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고전읽기-084] 로미오와 줄리엣 (윌리엄 셰익스피어) 민음사 세계문학 173

로미오와 줄리엣
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뭐냐고 물어보면, 햄릿은 어떻게든 나온다. 리어왕도 나온다. 이제 좀 아는 애들 같으면 맥베스도 나오고. 그런데 미묘하게 존재감이 흐릿한 오셀로 대신 로미오와 줄리엣을 말하는 녀석들이 많았다.

4대비극의 주인공들은, 스스로 그 비극의 운명을 선택한다. 맥베스는 욕망 때문에 왕을 배신하고, 리어왕은 감언이설에 속아 충신과 딸을 내친다. 그들은 극중에서 적어도 한 번, 그리고 사실 몇 번은 더,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날 기회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비극적 선택이 어떤 크나큰 운명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다르다. 따지고 보면 10대 소년소녀, 중딩 나이밖에 안되는 그들이, 공작조차도 말리지 못한 두 집안의 싸움에서 벗어나 둘만의 행복한 미래를 선택할 방법은 없었다, 그들은 결국 운명에 의해 희생되었고, 그 희생으로 인해 화해의 단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야기가 온전히 비극이라고만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참. 춘향전과 비슷한(사실은 더 어린) 나이의 연인들이 결국 죽음으로써 맺어지며 두 집안을 화해시키는 이야기라는 것은, 사실 춘향전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춘향전의 카타르시스가 그, 동적이고 활기차며 모든 판을 뒤엎는듯한 어사 출두 장면이라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절정은 역시, 운명에 희롱당한 연인들이 목숨을 끊는 장면일 터. 그리스 시대의 피라머스와 티스베의 이야기가 그러했듯이, 사실은 그 변용인 이 이야기는 사랑에 빠진 사람을, 그리고 사랑을 동경하는 사람을 강렬하게 매혹시킨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그 다음은, 그저 평범하고 긴긴 날들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기에, 낙화처럼,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듯이 그렇게 지는 사랑이 오히려 순도높은, 현실이 배제된 그저 사랑 그 자체라는 것을 알기에.

이 번역은 정말 좋았다. 마치 시처럼, 노래처럼 대사가 읽힌다. 앞서 읽었던 4대 비극이 그대로 연극 무대를 위한 것이라면, 지금 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번역은 마치 소네트를 읽는 것처럼, 운율을 짚어 나간다. 이 번역 그대로 무대에 올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리내어 읽는 것으로, 혀에 감긴다. 새삼, 셰익스피어가 수많은 소네트를 남긴 시인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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