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플리카

레플리카 – 박세진, 벤치워머스

청바지 브랜드만 살펴보면 재팬 블루는 유럽과 미국 등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모모타로는 일본 시장을 중심으로 타깃 시장을 분리했다. 2007년부터는 모모타로도 해외 시장에 진출했는데, 이 무렵에 구형 청바지 복각이 세계적으로 호응을 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모타로桃太郞’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수수경단을 받아 귀신을 무찌르러 가는 복숭아 소년으로, 오카야마에 전해 내려오는 일본 옛날이야기 주인공이다. 최고의 청바지를 만들겠다는 창업 목표를 세우면서 사람들에게 ‘오카야마 하면 모모타로, 모모타로 하면 최고의 데님’이라는 연상이 각인될 수 있도록 라벨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다가 문득, 마키무라 사토루의 만화 “리얼 클로즈”가 떠올랐다. 백화점을 배경으로 하는 이 만화에서 주인공은 다니던 백화점이 다른 백화점을 합병하고, 그 백화점을 되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는데, 이때 나온 이야기가 프리미엄 진이었다. 멋쟁이 동료가 입고 있는 시간을 들여 길러낸 청바지, 일본에 한 대 뿐인 방직기로 짜낸 데님, 일본의 쪽으로 염색한 저팬 블루, 뭐 그런 이야기들과 함께 고급 청바지를 만들고, 옷을 입고 기르는 법을 가르치는 교본도 만들고, 특선매장을 만들고, 청바지는 비싸니까 필통이나 파우치도 만드는 식의 마케팅을 하면서 나온 이름이 “모모타 진스”였다. 십년도 전에 읽은 만화에서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던 설정이 지금 읽는 책에서 훅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 만화의 몇몇 등장인물들은 아메리칸 스타일에 심취한, 패션 오타쿠들이었다. 그 유행이 1980년대 즈음 메이드 인 USA 카탈로그나 뽀빠이 같은 잡지에서 소개된 올드 아메리칸 스타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리얼 클로즈”의 작가 마키무라 사토루가 20대였던 시기였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부터 시작된 이들의 덕질은, 구형 청바지와 당시의 신형 청바지의 차이점을 분석하고, 예전 의류를 똑같이 재현하는 “레플리카”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다.

지금부터 1990년대의 레플리카 청바지 복각 과정을 상세히 따라가보자. 우선 1947년형 501 청바지에 사용된 구리 백 퍼센트 리벳을 다시 만든다. 철로 제작된 앞여밈의 버튼 플라이button fly 역시 다시 만든다. 여기서 ‘다시 만든다’의 의미는 그 시절에 실제로 리벳과 버튼 플라이를 만들었던 공장이나 기계를 찾아내 제작을 맡긴다는 의미다. 공장과 기계를 찾을 수 없는 경우라면, 당시와 동일한 사양의 기계를 새로 제작한다. 501은 청바지 부위마다 두께가 다른 열 종류의 노란색 실을 사용해 원단을 이어 붙였다. 이 열 종류의 노란색 실도 모두 복각한다. 청바지 끝단에는 이상한 긁힌 자국이 있었는데, 이는 ‘유니언 스페셜Union Special’이라는 재봉틀을 사용한 흔적이다. 동일한 재봉틀을 구하고 그 재봉틀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을 구한다. 청바지의 색과 촉감을 재현하는 과정은 훨씬 복잡하다. 1947년형 리바이스 501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콘 밀스Cone mills 공장에서 ‘드레이퍼Draper X3’라는 직기로 짠 셀비지 데님을 사용했다. 그러나 1990년에 콘 밀스 공장은 셀비지 데님을 생산하지 않았다. 드레이퍼 X3 직기를 구할 수도 없고, 다른 직기로는 501의 색과 촉감을 재현하기 어렵다. 데님은 목화솜으로 만든 방적사를 인디고로 염색해 직기로 짜는 과정으로 완성되는데, 이 모든 공정을 차례로 테스트하면서 501과 가장 근접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과거에 사용하던 방적 기계와 공장, 인디고 염료와 염색법을 알아야 하며 이 모든 것을 다룰 줄 아는 기술자가 필요하다. 1990년대에 레플리카 청바지는 이렇듯 복잡한 과정을 모두 통과해 비로소 완성되었다.

이 책은 군복이나 작업복에서 출발한 청바지의 역사와 레플리카 패션 문화에 대해, 특히 미국 초창기 브랜드들과 일본에서의 빈티지 데님 사랑과 레플리카 패션 산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패션에 대한 책이어서 어떨까 했지만, 뭔가를 덕질하는 오타쿠의 마음만은 분야를 막론하고 비슷하구나 생각했다. 레플리카 브랜드의 특징별 소개라든가, 다양한 원단에 대한 전문적인 용어 소개 등도 있어서 패션에 대한 책으로도, 또 자료로서도 괜찮은 시작점이 될 만한 책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든 부분은 이 대목이었다.

요즘에는 청바지를 ‘데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에서는 데님과 청바지를 구분해 표기했다. 데님이라고 적은 것은 청바지가 아니라 직물을 의미한다.

시작부터, 단어의 정의를 명확하게 하고 들어온다. 애초에 데님은 능직물의 일종인데, 능직도 아닌 것을 파랗게 물만 들였다고 데님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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