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연말에 모여서 AI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만큼 지금의 화두가 AI인 것은 사실이고, 특히 창작자에게 있어서 AI의 문제는 민감할 수 밖에 없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 릴스에 뇌를 빼놓고 스마트폰을 붙든 채 입을 헤 벌리고 넋을 놓으며 추천 알고리즘이 말아주는 대로들 살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야 살던 대로 살겠죠 뭐. LLM에 대해 별별 말이 나오는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얘의 도구로서의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부치려는 듯 집요하게 굴려보고 실험하고요. 양쪽의 미래는 AI 시대에도 아마 다를 겁니다. 창작이 산업적으로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것인가에 대한 걱정은 하지만, AI 학습에는 여전히 AI가 만들지 않은 raw data가 당분간 더 필요할 것이고, 이 산업 자체는 남아 있을 거고요.
그리고 AI가 만드는 창작물이 대세가 되면 창작 안 할 거냐고.
“작가가 되고 싶어서” 작가가 된 사람들은 여기서 꺾이거나, 설정만 짜서 AI로 만드는 일을 할 것이고
“창작을 하고 싶어서” 작가가 된 사람은 그러거나 말거나 하던 것들을 계속 하겠죠,지. 그러면서 AI를 안 쓰는 완전 수제 창작을 하거나, 얘를 도구로 부릴 거고요.
솔직히 먹고 사는 문제는, (저야 오랜 꿈인 전업작가가 되는 걸 은퇴 후로 쭉 밀어두고 계속 조용히 회사 다니면서 쓰면 그만이지만) 전업작가인 친구들을 생각하면 가끔 걱정이 되긴 하는데, 그렇다고 이 산업이 아주 망하거나 정말로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정밀한 CAD/CAM이나 3D 프린터가 대세가 되어도 여전히 돌을 깎고 흙을 빚고 손으로 가죽을 꿰매듯이, 창작도 그러할 겁니다. 왜 다르겠어요. 누군가는 누군가는 주어진대로 기계를 돌리고 누군가는 어리석다, 장인정신이냐는 소리 들으면서도 손으로 그 일을 할 테고, 누군가는 그 장비에 최적화되면서도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설계들을 해 나가서 그 장비를 도구로 쓸 겁니다. 그동안 그린 그림이나 써놓은 글을 전부 집어넣으면 AI가 혼자서 생산하며 내게 돈을 벌어주지 않을까 하는 과한 희망이나, 창작이 전부 다 망할 거라는 과한 절망들을 말하기 전에, 각자 자기 위치도 말하면서 그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주체가 되어서 이 도구를 쓸 건지, 이 도구에게 먹힐 건지. 스마트폰을 도구로 쓰는 사람이 있고, 스마트폰 없이는 잠시도 못 참고허덕거리는 사람이 있는 것 처럼. 나는 누구인지, 어느쪽에 있는지, 작가가 되고 싶은건지, 창작을 하고 싶은 건지.
저는 그보다는, 희망편만을 목놓아 외치면서 후진들은 망하든 말든 상관없다 하는 일부 원로들이 재수없고. 석달마다 LLM도 휙휙 바뀌는 이 시대에 무슨 “스마트폰 사용법” 강의하듯이 관공서로 침투해 한몫 땡기려 드는 교육장사꾼도 재수없고(엔지니어링쪽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다, 일반인 대상 딸깍 강의 말하는 것임.) 초지능 시대가 왔을 때 합리성에 밀려서 보편인권이 오히려 퇴보할 가능성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일자리는 줄어들어 할 일은 없고, LLM과 놀며 쓰담쓰담 우쭈쭈 받기만 하면서 불관용 사회로 흐를 것도요.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 이명박이나 윤석열같은 놈이 정권을 잡은 어떤 AGI 시대, 에 AI들이 자체적으로 창작을 한다 한들 “대통령 항문에 사보타지”(그렇습니다, 재능없는 작가가 살아남는법 운운하던 우리 기만자 홍지운 선생님…..)라든가 “친애하는 황국신민 여러분”이나 “총통각하” 같은 거 쓸 것 같냐고, 체제순응 프로파간다야 잔뜩 만들겠지만. (으쓱)
얘들을 우리가 도구로 쓸 방법을 생각하는 한편으로, 그렇게 빠르게 우리가 대체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 장르를 예로 들자면 듀나 김보영 정보라가 그렇게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웃음), 우파미학을 체화한 장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장르는 여전히 인간이 쓴 것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여기다 하나 더.
창작을 하는 길을 선택했을 때, 부유하고 화려하게 사는 미래를 상상했었냐고요. 그냥 다들 뭔가 쓰고 그리고 만들어야 직성이 풀려서, 그거 안 하면 못 살 것 같아서 시작한 거 아니냐고. 왜 겁먹어요. 대체 언제부터 창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순순한 사람들이었다고. 굶어도 죽어도 칼 들어와도 어디 맨바닥에라도 뭔가 끄적끄적 계속 창작할 거면서. (으쓱) 저건 우리 앞에 나타난 새로운 아래아한글이고 새로운 아이폰이고 새로운 와콤 타블렛이며 새로운 스케치업이에요. 물론 거기다 생각까지 외주주면 그냥 리바이어던이 되겠지만. 그걸 어떻게 써먹고, 어떻게 사유하고, 거기에 자기 생각까지 외주준 사람들이 대세가 되어가는 시대를 어떻게 또 치고 받으며 나갈지는 쓰고 만드는 사람의 몫이지.
이 플로우에서 사실 두려운 건 딱 한가지임. 그나마 얼마 안되는 읽는 사람을 또 한줌 더 줄여버릴 것 같은 거…… 사람이 읽거나 생각하는 게 아니라 LLM과의 교감(……)으로 간단하게 치유받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
어쨌든 그런 생각이라서, 코딩은 가르치고 컴퓨터 사용법도 가르치지만 집에서 애들에게 AI 안 주고 있습니다. 책 보고, 그림 그리고, 오늘도 햇반 박스로 저기서 뭔가 만들고 있는데 치울 생각하면 아득하지만, 우리가 AI 시대를 대비하려면 손 움직이고 많이 만들고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게 답일것 같아요. 할 것 없으면 다꾸라도 하고.
PS) 2010년 무렵에 1년동안 민음사 세계문학을 100권 정도 읽었는데 그게 몇년동안 굉장한 양식이랄까 그런게 되었고 글도 많이 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미나이와 노는 것이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2026년에 세계문학 100권 읽기를 다시 하려고 해요. 글의 노폐물을 빼기 위해서. 저도 바이브 코딩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LLM들과 잘 놀았지만, 가끔 초기화 하듯이 뭔가를 다시 시작해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새해라는 것은 마음먹기 좋은 기회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