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관련.
90년대 말(98인지 99인지 분명치 않음)에 발표되었고 우리나라의 영챔프에도 실린(이노우에 타케히코가 연재하는 잡지는 “점프”쪽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점프”를 내는 서울문화사가 아니라 “챔프”를 내는 대원에서 수입했기 때문에 아마 이 작품도 영챔프에 실렸던 것 같다),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단편 “피어스”가 있다. 이름은 송태섭과 한나가 아닌 료타와 아야코가 나오지만, 송태섭과 한나의 과거(초등학교 6학년) 이야기였고, 이번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송태섭의 형인 준섭이 7년 전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공식화 된다. (국내에는 단편으로 잡지에서만 소개되었다가, 이번에 “슬램덩크 리소스”에 실릴 예정이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대원씨아이는 진짜 요즘같아선 이노우에 선생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있지 않을까…. 저 인터넷 서점 상위권을 싹 차지한 슬램덩크 단행본들을 보고 있으면……)
“피어스”는 송태섭의 외짝 귀걸이에 얽힌 이야기다. 초등학교 6학년, 형이 세상을 떠나고 3년이 다 되어가던 해, 료타(태섭)은 자신의 비밀기지인 바닷가 동굴 근처에서 아야코(한나)가 바다를 향해 티파니 블루 빛 귀걸이 상자를 던지는 것을 목격하고, 바다를 더럽히지 말라며 싸운다. 서로 때리고 싸우고 물어뜯던 두 사람은 료타의 동굴에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료타는 마이클 조던도 귀를 똟었다며 안전핀으로 귀를 뚫는다.
형을 잃은 소년과 어머니의 재혼을 앞둔 소녀의 이야기인 이 단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사건은 “귀를 뚫는” 행위이다. 이 만화에서는 귀 뚫는 장면으로 나오는 행위, 즉 동굴에서 신체에 상처를 입히고 피를 흘리는 행위는 여러 문화권에서 힘이나 용기를 증명하고 문신을 새기거나 하는 전통적인 성인식의 비의에 가깝다. (에로틱하게 해석하면 뭐 다른 이야기도 나올 수 있지만 아마 그쪽을 노린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장면에서 료타는 6학년인데 그러면 만 11세. 이 해에 12번째 생일을 맞지만, 근대화 이전의 나이 세는 방식(태어나자마자 1살)으로 계산하면 13세가 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도 고등학교 2학년은 만 16세이지만, 태섭은 시합 직전 17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그는 세는 나이로는 18세인 것이다.) 여기서 료타가 13세인 것은, 그가 성인식을 감당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과거 일본의 여러 통과의례중에는 성인이 되는 나이인 13세에 참배를 하는 쥬산마이리라는 의례도 있었으니까. 료타는 그 동굴에서 아야코에게 형의 죽음을 털어놓고, 형에게 “죽어버려”라고 말했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동굴 속에서 자기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비의를 거쳐 전사이자 어른이 되었다.
그러면 왜 료타의 성인식 계기가 아야코인가. 아야코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소도구로 쓰인 건가? 하는 질문이 나올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아야코는 어머니의 재혼 상대가 준비한 피어스를 보고, 그가 엄마의 취향을 모른다고 비난하고, 피어스를 바다에 던져버리려 한다. 그는 낯선 남자에게 어머니를 빼앗길까 두려워하고, 어머니의 재혼을 상실로 생각하며 막으려 한다. 아직 어머니와 분리되지 않았던 어린아이였던 아야코는 이 동굴에서 비밀을 털어놓고, 자신의 미성숙을 직시하고, 동굴 밖으로 나가서는 어머니와 화해하고 재혼을 용납하며 “성장”한다. 그리고 이 순조로운 화해와 같이 그는 샵에 가서 귀를 안전하게 뚫고 한쪽 귀에 피어스를 한다. 그 역시도 가출과 무단투기와 싸움과 동굴에서의 고백과 귀 뚫기는 성인의례다. 양상은 다르지만.
과거 여러 문화권에서 나란히 비슷한 시기에 성인식을 치르고 정표를 나눠가진 남녀란 대개 결혼 상대인 만큼 이노우에 선생님은 송태섭의 귀를 한쪽만 뚫어 내보냈을 때 부터 이미 태섭한나였던 것임. 아 진짜 이노우에 선생님의 죄가 크다. 은영전 덕질할 때는 전중선생 용서못해 모드였는데 이쯤되면 정상선생 용서못해(…….)도 외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