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언제적 에반게리온인가. 수상쩍은 로봇 애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1994년, 그걸 보게 된 것이 그해 겨울.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더니 남자애들이 일본판 뉴타입을, 혹은 엽서나 해적판 화집 같은 것을 가져와 소근거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열광하던 것의 결말을, 2022년에야 보게 되었다. 물론 이번에 처음 공개된 것은 아니다. 아마존 프라임에서 작년에 선공개되었고, 이제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서 국내 개봉도 성사되었다. 실은 보러 간 날 오전에 위 수면내시경을 했는데, 잠이 들었다가 억지로 눈꺼풀을 밀어올리며 “아, 에반게리온 보러 가야 하는데!”하는 오타쿠같은 소리를 하며 눈을 떴다. 영화는 병원 근처에서 점심 먹고 볼 수 있게 예매해 놓았으면서. 하여간 에반게리온이 끝나지 않는 한 나의 중2도 끝나지 않는다 싶었는데 끌을 보긴 보는구만 싶었다.
물론 2022년에 보다 보면, “신”극장판인데도 시대착오적인 부분들이 보인다. 나야 1994년부터 봤으니까 그냥 봤지만, 예나 지금이나 제작진들은 아야나미 레이의 가슴(특히 니플)을 너무 좋아한다. 아야나미 레이가 이카리 유이의 클론이라는 점까지 생각하면 아무데나 어머니의 젖가슴, 젖줄기를 부르짖는 한국 남성 문인들에 빗대어 놀리고 싶어지고. 그런데다 중간에 꼭 클튜 여성 모델에서 목만 떼어버린 것 같은 것이 수도없이 나온다. (이야, 내가 2022년에 별걸 다 보는구나.) 그것들이 작중에서 의미하는 바가 있고, 아무 의미없이 목 없는 마네킹을 쏟아부은 것은 아니긴 하지만, 표현에 대한 다른 고민은 없었는가, 등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그래도 1994년, 자신을 버린 애비새끼가 호출해서 제3신도쿄까지 왔더니 괴물같이 생긴 거대 로봇을 타라고 해서 경악했다가, 자기가 안 타면 저 다 죽어가는 여자아이가 타야 한다는 말에 이 악물고 에바에 탔던 이카리 신지는 무사히 어른이 되었고. 에반게리온이 필요없는 세계를 찾았고 에바의 주박에서 영영 풀려나서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으로 달려나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신지만한 나이에 이걸 보기 시작해서, 이제는 미사토 씨의 나이를 지나 TV판 겐도의 나이에 가까워져서 완결을 봤지만, 여전히 에반게리온은 마음의 고향같은 애니메이션이고 몇몇 장면에는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기도 했다.
“사람은 이 별에서 밖에 살 수 없지만 에바는 무한히 살아갈 수 있어요. 그 속에 머무는 사람의 마음과 함께.”
물론 EoE로 끝나는 전개도 좋아했고, 그렇게까지 풀어서 설명을 해도 덕후들이 못알아들어서 다시 서파큐도돌이를 만들었냐 싶어질 때도 있었지만, 이번 편으로 안노 히데아키는 신지와 함께 에바의 주박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열쇠는 이야기의 기원, 에반게리온이라는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사랑의 기원에 있다. 애초에 에반게리온이라는 이야기는 무한의 세계를 살기로 선택한 유이와, 유이가 자신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선장으로서 선택한 겐도, 그리고 유이가 에반게리온에 흡수된 뒤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겐도의 이야기니까.
(이렇게 요약하는 관점에서, 임주연 작가님은 유이를 “코스믹 호러”라고 표현하기도 하셨는데, 어느정도 동의한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보니, 90년대 말에서 00년대 초반의 많은 작품들에 에반게리온이 끼친 영향을 생각하게 된다. 이를테면 임주연 작가님의 “소녀교육헌장”에 나오는 스노우화이트도 유이 과였지. 그리고 그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내가 데뷔 전에 썼던 습작의 주요 인물인 유미디아 대군도 유이 과였다. 그래서 이 “코스믹 호러”가 무슨 말씀인지, 그 유이와 같은 여성이 어떤 식으로 서브컬처에 영향을 끼쳤는지, “코스믹 호러”라는 말을 ㄷ듣고 바로 알았다.)
유이는 신이 되기를 선택했고, 인간으로서 그를 사랑한 겐도는 육분의와 닻을 지닌 유한한 세계의 선장이 되었으며, 신지는 그 아름답고 무정한 신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살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에반게리온은 이카리 겐도의 망한 사랑과, 다시 유이와 하나가 되기 위해 죽음을 갈망하는 그 남자의 장절한 삽질 대작전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들은 비뚤어지고 아들 친구는 죽을뻔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LCL 된 것은 그에게는 부수적인 문제였을 테고. 이 이야기의 알파와 오메가는, 그저 에반게리온 안에 영원히 남은 유이와 다시 만나고 싶은, 그리하여 유이를 에바에서 해방시키고 싶은 겐도의 절절하게 망한 사랑인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할수 있는 건 어깨를 토닥이며 그만 내려오시라고 말하거나 죽여주는 것뿐이야.”
EoE에서 겐도와 결별하고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했던 신지는, ://를 통해 겐도의 과거를 알고, 그를 이해하고, 구원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결코 인류 최강 최흉의 애처가 이카리 겐도의 사랑이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TV판에서 신지의 보호자 역할을 했지만 아직 미성숙한 어른이었던 카츠라기 미사토가 겐도의 반례로써 서 있기 때문이다. 똑같이 에반게리온 및 그 관련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그 사람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있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 아이와 떨어져 살았지만 누구는 세상을 구하고 살아남은 사람을 지키고 아이들을 부탁하며 자기희생을 하는데 지는 애처가랍시고 지구를 멸망시키면 되겠느냐고. 덕후 입장에서 이카리 겐도의 망한 사랑이라는 서사의 얼개 자체는 정말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아이고 저 미친 자야 철좀 들어라 애가 불쌍하지도 않냐 싶은 생각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그런 점에서 미사토가 반례 노릇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해 주어서 좋았다.
(그건 그렇고 TV판과는 달라진 겐도의 젊었을 때 모습 보고 저는 순간 키리야마 레이인줄 알았고요. 후유츠키랑 쇼기 두면 백전백승…. 아니, 그거 아니다.)
이번 편을 보고 나서 “신”극장판의 음악들을 다시 들어보니, 노래가 전부 겐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집에 가다가 beautiful world도 그렇고 one last kiss도, 사쿠라나가시도 그렇고 전부 겐도였다는 것을 깨닫고 순간 치를 떨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겐도의 망한 사랑 지구도 멸망시킬 참사랑이지 뭐” 하고 있었는데 생각이 거기 닫고 보니 “만약 소원 하나만 들어준다면 네 곁에서 잠들게 해줘, 망설임 없이 너만을 보고 있어.” 하고 열 살 어린 유이에게 되도 않을 플러팅 날리는 서른살 겐도를 상상해 버렸단 말이다. 역시 그때 죽였어야 했었는데……. 유이씨 똑똑하고 미인이고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은 사람이 그만 남자 보는 눈이 없어서…….. ㅠㅠㅠㅠㅠㅠㅠ
하지만 안노 히데아키가 사랑에 진심인 건 분명했다. 아니라고 해도, 인류가 멸망한 뒤에도 남아있는 “책”으로 무려 안노 모요코의 그림책을 넣어놓았는걸. 그 장면을 보고 대체 이 덕후적인 사랑의 끝은 어디인가 순간 우주를 본 기분이었는데. 아마도 안노 히데아키도 젊었을 때는 겐도에 대해 그냥 사랑을 잃고 어딘가 잘못되어버린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것을 생각했던 것 같지만 안노 모요코 여사님과 결혼하더니 “이 사람을 잃는다면 인류보완계획 쌉가능이지” 모드로 돌아서서 아주 겐도에 이입한 것 같다. 다른 사람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고독했던 소년, 책과 음악에만 빠진 채 마음을 닫았던 그 소년에게 유이는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이자 구원이었다. 그런 사람을 사랑하고 나서야, 그는 뼈에 사무치는 고독을 알았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데, 그 사람은 에반게리온 안에 어딘가에 융합되어 있을 뿐, 시신조차 남지 않았다. 차라리 병으로 죽었거나 사고로 죽었어도 시신이 남았으면 고통스러워도 그 죽음을 받아들였을 텐데. 1990년대 세카이계 사랑의 정수만을 모은 듯한 이 (마음이 병든) 남자의 지극한 순애는, 유이의 죽음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주한다. 지구를 멸망시켜도, 모든 인류를 죽여버려도, 당신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식이다. 그를 위해 유이를 복제한 아야나미 시리즈를 만들고, 아들은 떠나보내고, 힘과 권력을 얻기 위해 내달렸다.
하지만 그가 신지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자신과 같이 고독 속을 살아갈 어린 아들에게 자신이 쓰던 SDAT와 이어폰을 건네준 것은, 어처구니없지만 사랑의 흔적이었을까. 신지가 자신의 초호기와 거울처럼 움직이는 13호기를 보았을 때, 그들이 지금은 사라진 제3신도쿄시 세트장과 미사토의 방에서 치고 받으며 움직일 때, 이 싱크로나이드즈는 마치 과거 신지와 아스카의 훈련을 떠올리게 한다. 사다모토 판 코믹스에는 이 부분의 제목이 “마음을 모아서”였지만, 사실은 신지와 아스카가 서로의 고독을 이해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초호기와 13호기의 싱크로나이드즈를 통해, 신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아버지, 고독했던 사람,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고 성적만은 좋았던, 그 한없이 쓸쓸했던 사람이 사실은 자신과 닮았음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대상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 어리석은 아버지는 자신이 버린 아들이 성장했으며, 그 안에는 유이의 모습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구를 멸망시킨 뒤에야 깨달았으니 참 빨리도 깨달았다 싶지만.
TV판 후반에서 나기사 카오루는 레이와 스친다. 레이가 유이라면 카오루는 포지션상 겐도의 포지션이어야 맞는데, 그동안에는 그 부분이 제대로 나오지 않다가 이번에 확실하게 나왔다. 젊은 시절의 겐도와 카오루는 꼭 닮았고, 마지막 장면에서 카오루는 레이와 함께 서 있다. 전세계의 카오루 덕질하던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전개가 되겠지만(역시 안노가 문제였다), 에반게리온의 주박에서 완전히 벗어난 뒤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유이와 겐도, 레이와 카오루가 신지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게 된다.
한편 결혼을 하고 사랑에 진심이 된 안노 히데아키가 그린 에반게리온의 사랑과 구원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마키나미 마리 일러스트리어스야말로 안노 모요코를 형상화한 캐릭터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꽤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건 아닐 것이다. 마리는 중간에 후유츠키에게 “마리아 이스카리옷”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신지에게 있어 유이는 어머니이자 신, 즉 에반게리온이고, 신의 아들을 낳은 ‘성모’다. 그는 삼위일체적인 성모 마리아다. 마리는 성경의 또 다른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이자, ‘이스카리옷’이라는 이름은 유다에게서 온 것이다. 매우 직관적으로 이야기하면 신지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같은, 막달라 마리아와 유다를 합쳐놓은 것 같은(I don’t know how to love him) 절절하고 망한 사랑을 받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는 막달라 마리아로서 신지의 유혹자이자 연인이 되고, 막달라 마리아가 아침 일찍 무덤에 찾아갔다가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 처럼 신지에게 어디에 있든 찾으러 가겠다고 말한다. 그는 유다 이스카리옷으로서 그가 외롭게 고통받으며 인류를 위해 신의 아들로서 부모의 죄를 대속하는 대신, 인간이 되는 길에 함께 한다. 제레의 입장에서 마리는 배신자 이스카리옷이었겠지만, 동시에 그는 JCS에서 예수를 사랑한 유다와 같다.
그렇다면 이렇게 신지를 사랑하고 유혹하며 인간의 길로 이끄는 마리는 누구일까. 그는 곧 유이다. 마리는 유이의, 이카리 겐도와 후유츠키 코조라는 ‘유이에게 반한 남자들’의 필터를 씌우지 않은 객관적인 버전일 것이다. 유이는 겐도의 인생에, 갑자기 낙하산을 타고 날아들듯이 나타났다. 그리고 나타나자마자 그에게 “여성”으로 인식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는 훨씬 적극적으로 겐도에게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애초에 겐도가 유이에게 먼저 반했더라도, 마음속에야 유이와 하고 싶은 일들이 유원지에서 솜사탕 먹기부터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에 시작도 하기 전에 이별의 예감 느끼기까지 별별 상념이 다 있었더라도, 유이가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지 않았으면 저 붙임성 없는 겐도는 유이에게 말도 붙여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면 겐도가 음침하게 스토킹을 하다가 잡혀갔든가.
대학원에서 안면은 있고 호감도 있지만 빙빙 돌다가 어느 순간 마리가 신지에게 이름 알려준 것 처럼 유이도 자기 이름 제대로 알려주고, 겐도가 자기 친아버지나 친척들에게 시달릴 때 그를 거기서 문자 그대로 끌어내주고, 육체적으로도 먼저 준비가 되었으니까 겐도가 결혼을 했겠지, 안 그랬으면 저 이카리 겐도가 무슨 수로 자신의 어둠을 일시적으로나마 떨쳐내고 유이와의 아름다운 미래 밝은 내일을 꿈꿀 수 있었겠느냐는 말이다. 다만 이카리 겐도의 눈에 유이는 여신이고(……) 그의 적극적인 행동 같은 것은 이미 필터링되어서 요조숙녀와의 운명적이고 순애적인 사랑만 남았을 것이다.
Q: 그치만 후유츠키도 유이를 요조숙녀처럼 기억하고 있는데요?
A: …….후유츠키는 지도교수잖아요. 자기 지도교수 앞에서 본성대로 사는 인간이 얼마나 됩니까?
그런 건 졸업했다고 지도교수에게 반말 까는 이카리 겐도 같은 놈에게나 해당되는 일이고(아니, 그 겐도도 학위 받기 전까지는 후유츠키에게 나름 공손하지 않았을까요) 유이처럼 유력가 집안의 딸이라면 특히, 본성을 감추는 건 더 잘 했을 것이다.
본편에서 네르프의 컴퓨터인 마기 시스템 3대는 과학자(이상 추구)로서, 여자로서, 어머니로서의 아카기 박사를 상징하는데, 에반게리온(이상), 마리(여자), 레이(어머니)도 삼위일체적으로 유이를 상징한다고 생각하면 많은 부분이 설명된다. 에반게리온 안에서 14년동안 머리카락이 길어진 레이가 아기 인형을 안고 있는 것은, 극장판 Q의 레이가 ://에서 히카리의 아기인 츠바메를 안고 모성을 깨달은 것의 연장이자, 그가 유이의 여러 모습 중 ‘어머니’에 해당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겐도는 유이를 사랑했지만 유이에게서 어머니를 찾았고, 그래서 코믹스판에서는 신지를 질투하고 미워했다고 고백한다. 아야나미 레이를 만들고 애정을 쏟은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된다. 애초에 겐도는 환갑이 넘도록 중학생때의 고독한 자아에서 멈춰 있는 인간이다. 그 증거로 신지는 열차 안에서 중학생 겐도를 바라보고 그를 이해한다.
하지만 신지는 다르다. 그는 여러 번 어머니와 분리된다. 태어났을 때, 에바에 흡수되었다가 다시 분리되었을 때, EoE의 “안녕 어머니” 장면이나 ://에서 아버지의 죄를 대속하려 할 때(사실 이 장면 이후의 전개는 신지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것임에도, 이 장면은 에반게리온의 모든 시리즈에서 신지가 가장 “신의 아들”에 가까이 다가선 순간이다) 그 직전 유이가 밀어내는 장면까지. 그 여러번의 분리에서 신지가 완전히 분리되는 순간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미성숙하던 아버지와 사랑하고 사랑받은 여성이자 인간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사실은 신지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겐도의 그 긴 고백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튼 둘은 운명의 사과를 함께 깨문 속죄를 하는 건지, 동반자살을 하는 건지, 섹스의 은유인지, 한 창에 꿰뚫리고, 신지는 어머니=레이를 놓아주는 대신 자신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여성인, 욕망이 있는 마리를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마리가 유이의 다른 모습인 것은 당연하다. 세상 남자들이 흔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아내, 어머니도 처음부터 어머니가 아니었다는 것을, 꿈과 욕망이 있고 누군가를 사랑했던, 불완전한 인간이자 한때 소녀였고 젊은 여성이었던 사람임을 이해해야만 그 다음으로 나아가, 부모에게서 분리할 수 있는 법이다. 다행히도 신지는 반복된 분리를 통해 부모에게서 졸업하고, 자신을 버린, 여전히 성장하지 못했던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계단을 밟아 올라가 밖으로 나가듯 다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