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숲토끼님하고도 잠깐 하던 이야기인데, 우리는 이런 시대일수록 게임이나 만화, 웹툰, 웹소설,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청소년이 접하는 이야기에서 좀 더 고전적이고 오소독스한 영웅, 고난이 있더라도 선을 추구하는 인물에 대해 작가가 좀 더 집어넣을 필요가 있다. 왜 우리가 왜 실패를 넘어 노력해야 하는지, 두려움을 이기고 전진해야 하는지, 왜 무명을 밝히고 빛을 향해 가야 하는지, 왜 약자를 보호하고 악에 맞서 싸우며 때로는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위해 고난을 견디고 신념과 서원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 결의하는지, 그 이유들을 우리는 바로 그런 이야기에서 배웠으니까. 나이가 들어서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같은 실패하는 영웅의 노래를 듣는다고 해도, 어릴때 그런 씨앗을 뿌렸던 사람의 마음에는 올곧음이나 숭고함에 대해 감동하는 마음이 생기겠지만, 선을 조롱하고 혐오를 체화하며 이기야노체나 입에 물고 다니고 응디시티나 떼창을 하며 자란 사람에게 같은 노래를 들려줘봤자 씹선비 개소리하고 자빠진다는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하물며 청소년들이 향유하는 스토리에서 선을 멸시하고 사람을 더 자극적으로 조롱하거나 모욕하고, 말초신경이 긁혀나가는 이야기들을 보여주며 이런 이야기에서 도파민이 퐁퐁 솟아오르는 상태가 계속된 뒤에야,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미덕도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될 것은 인지상정. 재작년 말 작년 초에 지난 겨울에 “인스타 하는 갓반인들은 집회에 안 오는데 왜 트위터의 오타쿠들은 최애캐 깃발이나 최애캐 인형을 데리고 주말마다 집회에 나왔는지” 농담처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그것이, 이 사람들이 어릴 때 게임, 만화, 소설….. 등에서 바로 어떤 순간에 사람이 용기를 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타쿠 문화”라고 반쯤은 조롱조로 불릴지언정 그 안에 들어 있는 선에 대한 추구가 사람의 행동을 바꾸었다고. 그리고 지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 역시도 그 이야기 속에 이런 선의 씨앗들을 뿌려나가야 한다고.
스낵 컬처라면서 매사에 그리스 비극마냥 비장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이 사이다만 찾지 않고 때로는 진지하게 상황을 들여다본다 해서 노잼도 아니고, 힘을 빼야 할 때는 힘을 빼고 가야 하겠지만 그래야 할 상황에서는 단단한 결의도 해야 하는 것이고, 마망만 찾을 게 아니라 자기가 일어나서 뭘 지켜야 할 순간도 있고, 세상이 자기를 억까한다고 원한만 품지 말고 자신을 관철해 갈 용기도 의지도 때로는 필요한데. 아니, 작중 캐릭터 뿐 아니라,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아무데나 “나만 아니면 돼” 하지 말고(그런 소리 하는 특히 남자들 보면 솔직히 같은 대기권 나눠 쓰기도 싫다.)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질문들도 좀 던져보고 (내가 버튼을 누르면 내가 모르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이 죽는 대신 내 통장에 돈이 입금된다고 할 때 누를거냐, 라든가) 윤리적 고민들도 하고, 위악을 쿨하다고 여기기보다는 위선이라도 선 흉내라도 좀 내 보고, 나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무엇을 위해 어디까지 대가를 치를 수 있는가도 가끔 생각해 보고, 좀 그러면 좋겠다. 나를 희생하여 선을 이루겠다, 중생을 제도하겠다, 그런 거창한 서원까진 없더라도 적어도 내게 이익은 없더라도 손해만 없다면 선을 택하겠다, 정도만이라도.
어디가서 평생 손해볼 일이라라고는 한점도 없었을 것 같은 심술궂은 얼굴의 남성이 “나만 아니면 돼!”하고 TV에서 외치고, 진지하면 노잼이라고 그냥 동동 떠 있거나, 인셀남 비슷한 놈이 상황에 휘말려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자기는 아무것도 안 하고서 억울해 하기나 하는 이야기들, 운빨이 좋다 못해 숨만 쉬어도 레벨업을 하더라는 이야기 따위가 흘러가는 세상에서도 현실에서 누군가는 선과 미덕을 위해 노력하고 누군가는 더 나은 세상을 생각하며 고공에 오르고 누군가는 독재를 막기 위해 슬리퍼 신은 채로 국회로 달려간다. 아마도 그들이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나 소설, 영화 속의 “언제나 정의가 이기는” 세상과 “죽지 않고 비굴하지 않은” 영웅의 이야기들과, 그들이 살아가면서 만났던 크고작은 영웅들이, 그 용기를 갖고 일어서도록 사람들의 등을 떠밀었다면. 창작에서 왜 선을 이야기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야만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어린 마음에 선과 용기와 의지의 씨앗을 심기 위해서.
그대 현실 앞에 한없이 작아질 때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영웅을 만나요
무릎을 꿇느니 죽음을 택하던 그들
언제나 당신 안에 깊은 곳에
그 영웅들이 잠들어 있어요(신해철, Hero)
PS) 우리집 어린이가 정보라 작가님의 “아무튼 데모” 책을 보고 살짝 놀라길래, 맹자가 이르기를 인간에게는 사단이 있는데 그걸 따르는 분이라고 이야기해 줬다. (너희 엄마는 수오지심이랑 시비지심은 있는데 측은지심이랑 사양지심이 함량 부족이라 큰일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