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때 읽어서 그런가, 이 책의 제목은 “굴하지 말고 달려라”이고 부제가 “초고속 참근교대”인데, 이 책을 떠올릴 때는 본 제목은 기억이 안 나고 이 “초고속 참근교대”쪽이 먼저 떠오른다. 아마도 이쪽이 더 내용을 핵심적으로 요약한 구절이라 그렇겠지.
일단 북스피어에서 나온 “에도물”은 대체로 실패가 없었으니까, 책을 알라딘 장바구니에 밀어넣었다가 바로 주문하는 데 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북스피어 대표님이 페이스북에서 신작이라며 수시로 언급하고 참근교대에 대해 설명하고 이벤트도 하고 계신 것만 봐도 재미있어 보였고. (1인 or 소규모 출판사의, 열정에 비해 부족한 영업력이라든가, 거기서 나온 책보다 1인 출판사의 대표인 자신을 브랜딩하고 싶어하는 경우들을 숱하게 보아온 상황에서 생각할 때, 북스피어가 작은 회사인데도 오래 살아남아 장르쪽에서 확실한 포지션을 잡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여기 대표님도 자신을 캐릭터처럼 브랜딩하려는 욕망은 남부럽지 않아 보이는데, 그보다는 책 이야기를 조금 더 한다. 그게 차이점일지도.)
유나가야 번은 1만 5천석의 영지를 지닌 작은 번이다. 이 “석/섬”단위의 경제규모는 그냥 들어선 와닿지 않으니 대충 계산해 보면 한 가마니가 80kg, 석/섬이 그 두 배니까 1년간 최대 2400톤 정도 수확 가능한 영지라는 말일텐데 한마디로 그러면 2018년 현재 대왕님표 여주쌀 가격 기준으로 1년 수입은 최대 72억원 정도. 돈 없기로 이름난 인천광역시의(……) 계양구 1년 예산이 5천억원쯤 되니까 말하자면 작은 동네의 동장님(……) 같은 느낌인 건가. 게다가 이 석이라는 건 그 영지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대 수확량 같은 것이니, 농사 상태가 썩 좋지 못한 번이라면 수익은 더 적을 것이고. (한숨)
하타모토가 1만석 미만이고, 다이묘가 1만석부터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작은 번이겠구나 했지만, 진짜 돈 없네.
여튼 이 털어 먼지도 안 나올 듯한 번의 영주 마사아쓰는 겨우 참근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닷새 안에 에도로 참근하러 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참근교대에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데다 거리도 있다보니, 닷새 안에 도착하지 못하면 벌을 받을 것은 자명하다. 이는 탐욕스러운 로쥬 마츠다이라 노부토키가 유나가야 번에 금광이 있다고 생각하여 번을 빼앗으려는 계략인데, 계략이든 뭐든 번을 지키려면 마사아쓰는 닷새 안에 에도로 가야만 한다.
가신들과 마사아쓰, 그리고 길잡이로 고용한 단조 등 여덟 명의 정예는 초고속으로 달려가며, 중간중간 역참에서 사람들 눈에 띌 만한 성대한 행렬을 연출하는 한편 밤에는 여비를 아끼기 위해 가장 빠른 루트로 달려가다가 노숙을 하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마사아쓰와 가신들의 길이 엇갈리고, 이들을 노리는 노부토키의 방해공작이 이어지며 그렇지 않아도 빠듯한 일정은 더욱 꼬이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내와의 사이가 소원하다 못해 집안이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이혼을 하고 떠나버린 노부토키가, 자신의 괴로움을 이해하는 여관의 종업원 오사키와 만나게 되긴 했지만.
한 마디로 이 이야기는, 1/16으로 압축된 80일간의 세계일주 같은 것이다. 시간에 맞추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상황에서 전력으로 달려가지만 이런저런 방해 공작과 엇갈림으로 늦어지는 것 같았어도 지략으로 아슬아슬하게 마감에 맞추는 이야기. 시대 배경은, 아마도 에도물에서는 흔한 배경인 듯한 저 도쿠가와 요시무네 시절. 읽는 내내 머릿속에 컷 단위로 연출이 짜지는 소설이다 싶었는데, 검색해보니 영화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절임이 궁금했다. 얼마나 맛있길래 대체. 중간에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밥상에 무절임 올라오는 장면 앞에 검식 담당이 두 입 먹는다고 눈치 주는 개그컷을 넣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