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고전읽기-012] 싯다르타(헤르만 헤세) 민음사 세계문학 58

싯다르타
싯다르타

학생때 번역이 좀 이상한 판으로 잘못 봐서 완전히 엉뚱한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 고빈다와 싯다르타가 재회하는 부분의 번역이 아주 이상해서, 나중에 다시 읽어야지 하다가 미루어두기는 했지만. 역시 아니었다. 문맥상 이상하다고 생각한 그 이상으로 번역이 잘못 되어 있었다. 마치, 골수 기독교인이 악의적으로 잘못 번역한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고타마 싯다르타. 다들 알다시피 이 이름은 석가족의 왕자였던 붓다의 출가 전 이름이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인 싯다르타는 붓다보다 약간 뒤의 사람,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당시 아직 수행자인 청년이다. (그리고 붓다의 이름은 고타마라고만 나온다) 초반에 바라문의 아들로, 뛰어난 자질로 존경과 사랑을 받던 젊은 싯다르타는 친구인 고빈다와 함께 수행의 길을 떠난다. 수행자들 사이에서 단식하고 명상하며 고행의 길을 걷던 그는 석가족의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간다. 하지만 붓다의 제자가 되기를 청하는 고빈다와 달리 싯다르타는, 자신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세존이시여,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탈은 가르침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세존이시여, 당신은 당신이 깨달은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아무에게도 말이나 가르침으로 전달하여 주실 수도, 말하여 주실 수도 없습니다. 도를 깨달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살고 악을 피하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토록 명백하고 이토록 존귀한 가르침이 빠뜨리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세존께서 몸소 겪으셨던 것에 관한 비밀, 즉 수십만 명 가운데 혼자만 체험하셨던 그 비밀이 그 가르침 속에는 들어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모든 가르침과 스승을 떠나서 홀로 목표에 도달하든가 아니면 죽든가 하겠지요.

지식은 전할 수 있이만, 깨달음은 전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 싯다르타는 방황하고, 방랑하고, 사랑에 빠지고 부와 안락한 생활에 녹아든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다시 깨달음을 구하러 길을 떠난다.

자신을 사랑했던 여인이 아이를 데리고 순례의 길을 떠났다가 죽음을 맞고, 싯다르타는 자신의 아들을 거두지만 아들에게 있어 그 아버지는 고리타분하고 혼자 도나 닦고 사는 사람일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 사랑을 쏟으나 보답받지 못하는 마음. 놓아주어야 하는 마음, 싯다르타는 계속, 그 모든 마음들을 온전히 느끼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뱃사공 바주데바가 있다.

싯다르타의 방황은, 화엄경의 선재동자의 방황과도 같다. 선재동자가 만난 바시라 뱃사공은 싯다르타가 만난 뱃사공 바주데바요, 그가 사랑했던 카말라는 선재가 만났던 바수밀다와 일맥상통한다. 그 모든 번뇌와 방황 속에서 그는 집착을 놓는 삼매를 배우고, 깨달음을 얻는다. 붓다 세존의 제자로서 존경을 받는 고빈다와, 늙은 뱃사공이 된 싯다르타가 다시 만났을 때, 고빈다는 싯다르타의 안에서 그, 죽음과 태어남이 하나가 된 깨달음을 발견하고 머리를 숙인다. 화엄경을, 기독교 문화권에서 보고 다시 써간 화엄경은 이런 모습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없었다면 내가 헤세의 작품 중 가장 사랑하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결코 나오지 않았으리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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