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작가나 편집자나 사서와 만나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알라딘의 예술서 MD였고, 트위터에서 “워너님”이라는 이름으로 알라딘에서 수시로 책을 사던 트친들에게 알라딘의 새 굿즈들이나 이벤트들을 아주 절묘하게 영업하곤 했다.
그래서 충격이었다. 이런저런 여혐 사건에 이 사람이 이름을 올릴 줄은. 어떤 책들은, 즐겁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에게 실망해서 결국 더는 안 읽게 되기도 한다. 어떤 책이나 음반은, 청춘의 가장 내밀한 시간들을 함께 보냈기 때문에 창작자가 문제를 일으킨 다음에도 차마 버릴 수는 없지만 길티플레저처럼 혼자만 조용히 즐기게 되기도 한다. 트친이었던 MD와 나누었던 대화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에 대해 물어보고 추천을 받을 수 있었던 기억은 즐거웠지만, 아마도 책을 볼 때 마다 속이 쓰라리겠지. 미루고 미루다가, 이사를 핑계로 방출했다. 어차피 집에 공간이 부족해서 책을 좀 더 내다 팔아야 할 판이었다. 팔기 전에, 모두 언젠가는 혼자가 될 것이라는 띠지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다른 예술서들 사이에서 뽑아내어 혼자가 된 채, 중고 박스에 차곡차곡 담겨지는 책에 대해서 생각하고, 자신의 글을 소중히 여기려면 작가가 좀 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수시로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19세기도 아니고. 21세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최근에, 여성혐오나 차별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남성 문화예술인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건을 접할 때는 당황하지만, 대부분은 책을 길티플레저로 여기면서도 서재의 잘 안 보이는 구석에 밀어넣게 되진 않는다. 대부분은 그렇다. 처음 냈던 책은 비록 빻았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발전하는 사람들의 책과는 또 다르다. 대부분은 그걸 넘어설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걸까. 아니면 학습능력이나 자의식의 문제였던 걸까. 어느 쪽이든, 쓰다. 좀 더 차분히, 이 책의 목록에 언급된 책들과 음반들을 곱씹어보고 싶었는데, 저자가 독서에 방해가 되는 경우는.
- “마이너리티 클래식” – 클래식 음악의 낯선 거장 49인, 이영진, 현암사
-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 – 전 세계 아이들과 함께한 사진과 글쓰기 교육, 웬디 이월드, 알렉산드라 라이트풋, 정경열 옮김, 포토넷
- “혼자 가는 미술관” – 기억이 머무는 열두 개의 집, 박현정, 한권의 책
- “음악의 기쁨”, 롤랑 마뉘엘, 나디아 타그린, 이세진 역, 북노마드
- “신화, 여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 크리스토퍼 보글러, 함춘성 역, 비즈앤비즈
- “우연한 걸작” – 밥 로스에서 매튜 바니까지 예술 중독이 낳은 결실들, 마이클 키엘만, 박상미 역, 세미콜론.
- “사각형의 신비” – 네모난 틀 속의 그림이 전하는 무한한 속삭임, 시리 허스트베트, 신성림 역, 뮤진트리.
- “내가, 그림이 되다” – 루시안 프로이트의 초상화, 마틴 게이퍼드, 주은정 역, 디자인하우스.
- “월터 머치와의 대화” – 영화 편집의 예술과 기술, 마이클 온다체, 이태선 역, 비즈앤비즈.
- “천재 아라키의 애정사진” – 아라키 노부요시, 이윤경 역, 포토넷.
- “모두를 위한 예술?”, 우베 레비츠키, 최현주 역, 두성북스.
- “리흐테르: – 회고담과 음악수첩, 이세욱 역, 정원출판사.
- “침묵의 뿌리”, 조세희, 열화당.
- “휴먼 선집”, 최민식, 눈빛.
- “한국의 재발견”, 임재천, 눈빛.
- “미야자키 하야오 출발점 / 반환점”, 황의웅 역, 박인하 감수, 대원씨아이.
- “국제정치 이론과 좀비”, 대니얼 W. 드레즈너, 유지연 역, 어젠다.
- “일본 섹스 시네마”, 재스퍼 샤프, 최승호/마루/박설영 역, 커뮤니케이션 북스.
-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그 숨겨진 이야기”, 나카무라 히로코, 김경욱 역, 음연.
- “안톤 체호프 사할린 섬”, 안톤 체호프, 배대화 역, 동북아역사재단.
- “프루스트와 기호들”, 질 들뢰즈, 서동욱/이충민 역, 민음사.
- “헤아려 본 슬픔”, C. S. 루이스, 강유나 역, 홍성사.
- “한 장의 사진, 스무 날, 스무 통의 편지들”, 필립 퍼키스, 박태희 역, 안목.
이 책을 중고 상자에 밀어넣고 나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품절이었다. 언젠가 읽어보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