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영화 중반까지의 감상은 “미술이 무척 아름다운 가톨릭 대환장 파티”에 가까웠다. 교황이 선종한 뒤 3주 뒤, 새 교황을 선출하는 사흘간의 이야기인데, 추기경들이 죽은 교황의 시신 앞에서 기도를 하고, 어부의 반지를 빼내 흠집을 내자마자, 교황의 시신이 시신 백에 담겨서 구급차에 실려 가는 장면부터 좋았다. 더없이 영적의 상징이고 신성의 구현같던 이가 숨을 거두자마자 바로 물화되는 것을 보여주듯, 선대 교황의 시신이 실려 나가는 장면은 무덤덤하게, 그러나 오래 비춰진다. 그리고 교황의 물화와 함께, 교황 없는 3주간이 지나가고 콘클라베가 열린다. 손 없는 날이나 신이 없는 달처럼 교황이 없는 바티칸에서 불거지는 더없이 세속적인 정치질의 세계가 정말 얼마나 재미있던지. 원래 정치라는 것은 자기 나라 정치는 조심스럽고 우려하며 바라보는 것이지만 남의 나라 정치는 (그 나라 정치가의 태반이 전쟁광인 게 아닌 이상) 어느정도 환장할 상황일 수록 흥미진진한 법. 특히 마치 천벌처럼 쏟아지는 폭발 장면에서는 뭐라 말을 이을 수 없을 정도로 신나게 봤다. (ㅋㅋㅋㅋㅋㅋ) 물론 성당 다니시는 분들은 보시면서 “주여…..”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선대 교황은 벨리니와 체스를 두면 늘 여덟 수는 앞서 나갔다. 초반에 깔아 둔 포석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상대를 외통으로 몰아가는 식이었을까. 그는 이 콘클라베를 주재하게 되는 토마스 로렌스에게, 생전에 목자가 아니라 관리자가 되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름 그대로 의심하는 사람1당연하게도, Thomas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던 그 도마, 니까.인 로렌스를 통해서 유력한 교황 후보이지만 문제가 많은 자들을 솎아내게 만든다. 최초의 아프리카 계 교황이 될 것이라고 기대되었지만 어린 견습 수녀였던 샤누미 수녀를 유혹해 사생아를 낳았던 아데예미 추기경과, 아데예미를 실각시키기 위해 샤누미 수녀를 불러들였고 성직매매를 자행했던 트랑블레 추기경이 그들이다. 이들은 성직자이지만, 성욕, 또는 권력 앞에서 속세의 정치가들 못지 않게 행동했고, 그로 인해 교황 자리를 눈앞에 두고 추락하는데, 이들이 벌였던 성 추문이나 성직매매는 실제 가톨릭의 역사에서 여러번 벌어졌던 일들이라, 자연스럽고 담담하게 묘사된다. 의심하는 자인 로렌스는 마치 도마가 예수님이 못박히고 창에 찔린 상처들에 손을 넣고 만져보았듯이 교황의 방을 봉인한 봉랍을 뜯고 들어가 비밀을 밝혀낸다. 그 밖에 유망한 이들로 진보적인 벨리니 추기경과 보수파의 수장이자 오만방자한 테데스코 추기경이 있지만, 이들 역시 투표가 거듭됨에 따라 교황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의 콘클라베는, 색욕과 질투, 교만과 인색, 분노, 탐욕, 나태의 칠죄종을 그대로 화면에 옮겨놓은 듯 보인다. 그런 인간의 어리석음은, 실제보다 톤다운된 추기경의 붉은 색과 교황의 흰 색이 주가 된 화면의 절제된 아름다움과 맞물려 대비된다.

영화 초반, 로렌스는 교황의 수단을 정리하며, ‘요한 23세께서는 제일 큰 수단도 사이즈가 맞지 않으셔서 등쪽 솔기를 따로 열어서 입으셔야만 했다’는 말을 한다. 만약 요한 23세가 교황이 되리라고 모두가 짐작했더라면 더 큰 수단을 준비했을 텐데, 수많은 전례를 바탕으로 철저히 준비하고,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추기경을 가둬 두고 바깥과의 접촉도 금한 채로 콘클라베를 이어가지만, 언제나 변수는 존재한다는 암시와도 같다. 그리고 그의 앞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인 펙토레(비밀 추기경)’인 빈센트 베니테스 추기경이 나타난다. 멕시코 출신으로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대주교이자, 교황이 죽기 전 보낸 임명장을 갖고 있는 비밀 추기경은 그 자체로 선대 교황의 의지다.  그는 식사기도를 주재하며 짧은 기도가 아닌, 모든 괴로워하는 자들을 위한 기도와 함께, 이 음식을 준비한 수녀들에 대한 감사를 담아 기도를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로렌스와 마찬가지로 선대 교황의 측근이었던 아녜스 수녀가 지켜보고 있다.

콘클라베라고 하면 추기경들을 가둬놓고 투표를 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아녜스 수녀를 중심으로 하는 수녀회의 수녀들은 이곳 어디에나 있고, 조용히 노동을 감내하며, 때로는 인터넷이 연결된 PC나 복사기를 사용하며 로렌스를 돕는다. 이들은 아녜스 수녀의 말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눈과 귀를 주셨다”는 말을 대변하고, 부패한 두 추기경을 몰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게 조용히 선대 교황의 의지를 이어받은 이들이 콘클라베를 이끌어가는 사이, 유력했던 추기경들은 하나씩 추락하고, 이 콘클라베를 관리하던 로렌스는 투표에서 계속 표를 얻는다. 아데예미와 트랑블레의 문제를 정리한 그는 테데스코를 막기 위해 트랑블레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했던 벨리니의 사과를 받고, 어쩌면 자신이 교황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목자가 아니라 관리자가 되라”던 선대 교황의 말에 눈 감은 채, 투표 용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낸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하느님의 뜻이자 선대 교황의 뜻을 잘못 읽은 것에 대한 천벌처럼 폭발이 일어난다. 그야말로 가톨릭 대환장 파티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장면인데, 사실은 성당 밖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 이번에는 시스티나 성당까지 휩쓸린 것이다. 로렌스가 진실을 알기 위해 교황의 방을 봉인했던 봉랍을 뜯어냈듯,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봉인되어 있던” 콘클라베 현장의 한 구석이 파손되며 상황은 급전환한다. 테러로 인해 사망자가 다수, 부상자는 수백 명에 이른다는 소식을 들은 테데스코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 전쟁이다”라고 주장하고, 진보파와 보수파가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베니테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전쟁의 현장에서 수많은 죽음을 보며 목숨을 걸고 사목을 해 왔던 그는,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그런 망상에 빠진 사람들이 아닌, 우리의 마음속이다.”라고 사랑의 원칙과 함께, 편을 가를 게 아니라 모두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부서진 천장에서 새 소리와 함께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추기경들은 베니테스의 이름을 적는다. 선출된 베니테스는 자신의 교황명으로 “인노첸시오”를 선택하고, 사흘간의 콘클라베는 끝난다.

수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눈과 귀를 주셨다”고 말한다. 베니테스는 자신의 비밀이자 ‘건강상의 문제’에 대해 “하느님께서 주신 육체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는 콘클라베 첫날 로렌스가 연설했던,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의심 없는 확신은 관용의 가장 치명적인 적입니다.”라는 말에 대한 답변처럼, “저는 이 세상의 확신들 사이에서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압니다.”라고 말한다. 로렌스는 그의 비밀을, 그야말로 베드로의 열쇠를 의미하는 황금 장미 아래에 숨겨두듯이 침묵한다. 반전이라면 반전이고, 사실 무척 감동적인 장면인데, 이 사실을 선대 교황이 알고 있었으며, 그 사실을 알고도 그를 비밀 추기경으로 삼았다는 것이 진짜 중요한 부분이다.

앞서 말한 대로 여덟 수를 내다 보던 선대 교황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물론, 이미 이 사람을 다음 교황으로 낙점해 놓고 있었다는 것. 물론 신은 독생자 하나만 보내도 충분했겠지만, 교황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자신의 의지를 이어갈 사람을 둘을 남긴다. 그것이 자신이 정한 다음 교황인 베니테스와, 교회의 관리자이자 행정노예(……)인 로렌스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중간에 나오는 거북이다. 초반에 충격적일 정도로 교황의 시신을 물화해서 보여주는데, 그의 육체를 저렇게 물화시켰다면 그의 성스러운 영혼은 어떻게든 다른 형태로 표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중간에 나오는, 베니테스가 들여다보는 선대 교황의 거북이는 바로 이곳에 남아서 콘클라베를, 그리고 자기가 정한 교황과 자기가 뒷일을 맡긴 행정노예를 지켜보는 교황의 영을 상징한다. 애초에 정체를 밝히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험한 자리에서 사목하는 비밀 추기경을 굳이 임종 전에 임명장을 보낸 것 부터가, 선대 교황이 자신의 후계자를 십자가에 매달 작정이었음을 보여주는데, 콘클라베에 참여해서 득표를 하는 바람에 베니테스의 이름과 기타 신상정보가 밝혀진 이상, 그는 자기 사목지역인 아프가니스탄에 돌아갈 수 없거나, 또는 돌아가서 목숨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실패하면 죽는 게임에 밀어넣듯이 십자가에 매달아놓고, 사흘간의 콘클라베 끝에 “정결한” 교황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 것이다. 그 와중에 베니테스가 동안과 곱슬머리 때문에 조금 예수같은 비주얼로 나오는 것이나, 늙고 지치고 기도에 대한 확신을 잃은 로렌스가 베니테스 앞에서는 마치 새로운 영적 체험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장치다. 베니테스의 교황 선출은 예수의 부활과 동치되며, “눈과 귀가 있는” 아녜스는 아마도 처음부터 누가 전 교황의 의중에 맞는 인물인지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마지막에 세 수녀가,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고 나오던 세 여자처럼 쪽문을 열고 나왔을 것이다.

화면이 정말 아름다운데, 실제 추기경 의복보다 톤을 좀 차분하게 만든 것이 좋았다. 원래 색깔 대로였으면 눈이 좀 아팠을지도. 특히 추기경들이 흰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장면이 무척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로렌스는 꿋꿋하게 비를 맞는데, 그건 왜 그런가 했다. 돌아와서 트위터를 보니 임시직님이 영국인은 저 정도로 비를 맞지 않는다고 하셔서 아 그렇구나, 로렌스는 영국인이었네, 하고 납득해 버림)

조금 나쁜 쪽으로 인상적인 것은, 그 어떤 아시아계 추기경에게도, 투표할 때 기도하는 목소리조차 주지 않은 것. 원작에서는 베니테스가 필리핀계라고 하는데, 좀 너무하네.

초반에 베니테스 추기경이 식사기도를 하는 장면에서 수녀들을 언급하는 장면과 마지막에 세 젊은 수녀가 뭔가 수군거리며 쪽문을 열고 뛰어나가는 장면이 수미상관적이고 중간에 하느님께서는 수녀들에게도 눈과 귀를 주셨다는 말까지 메시지까지 한 바늘에 꿰이듯이 일관되는데, 하나 덧붙이면 아녜스도, 인노첸시오도, 둘 다 순결, 죄 없음을 뜻하는 이름이다. 🙂

그건 그렇고.

ps1) 전 교황이 하지 말라는 거 굳이 마음먹고 지르자마자 성당이 터지는 장면이 나오다니, 정말 가톨릭 대환장의 절정같은 장면이었다. ㅋㅋㅋㅋㅋㅋ (…….비신자의 감상) 물론 성당 다니는 분들은, 속으로 “주여……” 하셨겠지, 아마도. (웃음)

ps2) 근데 역시 좀 파렴치하게 화면을 만들자면 의심많은 이과 도마가 새 교황의 복부를 더듬어보는2사실 도마가 예수님의 옆구리와 손바닥 상처를 만져보고 손가락도 넣는 것은 성경 오피셜임 장면도 넣을 수 있…… 지 않았나. (쓴웃음) 너무 파렴치함이 폭발해서 못 넣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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