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페이지가 로딩되는 동안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트위터를 열어보니 “요즘 여자들은 혼자 사니까 집안일 같은 건 안 하겠다”고 헛소리를 하는 매우 멍청한 남자가 보이는데요. 평생 집안일을 남에게 시킬 궁리밖에 안 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사람이 혼자 살면 설령 재벌3세나 리디광공이라 해도 최소한의 집안일은 하게 된다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네요.

예, 이를테면 리디광공 말입니다. 리디북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블랙 앤 화이트 톤의 비인간적으로 청결한 집에서 살며, 냉장고를 열면 김치가 들어있는 락앤락 같은 것은 없이 그저 에비앙 생수만 가득 차 있고, 매일 닭가슴살만 뜯어먹으며 운동할 것 같은 몸에다가 차갑고 성질 더럽고 무심한 일중독자에다 종종 돈과 권력(재벌가 아들 등)을 한 손에 쥐고 있는, 그러나 주인공 수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게 구는 한편으로 미친듯이 집착하는 그런 남자. 뭐, 대략 비주얼로 설명하면 “올드보이”에 나왔던 유지태 같은 느낌일지도 모르겠네요. 먼지 한 톨 없는 펜트하우스에서 혼자 요가하고 있는. 아마도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리디광공이 집안일을 왜 하겠냐,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힐 텐데, 하고 착각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캐릭터 해석을 제대로 하면 리디광공만한 살림남도 없습니다. 물론 리디광공이 출근한 사이에 집안일 해주시는 분이 조용히 왔다가실 수는 있겠죠. 하지만 대부분 우리의 리디광공은 고독한 늑대 같아서 자기가 집에 있을 때 다른 사람이 얼씬거리는 걸 싫어할 겁니다. 그러니 자기 스페이스에 들어와도 거부감이 안 드는 수가 특별한 사람인 거겠죠. 다시 말해, 평일에는 매일 청소연구소나(아, 이건 어쩐지 광공답지 않아 보이네요) 매일 출근하는 하우스키퍼를 둔다고 해도, 입주해 있거나 주말에까지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아 할 겁니다. 예외가 있다면 우리의 수가 하우스키퍼였다가 공과 눈이 맞는 경우인데요, 그건 논외로 하고.

그런 리디광공이 집안일을 안 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는 매일 저녁 직접 요리를 하고, 먹고 난 뒤의 설거지거리를 개수대에 버려둘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어제 저녁 계란후라이 기름냄새와 마주하게 되겠죠. 간혹 한여름이면 남은 파스타 소스가 퀴퀴하게 부패하는 냄새를 맡으며 하루를 시작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의 광공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리디광공 하우스(대리석에 하얗고 까맣고 청결하고 이하생략)와는 매우 분위기가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다 리디광공도 사람이니 주말에는 쉴 텐데, 그렇게 주말내내 안 치우고 나면 일요일 밤에는 제 아무리 리디광공 하우스라고 해도 날파리가…..(꺄아악)

그런데다 다른 문제도 있어요. 사실 소설 속 리디광공들은 당연하게도 섹스의 달인이죠. 그들은 현실 남자들과 달리 대체로 크고(…..) 대용량이며(…..) 충전시간은 짧고 지속시간이 깁니다. 그러니 걸핏하면 더는 못 참겠군, 오늘밤은 재우지 않겠다. 그런 소리를 하죠. 그런데 다들 아시겠지만(아, 집안일 안 하는 사람은 모르려나요?) 인간의 체액이란 빨리 치우지 않으면 매우 퀴퀴해지기 마련입니다. 시트 걷고 빨래 돌리고 빨래 널고 하는 일을 누가 올 때 까지 둔다? 그게 홀아비 방이지 리디광공 하우스입니까? 그렇다고 그걸 수에게 시킨다? 그거야 그냥 밥줘남 한남이지 리디광공이겠습니까? 리디광공은 아마 뒷정리와 세탁도 제 손으로 매일 할 겁니다. 집안일 당연히 하죠.

리디광공이란 사랑에 미친 새끼라는 설정답게 간혹 수를 수갑과 밧줄로 묶어놓을지는 몰라도, 수에게 밥과 설거지 빨래 등등의 가사노동을 하라고 먼저 등을 떠밀진 않을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이 무너져도 날파리에게 영역을 침범당하지 않고 블랙 앤 화이트의 청결한 리디광공하우스를 고수하겠죠. (+에비앙) 비록 미친 새끼이기는 하나 그들은 밥줘남이 아니며, 그들의 깔끔함에 대한 의지는 옛날로 치면 얼어죽어도 겻불을 쬐지 않고 냉수를 마시고도 이를 쑤실 사람들에 비견될 자들이지요. 돈 많고 정력만 좋다고 리디광공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종류의 남자들이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도 아내나 어머니, 심지어는 어린 딸이 밥을 차려주지 않으면 밥을 못 챙겨먹거나, 혹은 자신에게 밥 차려줄 여자가 없음을 한탄하며 요즘 여자들은 혼자 사니까 집안일 같은 건 안 할 거라고 광광 우는 동안에도(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대개 돈도 없고 정력도 딸릴 것입니다.) 소위 “갓생”을 사는 리디광공들은 다음 페이지가 로딩되는 동안 살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웃음)

PS) 그리고 전에 보니 재벌가 자손도 혼자 독립해서 사는 동안에는 최소한의 살림은 하더라고요. 원래 사람이 아무리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살려고 해도, 최저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잖아요? 남에게 밥을 얻어만 먹어 본 사람은 상상 못 할 것 같지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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