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빨간머리 앤 2기는 여러 면에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앤을 보여준다. 일단 시작부터 원작에 없던 두 사기꾼이 등장하여, 마을은 골드 러쉬에 휩싸인다. (여담이지만 악당인데도 그들은 가사를 열심히 돕고, 밖에 나갔다 오면 손을 씻으며, 식사 기도를 하고, 음식을 장만해주는 사람에 대해 열심히 고마움을 표시한다. 세상에, 대놓고 악당인데도 말이지!) 앤은 흥분하여 길버트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다이애나와 함께 조세핀 할머니 댁에 갔다가 십여년 전 인근 마을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알고 그들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배리 씨가 사기를 당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배리 부인은 딸들을 피니싱 스쿨에 보내지 못하게 되는 것을 걱정하여 갑자기 엄격한 숙녀 교육을 시작하지만, 그보다는 딸들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길버트는 화물선에서 일하며 만난 배시와 함께 트리니다드로 갔다가, 숨쉬듯이 벌어지는 인종차별을 경험한다. 한편 갑자기 역아를 출산하게 된 여자를 도와 무사히 아이를 출산하게 한 길버트는,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마릴라는 길버트와 함께 갑작스레 흑인 청년이 나타난 것을 보고 놀라지만 길버트와 배시를 함께 따뜻한 성탄 만찬에 초대한다. 보수적인 마릴라가 배시에 대해 그는 섬 사람이고 우리와 마찬가지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좋았다. 길버트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배시는 애번리 생활에서 다소 갈등과 맞닥뜨리지만, 길버트와 함께 농장을 경영해 나가기로 한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서 제일 인상적인 것은 주로 콜에 대한 이야기와 얽혀 있다. 예술적인 재능이 있고 남자답지 못해서 따돌림을 당하는 콜은 앤과 다이애나, 루비의 친구가 된다. 빌리 때문에 손목이 부러진 뒤 예전처럼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콜은 실의에 빠지지만, 조세핀의 파티에 앤과 다이애나와 함께 참석하며 변화한다. 그는 파티에서 만난 예술가를 통해 그림이 아닌 조소 쪽으로 도전할 각오를 하게 되고,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조세핀에게 고백한다. 동성의 연인인 거트루드와 평생 함께 살았던 조세핀을 통해 콜은 용기를 내고, 앤은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다이애나는 혼란에 빠지지만 결국 조세핀을 이해하게 된다.
한편 콜은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을 통털어 가장 혐오스러운 캐릭터인 필립스 선생의 지속적인 미움을 받는데, 필립스 선생은 자신이 게이임을 숨기고 프리시와 결혼하려고 하며, 콜에게 자신을 투사하여 증오하는 한편, 프리시에게 결혼 후에 학업을 중단하고 사교활동에 전념할 것을 강압적으로 요구한다. 프리시는 결혼식장에서 도망쳐 나오고, 앤은 흰 드레스를 입고 “예”라고 맹세하는 빛나는 순간이 전부가 아니며,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꿈을 버린 채 목소리도 야망도 없는 소유물이 되는 것은 싫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앤이 콜에게, 언젠가 서로 짝을 찾지 못하면 동등한 동반자로 결혼하자고 이야기하는 부분과 이어진다. 사실 콜이 굉장히 인상적인 캐릭터여서, 원작대로 앤이 길버트와 함께 하려면 최소한 콜을 죽여버리는 정도의 강수는 써야 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콜은 마을을 떠나 조세핀 할머니 댁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그밖에도 레이첼 린드 부인의 변화라든가, 레이칠과 마릴라의 우정과 싸움이라든가, 필립스 선생이 떠난 뒤 부임한 트레이시 선생님이라든가,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이야기가 다채롭다. 염색약 사건과 같은 원작에서의 이야기가 낳는 변주들도 좋았고. 그렇다면 다음 시즌에는 역시 앨런 목사 부인과 저 유명한 진통제 케이크가 나올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