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노틀담의 꼽추”는 그냥 흑역사, 마지막 하나의 사본까지 파괴되어야 할 망작중의 망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 “파리의 노트르담” 재독은 각별하였다. 볼 기회는 많았음에도 미묘하게 아직 보지 못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포스터를 연상하게 하는 표지를 만져보다가, 바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먼저 읽게 된 1권은, 등장인물들의 움직임과 성격을 드러내는 데 치중한다. 실질적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하면 떠오르는 사건들 대부분은 2권에 자리하고 있으니, 계속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또한 미묘하게 이 소설 속 인물들은 타로 카드의 메이저 아르카나를 따라가고 있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일단 주목해야 할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시인 그랭구아르 : 이야기의 화자의 역할을 어느정도 수행한다. 초반에 에스메랄다를 따라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기적궁’에 빠져 목이 매달릴 뻔 한 것을, 에스메랄다가 결혼해주어 목숨을 건졌다.
- 카지모도 : 귀머거리이자 꼽추. 성당의 종지기. 악마와 같은 외모를 지녔으나 사실은 광대와 같은 천진함을 지녔다. 프롤로를 따른다.
- 클로드 프롤로 : 노트르담 성당의 부주교. 그 자체로 성직자이나 “마법사”라 불리고, 학식이 높으며 음울한 성격이다. 억제된 욕정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를 에스메랄다의 탓으로 돌리려 한다.
- 페뷔스 드 샤토페르 : 야경대장. 젊은 미남자. 애니메이션에서는 에스메랄다와 맺어지기는 한다. (본편에서는 중간에 질투심에 사로잡힌 프롤로의 칼에 찔린다. 그리고 이 사건의 살해 혐의를 에스메랄다가 뒤집어 쓰게 된다)
- 라 에스메랄다 : 아름다운 집시 처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집시들 손에 자랐다.
- 은둔자(자루 수녀) : 일찌기 어린 딸을 집시들에게 잃었다. 이 이유로 에스메랄다를 증오한다.
이 들, 특히 뮤지컬에서 belle를 부르는 에스메랄다를 중심으로 한 세 남자를 중심으로 한 1권까지의 주요 내용은 예상외로 간단하다. 에스메랄다를 보고 욕정에 사로잡힌 프롤로가 카지모도에게 그녀를 납치할 것을 요구하고, 카지모도는 그 명령을 이행하다가 페뷔스에게 들켜 곤욕을 치른다. 카지모도는 그 일로 형틀에 묶이지만 자신에게 가식없이 상냥하게 대해주는 에스메랄다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노트르담 성당은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그 높은 탑에서 프롤로가 카지모도의 손에 밀려 떨어지는 것은, 중세라는 하나의 경직된 시대가 뒤집히는, 타로 카드의 “타워”와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 고딕식 건축물은 인간의, 신에 대한 찬미와 사랑과 이상을 담은 것으로 (비슷하지만 좀 더 상태가 나쁜 예로 우리나라의 주요 도시 야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쟁하듯 올라가는 시뻘건 십자가들을 볼 수 있다;;;;;) 인본주의 이전의 시대, 신본주의의 시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동시에, 이렇게 인간의 본성이 무시당하는(욕정에 괴로워하는 프롤로라든가) 시대이면서도, 마술이나 요술, 학문으로 점잖게 “연금술”로 포장된 어떤 지식=인간의 본성과 욕구 에 대한 희구는 어느 시대보다도 강렬하며, 이를 제지하기 위한 종교 재판소가 사람들을 박해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위고는 어두운 중세에 알록달록 컬러풀하고 강렬한 인간군상을 그려놓는다. 앞서 말한 주요 인물들 뿐이 아니라, 프롤로의 동생인 장이라든가, 기적궁의 거지들이라든가.
2권에 들어오며 에스메랄다를 두고 프롤로와 페뷔스의 대립, 그리고 여기에 (아직 프롤로는 알지 못하지만) 카지모도의 에스메랄다에 대한 사랑의 갈등이 심화된다. 프롤로는 페뷔스를 단도로 찌르고, 에스메랄다는 그 살해 혐의를 뒤집어 쓴다. 그리고 사형을 선고받은 에스메랄다를 탈출시켜, (인간의 법이 미치지 못하는) 성당 안에 보호하는 카지모도와, 그녀를 빼앗기 위해 그랑구아르와 기적궁의 거지들을 선동하는 프롤로가 대립한다. 마침내 프롤로는 에스메랄다를 빼앗아내지만, 그녀가 자신의 구애를 거부하자 그렇다면 죽으라 하며 그녀를 고발하고, 그 사이 에스메랄다를 증오하는 은둔 수녀에게 감시를 맡긴다. 한 방향만 보며 집착하던 은둔 수녀는 에스메랄다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를 보호하려 하지만, 경찰들이 그녀를 교수대로 끌고가자 고통스러워하며 죽는다.
에스메랄다의 목이 매달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프롤로는 카지모도의 심판을 받아 노트르담 성당의 고딕식 탑에서 떨어진다. 그리고 카지모도는 사라진다. 몇년 뒤 사형수들의 시체를 두는 몽포콩의 지하실에서, 한 시체가 다른 시체를 부자연스럽게 끌어안고 있는 유골이 발견된다. 한쪽은 여자로, 집시의 장신구를 갖고 있었고, 다른 쪽은 뼈가 뒤틀린 남자였다. 두 시체를 떼어내려 하자, 그는 먼지가 되어 부서져 버렸다.
지식과 육체와 마음.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세 남자가 가졌던 것들 중, 결국 빅토르 위고는 마음에 손을 들어주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 제일은 사랑이듯이. 하지만, 레 미제라블이 그저 장발장이 은촛대 때문에 마음을 고쳐먹은 이야기가 아니라 혁명과 민중의 이야기였듯이, 이 이야기 역시도 그렇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중세적이지만 또한 중세에서 벗어나려 하는 살아숨쉬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면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부족하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에는 그런 맛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