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0] 푸아로의 크리스마스

예전에 읽었던 해문판에서는 “크리스마스 살인”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이다. 명탐정과 함께라면 크리스마스에도 사람은 죽는 법이다. 미워하는 가족들을 명절이라고 한 집에 모아놓아도 마찬가지다. 푸아로의 크리스마스를 읽다가, 왜 내가 예전에 “족쇄 – 두 남매 이야기”를 쓰면서 “명절에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가족이나 친척들이 모이면 살의가 끓어오르는 기분”에 대해 생각했나 했더니, 아마 예전에 이 책을 읽었던 걸 순간순간 떠올렸던 것 같다.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부를 일군 대부호 시메온 리는 아내를 학대했고 자식들에게도 가학적이고 강압적인 폭군처럼 굴었다. 딸인 제니퍼는 집을 떠나 스페인 남자와 결혼했고, 네 아들들은 아버지를 증오했다. 장남인 알프레드는 함께 살았지만, 어머니를 괴롭힌 아버지를 증오한다. 조지는 아버지의 돈에만 관심이 있다. 데이빗은 거의 의절하다시피 했다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자는 아버지의 초대를 받고 아내인 힐다의 권유로 겨우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몇 년만에 돌아온 해리는 돌아온 탕아 취급을 받고 있었다.

제니퍼의 딸인 필라르가 스페인에서 시메온의 연락을 받고 돌아오고, 시메온의 옛 동업자인 에버니저 파의 아들 스티븐도 이 크리스마스에 리 일가를 찾아온다. 그리고 서든 총경이 약속이 있어 방문한 가운데 시메온의 시신이 발견된다.

어딘가 사생아들을 한 무더기 남겼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황들과 시메온의 초상화는, 이 집에 나타난 가족이나 친지들의 신원을 의심하게 한다. 추리소설에서 오랜만에 만나거나 처음 만나는 먼 친척과 친지의 신원을 의심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여기에 추리소설의 규칙으로 꼽히는 전제조건 하나를 부수는 반전이 들어간다. 사실은 이 반전을 잊고, 처음 읽었을 때 처럼 잘못된 사람을 범인으로 생각하다가 다시 반전을 깨닫고 한참 즐거웠다. 여튼 이 소설을 마지막으로 읽었던 것이 지난 세기의 일이었으니까.

PS) 1930년대 스페인에서 탈출한 필라르를 보니 역시 스페인 내전 쪽으로 생각이 튄다. 한편으로 필라르라는 이름과 그 진짜 정체를 보고 있으니 자꾸 “레드문” 생각이 나서 웃었다.

PS2) 스티븐은 시메온의 옛 동료 에버니저 파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성격 나쁘고 주위 사람들과 가족에게 모질게 대하는 구두쇠의 친구가 에버니저라고 하니 어디서 쇠사슬을 질질 끄는 말리의 유령이라도 나올 것 같잖아. 한편 다이아몬드 원석을 만지작거리는 시메온의 옛 동료라고 하니 크루 대위와 캐리스퍼드 씨 생각도 나고. 시기가 시기인 만큼 드비어스의 시에라리온 광산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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