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왔습니다. 전부터 “국가폭력에 대한 단편들”을 모아서 책을 내야지 하고 벼르던 것이.
딱히 사회파 호러 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쓰는 호러마다 사회파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쓴 것들을 떠올려보니 제주 4.3 학살(단지, 할망의 귀환), 한국전쟁 중 국군의 민간인 학살(내가 만난 신의 모습은), 군대 내 성폭력 문제(창백한 눈송이들)가 보였어요. 여기에 더해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건과 김진숙 위원님의 고공농성에 대한 이야기를 SF로 다시 쓴 “바늘 끝에 사람이”와, 제가 국민학생이었던 1991년 당시 학교에서 보았던 전교조 탄압 때의 일을 다룬 “안나푸르나”를 새로 써서 책으로 묶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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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는 2009년쯤 단편으로 한번 썼었는데, 그때는 제대로 발표하지 못했고 이번에 과거 회상 부분은 두고, 현재 부분의 인물과 사건을 완전히 새로 써서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조금 옛날 이야기입니다. 전교조 탄압 당시에 저는 국민학생이었고, 학교에는 아이들과 잘 놀고, 컴퓨터도 잘 하고, 등산도 다니고, 체육 싫어하는 다른 반 담임들을 대신해 다른 반 체육 합반 수업까지 도맡아 하던, 교대 졸업하고 몇년 안 된 젊은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저희 담임은 아니었고, 같은 학년의 다른 반 담임 선생님이었지요. 그해 여름 많은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사라졌고, 그렇게 사라진 분 중에는 그 선생님도 계셨죠.
그리고 아이들은 2학기가 되자마자 선생님의 부고를 듣게 됩니다. 그 반 아이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우리 학년 아이들은 대부분 충격받고 울고 그랬어요. 이번 단편집에 들어가는 “안나푸르나”에는, 그 선생님과 그때의 젊은 선생님들을 모델로 하는 스물 일곱 살 난 선생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 그 이야기는 2009년에 한번 썼다가, 이번에 회상 편은 두고 현재 편은 완전히 들어내고 새로 썼어요. 그 이야기가 드디어 책에 실리고, 그 책이 오늘 인터넷 서점에 입고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전교조 인천지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실 그 소설 속 인물은 저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선생님과, 당시 전교조 뱃지를 달고 다니셨던 다른 선생님들의 모습을 모아서 만들어낸 새롭고 낯선 누군가였지만, 그래도 가장 큰 부분은 그 선생님을 닮아 있었으니까요. 사정을 설명하고, 유가족께 책을 보내드려도 될 지 여쭤 보았습니다. 제 연락처를 남겨놓고 몇 시간 뒤에, 가족분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해 주어 고맙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저는 그 순간에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 지 몰라서 머뭇거렸습니다. 제가 잊지 않은 게 아니라, 사실은 정말로 좋은 선생님이셨으니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이었겠죠. 아이들을 때리지 말고, 사랑으로 훈육하자던 교사들을 그렇게 학교 밖으로 내몰았던 시대가 있었고, 그때 그 선생님들이 외치던 “참교육”이라는 말은 극우주의자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다만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을, 지금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매일매일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