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인지 아들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듯한 어머니 세대의 “임금노동”

지금의 5, 60대는 가사와 돈벌이, 즉 임금노동이 분리된 세대라서 그 세대의 남자들이 가사를 못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게 정말 분리되었던 것, 분리시키려고 했던 것, 분리되었다고 믿는 건 자기가 처자식을 온전히 먹여살렸다고 믿는 아저씨들의 환상을 답습한 것 뿐이라는 팩트를 좀 말해주고 싶다. 그 시절에도 엄마들은, 동네 아줌마들은, 적지 않은 수가 “부업”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돈벌이를 하셨으니까 말이다.

80년대 생으로, 수도권, 서민 아파트 단지에서 자랐는데 나 어릴때 동네 아줌마들 다들 아이들이 유치원만 가도 (반나절만 시간이 나도) 돈 벌고 계셨다. 가발 만드시던 분부터, 우리 집에서도 했던 컴퓨터 키보드 부속 조립, 봉투 붙이기, 버스로 20분 거리 화장품 공장의 상자 조립….. 어린아기가 있거나 편찮으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집의 아줌마들도 조금씩이라도 같이 앉아서 하시는 걸 보곤 했으니까.

조금 이 무렵의 이야기를 썰을 풀어보자. 우리 이웃집 아줌마는 결혼 전에는 가발공장에서 일하셨고 결혼 후에도 아들이 유치원에 가자마자 다시 가발일을 본격적으로 하셔서 정말 많이 잘 버셨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 댁아저씨도 아줌마도 그 일을 “부업”이라고 부르셨지) 어느 집에서 밤에 짬짬이 할 수 있는 부업을 시작하면 동네 아줌마들이 알음알음 소개를 받아서, 낮에 한 집에 모여서 다같이 그걸 조립하고 계시기도 했다. 꽤 한참 유행했던 게 키보드 부속 조립하는 것. 기계식 키보드에 들어가는 그것 말이다. 우리 집에서도 그걸 한참 했었다. 인간사료 마카로니(……) 봉지보다 두 배는 더 큰 부속자루가 우리집 작은방 구석에 있었다. 집집마다 그런게 있고, 모여서 애들 학교 간 사이, 혹은 낮시간에, 막내가 낮잠 잔 사이에 부지런히들 하고 계셨다. (방학이나 주말에는 동네 애들도 엄마들 옆에 끼어앉아서 같이 조립을 할 때도 있었는데, 불량이 얼마나 났는지는 모르겠다) 야, 가사와 돈벌이가 분리되었고 어쩌고 하는 사람들은 그건 뭐라고 할 거냐. 그런 부업은 노동이 아니고 돈벌이가 아니며 그것도 다 가사로 쳐야 하나? 아니면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그건 어디까지나 “마누라들 부업”이고 “소일거리”이며 “수다떨러 모이는” 일이 되어야 하나?

새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에는 비슷비슷하게 막 국민학교 들어가려는, 혹은 그보다 어린 아이들이 있는 집들이 입주를 했고, 그 애들은 비슷비슷하게 나이를 먹어서 몇년 차이를 두고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그러자 아줌마들 중 일부는 근처 화장품 공장에 출퇴근을 하셨다. 그 와중에도, 마트 캐셔를 하시는 분은 안 계셨는데 이유가 지금도 기억난다. 동네에 아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집 아저씨들 남부끄럽다고 못하게들 했었다고 들었고.

우리 아랫집 아줌마는 정말 부지런히 일하셔서, 빚밖에 없던 집을 거의 일으키셨는데, 평생 당신이 하시던 일들이 “부업”인줄 여기고 사셨다. 그분은 아들 장가들 밑천으로 아파트 분양 하나 더 받아서 깔끔하게 빚 다 갚아놓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으로 돌아가셨다.

“안녕둔촌”같은 걸 보면 짐작이 갈 지도 모르겠으나, 80년대의 서민아파트, 한 입구를 공유하는 여덟에서 열두 집 정도는 아파트임에도 서로서로 가까이 지내는 경우가 많았고, 그 동네를 떠나고도 엄마들끼리는 계모임이나 그런 걸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집 나와서 부모형제랑 거의 연락 안 하고 살기 전까지는 그때 우리동네 애들이 뭘 하고 사는지 대충 다 듣고 살았다. 아줌마들 중 어떤 분은 보험을 하셔서 몇 번이나 우수직원 최우수직원을 하셨고, 적지 않은 수가 애들이 대학을 갈 때 까지 이런저런 부업을 계속 하셨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무렵이 되었을 때는 IMF가 왔고, 아저씨들이 실직광풍을 맞으신 집도 꽤 있었고. 그 시련을 이겨내고 “아이들 잘 키워서 시집장가 보내는”데, 아줌마들의 “부업”이 과연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그냥 “애들 학원비”버는 일이라고 치고 넘기면 될 일이었을까? 그때 그 동네 아줌마들이, 지금은 50대 초반에서 60대 중후반 정도 되신다. 우리 엄마 연세에서 위아래로 일고여덟살 정도까지 계셨으니까. 그럼 이분들보다 좀 더 교육을 받은 세대, 90년대에 30대였고 지금 50대 초반인 분들이고, 애들이 어릴때 IMF의 직격을 맞은 여성들은 과연 손 놓고 가사에만 몰두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지금 가사와 돈벌이가 분리된 50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다들 잘 살아서 어머님이 맞벌이급 부업같은 것을 전혀 하지 않으셔도 먹고살만 했던 사람들인가, 아니면 어머님의 뼈빠지는 노동을, 가사와 돈벌이를 병행하면서도 부업 취급 받던 그 일들을 지우는 건가.

여튼 하고싶은 말은 그겁니다.
지금 5, 60대 여성 중에 적지 않을 숫자가 지금 생각해보면 저거 정말 아줌마들 싼 인건비를 갈아서 산업을 유지했나 싶을 정도로 헐값에라도 이런저런 부업부터 공장 출퇴근까지 다양한 형태로 짬짬이 일하면서 가사 하셨고요.
그 노동은 남편에게도 폄하당했음.
설령 아내가 공장에 출퇴근하거나 재택이라도 전문기술이 필요한 일을 하며 남편의 월급과 비슷할 정도로 많은 수입을 올려도 아저씨들은 그거 마누라의 부업, 애들 학원비나 벌려고 하는 일, 아니면 집에서 하는 조립같은 건 여편네들 수다 떠는 일이었고, 대놓고 돈벌이를 하는 게 남편의 체면을 깎는 일이라고까지 생각했음.

그래놓았더니 자기 어머니 이모 고모 숙모 친구 어머니 이웃집 아주머니 등등이 그렇게 노동을 하셨는지도 모르고 뭘 얼마나 하셨는지도 모르고 그 노고가 그렇게 폄하되고 가려진 것도 모르는 아들 세대 남자들이 가사와 임금노동이 분리되었던 시대 웅앵웅 하면 보는 사람이 화가 나요, 안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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