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이유 때문인데, 바로 바이올린 업그레이드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입문자용 바이올린을 쓰다가, 비브라토 등을 배우면서 사람들이 바이올린을 업그레이드한다는 스즈키 4권을 맞이하여, 내가 다니는 학원의 바이올린 선생님도 슬슬 바이올린을 알아보기 좋은 시기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전공자라면야 저기 경기예고에만 가도 경차 한대를 들고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지만(…..바이올린 악기공방 사장님 피셜. 물론 서울쪽의 예고나 예원학교 가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았고) 사십대에 주에 한번 레슨받고 하루에 20분 연습할 시간이 있으면 취미생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고, 바이올린 선생님은 잘 모르겠으면 효정처럼 정찰인 악기로 상급기 사면 된다고 하셨는데, 정작 취미생들 커뮤니티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정찰제 악기들은 공장제라며 비추하는 사람들이 이만큼이고, 그렇다고 악기사 어디 괜찮은지 물어보면 글은 삭제되고 무슨 위반이라고 뜨고, 그러면서 처음 보는 사람이 자기가 동행해서 골라줄 수 있다고 쪽지를 보내는데 이 사람이 정말로 전문가겠냐, 브로커겠지, 라는 생각만 들고, 크레모나에서 공부하고 오셨다는 회사 근처 악기공방 사장님은 200만원짜리 올드라는, 바이올린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나조차도 듣고 웃었던 악기 같은 것을 수상쩍은 것을 권할 만큼, 이쪽은 정보 자체가 매우 불균형한 세계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체 바이올린이란 악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책부터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신간으로 나와 있었다.
(아마 이 책이 없었으면 무슨 책을 보려고 했을까….. 인생의 여러 고민 앞에서 대체로 책을 읽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지만, 이건 정말 모르겠다. 글쎄, 뭘 읽었어야 하지.)
물론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지금의 내 상황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작가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한 바이올린에 매료된다. 그레그라는 음악가가 사용하는, 이전 소유주의 이름을 따서 ‘레프의 바이올린’이라고 부르는 이 악기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맞상대했고, 중요한 오디션에서 그와 함께 했지만, 감정가에게는 18세기에 크레모나에서 제작되긴 했지만 “무가치하다”는 감정결과를 받았다. 작가는 이 레프의 바이올린에 매혹되어, 450년 전 레프의 바이올린이 만들어지던 시절부터 크레모나의 바이올린 역사를 돌아보는 여정을 담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크레모나의 역사와 함께 하는 아마티나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와 같은 명장들의 역사와, 역사적 의미가 깊은 바이올린들, 비발디가 교회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에도 있었을 교회 바이올린, 메디치 가문의 악기 컬렉션이나, 최초의 바이올린 수집가이자 감정가였던 코치오, 그리고 크레모나 바이올린의 국제 거래를 이끈 딜러 타리시오와 같은 이야기부터, 2차 세계대전 이후 크레모나 바이올린 학교와, 현대의 바이올린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쯤 되면 대체 왜 이 책을 며칠씩 걸려서 읽으면서, 지도까지 체크했는지 생각할수록 좀 딱한 노릇이다. 한국의 가혹한 사계에서 나무 제품이 성하기를 바라지 않으므로 올드 악기에는 전혀 관심도 없거니와, 관심을 갖더라도 쓸만한 올드라는 것은 내 예산을 한참 벗어나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 만큼은 제정신인 사람이 대체 왜 이걸 읽고 있는담. 나의 선택지란 정 모르겠으면 바이올린 선생님 말씀대로 효정이나 하겐같은 정찰제 악기점에서 적당한 것을 사거나, 중국에서 들여온 백통을 인근 지역 악기점에서 칠하고 셋팅한 것을 구입하거나, 아니면 내 예산에서 조금 더 보태서 국내파 공방에서 제작한 바이올린을 구입하는 것이다. (마침 집 근처에 제작 전문인 데도 두 곳이나 있고) 저 세 가지 경우 모두, 딱히 서초동까지 가야 할 일도 아니다. (특히 중국에서 들여온 것을 셋팅한 제품을 본다면, 서초구의 부동산 임대료와 이 지역의 임대료를 비교해 볼 때 비슷한 물건이면 이쪽이 더 저렴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특히 내가 사는 지역은 예전부터 목재가 수입되던 항구 근처였고, 삼익악기니 콜트콜텍이니 효정악기니, 부천까지 넘어가면 신앙촌까지, 악기 만들던 데가 정말 많았기 때문에 악기점이 의외로 정말 많은 곳이고. 그러니 이 이야기는 내가 찾아다니는 적당한 가격선의 악기와는 하등 상관이 없으리라 생각하면서도, 그동안 게시판 같은 데서 읽었던 이야기들을 합친 것보다 많은, 쓸모있는 이야기들도 건질 수 있었다. 대략 인터넷 게시판에서 정보가 불균형한 내용에 대해 오가는 이야기들이란, 타로 카드를 정화하기 위해서는 소금으로 카드를 씻고 불로 정화하고 하는 수준의 이야기들도 적지 않다. 특히 전문가인 양 하며 사람을 낚는 브로커도 많고. 그러니 어느 선 부터 유의미한 이야기로 들어야 할 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한데, 이 책은 적어도 그 기준을 잡는 데는 도움이 된다. 지금 나에게 현실적인 도움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작가를 사로잡아, 결국 크레모나의 역사 전반을 톺아보게 만든 레프 바이올린은 결국 작가를 연륜연대학 연구실까지 찾아가게 만든다. 18세기 초 크레모나에서 제작되었다는 바이올린은 실제로 19세기 중반의 작센 지방에서 자란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대목에서, 작가는 실망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회사 근처 악기점 사장님을 생각하며 배를 잡고 웃었다. 하지만 레프 바이올린의 소유주인 그레그는 이 대목에서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자 하는 신화를 믿었던 거죠. 그리고 나는 신화를 좋아해요. 없는 걸 만드는 일은 음악가의 일상이기도 하고요.”
문득 왜 사람들이, 18세기의 악기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데 저 가격일 리도 없고, 사실은 이탈리아든 독일이든 어떤 시기에 만들어진 악기들은 당시의 대량생산품이었으며, 나무의 품질 자체라면 모를까 나무를 선별하는 기술, 깎는 기술, 공정으로서의 기술들은 지금이 더 나을 수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것들을 좀 더 믿는 듯 보이는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말에서 레프 바이올린은, 18세기 크레모나 산이 아닌 독일 악기임이 밝혀지지만, 한 가지 반전이 더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사실은 그런 일은 굉장한 행운들이 겹쳐질 때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가치하다는 판정을 받은 바이올린이 사실은 19세기 독일의 악기 제작 명가인 자이델 가문의, 특히 크리스티안 자이델의 악기라고 판정받는 반전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니 그런 신화와 행운은 영화 “레드 바이올린” 같은 이야기 속에 남겨두고, 나는 회사 앞 악기점 사장님의 “200만원이지만 괜찮은 올드”같은 말같지 않은 현혹 공격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효정악기 사모님의, “효정 바이올린도 100년쯤 지나면 올드가 된다니까.”라는 말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기기까지의 석 달 정도 기간 동안, 나는 악기점을 열 곳정도 다녀 보았고, 좋아하는 소리가 무엇인지 생각을 했고, 처음에 생각했던 예산에서 최대 50만원까지 더 보태는 선에서 후보들을 찾아냈고, 적금도 부었고, 어디서 살 지 세 곳 정도로 압축도 했다. 이제 나의 지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연습해서 스즈키 4권을 끝낸 다음 지르러 가면 된다. 하하하하 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