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신성인의 자세로 쓰는 리뷰 : 귀뚜라미가 온다 – 백가흠,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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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초 문예지 “악스트”에 듀나님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었다. 그때 너무나 인터뷰 질문들이 너무나 수준 떨어지는 것이어서 “악스트의 듀나님 인터뷰를 읽고” 같은 리뷰를 블로그에 쓴 적도 있는데, 그 일이 얼마 있고 alt.SF에서 이 인터뷰를 비판했다가 은행나무 측의 과도한 대응으로 말미암아 폐간을 선택하는 사태도(대체 그런 도끼를 어디다 쓴단 말인가 – Alt.SF 휴/폐간에 부쳐) 있었다. 세 인터뷰어 중 듀나님에 대해 공부나 조사를 한 티가 나는 사람은 배수아 님 뿐이었으나 SF라는 장르 자체를 잘 아시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라 질문이 영 겉돌았고, 정용준은 문단 작가를 인터뷰할 때에도 이 정도로 상대에 대해 조사를 안 하시나 싶었으며 백가흠은…… 그렇다, 사실 이 인터뷰가 “사건사고”라는 말이 어울릴 만한 “사태”가 된 원인의 팔 할은 백가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일이 있고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듀나 님 이야기 하다가 악스트 때 무슨 일이 일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 또는 지금까지도 악스트를 불호하는 SF인들이 존재하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문단이 장르를 우습게 보아 온 일이야 역사가 유구했으나, 한 장르의 헤드라이너 급에게 정상적인 매체의 인터뷰로서는 너무나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질문들을 던져대며(거의 질문의 수준은 지난 세기말 딴지일보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딴지일보는 B급을 표방하기라도 했지!) “나와 만난 적 있지 않느냐”, 소위 “너 나 알지!!!!!”급의 인정욕구를 불태우는 인터뷰라니, 대대손손 놀림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사실 백가흠은 그 인터뷰가 있기 십년쯤 전, 정확히는 2004년에 “듀나”라는 여성 인물이 나오는 단편을 쓴 적이 있다. 내가 오늘 쓰는 이 리뷰는 마침 오늘, 듀나를 연구하시는 강은교 선생님이 공부하기 싫다고 백가흠의 그 문제의 단편을 찾아 읽어볼까 하고 계셔서 그걸 뜯어말리다 쓰게 된 것이다. 하아……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지만 여튼 한두마리 죽었으면 더 안 죽게 안내판이라도 세우는 게 사람 도리가 아니냔 말이죠.

백가흠의 단편집 “귀뚜라미가 온다”에는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대체로 “의롭지 않은 분노에 사로잡혀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들이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 같은 여자들과 섹스하고 젖가슴을 빨고 싶어하는” 이야기이고, 경우에 따라 여자를 죽여버리기도 한다는 점에서 매우 일관적이다. 한 단편집에 실려 있는 단편들을 분석해서 리뷰를 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은 일인데, 제일 큰 관문은 첫 번째 단편에 있었다.

당신은 대금과 같다. 거대하고 새까만 구멍, 그곳을 지나야지 소리가 나는 대금과 같다. 하지만 당신은 방금, 당신의 자궁 속으로 스쳐간 바람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했으니 말이다.

……ㅅㅂ

페이지를 넘기고 이제 읽자, 하고 시작하자마자 이런게 나오면, 어떻게 책을 끝까지 읽을 용기를 내겠느냐고. 그때 읽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 강은교 선생님이 이 책을 궁금해하시는 것을 보고, 그거 읽지 마시라, 내가 리뷰를 쓰겠다, 해놓고 다시 책을 찾아보다가 또다시 고통받는 중이다. 내가 왜 호기심에 눈 썩은 사람은 나 하나로 족하다고 내 이웃을 구하겠다며 이걸 다시 꺼내 읽었다가 이런 수난을.(오열)

가장 먼저 수록된 단편 “광어”에서,룸살롱 사장 남편이 경영하는 횟집에서 일하는 남자는 룸살롱의 미스 정이 임신을 하자, 방금 아이를 지우고 마취에서 깨지 못한 채 피 흘리며 누워 있는 미스 정을 강간해놓고, 몸보신하라고 광어회를 떠다가 갖다주며 그것이 자신의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는 미스 정의 몸값을 구하기 위해 룸살롱에 외상이 있는 도청 간부에게 돈을 뜯어내려다 목적한 금액보다 한참 모자란 돈을 받아내고도, 자신의 돈과 합쳐 오백만원이 있으니 사장에게 사정해 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스 정은 남자가 회를 뜨기 위해 광어를 들여다보던 꼭 그런 표정으로 남자를 들여다보다 통장을 훔쳐 달아난다.

오흐빠, 사람을 오라고 해놓고, 왜 그흐렇게 기다리게 해요.

“밤의 조건”에는 자신을 때리며 섹스를 하고, 돈이 필요하다며 자신을 조건만남으로 내모는 남편과 사는 여자와, 조건만남 일을 하는 비수술 트랜스여성(작중에는 ‘쉬메일’로 표기)이 나온다. 여자가 조건만남으로 만난 중년남은 여자를 마구 구타하고, 돈을 여자의 음부에 찔러넣는다. 제이와 조건만남을 했던 ‘쉬메일’ 보름은 제이의 집에서 나오다가 여자를 발견하고 택시에 태워 보낸다. 그리고 잠시 후 아까의 중년남이 이번에는 보름과 조건만남으로 만나 집으로 데려간다. 여자가 집에 돌아가자, 남자는 액수가 적다고 타박하며 여자가 벌어온 돈으로 혼자 아침을 먹으러 간다. 트랜스젠더인 보름은 과장된 콧소리를 내며 ‘여자 흉내’를 내는 등 전형적인 편견을 반영한 인물로 묘사되는데, 조건만남을 하는 여자를 죽도록 두들겨 팼던 중년남자가 이번에는 보름을 데려가는 것으로 볼 때, 그는 아마도 트랜스여성이라 더 가혹한 폭력에 시달리다 살해될 것으로 보인다. (그나저나 이 두껍지도 않은 단편집에 성매매 이야기만 몇 편인가……) “구두”에서 병무청 공무원인 남자는 자신이 매독에 걸리자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아내를 살해하기로 하는데, 그 전에 노모의 목을 졸라 죽이고 다시 어린 딸도 죽여 노모의 곁에 눕혀놓은 뒤 귀가한 아내를 살해한다. 그야말로 “내가 아내를 죽이고 살인자가 되면 내 가족들도 제대로 살 수 없을 테니 다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논리로 일가족을 다 죽여놓고, 죽인 뒤에야 아내가 불륜이 아니라 생활고로 돈을 벌러 나간 것을 알게 되지만, 남자는 그에 대한 후회는 없이 그간 살아온 것에 대한 피로를 풀겠다며 아내가 일했던 안마방에 간다. 그는 자신을 안마한 맹인 안마사를 뒤쫓아가 강간한 뒤 그 집에서 목을 매는데, 강간당하는 게 처음이 아니라서 곧 순응하던 맹인 안마사는 그의 “한 번도 닦아 신지 않은 듯한 구두. 먼지와 때가 굳어 가죽의 일부가 되어버린 구두”를 끌어안는다.

“배꽃이 지고”에서 과수원 주인인 중늙은이는 정신지체장애인 부부를 일꾼 삼아 배 농사를 지으며, “니 젖은 내 관절염 약이랑께.” 하며 아내를 성적으로 착취하고, 그들의 보조금까지 자신이 착복하며, 아내가 낳은 아이가 우는 것도, 젖을 먹는 것도 마치 자기가 먹을 것을 빼앗기는 것처럼 못마땅해한다. 과수원댁은 이들 부부를 안쓰럽게 여기지만, 그 역시 중늙은이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중늙은이는 아이를 집어던져 죽게 만들고 바로 아내를 강간한다. 그리고 남편을 데려가 죽은 아이를 배나무 밑에 묻게 한다. 이야기의 초반에 “과수원집에서 멀쩡한 사람은 주인 사내 하나뿐입니다”라고 말하지만, 그야말로 사지육신만 멀쩡할 뿐 최악의 착취자로 나온다. 마지막에 그는 장애인 부부의 아내가 임신하자, 유산이 되라고 매일 임신한 여자를 구타한다. 젖을 아기와 나누어 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귀뚜라미가 온다”에서는 자기보다 열 살쯤 연상인 횟집 여자를 “시발년, 미친년”하고 부르다가 “엄마, 어무이”하고 부르며 섹스를 하는 남자와, 매일 자신의 노모를 두들겨 패고, 그러다가 정신이 들면 “옆방에선 떽치고, 내는 부모나 두들게패고” 하며 자기연민에 못 이겨 벽을 치고 우는 남자가 나온다. 이 작은 섬에 태풍 귀뚜라미가 덮쳐오는 동안, 남자는 연상의 여자와 거친 섹스를 하고, 달구는 노모를 이가 다 빠지도록 두들겨 팬다. 태풍이 불어 달구분식과 바람횟집이 파도에 휩쓸리는 사이, 남자와 달구는 썬샤인 모텔로 도망치지만 횟집 여자와 달구의 노모는 태풍에 휩쓸려 돌아오지 못한다. “전나무숲에서 바람이 분다”의 육손이 남자의 어머니는 몸을 팔다가 아랫마을에 온통 성병을 옮겼었고, 현재 산장을 지키고 있는 그는 마을 사람들과 도끼를 들고 다투는 거친 사람이다. 육손이 남자는 산속에서 길을 잃은 여자가 산장에서 하혈을 하며 쓰러지자 장어와 열목어, 전나무 즙을 고아 먹이며 정성껏 돌본다. 여자가 겨우 몸을 추스르자, 그는 여자도 자신과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하여 강간하지만 여자는 산에서 내려와 경찰에 그를 신고한다. “배의 무덤”의 백영철은 동네 여자들 열넷을 강간하고 20년동안 마을을 떠나 외항선원이 되었다가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돌아온다. 집에는 다방 레지 출신의 아내가 낳은 딸이 있었는데, 백영철은 딸이 수다방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자 동의서를 써주고 반년치 선금을 수표로 받는다. 집으로 가던 길, 그는 과거 그가 강간하여 이혼하거나 자살한 여자들의 남편들에게 붙잡혀 뻘밭에 생매장당하며 그들이 보복으로 그의 딸을 윤간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지 에미 닮아갖고, 이년이 가랑이에 털도 잡히기 전에, 아이고, 니가 허고 다닌 일은 하도 오래 전이라 다 잊혀졌어. 내가 이년 땜에 챙피혀서…..”

“다, 그년 땜에. 그런 갈보년에 눈이 멀어갖고…… 니가 건든 여편네들은 다 쫓겨났어야. 어찌나……”

그런데 애초에 시작은 백영철이었음에도, 그의 노모는 백영철을 편들며 며느리와 손녀를 비난한다. 이쯤 되면 백가흠이 소설 속에서 추구하는 어머니 상이란 무엇인가, 아들이 자신을 구타해도, 온 동네 여자들을 강간하고 다녀도 용서해주며 무한하게 희생해야 하는 존재인가. 그렇다면 백가흠의 소설 속 남자들이 상대 여성에게서 어머니나 모성을 찾고, 젖을 빠는 데 집착하다 못해, 아무나 젖이 나오고, 아직 소녀인데다 첫경험이라 임신도 안 했을 “성탄절”의 수은의 가슴에서까지 고소한 우유냄새가 난다고 묘사되는 이 도착적인 집착은 무엇인가(물끄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시 31분”은 쓸때는 독창적인 것을 쓴다고 썼을 것 같다. 그러나 1, 2분의 아주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식의 이야기들은 사실 많으며, 만화쪽에서도 이런 연출로 진행된 이야기들은 꽤 있었다. 특히 단편 쪽에서. 한국 근현대문학 중에도 아주 짧은 시각 동안 벌어지는 군상극 같은 이야기들은 있었기 때문에(고등학교 입학 전 학교에서 나눠준 자체 제작 문학 교재에 들어 있었다. 왜 제목이 생각나질 않지……) 그렇게 독창적인 반전도 아니었고. 남자가 학생인 아들이 있는 “엄마 같은” 연상의 여자를 사랑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남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수정의 목을 졸라 죽이고 여자의 집에서 여자를 기다린다. 그날 낮 수정은 남자가 사랑하는 그 여자를 만나 그를 물에 빠뜨려 죽였고, 남자에게 엄마를 빼앗기는 것이 불만이었던 아들은 자기 집에서 잠을 자는 남자의 목을 기타줄로 졸라 죽인다. 그렇다. 딸은 살해당하거나 팔려나가는 세계에서 아들은 홀로 된 엄마가 남자를 만나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 그 남자를 죽여버린다. 엄마는 아들의 것이어야 한다는 이 집요한 세계라니.

이 단편집에서 폭력은 남성의 것이다. 남성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그에 대한 분풀이로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하지만 여성은 반격조차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거나 살해당하거나, 혹은 폭력에 순응한다. 여성은 피해자이자 약자로서 죽어가는데, 그 와중에도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여자는 군말없이 죽거나 맞거나 강간을 당하고도 강간범의 구두를 마치 고단한 그의 삶인 양 끌어안는 뭐 그런 여자들, 아들을 위해 봉사하고 착취당하다 죽어가는 어머니이고, 도망치거나 경찰에 신고하며 어떻게든 이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여자는 배신자처럼 묘사된다. 폭력에 시달린 여자들은 기절하고 정신을 잃고 오줌을 싸는 등으로 묘사되고, 성매매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묘사되며, 남자는 성매수를 하거나 포주 노릇을 한다. 섹스하면서 어머니를 찾고 어머니는 때리거나 목졸라 죽이며 여자의 가슴에 환장하는 남성 인물들도, 여성이 당하는 폭력을 묘사하면서도 이에 대한 비판이나 일말의 저항도 없이 그저 포르노처럼 관음하듯 묘사하는 작가까지, 한국문학에서 낯설지 않은 “이따위 토종 문학 남자들”의 총집편 같아서 별로 놀랍진 않지만 이정도로 밀도높게 모아놓으니 역겹긴 역겹다. 김기덕 영화 연속으로세 편쯤 보는 것 같은 이 기분.

그리고 제일 곤란한 것은 이, “성탄절”이다. 목사가 죽고, 담임목사가 된 준목사가 장로들과 집사들 사이에서 교회를 놓고 싸우는 가운데, 주인공 소년은 죽은 목사의 딸 듀나(자신이 붙인 애칭이다. 천사인 듀나미스에서 따온 이름이라면서.)를 사랑하고, 듀나도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믿는다. 한편 고물상을 하는 남집사의 딸 수은은 소년을 사랑한다. 소년은 남집사가 듀나와 섹스를 하는 것을 알고, 남집사의 딸인 수은을 교회 강대상에 눕히고 강간하려다 사정해버리고 만다. 듀나는 준목사가 자신을 성적으로 착취했다고 증언하고, 준목사는 교회에서 쫓겨난다. 김장로 말을 잘 듣는 새 목사가 부임하고, 새 교회당으로 이사했으며 듀나는 남집사의 보호를 받는다. 그리고 소년은 수은의 손을 잡고 밤마다 옛 교회당으로 향한다. 앞서 “배의 무덤”에서 아내가 백영철에게 강간을 당했던 남자들이 백영철의 딸을 강간하듯, 자신이 사랑하는 듀나가 남집사와 섹스를 하자 소년은 남집사의 딸인 수은을 강간한다. 무엇보다도 “애칭”이라고 굳이 말하긴 했으나, 한국인 이름을 듀나라고 붙이면서 이런 식으로 묘사하는 것에 대해 곱게 볼 수가 없단 말이지.

이를테면 원영이라는 이름은 아주 흔한 이름은 아니어도 현실에서 때때로 만나는 이름이고 우리 회사에도 이름이 원영인 사람이 있지만, 일단 2025년 현재 원영이라고 하면 유명 아이돌 가수를 떠올릴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만약 2025년에 이 “성탄절”의 듀나처럼 남자주인공이 사랑하는, 천사같으면서도 소악마같은 매력이 있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가 “감히 나를 배신하고” 못생긴 중년 유부남과 붙어먹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쓰면서 주인공 이름을 원영이라고 붙였다간 아마도 여러 논란을 빚게 될 게 틀림없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그런 짓은 하지 않겠지. 하물며 한국인인데 이름을 “듀나”라고 쓰는 유명인이, SF 작가 듀나 말고 또 있느냔 말이지. 목사 딸에게 “듀나미스”에 대해 굳이 설명하는 소년이라니, 맨스플레인은 남자의 몹쓸 본능 ㅋㅋㅋㅋ 이라고 치더라도 눈뜨고 보기 참혹하다. 미카엘같은 천사를 떠올렸다면 듀나미스보다는 역천사나 버츄라고 하는 편이 자연스러웠을 것이고. 여튼간에 2025년 현재 누군가 용감하게 작가에게 그 점을 묻는다면 당연하게도 작가는 그 듀나가 이 듀나가 아니며 우연일 뿐이라고 말하겠지만, 주의깊지 못하고 무례한 것은 사실인데다, 만약 듀나가 같은 문단문학 쪽 작가였다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하면 더 뚜렷해지지. 그 어떤 한국 문단문학 남작가도 “완서” 나 “경리” 같은 이름의 여성 인물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진 못할 것이다. 1920년대 김동인이 기생 출신 첩의 딸로 태어났고 유학 중 강간을 당했던 작가 김명순을 희롱하고 조롱하기 위해 쓴 “김연실전”에서조차도 사람 이름은 다르게 쓰지 않았나. 그런데 다른 장르의 작가라면 이름 겹치는 게 뭐 대수란 말인가 하고 넘어간단 말이지. 조금 더 첨언하자면 이 단편집에 수록된 소설들 중 대부분은 서술부에서 여성 인물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 대화에서 아무개야, 하면서 이름이 나오긴 하지만 서술부에서는 죄 다 “여자”다. 여성 인물의 이름이 제대로 나오는 것은 이 “성탄절”의 듀나와 수은 뿐이다. (생각해보니 수은이라는 이름도 참 그렇네. 은혜를 받아서 수은이야?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교회로 끌려가서 좋아하는 남자애가 좋아하는 여자애의 대리물처럼 강간당하는 게 은혜냐? 아, 더러워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떠올린 건 딱 그거다. 여성 작가의 책에다가 자위하고 그 책표지에 사정한 사진을 굳이 해당 작가에게 보내는 사람. (실화다) 그 비슷한 여러가지 행동들은 주로 여성 작가에게 단순히 질투가 나서, 모욕하고 싶어서, 혹은 자고 싶어서 등등의 이유로 벌어지는데, 이런 놈들은 대개 본인에게 DM으로 그런 말이나 사진, 자신의 조악한 성기 사진을 보내거나 할 뿐이지, 공공연히 만인이 볼 수 있는 곳에 그런 것을 전시하진 않는다…… 예전에 “태평양 횡단 특급”이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왔을 때 저런 수상쩍은, 이상한 소설을 쓰는 작가의 글이 왜 문지에서 나오느냐고 마치 자기 자리를 빼앗긴 듯이 억울해하는 문단문학 지망생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여러 정황들을 생각하면 백가흠이 대체 왜 이런 소설을 썼는지, 알 것 같은데 알고 싶지도 않다.

사실 이렇게 일방적으로 험악한 말만 하고 있는 것도 썩 공평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이 책은 백가흠의 데뷔작을 포함한 초기작들이 수록된 단편집이고, 20년 전에 발표했던 작품들이 실려 있는 초기작 단편집을 한 편 한 편 뜯어보며 기막혀 하는 짓은 어지간하면 하지 않는다…… 나에게도 첫 단편집이 있었고 그걸 펴볼 때 마다 비명을 지르는 걸…… 그런데.

그런데 저 “성탄절”은, 이게 신인의 글이라 발생한 문제인 게 아니라, “이따위 토종 문학 남자들”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갔지…… “듀나”라는 이름을 쓰는 한국인이 대체 얼마나 된다고! 백가흠은 악스트에서 그 문제의 듀나님 인터뷰를 하기 전에, 일단 이 작품에 대해서부터 좀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진짜, 님이 생각하는 문단문학, 순문학 쪽으로 데뷔하지 않았을 뿐, 듀나님은 님이 데뷔하기 한참 전에도 우리 SF 장르의 존잘님이셨다고! 우리 장르의 중시조쯤은 되시는 분이라고!!!! 아, 정말!!!!!!

PS) 작중에서 성욕이나 사심…… 속된 말로 꽁씹을 바라고 남을 돕지 않는 이들은 전부 비남성으로 나온다. 조건만남 일을 하던 트랜스여성이 조건만남 일을 하다가 구타당한 여성을 돕고, 횟집 여자가 아들에게 구타당하는 달구의 노모에게 복어를 건넨다. 과수원 주인에게 착취당하는 정신지체장애인 부부를 안쓰럽게 여기며 아이 돌보는 것이라도 도우려 하는 것은 역시 장애가 있고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과수원 주인의 아내다.  그런 점에서는 혹시, 작가가 남혐인가? (웃음) 같은 농담을 하고 싶어지기도 하는데. 근데 여자가 두들겨 맞고 살해당하는 것을 이렇게 포르노처럼 묘사하는 사람이 남혐일리가. (정색)

PS2) 그리고 강은교 선생님은 제가 이렇게 리뷰까지 말아드렸으니까!!!!!! 저거 읽고 충격과 공포로 삼박사일 앓아눕지 말고 가서 하시던 공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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