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렘 생존기

하렘 생존기 – 오리발

튀르키예에서 제작한, 오스만 제국의 하렘을 다룬 대하 드라마 중 유명한 것이 무흐테솀 유즈이을(위대한 세기)이다. “위대한 세기”의 주인공은 “꿈의 물방울 황금의 새장”의 주인공이자, 오스만 제국 최초로 술탄과 정식으로 결혼하여 황후가 된 휘렘 술탄이다. 휘렘 술탄의 시대 이후로 오스만 제국은 모후들과 후궁들이 특별한 영향력을 지니는 “여성 술탄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후속작인 “위대한 세기 : 쾨셈”의 주인공인 쾨셈 술탄은, 이 여성 술탄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인물이다.

“하렘 생존기”의 주인공인 나스챠(레일라)와, 또 다른 주인공 격인 아샤(마흐페이케르)는 바로 이 쾨셈 술탄을 모델로 하고 있다. 나스챠와 아샤는 쾨셈 술탄의 본명인 “아나스타샤”라는 이름의 서로 다른 두 애칭이며, 아샤가 승은을 입은 뒤 받은 이름인 마흐페이케르는 쾨셈 술탄이 처음에 하사받은 이름이다. 그리고 구궁전에서 돌아온 뒤의 나스챠의 행적은 쾨셈 술탄의 행적과 겹쳐진다. 마치 중국 드라마 “후궁 견환전”에서 효성헌황후 뉴호록씨를 젊은 날의 견환(완비)와 출궁당한 뒤 뉴호록 견환이라는 새 이름을 받고 다시 입궁한 희비라는 두 이름으로 표현하며 이야기의 전반부와 후반부, 복수와 반전을 그린 것 처럼, 이 웹툰에서는 젊은 날 승은을 입었던 아샤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여자”가 되는 냉정한 나스챠의 모습으로 쾨셈 술탄의 모습을 둘로 나누어 묘사한다. “피해자”인 아샤와 “생존자”인 나스챠가 같은 붉은 머리에 녹색 눈동자인 것, 서로가 서로에게 모순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이들 두 사람이 결국은 한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견디라고 했어요. 인내해야 보복도 할 수 있고, 그럴 수 있다면…수치도 명예가 될 수 있을 거라고요.

총명하고 담대한 나스챠는 도적들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끌려왔다가 하렘으로 팔려온다. 그곳에서 나스챠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붉은 머리와 녹색 눈동자를 지닌, 그러나 노동 같은 것은 모르고 귀하게 자란 아샤와 만난다. 나스챠는 도둑맞은 물건을 찾아내며 니자드 칼파의 눈에 들지만, 아샤가 베흐쟈드 우스타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하는 것을 보고 니자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샤를 구한다. 나스챠는 아샤를, 아샤는 나스챠를 구하며 두 사람은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한편 나스챠가 아아(환관)라고 오해했던 아흐메드는 붉은 머리의 소녀를 찾고, 아샤를 나스챠로 오해하여 후궁으로 삼는다. 마흐페이케르 하툰이 된 아샤는 나스챠를 다신의 곁에 두고, 머리카락을 검은 색으로 염색하라 부탁한 뒤 레일라라고 부르게 된다. 이후 레일라는 레일라를 마음에 둔 아흐메드, 아흐메드의 또 다른 후궁인 마흐피루즈와 얽히고, 아샤는 레일라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여 구궁전으로 추방한다.

아흐메드의 부친은 할리메 술탄에게서 무스타파와 그의 형을, 그리고 한단 술탄에게서 아흐메드를 얻었다. 그리고 아흐메드의 할머니인 사피예 술탄은 손자들이 성인이 된 지금도 권력을 위해 음모를 꾸며 후궁들을 좌지우지하거나, 때로는 살해하기도 한다. 레일라는 구궁전에 갇혀 있던 무스타파와 할리메 술탄과 인연을 맺게 되며 조용히 살아가려 했다. 하지만 우연히 아샤의 아들인 메흐메드가 독사에 물린 것을 치료하며 다시 후궁으로 돌아가 메흐메드의 보모가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단 술탄이 독살되고, 사피예 술탄은 한단 술탄을 독살한 사람을 찾겠다며 아샤와 마흐피루즈를 죽이려 한다. 아샤는 살기 위해 마흐피루즈를 모함하고, 마흐피루즈는 레일라에게 이번에 아샤가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 – 레일라에게 반지를 주었던 아아를 찾아가라 – 을 알려줄테니 자신의 아들인 오스만이 장성하여 제위에 오르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사피예가 마흐피루즈에 이어 아샤까지 죽이려 할 때, 아흐메드가 나타난다.

어머니가 세상에서 사라졌어도 어머니가 한 일들의 결과는 남아있었다.

레일라는 아흐메드가 파디샤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아흐메드는 레일라를 “나의 하렘을 다스릴 여인”이라고 말하며 후궁으로 삼는다. 레일라는 마흐피루즈의 아들인 셰흐자데 오스만을 보호하고, 지혜롭게 하렘을 이끌어가며 그 과정에서 아샤와 대립한다. 레일라는 아샤에게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고 묻지만 아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바로 너라고 말하고, 레일라는 아흐메드가 자신을 후궁으로 삼았지만 아직 취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 “반드시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을 알고 있으면서 즐기는 여흥”이라는 것을 깨닫고 무력감을 느낀다. 그리고 아샤는 레일라에게 약이 든 차를 먹인 뒤, 그가 레일라를 독살하려 했다고 진노한 아흐메드의 명령으로 처형당한다. 깨어난 레일라는 아샤의 시신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가, 그가 스스로 자신의 수의를 준비하며 이 죽음을, 사람이 그저 도구가 되는 굴욕적인 하렘에서의 탈출을 바라 왔음을 깨닫는다.

이후 레일라는 지금의 굴욕을 참고 훗날을 도모하려 아흐메드와 동침하고 왕자들을 낳는 한편, 오스만과 메흐메트를 키운다. 아흐메드가 젊어서 죽은 뒤 무스타파가 즉위하고, 다시 사피예 술탄이 레일라와 할리메를 죽이기 위해 수작을 부리지만, 레일라는 사피예의 계략을 역으로 이용하고 살아남는다. 무스타파가 쫓겨난 이후 아흐메드가, 다시 오스만이, 그리고 또다시 무스타파가 즉위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낳고 키운 아이들만은 지키려 하는 레일라의 마음을 저버린다. 그리고 레일라의 아들인 무라드가 즉위하며 발리데 술탄이 된 레일라는, 자신에게 약이 든 차를 먹일 때 아샤가 입고 있었던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다.

현실 역사에서 쾨셈 술탄은 아들들과 손자를 파디샤의 자리에 올리며 세 번에 걸쳐 섭정을 맡는다. 그리고 며느리의 손에 살해당한다. 그는 “여성 술탄 시대” 최후로 섭정을 맡은 발리데 술탄이었다. “하렘 생존기”의 레일라는 바로 이, 납치당해 노예로 팔려 온 소녀가 어떻게 하렘의 정점에 서는지, 어째서 “사랑하지 않는 여자”가 되어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하렘에서의 생존과 승리, 권력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것은, 사피예 술탄처럼 권력에 매달려 혈육을 죽이는 괴물이 아니라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 이후의 삶이 결코 누군가를 지키고 사랑하는 삶이 될 수 없기에, “하렘 생존기”는 그가 발리데 술탄이 되는 시점에서 끝난다. 하지만 그가 진심으로 원했던 것은 이곳에서 도망쳐,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마흐피루즈도 아샤도, 이곳에서 도망칠 길은 죽음 뿐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죽음을 받아들이고, 혹은 죽음을 선택한다.

레일라는 그들의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이다. 마흐피루즈의 유산은 오스만, 아샤의 유산은 메흐메트였다. 하지만 그들 역시, 레일라에게 일방적인 애정을 요구할 뿐, 그를 동등한 사람으로 보아주지 않았다. 하렘이라는, 가부장제의 정점과도 같은 체계의 비극은 거기에 있다. 아내는 “노예”가 되고, 그 “노예”인 어머니의 아들들은 다시 정점에 올라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아흐메드나 오스만의 죽음이나 무스타파의 실각은 그저 “주인”이 바뀌는 과정이라는 듯 무미건조하게 그려진다. 그 과정을 거쳐 살아남고 권력을 손에 쥔 쾨셈 술탄, 혹은 레일라의 방식은 “사랑”을 통해 “노예”에서 “황후”가 되었던 휘렘 술탄의 방식과는 또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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