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내 말에, 황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다. 바이올렛 헬리오스가 위스테리아 후작 가문에 입적한 뒤 헬리오스 공작과 혼인한 것은, 황후께서도 이미 들으셨을 거다. 공작부인의 신분을 주기 위해 친정 가문이 필요했던 것 뿐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내가 굳이 에르도스 공작부인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이상하게 들린 것도 당연했다.

“그건… 공작부인의 신분을 주기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만.”
“확인하지 못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원작의 무라사키노우에는, 후지츠보 중궁의 동생, 병부경의 딸이었다. 그 어머니는 대납언의 딸이었지만, 병부경과 인연을 맺을 무렵에는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본인도 와카무라사키를 낳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황족의 일원인 병부경보다는 다소 신분이 낮다고 해도, 어머니 역시 귀족 가문의 출신이었고, 아버지의 신분도 있는데다, 본인도 어릴 때부터 용모가 아름답고 많은 면에서 또래의 아가씨들보다 뛰어났으니, 만약 병부경이 와카무라사키를 어릴 때부터 데려다 길렀다면 황실의 비빈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병부경의 정실은, 다른 여자 소생의 딸을 데려와 자신의 딸로 기르는 것에 반대했다. 딸이 세상을 떠난 뒤, 와카무라사키는 외할머니의 오라버니가 주지스님으로 있는 절에서 외할머니와 유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

히카루 겐지가 와카무라사키를 처음 만난 것도, 바로 그 무렵의 일이었다.

“갱의실에서 잠시 쉬다가, 공작저의 하녀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지요.”

…물론 공작저의 하녀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원작의 무라사키노우에의 행적에 기반한 이야기니까.

하지만 내가 다른 세계의 사람이고, 그 세계에는 “겐지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는 없다. 이럴 때는 적당히 하녀들의 핑계를 대는 게 최선이었다. 그들의 이야기 중에는 더러 진실도 있고, 상당 부분은 아침드라마같은 자극적인 거짓이기도 하니까. 나는 바이올렛 헬리오스의 이야기라며 무라사키노우에의 이야기를 적당히 들려주고,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 부분에 대해서는 하녀들의 이야기를 옮긴 것 뿐이라고 변명하면 그만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제 막 사교계에 나온, 그 전까지는 서룬도라스 공작가에서 장래의 황태자비로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고지식한 아가씨이니, 아직 하녀들의 말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밀고 나가면 그만이었다.

“공작부인은 위스테리아 후작의 친딸이 맞다고 합니다.”
“…물론 후작부인이 낳은 딸은 아니라는 거구나.”
“예, 친어머니가 누구인지는 듣지 못했지만, 그랬다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자존심 강한 위스테리아 후작가에서, 갑자기 그 여자아이를 가문의 방계로 받아들인 것도 이해는 가는구나. 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게 있다. 위스테리아 후작이 처음부터 그 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진작에 어떤 식으로든 가문에 받아들였을 텐데.”
“그것은… 헬리오스 공작이 공작부인을 납치했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납치?”
“아, 물론 하녀들은… 갈 곳 없는 처지가 된 어린 바이올렛 아가씨를 헬리오스 공작님이 데려와, 공작가에 손색없는 훌륭한 아가씨로 길러 주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요. 제가 정황을 듣기로는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납치입니다.”

겐지가 절에 왔다가 와카무라사키를 처음 만났을 때, 무라사키의 외할머니는, 어린 아가씨의 후견인이 되었다가 훗날 혼인하고 싶다는 겐지의 말을 거절했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겐지는 어린 무라사키와 유모를 자신의 저택인 이조원으로 데리고 가 버렸다.

그 무렵 무라사키의 아버지는 병부경은, 옛 연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어린 딸이 홀로 남게 되었음을 들어 뒤늦게 부인의 동의를 구해 딸을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겐지가 먼저 움직였다. 그는 무라사키에게, 네 아버지가 너를 간절히 찾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병부경에게도 딸을 데리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 부녀가 상봉한 것은, 마침내 무라사키가 열네 살이 되었던 해, 겐지가 무라사키를 강제로 취하고, 사흘 연속으로 찾아간 뒤 혼인의 떡을 나누어 먹은 뒤의 일이었다.

“위스테리아 후작은 남몰래, 자기 딸을 돌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대귀족의 체면에다, 후작부인의 위세도 당당하니 쉽지 않았을 테지요.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사라졌습니다. 세상에 비밀로 했던 딸이니 딸을 찾는다고 소리높여 말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 어린 소녀를, 헬리오스 공작이 데려와 기르고 있었다.”
“4년 전부터요. 하녀들 말로는 ‘보호’라고 했습니다만, 멀쩡히 그 아버지가 살아있는데 멋대로 데려와서 소식도 알 수 없게 한 것은 ‘유괴’나 ‘납치’라고 불러야지요.”
“4년 전이라면…”

황후는 한숨을 쉬었다.

“나의 블루벨이 그 한심한 놈과 약혼했던, 바로 그 무렵의 일이었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레이디 블루벨에게도 그 이야기를 했느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황후는 혀를 찼다.

“그나마 다행이로구나. 블루벨이 들었다면 얼마나 괴로워할까.”
“사실이라면 소문이 귀에 들어가는 것도 시간 문제겠지요.”

내가 냉정하게 대꾸했다. 황후는 괴로운 한숨을 쉬다가 문득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다이애나.”
“예, 폐하.”
“위스테리아 후작과 에르도스 공작부인은 돌아가신 로자몬드 공주 전하의 자녀분들이었지.”
“예.”
“전 황후 폐하는 에르도스 공작부인의 따님, 그리고 네가 들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헬리오스 공작부인은 위스테리아 후작의 서녀이니… 공작부인은 전 황후 폐하의 사촌이자, 포이닉스 전하와는 육촌이 되는, 황실의 가까운 인척이로구나.”
“계승권이 없는 공작이 되었다고 하나, 폐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헬리오스 공작이, 위스테리아 후작가의 방계 혈통 정도가 아니라 폐하의 오촌 조카가 되는 아가씨와 혼인한 겁니다. 황후 폐하, 현재 위스테리아 후작가는 계승권이 있나요?”
“…물론이다. 현 위스테리아 후작에게 계승권이 있지.”
“하지만 현 위스테리아 후작에게는 달리 아들이 없습니다.”
“그렇지. 사위를 맞아 작위를 물려줄 딸 한 명이 있고…”
“그리고 공작부인이 있는 거죠.”

나는 황후를 올려다보았다. 황후는 마른침을 삼키며 착잡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머리를 조아리며, 간곡하게 말했다.

“폐하, 저는 헬리오스 공작이, 단순히 여자를 밝혀서 이 모든 행각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그가, 황제 폐하나 돌아가신 황태자 전하, 혹은 포이닉스 전하와 혼인하여 적통의 황손을 낳을 여성들에게 손을 대어 정통성을 엉망으로 만드는 한편, 자신의 계승권을 되찾으려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저를 노릴 수도 있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약속하마.”

황후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그의 발치에 앉아 있던 나를 일으켜 세우며 꼭 끌어안았다.

“너는 아름답고 총명한데다 사랑스러운 아이이고, 그는 아름다운 여자라면 앞뒤 가리지 않는 멍청한 자이니, 헬리오스가 너를 탐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네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는 일은 없을 거다.”
“폐하… 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거지요?”
“물론이다. 그리고 포이닉스는 내가 낳은 아들은 아니지만, 누구보다도 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아이란다. 나는 그 아이가 장차 황제가 되고, 네가 황후가 되어 이 나라를 다스릴 날을 기쁘게 기다리고 있으니, 네가 저어하는 대로, 그 자가 제 아랫도리로 황실의 계승권을 엉망으로 만드는 일을 수수방관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황후 폐하의 품에 끌어안긴 채, 나는 안도했다. 됐다, 내 이야기가, 아무 근거없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진 않은 것이다. 당장 헬리오스를 몰아내고 여자들을 구할 수는 없다고 해도, 적어도 황후의 마음 속에 그에 대한 의심과 미움의 쐐기 한둘 쯤은 더 꽂아넣은 것이다. 나는 일단은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런데.”

나를 끌어안았던 팔을 풀고, 황후는 창 밖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 계승권을 되찾는 것이 목적이라면… 내가 헬리오스라면 무리해서 그 어린 것에게 손을 대지 않았을 거야.”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요?”

나는 간곡하게 물었다. 그러자 황후가 설핏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수많은 황실의 방계들이며, 위스테리아 후작에게도 계승권이 있지만, 그보다 더 가까운 이가 있단다.”
“…에.”
“너는 어려 모를 수도 있겠구나. 예전에, 폐하께서 아직 제위를 계승하시기 전에, 폐하께는 형님이 한 분 계셨다.”
“앗…”
“하지만 젊은 나이에 따님 한 분만을 남기고 부부가 나란히 세상을 뜨셨지. 그리고 그 따님은 황실에서 자랐지만, 세속의 권력보다는 신을 섬기고 학문을 닦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아 수도원으로 들어가셨다. 만약에 포이닉스 황태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분을 환속시켜 방계 황족과 혼인하게 한 뒤 황태자로 삼을 가능성이 높단다.”
“그런 분이 계셨는 줄 몰랐어요…”
“폐하의 형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 공주님은 아직 아기였고, 워낙 조용한 분이라 지금은 그분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 하지만 너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구나. 그분은 마리아 아델라이드 공주님이고, 모닝글로리 수녀원의 원장을 맡고 계시지. 나이는 알카나스 전하보다 한 살 많았다.”

그렇다면 올해로 스물 여섯 살.

황후보다 한 살 어린 나이이지만, 나이가 많다고는 할 수 없었다.

“헬리오스에 비하면야 나이가 다소 많겠지만, 아직 아이를 낳기에는 늦지 않은 나이이지. 헬리오스가 자기 자식에게 계승권을 부여하겠다 정도의 목표라면 그 어린 공작부인으로도 충분하겠지만, 본인이 제위를 계승하는 것이 목표라면 마리아 아델라이드 님께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접근했을 거다.”
“아…”
“하지만 그럴 리 없겠지. 그분은 정말로 고결한 분이시며, 그분이 머무르는 모닝글로리 수녀원은 금남의 지대, 사제나 황족조차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지극히 청정한 곳이란다.”

약간 멍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는 그가 누구인지 퍼뜩 깨달았다.

나팔꽃의 아가씨, 아사가오노미야. 덴노의 손녀이자 히카루 겐지의 사촌 누님이었던, 학식이 높고 고귀한 신분의 여성. 히카루 겐지에게 수없이 편지를 받고, 고백을 받고, 구혼을 받았으나, 히카루 겐지의 유혹을 받고도 끝끝내 그와 혼인하지도, 동침하지도 않았던 사람 유일하고도 고결한 사람.

그 사람도, 당연하게도 이 세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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