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국제도서전에 다녀왔습니다

바르샤바 국제도서전에 다녀왔습니다. 5월 14일에 출국해서 21일에 돌아오는 일정이었어요. 모두 열 분의 작가가 초청받았는데, 같이 SF를 쓰고,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 활동하고, 지금은 같은 에이전시 소속이기도 한 김보영, 정보라 작가님과 같이 갈 수 있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특히 좋았던 부분이었어요. 사실 저는 직장도 다니고 있고, 집에 아직 손이 가는 초등학생들도 있다 보니까 이걸 다녀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했는데,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된 흔치않은 기회에 큰 행사에 초청받아 가는 건 사실…… 가야죠. 많이 양해를 구하고, 또 많은 도움을 받아 가며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출발 전부터 일도, 활동도, 시간이 맞는다면 박물관 등에 가는 것도 알차게 하기 위해 단톡방을 파고, 일정을 공유하고, 티셔츠도 만들었습니다. (짜잔) 김보영 작가님이 디자인하시고, 아래 문장은 정보라 작가님이 폴란드어로 번역해서 넣으신 티셔츠. (저와 김보영 작가님은 이 디자인이고 정보라 작가님은 “한국 ‘호러’ 작가”로 만드셨습니다.)

숙소 앞에 보이는 “문화과학궁전”. 스탈린 시대의 건물인데, 과하게 규모가 크고 장엄한데다 주변 조각상들은 그리스 신상을 닮은 포즈와 비율인데 다가가 보면 오버올을 입은 노동자, 레닌의 책을 들고 있는 지식인 등인, 그야말로 공산주의 시대의 건물이라는 느낌을 사방에서 풍기는 건물이었습니다. 주변을 다니다 보니 한복을 입은 여성과 중국 옷을 입고 붓을 든 여성 조각상도 있었는데,  그밖에도 다양한 인종들을 나타낸 듯한 석상들이 보이는 것이 아마도 세계의 공산주의 국가의 노동자와 지식인이라는 컨셉이 아니었을까 싶기도했어요. 이 건물의 규모도 큰데, 두 면의 앞마당을 부스로 가득 채웠습니다. 대략 면적만 봐도 서울국제도서전의 2.5배 정도는 되지 않나 싶습니다.

밤이 되면 붉은 색과 푸른 색 조명을 쏘아서 이런 모습으로 보입니다만.

사실 제 입장에서는 아침이나 저녁 늦게 바르샤바를 돌아다닐 때 이 건물이 좀 방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상하게 돌아다니다가 저 건물만 쳐다보면(바르샤바는 건물의 높이가 서울보다는 많이 낮은 편이라, 꽤 멀리서도 문화과학궁전이 보입니다) 머릿속의 지도가 15~20도 쯤 틀어지는 거예요. 그 이유는 바르샤바를 떠나기 하루이틀 전에야 알게 되었는데.

보통 저 정도 규모의 건물이면 동서남북 방향을 맞춘다고 생각하잖아요? 한국의 건물들처럼 면에 맞추든, 이집트의 피라밋처럼 모서리에 맞추든.

아니에요. 정오가 되었는데 햇볕이 어중간한 각도로 꽂히는 것을 보고, 동서남북이 안 맞는다는 것을 겨우 알았습니다. 아마도 방향 생각 안 하고 큰 대로에 평행하게 지은 것 같았어요. 그 사실을 좀 일찍 깨달았으면 돌아다니다가 머릿속 지도가 틀어지는 문제는 없었을 텐데. (물론 그럴 때는 그냥 구글 지도를 쓰면 됩니다만.)

무척 멋지게 만들어진 패널인데 저희 동네 사진관 사장님의 필살의 포토샵 덕분에 패널 앞에 있어도 본인 티가 나지 않았다는 사소한 문제가…….

정보라 작가님은 폴란드에 초청받아 오신 것도 벌써 여러 번이고, 폴란드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계셔서, 인터뷰며 행사며, 많은 일정이 잡혀 있으셨습니다. 도서전 공식 행사에서도 사람들이 가득했어요.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공부하신 적도 있다 보니 행사에서도 통역 없이 유창한 폴란드어로 말씀을 나누셨고요.

사인회의 줄도 길었습니다. 원래 한 시간으로 예정된 사인회였는데, 거의 그날 도서전 폐장할 때 까지 사인을 하셨던 것 같아요. 정보라 작가님 책은 저기 쌓여 있는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말고도 여러 권이,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있어서, 다음날은 또 다른 출판사 부스에서 사인을 하시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박상영 작가님의 “대도시의 사랑법” 책도 인기였습니다. 타이푸니 서점 입구에 가득 쌓여 있었어요. 박상영 작가님 행사 끝나고서는 박상영 작가님과 김보영 작가님, 정보라 작가님, 그리고 저까지 타이푸니 출판사(출판사와 서점을 겸하는 곳입니다)와 저녁식사를 하러 갔는데, 맛있는 저녁을 얻어먹은 김에 타이푸니에 “김밥천국 가는 날” 책을 선물로 드리고 왔습니다. 박상영 작가님과는 직접 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대도시의 사랑법” 책도 재미있게 읽었고, 정보라 작가님과 행사에 다니시기도 하셨고, 트위터로는 자주 뵙게 되는 분이어서 낯설지 않았어요.

제 행사는 토요일과 일요일인 17, 18일에 주로 몰려 있었습니다.

17일에는 아시아 퍼시픽 박물관에서 행사가 있었습니다. 우선 “아시아 인코그니타(Azja Incognita)“라는 채널을 운영주인 유명 유튜버이자 인플루언서로, 아시아 문화와 책에 관심이 많으신 블랑카 카타지나 주가이(Blanka Katarzyna Dżugaj) 님의 유튜브로 인터뷰와 책 소개를 할 기회가 있었고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아주 상냥하고 편안하게 진행해 주셔서 잘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통역은 “여성, 귀신이 되다”를 번역하신 도미니카 치보스카야 장 님이 맡아주셨어요

역시 블랑카 카타지나 주가이 님의 진행으로, 북토크를 했습니다. 통역이 끼는 북토크다 보니 원활한 진행을 위해 질문과 답변의 개요가 미리 오고갔는데요. 한국 사회는 귀신을 믿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조선시대는 공식적으로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사회로, 사대부는 원칙적으로 괴력난신을 믿지 않았다. 물론 귀신에 대한 관심은 그때에도 늘 있었고, 무속을 통해 숭배되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는데, 곧이어 조금 충격적인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탄핵된 전 대통령은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나왔잖아요.”

……죄송합니다, 그런 질문을 받고는 에반게리온처럼 조금 폭주하고 말았어요. (대체 그런 쪽팔리는 일이 언제 폴란드까지 소문이 난 거야.) 하지만 폭주하는 와중에도 과거 중고 가구를 들이거나, 오래 된 나무를 베어서 가구를 만들거나 할 때 귀신이 따라오지 않도록 그런 글자를 쓰기도 했다, 그것은 한국이 관료제 사회였기 때문이고,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원님에게 민원을 넣으러 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알맹이만은 제대로 설명하긴 했습니다만…… 아니, 그런데 그건 그놈이!!!!!!! (다시 폭주)

제 행사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김보영 작가님의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김보영 작가님의 스텔라 오디세이(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당신에게 가고 있어-미래로 가는 사람들) 연작에 대한 이야기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를 쓰시게 된 로맨틱한 사연, 그리고 작가님의 로맨틱한 이야기 등,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한가득인 북토크였어요.

과학문화궁전에서의 제 행사는 마지막 날인 18일에 있었습니다. 이날은 오전에 Tygodnikpowszechny 지의 모니카 오체도스카 님과 인터뷰를 했는데, 이분이 행사 진행도 맡아 주셨습니다.

행사가 끝나고는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사인회장은 한국문화원 부스 안, Bo.Wiem 출판사 부스 근처에 있었어요. 도서전 중에 행사장에 와 있던 제 책이 전부 매진되는 바람에, 책이 아니라 프로그램 북에 사인을 받아가신 분도 많이 계셨습니다. 끝나고 행사 전부터 에이전시를 통해 연락을 주신 안 과장님, 도착해서 현지에서 도와주신 카렐 님, 그리고 한국문화원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오다가…….

타이푸니 서점에서 확보하신 재고에 얼른 또 사인을 하고, 행사가 끝났습니다.

그밖에도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 작가들의 행사는 대부분 점심 먹은 뒤, 오후에 있었는데다, 행사장인 과학문화궁전과 숙소의 교통이 편리해서 아침에 밥 먹고, 점심 전에 얼른 박물관이나 전시관에 다녀오기도 하고, 또 저희가 체류하는 동안 바르샤바 미술관 야간 개장도 있어서 밤에 미술관에 다녀오기도 했어요. 아침에 쇼팽 박물관 간다고 나갔다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비는 비대로 맞고, 개관 시각은 10시여서 그 앞에서 덜덜 떨면서 기다리던 것은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그리고 모든 일정이 다 끝나고, 출발 전 당일치기로 크라쿠프에 다녀온 것도요. 무엇보다도 작가님들과 함께 다닌 것이 특히 즐겁고 배울 게 많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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