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나리카와 아야는 일본 오사카 출신으로, 1994년에 한국에 가족여행을 오며 처음 한국 문화를 접하고, 다시 2002년 월드컵 무렵에 한국에 왔다가 촛불 시위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라는 역동적인 시기를 경험했다. 이후 아사히 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며 중앙일보 칼럼을 비롯해 한국어로 일본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재일교포들이 많은 오사카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 이 말하는 일본 이야기(정확히는 일본과 한국 문화에 대한 개인적 체험과 관점에서의 비교)다 보니 일단, 한국인들이 궁금해할 만한 일본 이야기들이 많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된다. 물론 여기서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은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라 왜 그런지 알겠다, 납득한다는 뜻에 가깝다. 이를테면 여기서도 중간에 언급되는, 선거구 세습 같은 것.
한국에서는 세습 의원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본인의 노력이 아닌 집안의 힘으로 국회 의원이 되는 것이 불공평하다는 거부감 때문인 것 같다. 일본에서도 그런 지적이 있긴 하다. 그런데 결국 선택하는 것은 유권자다. 세습 의원의 당선율이 높은 건 대대로 국회의원이었던 만큼 네트워크와 노하우가 있고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마치 다이묘 세습하듯이, 그 지역 유지가 대대손손 국회의원 시의원을 해먹는 구조인데. (전에 만화 “남자의 일생”에서도 2세 시의원 캐릭터가 나왔다. 국회까지 갈 것도 없이 시의원조차도 세습되는 사회…..) 오부치 게이조가 죽었을 때, 그 해 중의원 총선거에는 그의 딸인 26세의 오부치 유코가, 아버지가 12번 당선된 선거구를 물려받아 당선되었다. 이게 말이 되냐고. 물론 저자는 여기에 더해, 이로 인한 문제점도 짚고 있다.
아소는 탄광왕의 증손, 아베는 만주국의 실권자였던 전범의 손자다. 그런 배경이 강제 징용 문제나 난징 대학살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 전에는, 편집자인 친구와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내 소설인 “280일“같은 것은 일본에 수출되기 매우 어렵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임산부의 리얼한 사회적인 갈등과, 임신 기간 중 신체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라 만국 공통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출산하며 겪는 고통은 물론 신체 변화 등이 일본 기준으로는 너무나 자극적이고 거친 이야기라서, 편집자들이 독자에게 보여주기엔 너무 무서운 이야기라고 생각할 거라고. 그게 뭐야, 하고 넘어갔는데 이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뮤지컬 영화의 팸플릿에서는 한국에서 성공한 뮤지컬 영화로 “영웅(2022)”에 대해 언급하면서 주인공 안중근에 대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이라고 썼다. 일본에서는 안중근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편집자한테 “일본 사람에게는 자극이 강하니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이라는 말을 빼도 되겠습니까?”하는 메일이 왔다.
무슨 자극!!!!!!! (버럭)
있는 사실을 그런 식으로 잘라내고 당의정을 입히기 급급하다니. 독자나 관객을 어린애 취급하는 거냐고 묻고 싶지만, 그보다는 상냥하고 부드러운 이야기만 들려주며 정보를 은폐해서 사람을 바보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8월 15일이 한국의 독립기념일이라는데 무슨 독립?”같은 소리를 하는 일본인들이 꼭 나오는 거겠지…… 그쪽 나라는요, 약 100년 전에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고요…… 근데 그런걸 학교에서조차도 대충 얼버무리고 간다며. 미국으로부터 핵폭탄을 맞은 선량한 피해국가;;;; 인 양 하면서. (혈압) 독자나 관객이나 학생을 바보 취급하지 말고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혈압)
그리고 우리나 중국은 결혼해도 여성의 성이 바뀌지 않는데, 일본은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데릴사위나 그럴때는 여성의 성을 따르기도 한다지만 대부분은) 따른다고 해서 거긴 특이하네 하고 넘어갔는데, 그게 또 전통적인 것도 아니고, 이게 불과 150년도 안 된 일이라는 것을 보고 좀 놀랐다.
에도 시대에는 무사 계급은 성을 가질 수 있었지만 대다수의 농민들은 성이 없었다. 무사 계급이 결혼해도 여성이 원래 성을 유지하는 부부별성이 일반적이었다. 1868년에 메이지 시대가 시작되어 모든 사람들이 성을 갖게 된 후에도 부부별성이 일반적이었다. 1898년에 부부동성을 규정한 것은 메이지 시대가 시작한 지 30년 지난 시점이다. 오히려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 국가를 따라 도입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니, “대망”이라든가, 막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일본 소설이나 만화나 드라마를 봐도, 결혼했다고 성을 바꾸는 이야기가 나오진 않는다. 오히려 난세에는 상황에 따라 이혼과 정략결혼을 몇번이나 반복하는 여성들이 나오고. 생각도 못 했는데, 그 150년도 안 된 것을 마치 전통인 것 처럼 부부동성 못 잃어 하는 거였냐고. 일본 남성들이 부부별성 이야기 나오면 그렇게 호들갑 떨며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나는 무슨 고사기 시절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라도 되나 했네. (허탈)
한편으로는 또, 한 20년 전에는 일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업장이었던 메이드 카페 등이 지금은 한국에도 메이드 카페, 집사 카페 같은 형태로 있는 것을 보면, 이런 것들이 한국에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것들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가게 종업원의 물화. 이건 지금도 어느정도, 이렇게 생각하는 진상 손님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보편적인 정서는 아니긴 한데.
한국 친구에게 스마일 0엔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면 대부분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중략) 일본 친구들에게 스마일 0엔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면 남녀 불문하고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지금 분위기로 좀 더 가면, 직원이 안 웃어준다고 민원 넣고 행패 부리는 놈들이 더 늘어나는 방향으로 “보편화”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스마일 0엔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한국인들의 의견이 많았다는 건 좀 다행이지만.
일본 입시에 관해 한국 사람에게 자주 듣는 지적이 “에스컬레이터식 진학은 불공평하지 않냐”는 것이다. 게이오처럼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입학 시험 없이 상급 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 학교를 말하는 것 같은데 사실 나는 뭐가 불공평한지 잘 모르겠다. 학비도 비싸고 들어가기도 어렵다. (중략) 일본에서 에스컬레이터식 학교를 가지고 불공평하다는 이야기는 별로 못 들었는데 한국에 비해 입시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이건 입시 경쟁 문제라기보다는, 계층과 신분의 고착 문제에 가깝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이런 것도, 한국에서도 이런 에스컬레이터식 학교라든가, 기부금 입학이라든가, 그런 것을 원하는 계층들은 있다. 왜 없겠어. 과외를 처발라도 한계가 있으면, 돈으로 학벌을 사주고 싶다는 생각이 당연히 들 만도 하지…… 그나마 치열한 입시 경쟁 덕에, 사교육으로 처바르더라도 수능 시험장에는 사인펜만 들고 들어갈 수 있어서, 그나마 계층과 신분의 고착 문제가 조금 덜 한 게 아닌가, 사다리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남아는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다른 이야기지만 “이거 언제 적 이야기야.”하며 읽다가 헌법재판소를 배경으로 “윤 대통령 탄핵 인용, 파면”이라고 커다랗게 떠 있는 전광판 사진을 보고, 굉장히 최근에 나온 책이구나 싶어서 깜짝 놀랐다. 읽고 찾아보니 아마도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칼럼을 다시 묶은 것 같았는데, 조중동, 특히 중앙일보 독자들이라면 이런 내용을 보면서 좋아할 수도 있겠지, 하고 잠시 생각했다. (요즘 중앙일보의, 재테크, 교육 유료 기사들 목록을 보면 특히 그런 생각이 든다. 중앙일보 독자의 어떤 욕망의 스테레오타입을 생각하게 된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