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로 가는 길

에도로 가는 길 – 에이미 스탠리, 유강은, 생각의힘

어린이날 휴가 전후해서 읽은 책.

거대 도시가 발달하고 상공업이 발달하며, 도시는 지방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빨아들인다. 크게는 재벌 회장이, 젊어서 소 판 돈을 훔쳐서 달아나 사업을 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작게는 상경하여 마침내 수도권에서 결혼하고, 작은 집을 장만하고, 서울 사람 또는 수도권 사람이 되어 살았다는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떠나는 것은 젊은 남성들 뿐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6, 70년대, 시골 소녀들도 입을 줄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때로는 야반도주로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갔다. 그들은 종종 식모가 되고 여공이 되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수도권에 자리를 잡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수도로 왔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이 책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그 시대에서 딱 100년 전을 배경으로 한다. 쓰네노는 19세기 일본, 에치고(니가타 현)의 작은 마을에서 마을 사찰의 주지 에몬의 딸로 태어났다. 그는 한 번은 승려, 두 번은 농부와 결혼을 했지만 세 번 모두 이혼당했다. 그리고 네 번째 혼담이 오가던 서른 다섯 살, 온천에 간다는 핑계로 집을 나와 에도로 떠난다. 에도에 데려다 주겠다는 남자에게 강간당했고, 에도에 도착해서는 갈아입을 곳도 없이, 작은 집에 살며 하녀가 되어야 했다. 영주의 저택에 들어가서 상류측 법도를 배우거나, 이도저도 안 되면 사찰을 통해 도움을 받거나, 친정에 필요한 물건을 부쳐달라고 할 계획도 세워 보지만 인생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쓰네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수도는 여자들에게도 의미심장한 곳이었다. 시골 마을에서 생을 보낸 여자들에게 ‘에도’는 다른 종류의 삶을 부르는 주문이었다. 에도 여자들의 옷차림과는 판이하게 다른 옷을 입었을지라도 ‘에도 스타일’ 머리를 하는 시골 처녀들 사이에 에도는 유행과 세련미의 상징이었다. 겨울밤에 화로 앞에 둘러앉아서 여행 경험이 풍부한 손님들에게 에도에서는 새해를 어떻게 축하하는지를 물어보는 어머니와 딸들에게 도시는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였다. 에도는 젊은 여자들에게 기회이면서도 불가능한 기준이었다.

절을 이어받은 큰오빠와 다른 가족들은 언젠가 쓰네노가 착한 딸로 다시 돌아올 것을 기대하기도 하지만, 쓰네노는 모두가 서로에 대해 손바닥보듯 알고 있는, 남들의 평판에 신경써야 하고, 자신을 옭아매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고생스럽지만 활기차고 자유로운 에도에서의 삶을 택한다. 가부키좌를 중심으로 하는 연예계는 화려했고, 뒷골목에서는 사람들이 옷감을 염색하고 다다미를 짜고 나무 연장이나 악기를 만드는 등, 수많은 물건들을 만들어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개미굴같은 집에서 살며 날품팔이와 허드렛일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자유롭고 활기찼다. 가족들은 그런 쓰네노를 이해하지 못했고, 실망하고, 연락을 끊겠다, 의절하겠다고 선언한다. 가족들이 쓰네노를 다시 받아들이는 것은, 그가 고향 출신의 남자와 네 번째 결혼을 한 뒤의 일이었다.

쓰네노는 히로스케가 그냥 평범한 남자인 줄 알았지만 그가 기꺼이 남편을 자처하고 나서자 일종의 마법이 일어났다. 쓰네노는 집안의 수치이자 골칫거리로 사실상 버린 자식이었고, 호의를 누릴 자격도 없고 무능하고 믿을 만하지도 않고 게다가 외톨이였다. 근 1년 동안 고향에 편지를 보내봐야 마지못해 조금 도와주거나 은근히 모욕을 주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한 단어로 지위가 바뀌었다. 이제 다시 가족의 일원이 된 것이다.

경기가 나빠지며 네 번째 남편 히로스케는 실직을 하고, 쓰네노는 네 번 째 이혼을 한다. 다음 해, 부교의 부하가 된 히로스케가 쓰네노와 재결합하지만, 7년 뒤 쓰네노는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결코 순조롭지 않은 삶이었지만, 쓰네노는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때 용감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도 결국 불쾌한 상황에 빠졌을 거예요”라고 적었다.

쓰네노의 이야기가 현대에, 그것도 일본인도 아닌,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저자 에이미 스탠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쓰네노의 친정이 절의 주지 집안이었고, 친정 가족들이 모두 글을 읽고 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주지를 지낸 그의 아버지와 오빠는 다른 많은 문서들을 보관했듯이 쓰네노와 주고받은 편지들(당시 우편 배달은 전국에 걸쳐 체계화되어 있었고, 에도와 고향을 오가는 특송편도 매달 세 번 있었다)도 문서함에 보관했다. 이 문서들은 훗날 니가타 공립문서관에 넘겨졌다. 절의 문서고는, 그 마을 사람들의 삶과 죽음, 혹은 절의 세금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에 에도로 떠났던 한 여성의 인생을, 그리고 그 여성의 눈으로 본 당시 에도의 풍경이라는 소중한 미시사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들이 시골에서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에도는 커지지 못했으리라. 여자들이 마루를 훔치고 숯을 팔고 장부를 적고 밥상을 차리지 않았더라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들이 극장표와 머리핀, 국수를 사지 않았다면 쇼군의 위대한 도시는 아예 도시가 되지 못했으리라. 쓰네노가 남긴 유산은 에도라는 위대한 도시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존경받는 부인이 되라는 전통적인 삶의 모습 대신, 세 번 결혼에 실패한 뒤 에도로 떠나, 전통적인 여성의 삶을 거부하고 살아간 여성의 삶을 통해, 작가는 에너지가 끓어오르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며 확장되던, 그리고 곧 막부의 몰락과 개항이라는 역사의 격변을 코앞에 앞두고 있던 19세기 에도의 풍경을 재구성한다. 독자인 나 역시도 읽는 내내 드라마와 만화, 그리고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통해 엿보았던 에도의 풍경들을, 쓰네노의 여정을 통해 다시 짜맞추어 볼 수 있었다. 다만 이미 일본에서 쓴 역사책이나 일본 소설을 통해 알려진 단어들이, 영어로 된 글을 우리말로 다시 번역하는 과정에서 어색하게 번역된 부분들이 있어서 읽다가 눈에 걸린 부분들이 있었다. (의미만 생각한다면 이쪽이 더 명확하다) 병기가 되는 편이 좋았을 텐데.

PS) 그건 그렇고 마지막에, 쓰네노가 죽은 뒤 그에게 순종적인 여자라는 뜻의 법명을 붙이다니. 당시로서는 그게 좋은 뜻이랍시고 붙인 것이겠지만 죽은 사람이 억울해서 다시 일어날 만한 법명이 아닌가,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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