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애니메이션(2025)

옛날에 퇴마록 영화라는 게 있었다. 명배우 안성기님이 박 신부로 나왔지만, 각색하는 과정에서 캐릭터들을 원작과 상관없이 만들며 개연성까지 망쳐놓은데다, 애염명왕의 화신으로 불안정하지만 강한 힘을 갖고 있던 화려한 인물이었던 현승희를 엑소시스트 아류작이나 로즈메리의 아기 등 그런 컨셉이 나오는 영화만도 한 손으로 꼽지 못할 만큼 많은 “악마의 씨를 잉태할 수 있는 여자” 정도로 만들지 않나. 기본적으로 정의로운 성품인 현암은 양아치가 되어버렸고, 여기에 신현준의 발연기가 더해지며 감당이 되지 않는 캐릭터가 되었고, CG도 허접했다. 순정만화를 영화화 했다가 망한 케이스로 “비천무”를 기다리다 “비싼무”를 만난 경우가 있다면, 판타지를 영화화 했다가 망한 케이스로는 이 “퇴마록”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비천무에서도 유진하 역을 신현준이 했네. 이쪽으로나 저쪽으로나 원한이 깊다.

어쨌든 퇴마록 영화에서 유일하게 건질 것은 안성기님이 분한 박 신부 뿐이었는데, 체구가 큰 원작의 박 신부와 달리 호리호리하고 금욕적이다 못해 좀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박 신부로, 역시 재해석 면에서는 실패했지만 안성기님 연기로 어떻게 다 때운 것 같다. 어쨌든 그 영향인지, 퇴마록 애니메이션이 나온다고 했을 때 처음 나왔던 컨셉 이미지에는 박 신부가 꽤 호리호리하고 신경질적인 인상으로 나와 있었다. 뭐, 영화에서 유일하게 좋았던 설정을 다시 원작에 버무려 재해석하는 것도 나쁜 방식은 아니었겠지만, 그랬다면 이번에 본 퇴마록 애니메이션은 원작과 다른 또 다른 무언가였겠지.

애니메이션이 시작되자마자 좀 충격을 받았다. 사실 퇴마록이 재미있고, 어릴때 정말 열심히 읽었던 시리즈이지만 사람이 감동해서 울 정도의 이야기는 아니다. 원작은 이우혁 작가님이 정말 초기에 쓰셨던 내용이었고 각색하면서 원작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오타쿠의 심금을 울릴 만 하게 변형한 부분들도 눈에 띄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 큰 중년이 영화 보다 말고 눈물을 흘릴 정도는 사실 아닌 게 맞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좀 울었다. 이제 이런 연출과 이런 구현이 가능하구나 하고서.

일단 컬러. 검정과 붉은 색, 일식의 색이자 퇴마록 단행본의 색을 바탕으로 구현한 밀교사찰과 탱화의 요사스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배경의 붓 터치가 유화같은데 탱화같다. 말도 안 될 정도로, 말갛고 투명한 것 없이 빽빽하게 밀도있는 물감을 여러 겹 얹은 듯한 느낌인데 그게 매끄럽게 움직여서 감탄했다. 그렇다고 화면이 답답한 것도 아니다. 이야기의 주 배경이 되는 밀교사찰은 깊은 산 속, 자연 한가운데에 숨겨져 있는데, 이 산세 묘사도 일품이다. 수학여행 가서 새벽에 토함산 끌려갔을 때 보았음직한, 관념 속 진경산수화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그런 풍경인데, 그게 불길하도록 불그레한 톤으로 싹 정리가 되어 있다. 원작보다 더욱 한국적이고, 그야말로 미술에 사람을 갈아넣은 것 같은 화면이었다. 일단 여기서 컬러에 얼마나 돈을 쏟아부은 건가 입을 딱 벌리고 보기 시작했다.

서구의 애니메이션이 좀 푸른 계열의 컬러를 띤다면 동양의 애니메이션은 붉은 계열의 컬러가 많이 들어가는데 지브리가 좀 예외적이라는 이야기를 전에 들은 적이 있는데, 이 퇴마록은 노골적일 정도로 붉은 컬러를 쏟아붓는다. 밀교사찰과 탱화, 송아지의 목에서 흐르는 피, 서 교주의 옷자락의 붉은색, 그리고 산을 뒤덮은 단풍잎의 붉은색까지. 그 붉은 톤이 깊은 산 속에 진법으로 숨겨져 있는 밀교사찰의 요사함처럼 화면을 가득 채운 가운데, 박 신부의 연두색 성령의 오오라가 대조적이다. 생각해보니 봄의 신록이나 초여름의 산을 배경으로 했다면 싹이 트는 듯한 연두색 성령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밀교사찰이라는 “비일상”과 별개로, “일상” 파트는 2025년 한국의 풍경에 지극히 핍진하다. 밀교 호법승과 쫓겨난 신부가 저마다의 고단한 얼굴로 편의점 앞에서 플라스틱 의자를 끌고 와서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차라리 실사로 찍는 게 돈이 덜 들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현실적이다. 산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일반적인 구형 시외버스보다는 좀 넓어 보였는데, 박 신부의 풍채 때문에 시외버스를 우등고속버스 사이즈로 만들었나 싶은 느낌이 좀 있었지만 역시 세세한 부분에서는 “이걸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고? 그냥 찍어서 필터링 한 게 아니고?” 하고 감탄한 부분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호법들이나 서교주가 손을 움직이거나 수인을 맺거나 할 때 손을 클로즈업하며 아주 간발의 차이로 느리게 움직이는 듯한 연출들 꽤 있었는데, 사실 불교의 온갖 수인 수주들을 생각하면 그런 동작들에 의미가 없을 리 없다. 찾아보면 다 해당되는 수인이 있고 저마다의 의미가 있어서 그런 것이 나중에 오타쿠들을 한번 더 울리는 게 아닐까…… (예를 들어서 장 호법을 떠나보내는 서 교주의 손이 헤어진 가족을 만나길 바라는 관세음보살 옥환수 진언이라거나 해서 “사실 서 교주는 장 호법을 사랑하고 있었어!!!! ㅠㅠㅠㅠㅠ” 같은 눈물의 적폐해석이 나오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그런게 나왔다는 건 아니고, 제작진의 덕력을 보니 그런 짓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음.) 손지상 작가님 같은 분은 손동작만 보셔도 바로 아실 것 같기도 한데, 나중에 넷플릭스나 VOD에 올라오면 각종 수인들과 비교하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퇴마록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만큼, 원작에서는 이 이야기에 아직 승희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승희를 아예 안 넣을 수는 없었기 때문인지, 승희는 앞부분 성당에서 박 신부가 주교에게 깃든 아스타로트와 싸울 때 나온다. 이 아스타로트 역시 본편에서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악마로 나오는데, 성당을 가득 채울 듯한 크기와 신비스럽고 복잡한 모델링에 경탄했는데, 박 신부가 묵주 뿐인 맨주먹으로 그런 압도적인 존재와 맞서 싸우는 것이 대비된다. (그때 정신을 잃은 승희의 곁에 순간 애염명왕의 그림자가 비치고, 승희의 힘이 위기에 처한 박 신부를 구하며 이들의 관계가 짧게 정립된다.)

이후 지치고, 과거 의사였고 아스타로트의 물음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고 아이를 구하지 못했던 죄책감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고, 허가없이 구마를 행하다가 카톨릭 내부에서도 쫓겨나다시피 한 박 신부는, 과거 의대 동기였고 지금은 밀교의 승려가 된 장 호법과 만난다. 장 호법은 한 아이를 구해달라고 박 신부에게 부탁하고, 고민하던 박 신부는 장 호법을 따라 나선다. 장 호법과 박 신부의 과거는 이번 애니메이션에서 추가된 설정일텐데, 스토리 전개상 시간절약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호법들의 성격과 캐릭터 디자인도 원작에 살을 입혀 더욱 구체적인 형태가 되어 있어서, 이 이야기가 조금만 더 길어졌다면 사람마다 저마다 마음에 드는 호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정도였다. 게다가 각색 과정에서, 그리고 원래는 흑막이었던 모씨가, 러닝타임 한계상+거기서 흑막이 밝혀지면 마지막에 세 사람이 함께 살게 된 이야기로 넘어가기에 연출이 썩 매끄럽지 않을 거라 그랬는지, 폭풍간지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화려하게 싸우다 가셨다. 굳이 그 반전이 필요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므로 각색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장 호법과 다른 호법들이 구하고 싶어했던, 서 교주의 양자이자 장 호법의 친아들인 준후가 어떤 성격인지, 장 호법이 준후를 어떻게 사랑했는지 보여주는 매개로 장 호법이 깎은 나무 꼭두 인형들이 나오는데 무척 귀엽다. 그리고 여러 호법들 중 준후가 마치 삼촌처럼 친근하게 대하는 허허자는 비주얼만 보면 썩 매력적이지 않은데, 능글맞고 좀 실없어 보이지만 사람이 애정이 깊다는 게 보여지는 캐릭터. 그는 준후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서 교주의 환술에 당한 박 신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데, 그때 그가 외우는 진언이 있다.

“보시바라밀”

보답을 바라지 않고 선을 행하는 것. 그러니까 그는 보답이나 감사를 바라지 않고 박 신부를 구하고 목숨을 잃는다. 그저 자신의 선이 박 신부를 구해내고, 그가 준후를 구해줄 것을 믿는 그 마음으로. 사실 이것은 퇴마록에 나오는 네 퇴마사들의 공통된 마음이기도 하다. 그저 저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저 그 일이 바른 길이기 때문에, 차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그래서 자신을 버리고 악과 싸우는 사람들. 박 신부는 그 마음을 담아 서 교주와 싸우러 가는데……

그리고 박 신부님 말인데, 서 교주에게 들어간 첫 공격은 성령의 오오라가 아직 발동되기 전 아니었냐고요. 리터럴리 물리퇴마 하심 ㅠㅠㅠㅠㅠㅠ 나라를 구하려면 코어가 있어야 하고 세상을 구하는 것도 머슬입니까 ㅠㅠㅠㅠㅠㅠ

아까 장 호법과 박 신부가 타고 가던 시외버스 뒷좌석에, 물귀신에게 누이동생을 잃고 복수를 위해 생명을 깎아가며 싸우던 청년 현암이 있다. (처음에는 맥가이버같이 입었네, 나름 복고풍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트위터에서 누군가가 “소중한 사람을 잃고 복수에 나선 미국 드라마 남자주인공 풍”이라고 해서 바로 납득했음.) 그는 누이동생의 복수를 위해 싸우던 중 목숨을 잃을 뻔 했다가, 도혜선사에게 구출되어 그의 공력을 전부 이어받고 목숨을 건진다. 이 도혜선사는 원작에서는 남성인 도혜스님이었는데, 70년 공력을 현암에게 넣어준 초 고수로, 그 과정에서 본인은 공력을 잃으며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성별이 중요한 분은 아니어서 온통 남성 캐릭터 뿐일 이 첫번째 에피에서 어레인지 가능한 캐릭터라고 생각하긴 했으나, 현암이 승희와 로맨틱한 관계로 나아갈 수 없는 이유인 동자공 설정이 이 어레인지와 어떻게 연결될지 모르겠다.

현암은 요즘 남자주인공답지 않은 면이 많은데, 복수심에 불타고 있으며 욱하는 성질이 있어 일단 덤벼들고 보는 면도 있으며 특히 애니판에서는 머리와 입 사이에 필터가 없는 듯이 막말 담당을 맡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어린이를, 약자를 돕고 불의를 보면 맞서는 사람이다. 90년대라고 이런 남자들이 살아서 길거리를 돌아다닌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면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약자를 돕고, 때로는 정의를 위해 필요하다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의와 협을 갖춘 청년을 이상적으로 다루던 시절이었다. 그런 주인공을 보고 자란 이들 중 일부는 불의를 봤을 때, 그저 못본 척 하거나 낄낄거리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직접 맞서 싸우진 못하더라도 어딘가 신고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폰을 꺼내는 이들이 된다. 독자들이 이입하기 좋았던 멋진 형님이었던 현암이 처음 보는 이들을 위해 맞서 싸우고, 박 신부는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모습들을 화면으로 보면서, 창작물의 주인공조차도 의로운 일을 멀리하고 “사이다”만 찾는 콘텐츠들이 후세대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게 될 지 좀 생각했다.

PS) 그리고 퇴마록 중간에 “환빠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 대목들이 있다거나, 자료 조사가 부실하다거나 하는 식의 비판은 늘 나오지만, 이 이야기가 나오던 1990년대에, 사학과 학생도 아닌 공대생이었던 이우혁 작가님이 할 수 있었던 자료조사의 한계를 생각하면, 이정도의 결과물이 어떻게 나왔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퇴마록 이후로 오컬트나 무속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관련 참고자료와 논문들도 많이 나오게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어떤 면에서는 퇴마록이 없었다면 나 역시 그렇게 레퍼런스를 붙여 가며 월하의 동사무소를 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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