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젯밤(6월 13일)에, 정보라 작가님이 2015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자로 밝혀진 오정희가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로 위촉된 데 항의하는 기자회견에 참여하실 예정이라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부스를 차릴 때만 해도 우리는 작가님 잡혀가지 말아요, 우리 책 못 내면 어떡하지.하고 흉흉한 농담을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기자회견을 하고 오셨고, 다시 잠깐 어디 가셨는데 갑자기 B관쪽에서 고성이 들렸고, 고개를 돌려보니 누군가가(송경동 작가님) 서너명에게 팔다리를 들린 채 끌려나가고 있었어요. 저는 정보라 작가님이 잡혀간 건 아닌가 깜짝 놀라서 뛰어갔었어요. 그래도 대학 가면서부터 도서전에 다녔으니까 도서전 다닌 게 대략 20년이 넘는데, 도서전에서 개막하자마자 작가를, 시인을 팔다리 잡아 끌어내는 그런 일은 살다가 처음 봤었고. 그때부터는 머릿속이 좀 멍했는데 일단 끌려나간 사람이 정보라 작가님은 아니어서 안심해야 하나, 아, 일단 부스로 돌아가자 생각했었고. 우리 작가님이 잡혀간게 아니어서 다행은 다행인데 이게 대체 어디가 다행인가 싶었고. 설마 작가들이 블랙리스트 문제를 항의했다고 도서전에 용역이라도 푼 건가, 이게 무슨 짓인가 하고 다들 경악하고 있었어요. 잠시 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도서전에 왔고, 작가들을 끌어낸 사람들이 용역이 아니라 대통령 경호실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고요.
근데 B홀 통로에서 전시회 입구까지 끌고 나간 거면, 그 경로에 뭐가 있다?
……..주빈국 샤르자의 대형 부스가 있습니다.
………외국의 저작권 에이전시들이 와서 상담하는 테이블도 그 길목에 있을 걸요. 바로 옆은 아니라도, 한 부스 건너 정도에서 보였을 겁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국제행사예요. 해외의 저작권 에이전시들이나 취재진들도 오는. 그런 국제행사에서, 작가를 개처럼 끌어내……..
백번쯤 양보해서 대통령 부인의 경호와 안전을 위해서였다 해도, 대통령 부인이 아니라 오정희에게 항의하는 사람인데, 경호원들이 몸으로 막는 정도도 아니고 꼭 그런 식으로 손발을 붙잡아 들고 끌고 나가야 할 일이에요? 다른 백만가지 문제들을 다 떠나서, 그놈의 국격은 괜찮은 겁니까?
그냥 아예, “VIP의 심기에 거슬릴 만한 건 전부 치워버린다”는 식이잖아요.
하물며 시인이나 작가는, 도서전의 주인공이고, 하다못해 이 사람들이 대통령 부인에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문단의 원로인데도 정권의 입맛에 맞춰 블랙리스트를 주도했던 오정희의 문제에 대해 말하던 것인데.
모 부스에 갔더니 편집자님이 “왜 부르지도 않은 남의 잔칫집에 와서……”하고 한숨을 쉬시더라고요.
그러게요. 도서전에 대통령이나 그 배우자가 와서 축사하는 일이야 드물지 않지만, 남의 잔칫집에 굳이 와서 왜 잔치의 주인공들을 그렇게 끌어내고 있어.
여튼 그때부터 밥 먹을 때 까지 멍했기 때문에 저야말로 잔칫집에 와서 갑자기 영혼없는 사축 모드가 되어서 그냥 머리를 텅 비운 채 영업에 전념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왜 멍했나, 밥 먹으면서 생각해 봤는데 역시 도서전은 늘 제 통장과 제 책꽂이에게는 위험해도, 또 때때로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어도, 개인인 대체로 안전하고 평화로우며 사방에 책덕후가 가득한 행사였고,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고요. 그랬습니다……. 작가연대 부스도 무사하고, 우리 정보라 작가님도 큰 일은 없으셨던 것 같고, 다만 그…… 불교 일러스트 하시는 김백설 작가님의 “중생보호구역” 표지판처럼, 그런게 좀 필요한 날인 것 같았습니다. (도서전 불광출판사 부스에 가시면 정말로 중생보호구역 표지판이 있습니다)
PS) 사실 어젯밤에 정보라 작가님 기자회견 한다는 말씀 처음 하셨을 때는, 당연히 항의해야 할 일이지만 그게 언론에 나겠나 싶어서 좀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소 뒷걸음질치다 쥐를 잡는다고, 영부인 온다고 작가를 끌어다 내던지던 저 대통령 경호실 사람들 덕분에, 오정희의 일이 기사화 되고 있긴 하네요. 토사구팽인지.
이미지 : https://www.womennews.co.kr/news/curationView.html?idxno=237290 여성신문 ⓒ이수진 기자
PS2) 어제 일을 촬영한 여러 기사 사진 중에서 가장 끔찍하게 느껴지는 사진이 저 사진이었어요. 부르지도 않은 문학행사에 와서, 사람을, 작가를, 끌어내야 할 이물질처럼 바라보는 저 표정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