을 대접한다. 하지만 두 신령 모두 지신제라고 불리는 가정의례에서 모셔진다. 민속학자들은 이 지역에는 두 종류의 성주가 있어 한 분은 대들보에, 다른 분은 부뚜막에 모셔진다고 한다. 충청북도의 어떤 마을에서는 부부가 길한 날을 택해 함께 가택신과 지신에게 고사를 지낸다. 한쪽이 죽으면 홀로 남은 사람이 혼자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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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논문 참고자료] (2) 백문임, 『월하의 여곡성 – 여귀로 읽는 한국 공포영화史』, 서울:책세상, 2008
15-16쪽 (2003년 “여관방 몰카에 잡힌 혼령의 정체:라는 자극적인 홍보 문구로 관객을 유인했던 <목두기 비디오>(윤준형, 2003)에 대해) “제작진은 그 고등학생의 가족사를 파헤쳐 실제의 살인자가 버젓이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영화를 마무리했고, 흥분한 관객들은 이 살인사건을 방송국에 제보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 해프닝에서 흥미로운 것은 ‘귀신의 힘을 빌려 사건을 해결한다’고 하는 옛 공안(公案) 이야기의 서사가 21세기 인터넷 공간에서도 통용되었다는 사실이다.” 51쪽 “한국 공포영화는 설화나 민간 신앙에 나타나던 원귀(冤鬼), 그중에서도 여성 귀신을 괴물로 등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억울한 사연을 품고 죽은 여성이 현실에 돌아와 잔인한 복수극을 펼치는 내러티브를 장르적 특질로 형성했다.” 16쪽 “<장화홍련전>이나 <김인향전>처럼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가 원귀가 되어 사또나 어사 등 관(官)의 힘을 대신할 사람 앞에 나타나 신원(伸冤)해줄 것을 청하고, 판관을 이를 해결하여 공공질서를 바로잡는 공안 이야기와 <목두기 비디오>의 차이라면 원귀가 사람 앞에 직접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캠코더라는 시각 매체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사또나 어사가 아니라 비디오 저널리스트가 사건을 조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이 기괴스러운 이미지와 그에 대한 반응이 상호 증식하면서 담론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21쪽 “젊은 여성의 귀신이 가장 비천하고 사악한 존재로서 귀신의 위계에서 최하위에 위치하면서 가장 큰 두려움을 주었다는 것은, 유교적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이 타자들을 어떤 식으로든 ‘호명’할 필요가 있었다는 의미인 동시에 그 ‘호명’을 통해서도 이들을 제어하기가 어려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21쪽 “원시종교에서부터 귀신은 숭배의 대상이었지만 인귀(人鬼)는 선한 귀신인 조상귀신과 악한 귀신인 사귀(邪鬼)로 구분되었고 그중에서도 여자 귀신은 가장 사악한 귀신으로 간주되었다. 인귀의 종류를 나누고 위계화하는 관념은 본격적으로 성리학이 유입되었던 고려 말부터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죽어 선한 귀신이 되는가 악한 귀신이 되는가는 이승에서의 삶의 양상이나 죽음의 방식, 즉 성리학적 세계관이 규정하는 ‘정상적인’ 삶과 죽음의 방식에 의거해 결정되었다. 가장 정상적인 죽음은 오래 살다가 자기 집에서 죽는 것을 말하고, 단명(短命)에 죽거나 객사하거나 자살 또는 타살로 죽는 것은 이상사(異常死)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죽어서 자손들의 봉제사(奉祭祀)를 받는 선한 조상신이 되는 조건은, 통과 의례를 거쳐 환갑 이후까지 장수하고 자녀를 두되 특히 아들을 낳아 가계를 이은 뒤 자택에서 죽는 것이었다. 반대로 이러한 ‘정상적인’ 조건에서 벗어난 삶 또는 죽음을 경험하면 원귀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혼인이라는 통과 의례를 겪지 못하고 죽은 ‘처녀귀신’의 원한이 가장 크다는 통념이 존재했던 것은, 윤리 질서나 규범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점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같은 질서와 규범에서 벗어난 존재들에 대한 두려움이 무척 강했음을 반증한다.” 55쪽 “의미심장하게도 이 괴물들은 ‘가족’과 ‘기억’이라는 카테고리를 끈질기게 문제시하는 방삭으로 근대화 시기의 극장에 나타났다. 가족과 공식적인 기억은 역시 근대적인 제도로 재편되고 담론화되는 과정에서 ‘과잉 억압’을 파생시켰고, 일상과 욕망에 한계와 제한을 가하면서 그로부터 이탈된 자질들을 ‘타자’화했다.” 52-53쪽 “전래 귀신담의 여귀는 ‘차이’를 구현하는 여성인 동시에 지배 질서에 부합하는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죽은 존재로서 두려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교훈과 경계를 목적으로 하는 서사적 틀에 의해 여귀는 지배 질서의 대행자인 유력자 혹은 가부장에게 신원(伸冤)을 하소연하는 가엾은 희생자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녀들의 존재 자체는 두려운 것이지만, 서사적 틀은 그녀들을 현세 질서의 보조자로서, 공권력의 조력자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53쪽 “공포영화의 괴물을 ‘억압된 것/타자’의 개념적 이중 쌍으로 설명한 앞의 시각을 따른다면, 한국 공포영화의 여귀 역시 당시 사회문화가 부과한 과잉 억압을 지시하는 형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여성이 불러일으키는 근원적인 두려움과, 박정희의 근대화 프로젝트에서 ‘과잉 억압’된 가치들에 대한 매혹과 불안이 중첩되어 있다.” 53쪽 “반면 공포영화에서의 여귀는 희생자나 조력자의 이미지를 벗어나 스스로의 분노와 원한을 풀기 위해 가해자에게 직접 복수를 하는 존재로 변화한다. 이때 복수의 범위는 점차 가해자의 집안 자체로, 나아가 무고한 사람들 전체로 확장되기 때문에 여귀는 귀신담에 존재하지 않던 과잉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시각적인 차원에서도 여귀는 단일하고 통합된 근대적 자아의 신체경계를 위반하고 해체하는 이미지를 지닌다. 그녀들은 고양이나 여우와 같은 짐승의 신체로 변형되기도 하고, ‘자아’가 결여된 시체의 신체로 등장하기도 하며, 가부장적 질서를 ‘거세’하는 공격적인 신체를 지닌다. 신체의 표면을 뚫고 나오는 이빨, 손톱, 머리카락은 단일하고 통합된 신체의 관념을 와해시키고, 서구 드라큘라 영화에서 유입된 ‘흡혈’ 행위를 통해 타인(특히 남성)을 상징적으로 ‘거세’할 때에는 성적 정체성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특히 ‘흡혈’은 한국에서 여귀의 행위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섹슈얼리티의 발현이라는 의미를 파생시킨다.” 55쪽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도 이러한 젠더화가 나타났지만, 가까운 과거에 생산된 여성 원귀를 등장시킨 공포영화는 이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동시에 그러한 젠더화에 내포된 ‘과잉 억압’의 흔적을 드러낸 정르이기도 하다. 근대적 이상이 전근대의 귀신을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매장한 후, 특히 국가적인 차원에서 근대화가 획일적으로 추진될 무렵, 공포영화라는 첨단 매체를 통해 다시 등장한 여귀는 칸트가 숭고한 대상의 속성으로 언급했던 “크고 위력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공포영화는 때로는 이들을 전근대의 맥락 속에서 개념화화기도 하고, 때로는 이들에게 전면적이고 역동적인 마성을 부여해 공포를 스펙터클화 하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55쪽 “우드가 1970년대 미국에서 ‘정상성’의 경계를 이루는 목록으로 정리했던 것, 즉 “일부일처제-이성애주의-부르주아-가부장주의-자본주의자” 외에 1960년대 이후 한국에는 “민족주의-근대화주의자”라는 경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 경계는 상충하면서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여기에서 벗어나는 존재들, 그중에서도 여성들은 한국 공포영화에서 무시무시하고 흉측한 괴물들로 변형되었다.” 56쪽 “따라서 공포영화의 여귀들은 근대적 가족 제도의 재편 및 민족적 기억의 공식화 담론과 관련하여 새롭게 ‘타자’로 등장한 존재들, 자질들을 표상한다고 말할 수 있다.” 81쪽 “여기에서 한수의 참회 방식이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독립운동가로 만드는 것’ 이라는 점은 그의 참회가 단순히 아내 월향의 정절을 의심하여 죽게 만들었다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월향의 죽음 한수 자신의 ‘변절’을 상징하는 것이며, 한 집안에서 일어났던 참극은 이 순간 민족적인 차원의 비극으로 지평이 확장된다. 이제 <월하의 공동묘지>라는 공포영화는 여귀를 ‘민족적 원한’의 담지자로 만들며, 그녀의 복수를 근대적 가치와 제도들에 대한 응징으로 변화시킨다.” 95쪽 “공포영화 형상기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질은 가부장적 가족 관계에서 원한을 품고 죽은 여성이 여귀로 귀환하여 벌이는 복수극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초창기에는 다양한 경향의 공포영화가 시도되지만, 1965년경부터 한국의 공포영화에서는 여귀의 복수극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125~126쪽 “전래 설화에서 공포영화로의 변이, 그리고 그 중간을 매개하는 ‘신파’의 역할. 이는 한국 공포영화에 있어서 핵심적인 특질이라고 할 수 있다. (월하의 공동묘지, 두견새 우는 소리 예시)” 95쪽 “초기 공포영화에서 여귀가 구현하는 가치들은 무엇보다 ‘신파’와 멜로드라마라는 정서적 매개를 통해 관객에게 호소력을 가졌다. 1975년까지 공포영화에는 원한을 품고 죽음에 이르게 된 여성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그녀가 여귀로 귀환했을 때 벌이는 복수극에 카타르시스 효과를 부여하기도 했다. (중략) 1975년 이후 공포영화에서 여귀는 동정과 연민보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으로 변화되고, 내러티브에서는 여귀를 ‘퇴치’하는 모티프가 강화되게 된다. 여귀의 행위가 카타르시스보다는 공포를 제공하게 되고 여귀가 동정과 연민보다는 섹슈얼리티와 외래성(外來性)을 환기하게 됨에 따라 공포영화는 동시대 여성에 대한 불안감이 노골적이고 생경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장(場)이 된다.” 106=107쪽 “한국에서 전설과 사화, 민담 등의 이야기는 근대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생산/재생산되었으며, 1960년 전후의 시점에서도 『한국 야담, 사화 대집성』(1959년 9월 간행)과 같은 형태로 집성되거나 월간 『야담과 실화』, 『소설계』와 같은 대중 문예지를 통해 재생산된다. 이는 공포 영화의 이야기 소재 및 내레이터의 내레이션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문제로, 좀 더 광범위한 차원에서의 이야기 전승이라는 지평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아랑형 전설’이라든가 ‘불가사리 전설’ 같은 것은 공포영화로 직접 옮겨지지만, 여타의 이야기들은 전체 스토리 차원보다는 개별 모티프들의 차원에서 공포영화에 계승된다. (중략) 이는 구비문학이 문서 형태로뿐만 아니라 시청각적인 방식으로 전승 혹은 재창조되는 하나의 형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씨받이로 들어갔다가 본처에게 죽임당한 여자의 이야기, 과거 보러 가던 유생이 깊은 산중에서 여자들만 사는 집에서 하룻밤 머물게 되는 이야기, 계모에게 죽임당한 전처 자식들 이야기 등) 122~123쪽 “1965년과 1966년에 성공한 이용민의 영화들에 힘입어 1967년에는 공포영화가 붐을 이루게 된다(중략) (월하의 공동묘지, 한, 처녀귀신, 백발의 처녀 언급) 이 작품들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여귀가 한국 공포영화의 주인공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해외 공포영화의 장르적 관습보다는 전통적인 서사 혹은 동시대 서사들의 관습이 우위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108쪽 “이와 관련하여 이야기 소재와 형식 모두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되는 MBC의 라디오 드라마 『전설따라 삼천리』의 중요성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존속해왔던 이 드라마는 각지의 전설을 이야기 형식으로 꾸며 들려주는 것으로, 여기에서 내레이터가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방식은 공포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변사 또는 내레이터의 이야기 전달 방식으로 계승되고, 또 최근까지 방영되었던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도 계승된다.” 120쪽 “1960년대 공포영화의 주 관객층이 “시어머니의 인가를 받아 외출을 시도한 동네 아주머니 부대”였다는 점은 한국 공포영화가 멜로드라마와 관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근대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생산되던 가족 비극류, 즉 ‘신파’와 멜로드라마의 이야기 원천으로서 ‘가족’내 여성들간의 갈등은 공포영화라는 신생 장르에서 낯설게 변형된다.” 120-121쪽 “공포영화는 기존의 ‘선/악’구도에서 선인(善人)으로 그려지던 본처를 복수의 구현자로 뒤바꿔 놓거나 ‘금기’, 즉 조부 세대 살해의 문제를 전면화한다. <살인마>에서 공포의 대상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현모양처인 동시에 그 원혼이 빙의된 (시)어머니이다. (중략) <살인마>가 명백히 1965년 당시의 문제를 코드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그것은 부부(와 아이들)로만 이루어진 핵가족 구조 내에서 ‘시어머니’라는 존재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문제삼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녀가 며느리를 모함하여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원인은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의 섹슈얼리티 때문이며, 이는 자연스럽게 아들 시목으로 하여금 ‘모친 살해’를 주저하지 않게 만든다.” 129쪽 (유현목 감독의 <한>을 소개하며) “1959년 김동리가 김소월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미학’의 차원으로 설명한 ‘한’이라는 개념은 당시 많은 논의를 낳고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1967년에 이르러 이것을 ‘공포영화’의 맥락에서 받아들여 활용했던 것이다.” 125쪽 “한을 품고 죽은 여인이 귀신이 되어 나타난다는 이야기는 아시아 국가들에 공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지만, 한국 설화의 여귀는 가해자에게 ‘복수’하거나 불특정 다수를 괴롭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또 등 공권력에 기대어 설원(雪冤)을 하고 현세에서 ‘못 다 푼 한’을 풀기 위해 출현한다. 여귀의 외모는 현세의 인간들을 공포로 몰아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억울하게 죽던 당시의 정황을 ‘증명’하기 위해, 시체의 외양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흉측하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여성들은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기에 합당하며, 현세의 사람들이 그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하는 시혜의 대상인 것이다. 그녀들은 현세의 제도 및 질서에 순응적이며 하소연으로 자신의 소망을 성취한다.” 127쪽 “『장화홍련전』에서처럼, 전래 귀신담에 등장하는 여귀들은 현세의 질서를 교란하거나 어지럽히는 ‘요물’이라기보다는 비범한 판관을 돕는 조력자나 ‘증인’에 가깝다. 또한 그녀들의 ‘한풀이’는 가해자들을 징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생 혹은 환생하여 현세에서의 행복을 이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현세의 규범을 재강화한다는 점에서, 그녀들은 ‘가엾은 희생자’라는 의미 맥락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두견새 우는 사연>에서 여귀가 ‘처녀로 죽은 여성’의 한을 풀기 위해 출현했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며, 마침내 옥화가 도령과 그 부인의 행복을 빌며 사라지는 것도 이 맥락에서 보면 지당한 행위인 것이다. 한마디로, 전래 설화의 여귀는 또 다른 ‘열녀’인 셈이며, 1967년 당시에도 한국의 대중들은 그런 여귀들을 인정하고 그녀들의 이야기를 향유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142~143쪽 “《주역》의 <계사전>에서는 도(道)를 천도(天道), 지도(地道), 인도(人道)로 나누어 삼재(三才)라 하였는데, 귀신도 이 삼재에 결부시켜 하늘에 해당하는 천신(天神), 땅 귀신에 해당하는 지기(地祇), 사람 귀신인 인귀(人鬼)로 나누었다. 이중 인귀는 선한 조상귀신과 악한 사귀로 나뉜다. 조상귀신은 숭배자인 자손들과 혈연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후손을 지켜준다고 여겼다. 반면 사귀는 인간을 가해하는 악령들로써, 인사령(人死靈), 역신(疫神), 원귀(冤鬼) 등이 있다.”(안병국 귀신설화연구) 127~128쪽 “<월하의 공동묘지>는 전래 귀신담의 여귀와 <두견새 우는 사연>과 같은 인가 드라마에서 여귀가 지녀온 기존 이미지를 활용하면서도 그것을 공포의 코드로 성공적으로 전환시킨 작품이다. 1967년 공포영화의 주인공으로 다른 괴물이 아닌 여귀가 등극하게 된 것으로 볼 때 ‘흡혈귀’나 ‘괴수’나 ‘투명인간’과 같은 외래 공포영화의 주인공들보다는 여귀라는 전래 설화의 주인공이 이제 ‘공포’로 코드화되었다는 점이 당시 관객들에게는 더 충격적일지도 모른다.(중략) 이제 해외 공포영화들을 통해 공포영화라는 장르적 기대감을 어느 정도 지니게 된 1960년대의 관객은 그러한 기대감을 충족시켜 줄 한국의 문화적 자산들 중 ‘여귀’를 지명하여 호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여귀’는 전래 설화의 여귀이기도 하면서 근대적 가족구조에 의해 재탄생된 여귀이기도 하다. <월하의 공동묘지>가 보여주듯이 전래 설화와 공포영화를 이어주는 매개, ‘신파’의 존재가 그 증거이다. 근대 세계에 들어서서도 지속되고 있는 ‘신파’는 가까운 과거의 기억을 애도하고 수요하는 하나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창작되던 이 ‘신파’는 <월하의 공동묘지>에 이르러 공포와 노골적으로 결합한다. 그럼으로써 이제 과거의 것은 애도와 수용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된다.” 143쪽 “사람이 죽으면 혼은 공간으로 흩어져 승천하는데, 그 혼이 선한 것인가 아닌가는 이승에서의 삶의 양상이나 죽음의 방식에 의해 규정된다. 이때 삶의 양상이란 통과의례를 무리없이 거치면서 살았는가 하는 것이고, 죽음의 방식이란 정상적으로 죽었는가 하는 것이다. 가장 정상적인 죽음은 오래 살다가 자기 집에서 병들어 죽는 것을 말하고, 단명(短命)에 죽거나 객사하거나 자살 또는 타살은 이상사(異常死)로 간주된다. 따라서 죽은 뒤 선한 조상신이 되어 자손들의 봉제사를 받는 귀신이 되는 조건은, 통과의례를 거쳐서 환갑 이상까지 장수하고 자녀를 두되 특히 아들을 낳아 가계를 이은 뒤 자택에서 병들어 죽는 것이다.” (문상기 <원귀설화연구>) 143쪽 “반대로 원귀는 이러한 ‘정상적’인 조건에서 벗어난 삶을 살다 죽은 귀신이다. 김시습은 《남염부주지》에서 염마왕의 입을 빌려, 원한을 품었거나 원망하는 혼령과 횡사나 요절한 귀신은 정당하게 죽지 못한 탓으로 기운을 펴지 못해 싸움터인 모래밭이나 생명을 버린 집에서 울기도 하고, 혹은 무당에게 의탁하거나 사람에게 의지에서 사정하거나 원망해보기도 한다고 했다.” 144쪽 “원귀에 대한 이야기는 오랜 세월에 걸쳐 생산되고 있는데, 기존 연구에서는 원귀설화에 나타나는 언귀를 원사(冤死)원귀, 정욕원귀, 상사원귀, 골출원귀, 미명(未命)원귀로 분류한다. 원사원귀는 억울하게 죽은 원귀를 말하며, 정욕원귀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인 정욕을 풀지 못하고 죽은 원귀로 대부분 시집, 장가를 못 가고 죽은 원귀들이다. 상사원귀는 이성 간의 그리움의 정한을 풀지 못한 채 죽은 원귀이고, 골출원귀는 잘못된 매장으로 유골이 노출되어 그것이 원망으로 굳어진 원귀를 말하며, 미명원귀는 천부의 수(壽)를 다하지 못하고 비명에 죽은 원귀다.” (안병국, 귀신설화연구) 145쪽 “한국의 귀신 관념에서는 원시종교에서부터 자연신을 숭배해왔고, 인귀(人鬼)는 선한 귀신(조상신)과 악한 귀신(원귀)으로 나뉘었다. 남효온, 서경덕, 이황, 이이 등 조선의 유학자들은 성리학적 귀신 개념이 함유하는 두 가지 성격, 즉 종교적인 성격과 자연철학적 성격을 융화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전자(前者)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즉 조선 성리학의 귀신 개념은 인간에게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나 기대를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철학적·종교적 자세로 이끎으로써, 영적 존재와의 교감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고자 하는 도덕적 의식을 강조했다.” (김현 “귀신 : 자연철학에서 추구한 종교성” / 한국사상연구회 “조선유학의 개념들”(예문서원, 2002)) 145쪽 “유학자들의 사유 내에서 귀신이 이렇게 영적인 존재이자 합리적인 존재로 혹은 궁극적으로는 현세의 윤리 의식을 강화하는 참조 대상으로 간주되었던 것과 달리, 민간 신앙에서는 여전히 귀신을 두려워하거나 숭배하고 있었고, 이는 무속의 형태로 지속되었다.” 149쪽 (장화홍련전 이야기 하다가) “여기에서 장화의 탄생과 관련한 ‘태몽 설화’는 후대의 이본에서 사라지게 되고 환생이라는 요소, 즉 장화홍련이 소생한다든가 배 좌수의 딸로 다시 태어나 현세에서의 못 다한 삶을 산다는 후일담은 후대에 첨가된 것이다”(장화와 홍련이 이렇게 다시 태어나는 재상담은 후기 국문본에서 첨가된 것이다. 재생담의 유무에 따라 이본이 분류될 정도. 재생담을 남성 지배-가부장제의 재영토화로 해석하는 논의로는 조현설의 “남성지배와 장화홍련전의 여성형상” 민족문학사 연구 제15호. 가 있음) 150쪽 “김태준은 《장화홍련전》을 ‘공안소설’로 지칭하는데, 공안 이야기는 중국 고전소설의 한 유형을 지칭하는 것으로, ‘공안’이라는 소재는 다른 유형들에서 두루 나타나기도 한다. (중략 : 삼협오의, 칠협오의가 협의류인가 공안류인가의 논쟁) 중국의 법치 정신은 인치(人治)의 체계를 따랐기 때문에, 일단 법률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거나 법을 집행하는 사람을 신뢰할 수 없을 때에는 귀신에게 호소하여 정의의 판단이 내려지길 기대했다. (포청천. 오분기 고사)”(김태준의 주장은 “교주 증보 조선소설사”, 박희병 교주(한길사, 1990)) 150쪽 주석 “‘공안’은 국가 공공기관의 문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관청에서 조사를 요하는 사건을 말한다. ‘공안’의 어원적 의미를 살펴보면 ① 관청의 공문서, ② 소송이나 위법에 관계되는 사건, ③ 관리가 사건을 심리할 때 사용하는 탁자, ④ 선종에서 교리를 이용하여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 ⑤ 송인(宋人)의 화본 분류의 한 갈래라는 다섯 가지 용례가 보이는데, 이 중 네 번째를 제외한 나머지 성격은 공안소설의 분류 기준에 들 수 있다”(임보순, <중국 공안소설의 이해>, 정동보 옮김, 《추리문학이란 무엇인가》(국학자료원, 1997)) 151쪽 “한편 한국의 공안 이야기는 “가해자에 의해서 피해자가 위기에 봉착하게 된 사건이 발생하면 사법관정과 같은 공공성을 띤 장소, 즉 사법관정에 준하는 조건의 장소에서 해결되어야 하며, 해결할 사람은 어사나 관의 힘을 대신할 훌륭한 사람으로서 사회적인 공공성을 인정할 수 있는 처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 종류는 사또가 사건을 해결하는 관료형, 사또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부인이나 어린이가 대신하는 아지(兒智)형, 사또가 민중의 정신적 지주였던 점복(占卜者)나 예언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점복·예언형, 원귀가 된 피해자의 호소로 사또가 사건을 해결하는 원귀형으로 나뉜다. 《장화홍련전》은 이중 ‘원귀형’ 공안 이야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강현모, <공안설화의 연구>(한양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86)) 152쪽 “초현실적인 존재와 초현실 세계의 판결을 도입하더라도 그 목적은 현세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공안소설에 등장하는 귀신은 억울한 사연을 지닌 피해자인 동시에 잘못을 바로잡는 판관의 조력자로서 ‘증인’ 역할을 한다. (중략. 장화홍련전 쥐 시체 이야기) 따라서 《장화홍련전》은 억울하게 죽은 장화와 홍련 자매가 현명하고 담대한 판관을 만나 설원을 하는 이야기로서, 여기에서 장화홍련의 귀신은 두려운 존재라기보다는 가엾은 피해자이자 판관에게 증거를 제공하는 조력자라고 할 수 있다. 152~154쪽 “이와 관련하여 공안 이야기에 나타나는 귀신, 특히 여귀의 외모도 사건의 ‘증거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다. 여귀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죽었을 당시의 외모 그대로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 칼에 찔려 죽거나 돌에 눌려 죽거나 물에 빠져 죽거나 했던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중략 : 아랑설화에서 아랑의 원귀가 가슴에 칼을 꽂고 돌을 안고 나옴. 김인향전에서 인향은 물에 빠질 당시의 외모로, 인함(인향 동생)은 치마 끈을 목에 건 채(자살할 때의 외모)로 나타난다. 홍만종의 “명협지해”에서 조광원의 앞에는 사람의 사지가 차례로 떨어져 내려와 스스로 서로서로 꿰어 한 여인을 이루는 귀신이 나오는데, 이는 겁탈에 저항하다가 돌에 깔려 죽은 여인의 귀신이다.) 이렇게 자신이 끔찍하게 살해된 정황을 증명하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들은 당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타나며, 썩기 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여귀가 주로 사또나 담대한 사람 등 원한을 능히 풀어줄 수 있는 ‘유력자’ 앞에 나타난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다. 여귀는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고 가해자를 징치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 대상 앞에 나타나기 때문에 여귀의 외모는 곧 자신이 당한 억울한 죽음의 ‘증거물’이 된다. (중략 : 사또는 시체의 외모를 보고 여귀와 시체가 동일인임을 안다) 따라서 귀신담에서 여귀의 흉측한 외모는 그녀가 당한 억울한 죽음의 증거물이지, 어떤 공포스러운 효과를 ‘노리고’ 연출된 외모는 아닌 것이다.” 154쪽 주석 “손진태는 여귀가 죽었을 당시의 형상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원시종교심리학의 ‘몽환설(dream theory)’에 근거하여 설명한다. 즉 “아직 채 죽지 않은 자를 방기하든지 매장하면 그 자가 영구히 귀신도 되지 못하고 사람도 되지 못한다는 신앙과 또 목이 찔려 죽었든지 유방을 절단하여 죽은 자나 의복을 피탈한 자는 유령으로서 출현할 때에도 죽던 당시의 형상으로 보인다는 신앙”에 의해, 귀신 형상이 죽을 당시의 형상으로 상상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귀신의 형상은 죽을 당시의 모습이 목격자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이고, 그 매장이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에 후생계(後生界)로 가지 못하는 떠도는 영혼에 대한 두려움이 투영된 것이다.”(손진태, 한국 민족설화의 연구, 을유문화사, 1947) 155쪽 “현세를 떠난 존재로서 귀신의 욕망 또한 현세에 종속되어 있는데, 이는 후대 판본에서 장화홍련의 원혼이 계모와 그 아들을 벌한 후 저승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소생하거나 배 좌수의 딸로 환생하여 혼인을 하고 장수를 누리는 등 현세의 행복을 다하는 데서 드러난다. 이로 미루어 이들의 원한은 단순히 억울하게 죽었다는 데서 파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 질서 내에서 가장 정상적이라고 인정받는 삶, 즉 통과의례를 무사히 치르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데서 파생한다고 볼 수 있다. ‘정절’을 훼손했다는 모함을 받은 장화는 이 통과의례를 치르기에는 여성으로서 치명적인 결함을 안게 된 것이며, 그런 상태에서의 삶은 당시 질서 내에서 죽음과 다를 게 없다. 즉 그녀의 원혼은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세에서 명예를 회복하고 못 다한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다.” 157쪽 “공안 이야기는 이렇게 ‘비정상적’인 존재들을 ‘정상적’인 삶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그에 대한 공포를 무마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여기에서 귀신은 ‘정상적’인 삶을 희구하는 존재로, 즉 공권력에 기대어 명예를 회복하거나 다시 현세에 태어나 통과의례를 거치기를 원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비정상성’에 대한 두려움을 ‘정상성’의 표상으로 치유하는 이야기로서, 단순히 권선징악의 교훈을 일깨우는 것이라기보다 ‘정상성’의 경계를 재강화하는 일종의 훈육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귀신이라는 존재가 일깨우는 두려움은 훈육의 도구로 사용된다.” 155-156쪽 주석 “득옥 설화의 경우. 구수훈의 ”이순록“: 득옥은 인평대군의 시비로서 인평대군이 연경에 간 사이 부인이 득옥을 죽여 연못에 넣자 원귀가 되어 요변을 일으키고 무신해기의 사건을 일으켜 집안을 절단낸다. “성호사설”의 ‘원비작요’ : 득옥은 인평대군의 아들 정이 좋아한 계집종으로 대군 부인에게 살해당하자 요변을 일으켜 일족을 멸망 “기문총화” : 득옥이 기생으로 등장하는데, 인평대군의 총애를 받다가 그 처남 부인의 질투로 죽음. 그 얼마 후 선혈이 수말이나 쏟아져 침실에 들어오니 대군이 금방 침질에 걸리고, 그 머리맡에 득옥의 모습이 보이고, 대군은 세상을 떠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