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신촌을 지나다가 포스터를 보고 제목, 주연, 감독 모두 “이건 봐야 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을 미루다가, 결국 해를 넘겨 집에서 보게 되었다. (같이 구입했던 영화들이 남영동과 유신의 추억과 MB의 추억이라는건 무슨 뜻인가 으음;;;;)
영화의 첫 장면은 아웅산 장군이 어린 딸에게 나라의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가 살해당하는 “과거”의 이야기. 그 다음은 아웅산 수 치 여사의 남편인 마이클 에어리스 교수가 전립선암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는 장면이다. 에어리스 교수는 자신이 그녀를 만나러 가야지, 그녀가 영국에 돌아온다면 다시 미얀마에 입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 어머니의 병환으로 미얀마로 돌아갔던 수는 눈앞에서 군인들이 학생들을 폭행하고 그들을 말리려던 의사를 살해하는, 조국의 참상을 직시한다. 그녀는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들과 만나고 세력을 규합하며 민주화를 열망하는 버마 사람들의 희망이 된다. 그러나 그녀는 연금되고, 15년 가까이 밖으로 나올 수 없었으며, 그 가족들의 입국비자는 거절된다. 에어리스 교수는 미얀마에 들어와서는 대사관에서 선전물을 인쇄하는 등 수의 힘이 되어 주고, 영국에서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그녀에게 노벨상을 받게 하거나 달라이 라마나 대주교께 탄원하는 등 쉬지않고 애쓰며 다시 만날 날만을 기다린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남편을 통해 아내의 삶을 부각시킨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바로 그 남편, 에어리스 교수의 로맨스에 가까울 정도다. 재입국이 거절될 것임을 알기에 영국의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없는 수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자원을 아끼지 않는. 많은 “영웅”을 소재로 한 매체에서 그 어머니나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듯이, 이 영화는 그녀의 남편이 어떻게 그녀를 사랑하고 지원했는가, 그리고 독재는 어떻게 이 절절한 부부를 갈라놓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만들었는가를 보여준다. 시종일관 절제된 감정으로 흘러가며 안정적인 프레임을 보여주던 이 영화는, 단 한 번, 에어리스 교수의 부고를 들었을 때에만 눈높이가 아닌 시각에서 프레임을 잡고, 바닥에 쓰러져 오열하는 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이 영화는 수, 아웅산 수 치 여사가 민주주의를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사람들이 끝없이 투쟁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다루는 대신, 그녀의 비폭력 노선과 그녀가 간직한 슬픔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쪽을 택한다.
조금 불만이 있다면 “가정주부가 미얀마의 민주화를 이끈다”는 식으로 중간에 기자가 말하는 부분. 뭐, 처음에 영국에서 그녀가 아웅산 장군에 대한 책을 쓰는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가정주부”라는 말만 들으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아웅산 장군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추대된 느낌이 강하긴 하지. 영화 쪽에서, 아무래도 부연설명이 부족하긴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알려진대로 아웅산 장군이지만 어머니 쪽도 버마의 외교관이자 인도 대사였다. 그녀는 아웅산 장군이 죽은 뒤에도 충분한 교육을 받았으며 UN에서 일하던 중 에어리스 교수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하고 나서 주부가 된 것일 뿐, 그쪽에 대한 준비가 없었다고는 볼 수 없는데 그런건 빠져있는 느낌이긴 했지.
여튼 외국인 감독과 외국인 배우가 그 나라의 민주화 역사와 민주화를 위해 싸운 사람을 다룬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녀에 대해 잘 알기도 전에 그녀의 로맨스(….)에 대한 영화를 먼저 보는 것은 어떤 느낌인걸까(영 빅토리아를 볼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다). 결국은 로맨스라는 것, 아내이자 어머니인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 것은 그녀가 “여자”라는 것을 강조하는 모습일 수도 있는데 그게 과연 도움이 되는가, 부터 시작해서. (특히, 박근혜 당선인과 아웅산 수 치 여사를 비교하는, 뻔뻔하기까지 했던 몇몇 신문기사를 생각하면. 아아;;;; 님들은 그게 아웅산 수 치 여사는 물론이고 ㅋ 박통 추종자들에게도 빅엿을 먹이는 기사라는 생각은 안 했나요. 아니면 그 기사를 읽는 박통 추종자들이 생각이라는 걸 안 하는 건가요. ㅋ) 생각은 많지만 밤은 짧고.
며칠 전 아웅산 수 치 여사가 국내에 입국했다. 어제는 박근혜씨와 만난 이야기를 아침에 기사로 읽고 좀 당황하긴 했다. 아니, 박근혜씨가 뭔가 이런저런 점을 어필하고 싶은 건 알지만 농담으로라도 “민주화”쪽을 내세우는 건 셀프로 빅엿을 날리는 거지. 어필 포인트가 틀렸잖아. -_-+ 그 이유 때문에 이 영화를 본 건 아니지만(구입해 놓았으니 설 전에는 다 볼 생각이라서 꺼내 본 거긴 했다) 참, 마음이 복잡한 와중에 영화를 봤다. 아마 좀 더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그녀의 남편과 가족을 통해 그녀의 싸움을 그려내는 이 영화가 좀 더 좋게 느껴졌을 텐데. 날이 날이라 그런지 봐도 심란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