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창수의 비중이 원작보다 줄었다”고 타박하는 리뷰를 봤는데, 이 리뷰는 우선 그에 대한 이야기부터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창수라고 하면 기억 안 날 사람도 많지만 이 녀석은 원작과 TV판에서 그야말로 “순정 냉장고 털이남” 같은 놈이었다. 자기 집 냉장고를 털어서 하니의 옥탑방에 먹을 것을 실어 나르는 놈. 그리고 예고편에서 이 녀석은 원작이 나오고 40년만에 하니가 얘의 어깨에 기대서 꾸벅꾸벅 조는 등 관계성에 있어 어느정도 진전을 보인 듯 했다. 물론 그래봤자 예고편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나애리와 하니의 이야기이고 냉장고 털이남 따위는 그냥 원작에서나 지금이나 감초일 뿐이다. 설마 나애리가 하니와 경쟁하는 이야기 하는데 갑자기 냉장고 털이남이 하니와 사귀기라도 하겠느냔 말이다. 그렇다고 냉털남 주제에 하니와 나애리를 사이에 두고 “너희가 내 양날개야!”같은 거 외칠 주제나 되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한국 남성들의 비대한 자의식이다. 설령 기자나 평론가라 해도 그 점은 딱히 개선이나 객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큰 문제다. 이들은 주인공이 여성이면 으레 그 곁에 남자 주인공이 하나 있어야 하며, 여성인 주인공은 그 남자 주인공과 깊은 감정적 교감을 나누어야 한다고 착각하는 무리들이다. 그리고 이런 착각이 도가 지나쳐서, 명확하게 로맨스 분위기를 내거나 인생의 스승처럼 보이는 남성이 보이지 않으면 주인공 곁에 얼씬거리는 감초 1이라도 남자 주인공이라고 우기고 싶어한다. 이런 무리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여자 주인공은 대체 누구냐고. 진도준과 결혼한 판사가 여자 주인공처럼 보이긴 하겠는데, 그분의 비중이 얼마나 되느냐고. 그래도 그 판사께서는 서사의 마지막에 진도준이 복수를 할 때, 막강한 법조가문 인맥을 진도준에게 끌어다 주며 판세를 뒤집는 역할을 한다. 창수는 미안하지만 원작에서도 TV에서도 이번 애니메이션에서도 그런 키 퍼슨이 아니고, 하니가 고생하는 것을 독자 및 시청자에게 이입시켜 주기 위해 울먹거리고, 자기 집 냉장고를 털어다가 하니에게 먹이고, 나애리에게 하니와 화해하라고 잔소리하며 이야기의 긴장감을 늦추어주거나 오해를 푸는 데 더 시간이 걸릴 것을 단축해주는 역할을 할 뿐, 원작에서도 TV에서도 이번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도 “설령 창수가 이야기에서 빠져도 전개가 안 되는 부분은 없는” 캐릭터다. 한마디로 감초 캐릭터인 그를 어떻게든 남자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니까 창수의 비중이 적네 많네 그런 한심하고 영양가 없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참고로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도준과 결혼한 판사의 이름은 서민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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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하니 : 나쁜 계집애”는, 원작에서 하니와 경기는 물론 감정적으로도 대립하던 라이벌 나애리에게 무게중심을 두고 두 사람의 관계를 되짚어보며 그 다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원작에서 하니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 유지애와 살기 싫어서 집을 나와 초라한 방에서 살며 신문배달로 생활비를 번다. 이때 하니는 엄마와 함께 살던 추억의 옛집 근처로 신문을 돌리며, 꼭 그 집에 신문을 넣고, 담장 너머로 엄마와의 추억이 남아 있는 대추나무를 바라보다가 가곤 했는대, 이 집에 살던 것이 나애리다. 나애리의 입장에서 하니는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자기 집을 들여다보는 스토커 비슷한 녀석인데다 넣지 말라는 신문까지 자꾸 넣고 가는데, 사실 누가 우리집에 조선일보를 자꾸 넣고 가고, 조선일보 사절이라고 붙여놓고 전화하고 난리를 치는데도 자꾸 신문을 넣은 뒤 지쳐서 포기할 즈음 구독료 내놓으라고 나타난다고 생각하면, 그 범인을 잡아서 하지 말라고 면전에서 말해주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이다. 육상 유망주 나애리는 달리기에는 자신있던 하니를 따라잡아 붙잡고, 그 과정에서 너희 엄마가 너 이렇게 가르치셨냐는 식의 패드립을 쳐서 원한을 적립한다. 그 다음은 전국대회다. 첫 출전한 빛나리 중학교 육상부의 초라한 몰골을 본 나애리는 다른 선수들 앞에서 꼴찌는 쟤가 할 거라고 말하며 또 원한을 적립했다. 국제대회에서는 자신을 이기면 얼마든지 자기 집 대추나무를 보고 가도 좋다며 자신의 승리를 장담한다. 이 세 번의 대립 과정에서 하니는 나애리에게 그야말로 원한을 차곡차곡 적립해서 퇴적암까지 만든 상태인데, 이를 응축한 말이 “나쁜 계집애”였다. 물론 실제 대사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리고 하니는 국제대회에서 우승했다가, 귀국하자마자 교통사고를 당하고 단거리 달리기는 어렵다는 말을 듣고, 유지애와의 재활 끝에 마라톤 완주로 자신의 재기를 알리며 TV판은 끝났다. 그리고 3년이 지나, 하니와 나애리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이번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새벽, 일찍 일어나 체계적으로 빈틈없이, 그리고 노력을 아끼지 않고 근면하게 훈련하는 나애리와, 같은 시각 돈을 걸고 달리는 스트리트 스포츠 S-Run에서 새벽부터 맹활약하는 하니의 모습이 교차된다. “짐승같은”, 본능으로 달리는 하니와 “기계같은”, 엘리트 체육의 정점에 선 나애리는 오프닝부터 대조적이지만, 두 사람은 계속 달리고, 또 달리고 있다. 이 도입부부터 마지막까지 달리는 장면에 무척 공을 많이 들인 게 보이는데, 예를 들면 똑같은 길을 달리거나 똑같은 기술을 구사해도 하니, 나애리, 주나비가 달리는 폼은 완전히 다르다. 하니는 임기응변에 강하며 빠르고 몸이 가볍고, 나애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폼이 흐트러지거나 체력이 떨어지지 않으며, 주나비는 동체시력이 좋고 3D로 움직이는 것에 강한 것이 느껴지는 식이다. 특히 주나비의 변화무쌍하고 위협적인 움직임은 파쿠르 하는 사람들을 모션캡처한 것 같다. 달리는 모습을 다양한 각도의 카메라워크로 잡아내는 것은 “우마무스메”같은 게임, 애니메이션의 영향도 받은 것 같은데, 레퍼런스가 많아져서인지 TV판과는 화면의 역동성이 다르고, 특히 “드론으로 찍고 있다”는 설정 덕분에 화면 자체의 움직임도 빨라서 달리는 장면만 봐도 흥미진진하다. 누구 말마따나 90분동안 하니와 나애리가 달리는 장면만 봐도 재미있을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하니가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3년이 지났지만, 나애리는 여전히 자신의 앞을 달리는 하니의 환영을 보고, 실적만을 강조하는 유준태 코치와 결별한 뒤 하니를 좇아 빛나리 고등학교로 전학한다. 빛나리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교가가 같은 것으로 볼 때 두 학교는 같은 사립재단 소속인 것 같은데, 하니가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왔어도 여전히 육상부에는 마땅한 부실 하나 없다는 게 문제이지만, 교장은 부유한 집안 출신에 청소년 국가대표인 나애리가 전학을 오자 실적이 좋지 못한 농구부를 쫓아내고 체육관을 육상부실로 만든다. (교육자들이 이래도 되나 싶고 현재는 그럴 수도 없겠지만 80년대 개그의 흔적이라고 치자.) 하지만 하니는 나애리와 함께 육상부 활동을 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주장하고, 두 사람은 3판 2선승제로 달리기 시합을 하며 서로의 기량을 내심 인정한다. 그리고 나애리 앞에 유준태가 새로 영입한 S-Run 선수 주나비가 나타나 나애리를 꺾는다. (요즘은 고등학교에도 배움터 지킴이 쌤 계실텐데 존재감도 만만치 않은 주나비는 어떻게 배지터를 뚫고 빛나리 고등학교 안으로 들어가 100미터 달리기 대결까지 하고 있는 건지.)
돈을 걸고 달리고 경기 상황이 드론으로 유튜브에 생중계되는 S-Run은 도박으로 단속되고, 주나비는 S-Run에 참가한 하니를 가볍게 따라잡고, 경찰이 나타나자 바로 건물을 타고 넘으며 사라진다. 경찰에 붙잡혀 간 하니와 창수는 홍두깨 선생과 나애리 아버지의 도움으로 풀려난다. 육상협회 임원인 유준태는 S-Run을 양성화하고 S-Run 대회를 개최하며 홍두깨와 하니, 나애리에게 국가대표 선발전 참가를 걸고 S-Run 대결을 제안하고 공문까지 보낸다. 2인 1조로 달리는 이 경기에 참가하려면 하니와 나애리가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앞서 3판 2선승제 대결의 마지막을 S-Run으로 대결하고, 이 과정에서 하니가 말한 “즐겁게” 달리는 것이 자신에게는 “하니와 함께” 달리는 것임을 깨달은 나애리는 시합이 끝나고 즐거워하는 하니에게 계속 같이 달리자고 한다. 홍두깨 선생은 S-Run 대결을 위한 체계적인 전략과 훈련을 제시하고, 하니의 매니저를 자처한 창수는 두 사람의 훈련을 보조한다. 이 과정에서 하니의, 원작에서의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고질적인 발목 부상이 드러나고, 이때까지만 해도 하니에게 경쟁심을 불태우던 나애리는 함께 달릴 수 있는 방법, 하니가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함께 찾아나간다. 과거 하니에게 했던 심한 말들에 대해 사과하고, 나애리가 실수로 망가뜨린 하니의 머리핀을 다시 붙여서 건네며, 두 사람은 마침내 서로 마주보고, 다시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하니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달렸고, 달리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또 즐거워지고, 이기면 더욱 즐겁다는 것을 체화한 사람이다. 그래서 원작과 TV판에서 하니가 러너스 하이의 순간에 빛 속에서 보는 것은 자신을 안아주는 엄마다. 반면 엘리트 체육의 정점에서 훈련받은 나애리는 이기기 위해서,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서 달린다. 한때는 달리는 것 자체를 즐거워했을 지도 모르지만, 유준태는 기록단축만을 외쳤고, 고등학생이 된 나애리는 왜 달려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 못한 채, 때때로 자신을 앞질렀던 하니의 환영만을 볼 뿐이다. 마침내 달리는 것의 즐거움을 깨달았을 때, 그의 앞에는 이번에도 하니가 있다. 정점에서 홀로 서는 것, 직선 주로에서 자신의 앞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 익숙해져 있던 나애리는 누군가와 함께 달리는 것, 특히 하니와 함께 달리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깨닫는다. 그런 나애리가 러너스 하이의 순간에 보는 것은 하니의 뒷모습이다. 자신과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 80년대 풍의, 유치하다면 유치한 연출일 수도 있지만, 이 장면은 전작에 대한 리스펙트이자 전작에서 하니가 이 순간에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한다면 실로 완벽한 연출이다.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뭐가 사랑임? 친구들아, 이건 백합 주식이 아니라 백합 현금다발이고 백합 똘똘한 한채 부동산이고 백합 현물 골드바야!!! (비명)
물론 두 사람은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만(아니, 이건 주식이나 코인같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실물자산 수준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짐승같은 본능으로 어떻게든 해내는 격이 다른 천재”와 “타고난 재능 위에 격이 다른 노력을 쌓아 올린 천재”가 서로 미워하고, 대결하고, 둘이 한 편이 되어야 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나아가 서로의 스승이 되며 진정한 의미의 한 팀이 되는, 소위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이니 “정파의 후계자와 사파의 천재”라든가 “유리가면의 두 주인공인 기타지마 마야와 히메가와 아유미” 라든가, 매우 고전적인 이야기다. 이 관계에 다른 무언가가 끼어들 여지는 별로 없다. “유리가면”만 봐도, 무대 밖에 있는 보라색 장미의 사람이자 홍천녀 상연권과 연관된 하야미 마스미는 이야기의 또 다른 한 축으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아유미와 별개로서 존재하지만, 무대라는 같은 장 안에 있는 사쿠라코지 유우는 그냥 조연이듯이. 이건 원작에서도 마찬가지고, TV 판에서도 마찬가지다. 홍두깨는 주인공의 “스승” 역할이자, 원작에서 나애리의 코치였던 유준태와도 과거에 대립했던 인물로서 별도의 서사 및 대를 이은 악연이라는 서사를 갖고 기능하지만, 순정 냉장고 털이남은 그냥 하니를 응원하고 하니가 좋다고 쫓아다니는 놈일 뿐이다. 이번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이미 하니와 나애리는 세계 정상에 섰던/서 있는 인물이고, 홍두깨는 교사인 자기 삶에 만족하고, 고은애와의 결혼생활에 만족하고, 군자의 세 즐거움 줌 하나인 천하의 영재를 얻어 잘 가르치는 기쁨도 충분히 누리고 있어서인지 유준태가 무슨 헛짓거리를 하고 다니든 하니, 나애리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이렇게만 말하면 훌륭한 교사인데, 그는 전작보다 더욱 추레한…… 교사가 이렇게 입고 다녀서 학생 지도가 가능한가 싶은 몰골로 돌아다니며 개그 캐릭터의 역할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원작에서 홍두깨가 스물 일곱 살 쯤 되었으니 3년 지난 지금 그는 서른 살일 텐데, 람바 랄이 형님 할 것 같은 얼굴로 모리 코고로같은 (아니 TV판 홍두깨같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는 아무리 봐도 서른 살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와 동갑인 선글라스남 준태는 여전히 젊어보이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어서 좀 눈물이 앞을 가리기도 한다.
창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하니가 그저 마음껏 신나게 달리면서 사람들을 이기는 재미에 빠져들자 그게 도박이라는 사실도 생각 못하고 매니저 노릇을 자처하며 돈을 세고 있고(나쁘게 보자면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애를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는 새끼가 아닌가 싶지만 그에게 그 정도의 지성이나 사악한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얘는 아마 하니가 그걸 한다니까 아무 생각이라는 게 없이 따라다니는 거고 그 김에 돈도 벌어서 하니에게 보약이라도 지어줘야겠다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니가 나애리와 함께 S-Run에 나간다니까 홍두깨를 보좌하여 육상부 매니저를 하다가, 시합때는 빛나리 고등학교 날라리 일당들과 함께 응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창수가 하니와 나애리 양쪽으로 얼굴을 붉히며 갈팡질팡한다거나, 백합난입남이라거나 하는 말도 나오지만, 그는 나애리 뿐 아니라 주나비가 잘 뛰는 것을 보고도 눈이 돌아가는, 그냥 기 세고 잘 뛰는 여자에 환장하는 놈인데 어릴 때 부터 하니가 근처에 있을 뿐이다. 아마도 우마무스메의 골드 쉽이 지나가셨으면 그는 골드 쉽 님의 말발굽에 즈려밟히면서도 기뻐했을 것이다.
기억이 맞다면 유준태는 원작 및 TV 판에서는 홍두깨에게 미안해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번 이야기에서 그의 싸가지없음은 더욱 업그레이드 되고 말았다. 학생 시절 그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면서도 자신보다 잘 달리는 홍두깨를 괴롭히고 따돌렸으며, 아무리 방해해도 이길 수 없자 돈으로 사주하여 홍두깨를 구타하고 벼랑에서 떨어뜨려 다리를 다치게 만들었던 악역이지만, 나이가 들고 자신도 나애리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서 그런지 적어도 홍두깨의 제자인 하니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비열하게 굴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유준태는 청소년 지도자인 새끼가, 아무리 자기 라이벌의 제자라 해도 학생이 다쳐서 쓰러져 있는데 그걸 멀리서 보고 비웃으며 그 옆을 차로 쌩 하고 지나갈 정도로 인성이 엉망인 인물로 나온다. 물론 이것은 마지막에 하니와 나애리가 주나비 팀을 이긴 뒤, 유준태는 홍두깨에게 달려가 자신의 열등감을 쏟아내려 하지만 홍두깨는 신경도 쓰지 않고 나는 천재 코치고 우리 제자들은 최강이지 하고 으쓱거리며 지나가는 장면에서 많은 것이 설명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저게 선생이냐” 소리가 나올 정도. 혹시라도 홍두깨X유준태 19금 동인지 같은 게 나올까봐 미리 원천 봉쇄하는 의미로 홍두깨는 원작보다 더 추레한 중년으로 만들고, 유준태는 인성 개차반을 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욱 성격이 나빠졌다.
빛나리 고등학교 날라리 일당도 좀 흥미롭다. 이들은 나애리의 포스에 밀린 뒤 그에게 반해 응원단이 되어 쫓아다니는 역할로 나오는 개그 캐릭터들이지만, 사실 이들은 치마를 입고도 “왕년에 빛나리 중학교 육상부”였던 냉장고 털이남 창수 정도는 가볍게 따라잡는 피지컬을 지닌, 대한민국 생활 육상계의 희망같은 아이들이다. 홍두깨 선생은 두 천재에게만 몰두하지 마시고 부디 이들의 자질도 알아보셨으면 한다.
그리고 나애리는 원작에서의 갈등을 함축한 “나쁜 계집애, 건방진 계집애”같은 표현이나 배드애스, 배드걸,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에든 갈 수 있다”는 그런 의미 말고도 완전 죄많은 소녀라는 점에서도 나쁜 계집애라는 제목은 꽤 합당했다. 그는 빛나리 고등학교 학생들을 홀리고 날라리 일당들을 사로잡고 냉털남까지 나애리가 달리는 모습에 해롱거린다. 그런 나애리가 자길 똑바로 안 봐주는 하니의 등만 보며 달리는게 매우 두근두근하고 좋다. 화면에 두찜과 트립닷컴을 위시하여 여러 스폰서들이 끝없이 보이고, 특히 훈련 중에 홍두깨가 포장해서 들고 온 두찜을 맛깔나게 먹는 장면은 너무 노골적인 PPL이 아닌가 하며 좀 웃었고, 아예 트립닷컴이 S-Run 대회 공식 스폰서로 나오는 장면 등을 볼 때는 머릿속에 “코노 방구미와 고란노 스폰사노 데쿄데 오쿠리시마스~~~~”하는 소리가 지나가는 기분이었으나 사실 이 정도면 이야기를 방해할 정도로 스폰서가 들어간 것도 아니고, 특히 스포츠 대회에 공식 스폰서가 있어서 여기저기 로고가 붙어있는 것은 현실에서도 자연스러워서 눈에 거슬리진 않았고,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면 스폰서가 필요하니 이야기 흐름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나오는 이런 장면들도 이해가 갔다. 속편에서 아예 트립닷컴 배 무슨무슨 대회, 그런 게 나오더라도 속편 나와주면 이해한다.
ps1) 이야기 끝나고 짧은 쿠키 영상 있고, 애니메이션 콘티로 보이는 스틸컷들이 지나가는데, 이 스틸컷들로 엽서 만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ps2) 그리고 나애리 아빠 몇 장면 안 나오지만 아주 미중년으로 나오신다. 일부에서 수요가 있을 페이스의 미중년인데, 애니메이션에서 나애리 엄마는 전혀 안 나온다거나, TV판은 물론 이번에도 나애리가 “너 엄마 없잖” 하고 패드립 날리면서도 그게 뭐? 하는 느낌인 것을 볼 때 나애리 아빠도 사별이든 이혼이든 혼자인 게 아닐까. “엄마 너만 없냐, 나도 없다”같은 느낌이면 나애리가 하는 그 패드립도 더 희석이 되기도 하고. 학교에서 나애리와 하니가 티격태격 하는 장면을 보다 보니, 나애리 아빠가 유지애 팬이면 완전 재밌겠다는 생각도 했다. 비서에게 애리 아가씨가 하니 선수와 학교에서 맨날 싸운다는 말 듣고 하니 학부모님과 면담 요청했는데 유지애님 나오셔서 성공한 ☆ 덕후 되어서 귀가하셔서는 “하니랑 잘 지내라. 동료도 중요하다.”해서 나애리가 뒷목을 잡게 만든다거나, 나중에 나애리가 하니랑 사귀는거 알고도 “유지애님이….. 사돈이 되시는 건가” 했으면.
PS3) 우리집 초등학생 저학년 어린이가 사전정보 없이 보고도 무척 즐겁게 보았고, 보고 나온 뒤 물어보니 전편의 내용을 어느정도 유추하고 있었다. 자녀와 함께 오는 관객들도 많았으니, 자녀나 조카와 함께 봐도 괜찮을듯.
PS4) 포스터 구석에 이상한 고양이 로봇같은 게 있는데 그거 놀랍게도 본편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