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력에는 장미주일이라 불리는 시기가 있다. 부활을 기다리는 사순절의 네번째 주와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의 세번째 주가 그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활을 기뻐하는 시기로, 이 시기에는 신부들은 장미색 제의를 입는다. 장미는 예수의 탄생과 약속을 상징하는 꽃이자, 가시에 찔리는 순교와 희생의 고통이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신앙과 사랑을 뜻하는 꽃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황금 장미는 천국의 열쇠와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 “괴물장미”는, 우리에게 익숙한 메시아의 이야기를 흡혈귀가 되어 오랜 세월을 살아온 여성, 바네사의 이야기로 전복하여 들려준다. 바네사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가르쳐 준 이가 멜리사라면, 지금 바네사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도는 바로 멜리니((메리)와 리사다. 애초에 멜리니와 리사라는 이름부터가, 멜리사를 반으로 쪼개놓은 것 처럼 느껴진다. 이들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막달라 마리아와 유다를 연상하게 한다. 이 뮤지컬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노래와 유다의 노래는 “I don’t know how to love him”에서 겹쳐진다. 바네사를 사랑하는 멜리니(메리)와 리사 역시 그렇다. 그들은 바네사의 연인이었고 바네사가 각성한 근원에 자리한 멜리사의 서로 다른 모습들이다.
“잊히는 건 언니도 바라지 않을 거야. 괴물이 된 우리가 서로를 영원히 기억해야 해.”
메리라는 이름은 마리아에서 왔고, 메리가 자신의 태그네임으로 쓴 멜리니라는 이름은 인상파 화가 피에르 보나르의 연인이자 그의 그림 속에서 황금빛으로 그려지던 뮤즈였고, 각종 신경증에 시달리고 있어 자신의 본명을 아주 오랫동안 감추었던 마르트 드 멜리니(마리아 부르쟁)에게서 따온 것이다. 그것은 동양 출신 우편주문신부의 딸로 태어나 차별받으며 살아가고, 아빠와 동네 아저씨들의 성폭력에 시달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빛 장미를 꿈꾸던, 고통 속에서도 자산의 예술적 숙명을 믿으며 버텨왔던 소외받고 차별받고 착취당하던 소녀 메리의 삶과 겹쳐진다. 그리고 소외되고 차별받고 착취당하던 소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사랑하며 변화하듯이, 멜리니는 바네사를 만나며 변화한다. 자신을 감추고 싶었고 고통스럽던 자신의 삶을 버리고 도망치고 싶었던 멜리니는, 자신이 동경하던 황금빛 장미 그 자체인 바네사를 사랑한다.
“황금색 장미를 그리고 싶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어요. 나는 이걸 피워낼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잊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화려한 차림을 하고 남자들을 거침없이 찢어죽이는 리사는, 흑인 여성으로 금광에서 일했다. 금광에서의 노동과 성매매, 저주처럼 에이즈가 창궐하는 가운데 소수의 사람들은 황금을 얻지만, 다른 수많은 이들은 죽어가는 지옥을 거쳐 나온 그 역시 바네사를 사랑한다. 그러나 이제 피를 마시면 희열 속에 살고, 피를 마시지 않으면 허기의 고통 속에 사는 흡혈귀의 영생에 지치고, 인간을 사랑하는 것으로 죽음을 맞이하기를 간구하던 바네사는, 리사에게 “오직 너만이 가능한 일이 있어.”라고 말하며 배신자가 되어줄 것을 간청한다. 그 대가로 리사는 바네사의, 영원불멸한 황금빛 심장을 원한다.
그리고 이들의 처절한 사랑과 고통에, 타락한 목사 살인사건이 얽힌다. 이 사건을 뒤쫓는 이들은, 성추행이 일상인 남초사회에서 버티고 살아가는 두 여성, 데보라와 재클린이다. 뛰어난 수사관이었지만 아이를 낳으며 밀려나 지금은 교통경찰이 된 데보라는, 목사 살인사건을 추적하다가 위기에 처한 재클린을 구하기 위해 움직인다. 그리고 이들을 구하기 위해 흡혈귀들이 움직인다. 데보라와 재클린이 발견하는 것은, 교단에서 최초로 여성 목사가 되려고 했다가 남자 목사들에게 납치되어 고문당한 여성 목회자였다. 신을 섬긴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기득권을 쥐고 놓지 않으려는 이들 남자 목사들이 여성 목회자를 납치하고 성폭력을 행사하고, 진실을 뒤쫓아 온 이들은 남초사회에서 밀려난 여성 기자와 경찰이고, 그들을 구하러 나타난 이들은 인간 여성으로서 가장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새로운 삶을 얻은 흡혈귀들이다. 가장 약하고 천대받던 이들이 힘을 모아 여성을 향한 기득권의 폭력에 맞선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황금 장미를 그리던 멜리니가 그러했고, 마녀로 몰려 죽을 위기에 처했던 바네사가 그랬다.
과거 바네사는 부유한 집안의 딸로, 일찍 결혼했지만 젊은 나이에 부유한 과부가 되었다. 독서가로 약초학에도 해박하여 주변 사람들을 돕던 바네사는 아버지의 약을 구하려던 가난한 농부의 딸 멜리사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신부가 아름답고 부유한 바네사를 노리고 찾아왔다가 거부당하고, 그는 바네사를 마녀로 몰아간다. 그리고 멜리사는 바네사를 구하기 위해, 대신 감옥에 갇히고 대신 십자가에 매달린다.
“멜리니, 백 명의 여자가 죽으면 한 명의 괴물이 탄생해. 천 명의 여자가 살면…… 한 명의 삶이 돌아온단다.”
아름답거나 부유하거나 총명한, 그리고 남편이 없는 여자들이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고 재산을 빼앗기던 시대, 멜리사를 포함한 세 여자가 화형을 당하고, 바네사는 천사와 같은 존재로 변신한 마녀의 도움을 받아 괴물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세라핌에 대한 묘사와 유사하나 날개가 더 달려있는, 일곱 개의 불과 일곱 개의 칼/황금 장미를 든 신적인 존재인 마녀는 마치 성찬식을 거행하듯 타고 남은 멜리사의 육신을 바네사에게 먹이고, 바네사는 불멸을 얻어 흡혈귀가 된다.
그녀는 빛나는 신체로 천천히 걸었다. 멜리사의 십자가 앞으로 다가갔다. 흰 뼈와 검은 재가 수북했다. 바네사는 몸을 굽혀 잿가루를 움켜쥐었다. “멜리사……. 이제야 널 사랑하러 왔어…….” 그녀는 먼지 위에 뺨을 비볐다. 황금색 눈동자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바네사의 낙루가 닿은 잿더미 위에, 금색 장미꽃 스무 송이가 피었다. 잿빛 무덤 속에서 멜리사의 흰 뼛조각이 반짝였다.
그리고 이제, 멜리사에 대한 사랑으로 흡혈귀가 되었던 바네사는, 멜리니를 사랑함으로써 죽으려 한다. 옆구리와 온 몸에는 못 자국이 남은 몸으로, 그는 사랑하는 리사와 멜리니의 발을 씻겨주며 말한다.
“나는 증명으로서, 한 생을 마무리 해. 은폐된 침해들을, 자행된 죄악들을 내 안에서 태우려고 해. 너희를 믿어. 사랑하는 나의 멜리니. 그리고 리사. 그들은 나를 꿰뚫을 수 없지만, 너희는 가능해. 나는 나의 궤적을 너희에게 맡겨. 삶도, 죽음도 전부.”
고통스러워 하던 바네사는 멜리니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멜리니는 바네사의 가슴에 황금 장미를 그리고, 리사가 장전한 은탄환으로 장미를 꿰뚫는다. 피와 물이 흘렀다는 묘사는 성경에서의 예수의 죽음과 겹쳐진다. 리사는 마로 짠 수의를 가져와 바네사의 심장을 간직한다. 그리고 멜리니는 목사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자수하여 감옥에 들어간다. 마치 토굴 속에 들어가듯이. 삶과 죽음을 모두 리사와 멜리니에게 맡기고 죽어간 바네사를 다시 만나기 위해, 둘은 천 명의 여자들을 살리기로 했다. 감옥 안에서 자신이 한 번도 마주한 적은 없었지만 분명 아는 사람들일 천 명의 얼굴을 그리며 진짜 범죄자들의 정보를 알아내는 멜리니, 그리고 멜리니의 정보를 바탕으로 여자들을 죽이는 진짜 범죄자들을 사냥 하는 리사. 그렇게 천 명의 여자들을 구해내고 그만큼의 범죄자들을 사냥한 뒤, 리사는 마지막으로 멜리니를 물기 위해 감옥으로 숨어든다. 멜리니를 흡혈귀로 만들고, 바네사를 되살려내기 위해. 멜리니는 그 이야기를, 목사 살인사건을 파헤치고 승진한 데보라에게 털어놓고 사라진다.
마지막에 자신을 세 번 팔아넘긴 사람(아마도 아버지)을 세 번 신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소녀가 도망친다. 그는 도망치던 끝에 어느 집 지하실에서 깨끗하게 닦인 천 개의 해골과, 황금 장미 한 송이가 피어 있는 텅 빈 관을 발견한다. 마치 부활한 예수를 발견한 여자들처럼. 그가 새로운 목격자가 되고, 또 다른 장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