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 영애 전생 아저씨 – 우에야마 미치로, 대원씨아이

52세의 공무원인 톤다바야시 켄자부로는 성실한 가장이자 사회인이며, 사적으로는 오타쿠 문화 전반에 조예가 깊은 진성 덕후로, 역시 오타쿠인 아내와 결혼하여 슬하에 딸 히나코를 두었다. 그런 그는 차에 치일 뻔 한 아이를 구하다가 사고를 당하고 그만 히나코가 플레이하던 여성향 게임 “러브 & 비스트”의 세계에서, 주인공을 방해하는 악역 영애 그레이스 오베론의 몸에 들어가 버린다. 켄자부로는 당황하며 게임 속 역할에 충실하려 하지만, 그의 점잖은 말투나 행동은 “엘레강스 치트”를 통해 그레이스를 더욱 우아하고 사려깊은 영애로 보이게 만들어 준다. 그런데다 “러브 & 비스트”의 주인공인 안나 도르를 만나자, 켄자부로가 딸을 키운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상하게 안나를 대하고 귀족들의 사회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며 그레이스의 인망은 더욱 높아진다. 게임 속 세계에 익숙해진 뒤에는 게임의 목적에 맞게 안나의 연애와 남주들 공략을 도우려고 하지만, 뭔가 행동을 하면 할 수록 안나의 호감도는 그레이스에게 향하게 되고, 공략 대상 남성 캐릭터들 역시 품위있고 배려심이 있고 계산이나 사무에까지 다재다능한 그레이스에게 반하게 될 뿐이다…… 속은 52세의 대머리 아저씨건만.

올해 애니메이션이 나온다고 하는데, 1권 나왔을 때 부터 계속 읽고 있었다. 요즘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작년 연말에 계엄과 탄핵 관련하여 시위가 이어지면서, 가장 먼저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하는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였다. 12월 하순이 되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응원봉이나 자신만의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오고 있지만, 12월 초부터 가장 먼저 거리로 나온 이들은 노동자, 젊은 여성, 성소수자, 그리고 의외로 덕후들이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거리에 나온 깃발들의 면면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지난번 촛불시위 때도 그랬다.) 나만 한 생각은 아니었는지, 트위터(현 X)의 목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니 근데 젠더불문하고 유독 씹덕들이 시위자주나온거 재밋는 현상이다. 애니에서 정의추구하는 장면이 아주의미없진않았다는게”

그러게, 오타쿠가 왜 시국 걱정을 할까. 오타쿠가 왜 더 정의를 믿을까. 그 답은 아마도 만화와 애니메이션 속의 주인공들이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인물들이고, 오타쿠들은 바로 그런 만화 캐릭터를 자신의 영웅으로 삼아서 살아온 사람들이라 그럴 것이다. 그야말로 신해철의 노래 Hero처럼, “정의가 이기는 세상과 죽지 않고 비굴하지 않은 나의 영웅이 하늘을 날았지” 하던 이야기들을 어린 시절 뿐 아니라 자라서도 가슴에 품고 살았으니까, 아무래도 정의를 믿는 마음이 조금은 더 남아있지 않을까 싶은 것.

(그런 면에서, 혐오를 조장하거나 기승전섹도 아니고 시작부터 섹스에 대해서만 미친듯이 나오는 섹스 포르노 콘텐츠들이 다음 세대에 끼칠 악영향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긴 한데)

오타쿠인 켄자부로는, 공무원인 자기 일을 싫어하지 않고, 현실을 싫어하지 않고,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고, 만화와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 나름 풍요로운 감성의 세계를 살아가는, 소심하고 평범하지만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현실에서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건다. 차에 치일 뻔한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길로 뛰어든다. 그리고 게임 속 세상에서 그레이스로 눈을 뜨고 나서도 그는 여전히 다른 사람을 돕고, 옳은 일을 하려 애쓰고, 후견인이 없는 평민인 안나를 아버지의 마음으로 돌봐준다. 그런 켄자부로의 행보를 보면서, 대만의 지하철에서 칼을 휘두르는 사람을 붙잡아 사람들을 구한 사람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어떻게 그렇게 용기를 낼 수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용사 힘멜이라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

“장송의 프리렌”에 나오는 힘멜이 자신의 영웅임을, 나도 그런 사람이고자 용기를 내었음을 말했던 그 사람을.

톤다바야시 켄자부로도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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