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이 냥극하옵니다 – 백승화, 안전가옥 쇼트

읽는 내내 “조선명탐정” 같은 조선배경 팩션 코미디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 한 편을 앉아서 보는 듯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카메라워크와 인물들이 능청스럽게 주고받는 개그가 자연스럽고, 읽을 때는 30분 정도 걸렸지만 영상으로 본다면 2시간에서 2시간 반 정도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책을 읽으면서 김명민 얼굴의 변상벽(그러나 변상벽 역으로는 너무 잘생겼다)과 오달수 얼굴의 김쪼깐(일단 김쪼깐으로는 너무 나이가 많은 데다, 이런저런 논란 때문에 사실 얼굴 떠올리기 싫다.)이 티키타카를 하는 장면을 그려보게 되기까지 했는데, 이게 너무 구체적으로 그려지다 보니 속이 안 좋았다. 요즘 오달수 나오는 영화를 일부러 안 보고 있어서.

숙종이 아끼던 고양이 금손이라든가, 묘마마라 불렸던 여성이라든가, 고양이 그림으로 이름 높은 화원 변상벽에, 고양이 알러지까지 묶어서 한 이야기로 엮어내는 솜씨는 무척 훌륭했다. 읽는 입장에서는 변상벽이 포교가 아니라 화원이라는 것이 자꾸 신경쓰이긴 했지만, 그정도는 팩션이니까…… 다만 이 이야기가 영상물의 시나리오나 트리트먼트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 읽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만화나 영화의 배경으로 화면에 슥 하고 지나갈 때 재미있는 게 있고, 텍스트로 읽을 때 재미있는 게 있다. 이를테면 장터의 푸줏간에 “목우촌”같은 간판이 걸려 있거나, 방물장수가 “에뛰드 하우스”를 떠올리게 하는 뭔가를 들고 나타나거나 하면 재미있겠지. 그런데 그걸 텍스트로 읽으니까 피로가 굉장히 심하다. 묘집사라든가, 묘사모 같은 말을 영상물에서 잠깐 스쳐가는 게 아니라 텍스트로 읽고 있으니 좀 환장하겠다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피로해지는 것. 그러니까 작화가 끝난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설계 단계의 콘티를 읽는 느낌이 좀 있었다. 이만한 이야기를 쓸 수 있는데, 다음 책에서는 영상의 이미지를 빌려 상상하며 읽는 책이 아니라 텍스트 자체로 힘이 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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