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이 아닌 이미지는 없다는, 세상은 메타포로 가득 차 있다는, 우편배달부와도 격의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친구이자 뚜쟁이이며 결혼의 대부가 되어 주는 시인. 아내를 사랑하고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시를 쓰며 살아가면서도, 노벨 문학상에 대한 미련을 놓지 않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게으르고 잉여로운, 그래서 아버지에게 구박을 받은 끝에 오직 네루다 한 사람만이 편지를 받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의 집배원이 되는 청년 마리오. 그들의 따뜻한 우정 이야기라고 이 책을 소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앞서 “영혼의 집”에서도 언급했던 칠레의 정치상황, 살바도르 아옌데의 집권과 피노체트의 쿠데타는 시인의 삶도, 시인을 흉내내어 시를 쓰고 시인의 묘사를 도용하여 사랑하는 여자를 찬미하며, 시인이 파리로 간 사이 에펠탑이 있고 시인이 가 있는 그 도시를 동경하며 이곳의, 바닷가의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날개짓소리, 그가 사랑하던 모든 소리들, 그리고 시인의 시에서 싹튼 사랑에서 마침내 생명을 얻어 태어난 자신의 아이의 울음소리를 녹음하여 보내는 젊은 우체부의 삶도 산산히 파괴하고 만다.
그건 그렇고.
마리오의 아내가 되는 베아트리스…..의 어머니 되는 포구 주점의 주인 로자 곤잘레스, 이 아줌마가 사실은 이 소설에서 제일 끝내주는 인물이다. 그녀는 마리오가 주워섬기는 네루다의 시들을 다 알고 있으며, 마리오가 수작을 부릴 때 마다, 혹은 베아트리스가 넘어갈 때 마다 뭔가 촌철살인 급의 속담을 갖다붙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 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 것! 퍼질러 잠이나 자!”
마술적 리얼리즘. 마리오의 사랑도,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모두 현실적이면서도 조금은 마법같고 동화같은 열정이 지배하고 있지만, 정말로 있을법 하면서도 포구의 아낙이 이렇게 입담이 좋다니 하고 감탄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마리오의 장모님이다. 등장하실 때 마다 즐거웠다.
(전략. 네루다의 시 변형 인용)
과부는 부르르 떨며 종이를 구겨 앞치마에 다시 쑤셔넣으며 결론지었다.
“네루다 씨, 즉 우체부 그 작자가 내 딸이 홀딱 벗은 걸 보았다고요.”
그 순간 시인은 세계를 유물론적으로 해석하는 공산주의에 귀의한 것을 한탄했다. 미치고 펄쩍 뛸 지경이라 신의 자비를 빌고 싶었던 것이었다. 네루다는 기가 꺾였지만 감히 설명을 하려 했다. 죽은 사람에게도 아직 시체가 된 것은 아니라고 설득한 찰스 로턴 같은 탁월한 변호사도 아니면서 말이다.
“로사 부인, 시의 내용이 꼭 실제 상황이라고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과부는 한없이 멸시하는 투로 시인을 째려보았다.
“이 배 안에 아홉 달을 품었고 십칠 년을 키운 아이예요. 그 시에는 거짓이 없어요. 내 딸이 벗으면 그 시 그대로라고요.”
네루다는 아무 말도 못하고 속으로 그저 “주여”하고 빌었다.
사실 그 시는 네루다가 아내 마틸데를 위해 쓴 시다. 그에 대해 네루다는 “시집 두어 권을 선물해 줬다고 내 시를 표절하라고 허락해 준 줄 알아. 게다가 자네는 내가 마틸데를 위해 쓴 시를 베아트리스에게 선사했어.”하고 한탄하지만, 마리오는 한술 더 뜬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물론 저작권이라든가 저작 인격권이라든가 그런 것을 생각하면 택도 없는 말씀이에요, 입니다만, 마리오의 네루다의 시에 대한 사랑이, 그리고 이곳 사람들의 사랑이 집약된 대사인 동시에, 그의 “민중 시인”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머리에 들어오게 해 준 대목이기도 했다.
아옌데의 소설에서도 말했던 마술적 리얼리즘, 베아트리스와 마리오의, 격렬하면서도 장난기어리고 리드미컬하여 시처럼 느껴지는 섹스도 마찬가지다. 이 마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또한 그렇다. 동화같고 마법같으며 시적이다. 이 소설 자체가 액자소설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전에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 이 마을의 사람들은 이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민중의 시인을, 그들의 이웃이자 유명인사이고 어쩌면 대통령이 될 뻔 했지만 아옌데를 지지하며 그 자리에서 내려왔고, 이 나라와 이 작은 마을을 전 세계가 주목하게 만든 노벨상을 받아 온 바로 그 인물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아옌데는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목숨을 잃고, 네루다는 병사한다. 물안개 속에서, 아버지의 묘를 이장할 때 보았던 검은 물을 보는 네루다. (이 검은 물의 이미지는 네루다로 하여금 폭우에서 비롯되어 무덤마다 흘러다녔을 이미지로 연결되어 그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가져다 준 것으로,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네루다의 죽음 장면에서 다시 인용하였다) 그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죽어가고, 그가 병원에서 숨을 거두는 사이 그의 바닷가 집은 쿠데타 세력을 추종하는 이들에 의해 박살이 난다. (네루다 사후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는 마틸데 여사는) 부서진 바닷가 집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그 근처에 묻히고 싶다는 네루다의 소망이 묵살된 채 관이 실려간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관이 실려가는 가운데 인터내셔널 가를 부른다.
서글픈, 더없이 서글픈 마지막 만남 뒤로 마리오는 당국 사람들에게 잡혀가 실종된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정권을 쥔 그들로서는 위험 인물, 반체제 인사인 네루다의 친구였던 젊은 우체부의 운명은 아마 그렇게 끝이 났을 것이다. 덧없게도, 서글프게도. 네루다를 만나며 한낱 잉여백수에서 자신의 “말”을 할 줄 아는 사람,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사람, 세상 속에서 운율과 시어를 서투르게나마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마리오의 행복과 비극을 통해 작가는 파블로 네루다라는 한 시인의 삶을, 그의 민중 시인으로서의 소박한 삶과 죽음을 손에 잡히도록 생생하게 그려낸다. 메타포, 그가 젊은 우체부에게 처음으로 가르쳐 주었던 그 세계관은, 그 삶 속에 온전히 녹아 있다.
일 포스티노 영화도 봤지만, 영화 포스터에 실린 “소녀에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편의 시 뿐이었다”는 말은 그냥 마리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 요즘 그 페이스북 사장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셜 네트워크”라는 영화 포스터도 그렇고, 한국에 들어올때는 포스터의 멘트들 좀 잘 뽑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