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라는 유명한 그림책이 있다. 당근도, 완두콩도, 감자도, 생선튀김도, 무엇보다도 토마토도 안 먹겠다는 유치원생 동생 롤라에게, 초등학생인 오빠 찰리가 “그건 당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렌지뿅 가지뿅이고, 저건 완두콩이 아니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초록 방울이며…..”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들어 다 먹이는 이야기다. 물론 롤라도 눈치가 빠른 어린이라서, 찰리가 자기를 설득하느라 말을 지어내고 있다는 것은 다 안다. 열 권 가량 되는 그림책들과, 그보다 많은 애니메이션 북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3기에 달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도 있다. 우리집 어린이들은 이 “찰리와 롤라” 시리즈를 보면서, 언니는 “그래도 내 동생은 롤라보다는 낫지…..”하며 한숨쉬고, 동생 쪽은 “왜 우리 언니는 찰리처럼 동생과 잘 놀아주지 않는가.”에 불만을 표하고 있지만, 대체로 좋아한다. 그래서 지난번 “백희나 그림책전“을 보고, 철거 전 마지막 날 한번 더 보러 가면서, 겨울에는 “찰리와 롤라”의 원작자 로렌 차일드의 전시회가 있다고 하길래 예약했다. 전시 메인인 “요정처럼 생각하기”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이야기라서, 티켓 중 한 장은 책이 포함된 패키지로 예약하기까지 했다. 크리스마스 전에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그런데 지난 겨울에 너무 바빠서, 바쁜 게 끝나고 나서는 온 가족이 돌아가며 감기에 시달려서, 결국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해가 넘어간 1월에나 보게 되었지만.
로렌 차일드는 “찰리와 롤라” 시리즈 외에도, 클라리스 빈(이번 전시의 메인인 “요정처럼 생각하기”도 클라리스 빈 시리즈다) 시리즈를 썼고, 삐삐 롱스타킹과 메리 포핀스의 일러스트를 새로 그렸다. 우리집 어린이들이 읽은 것에 한정하면 그렇고, 내가 읽은 것 까지 하면 퍼핀클래식 빨강머리 앤의 표지 일러스트도 로렌 차일드가 맡았다. (예전에 영어공부 한다고 읽었다……) 로렌 차일드의 그림은 불투명 수채화 위에 벽지나 바닥재, 천의 패턴 등의 이미지를 붙이거나, 잡지 사진이나 실물의 사진을 찍어 오려 붙이는 다양한 콜라주가 포함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찰리와 롤라네 벽지 무늬라든가, 옷 무늬, 코끼리 코리의 몸통 무늬, 여러 일러스트의 벽이나 바닥재 등이 그렇다. 여기에 전시장에서 보니, 롤라의 상상친구 소찰퐁이(소렌 로렌슨)는 투명 필름 위에 마스킹액으로 그려서 얹은 것이었고, 인쇄물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효과들이 들어가 있었다. 또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에도 나오고, 다른 이야기에도 종종 등장하는 찰리네 집 주방 풍경을 재현해 놓은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콘티들과 함께 놓여 있던 이 패턴지들과 하단에 보이는 롤라의 파자마(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두 마리 개가 입고 갔다고 롤라가 주장한다), 그리고 유리컵이었다.

책에서도 나오고, 애니메이션 오프닝에도 나오는 롤라의 딸기우유 컵!!!!! 약간 이가 빠져 있었지만 20년 넘게 남아 있었을 그 컵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아, 롤라는 이제 20대 중반이고 찰리는 서른이 다 되었겠군. (…….)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사고를 치거나 말을 안 들으려 하면서 다양한 상상력으로 변명을 하는 어린 동생과, 그 오빠의 상상력에 장단을 맞춰 주는 배려심있는 오빠라는, 현실 남매의 이상형에 가까운 모습을 상상하지만, 그 이미지들 뒤에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 여기 와서 이 전시를 보는 어린이들 중에 몇 명이나 그 생각을 했겠느냐만은.
전시의 구성은 무척 좋았고, 아직 읽어보지 못한 로렌 차일드의 다른 책들, 꼬마 천재 허버트라든가. 허브라는 아이가 동화책 속 세계에 들어가는 이야기들, 그리고 로렌 차일드가 작업한 “비밀의 정원”과 “완두콩 공주” 그림책을 보고 싶어졌다. 완두콩 공주의 침대를 재현하려고 여러 꽃무늬 천들을 겹겹이 쌓아 놓은 것을 보고 어떻게 그 그림책을 직접 읽어보고 싶지 않을 수 있겠어. 그러나 바로 여기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전시된 이미지들 대부분이 유치원생의 키에는 다소 높게 전시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집 유치원생이 그림을 보려면 하나하나 안고 돌아다녀야 했다는 것. 적어도 “찰리와 롤라”정도는 그림을 좀 더 낮게 걸었어야 하지 않았나? 바로 전에 “백희나 그림책” 전시도 있었는데 이런 부분이 좀 비교된다. 대신 캐릭터의 실물 크기 등신대들이 여기저기 마련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찰리나 롤라와 클라리스 빈, 클라리스의 가족들이나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사진을 찍기에는 정말 좋게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어린 관람객이라고 해서 최애캐와 사진을 찍는 것만이 관람의 전부일 수는 없지 않은지. (키가 최소한 120cm 정도 되어야 도움 없이 관람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책이 포함된 패키지를 예매했기 때문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란히 엎드려서 “요정처럼 생각하기”를 읽었다. (아트샵에서 티켓을 보여주면 받을 수 있다) 크리스마스 전에 읽었으면 더 좋았을 걸. 그리고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찰리와 롤라가 앞에 방울토마토를 두고 있는 포스터를 한 장 구입해 왔다. 식탁 앞에 붙여 놓았다가 우리집 어린이들이 토마토 먹기 싫다고 하면 조용히 손가락으로 포스터를 가리켜야지.
PS) 액자 높이들을 한 5~10cm씩만 낮게 달았으면 완벽했을텐데 하고 생각하며 나올 만큼 전시의 구성 자체는 훌륭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집 어린이들은 보고 나오면서 “백희나 그림책 전시회보다는 좀 못했던 것 같아.”하고 종알거렸는데…… 비교 대상이 그거면…… 얘들아, 백희나 그림책전을 너희가 어린시절에 실제로 (그것도 엄마의 공부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볼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행운이야. 지금은 모르겠지만……
PS2) 근데 사실 처음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를 아이들과 읽을 무렵에는 “로렌 차일드”라는 작가 이름을 두고 머릿속이 잠시 복잡해졌다. 처음 떠올린 건 “마술사 오펜”의 “차일드맨 파우더필드” 선생이었고, 그 다음에는 “차일드”가 정말로 성이라고 치면, 이 집에 아이가 둘이 있다고 치면 There are two children in the Child family 가 되는 건가 싶었고. 그러면 꼬마생쥐 메이지 시리즈를 그린 “루시 커즌스”의 “커즌스”는 사촌들인데 형제가 있으면 the siblings in the Cousins family 가 되는 건가. (혼란)
PS3) …….남의 이름을 놀리면 안 됩니다. 알아요.
PS4) 집에 돌아오는 길, 아이들과 찰리와 롤라, 와 흔한남매, 의 남매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찰리와 롤라의 남매와 흔한남매의 남매를 비교해서 보면 재미있어.”
“그렇구나. 하지만 찰리는 초등학생이라도 오빠이지만, 흔한남매의 오빠는 중학생인데도 오빠새끼잖니.”
“동생들은 둘 다 비슷비슷하게 장난꾸러기들인데.”
“그러게.”
……..그래서 우리는(흔한남매는 책으로만 봤고 찰리와 롤라는 애니메이션과 책 모두 봤지만) 대충 이렇게 정리하게 되었다.

우리집 초등학생의 말에 의하면 흔한남매의 오빠는 같은 반 남자애들 기준으로도 끝에서 첫번째나 두번째쯤 하는 애들에 해당하고, 찰리는 같은 반 남자애들 중에서 제일 괜찮은 아이들에 해당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