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 강상중, 사계절

오늘 상황이 안 좋아도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던 일본 쇼와 말의 호황은 버블경제의 붕괴와 함께 사라졌다. “그로부터 25년동안은 전후의 풍요로운 사회가 막을 내리는 과도기였다”고 강상중 교수는 말한다. 누구든 노력하고 공부하여 좋은 학교에 진학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소설 “상록수”에서 아이들이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 한다”고 말하던 그 장면의 매우매우매우 개인주의적이고 경쟁주의적이며 지금 현재는 이게 가능한가 싶을 만큼 극단적인 버전으로 변화된 바로 그, 학력사회 모델 역시 전후 성장기에 가능한 모델이었다. 이 프레임 역시 버블의 붕괴와 함께 약화되었다. 학력을 쌓아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안정적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사회, 개인 경력 모델이 주류가 되는 사회로 변화하는 지금, 강상중 교수는 “나에게 과연 일이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할 시기라고 말한다.

흔히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일본이 걸었던 길을 10~15년 늦게 뒤따라간다고 한다. 호황도 몰락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나라는, 아직 학력사회가 붕괴되진 않았다. 하지만 대입을 위해, 취업을 위해 요구하는 그 수많은 자료들과, 공교육으로 해결되지 않는 온갖 스펙들을 준비하고 막대한 돈을 들이면서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청년들을 보면, 지금의 진학이나 취업에 대한 기업과 사회의 태도, 그리고 수험자의 노력이 거의 학력사회 붕괴 직전의 광기에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즉. 지금 일본의 청년들을 바라보며 쓴 이 책은, 몇 년 뒤 바로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제 인생은 일반적인 취업경로를 거치지 않았다는 면에서 조금 특별한 부분이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 딱 하나만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역시 이 ‘쓸모없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강상중은 구마모토의 자이니치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물상을 하는 부모님, 차별받는 자이니치. 그런 환경에서 자란 강상중에게 일이란 단순히 돈을 벌고 먹고 살기 위한 것(job)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일종의 사명을 부여(calling)받은, “이 사회에 있어도 될 존재”, 제대로 된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통로였다. 그는 파견직 노동자 청년이 저지른 무차별 살인사건을, 단순히 직업을 얻지 못해 사회를 향해 불만을 표출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사회에 살아 있어도 된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자아와 사회를 파괴하는 자폭테러를 벌인것으로 추측한다.

일이란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 그리고 나다움을 찾는 것. 여기서 저자는 자연스러움이란 부족함을 알고 자족하며, 나아가 자신의 내적 동기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로 본다. 또한 일본 사회에서 미덕으로 여겨지는 잇쇼켄메이(一生顯命)가 아니라, 하나의 영역에 전부를 쏟아부어 자신을 궁지로 몰지 말라고 설득한다. 높아가는 자살율과 계속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차원의 축과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의 안에 바꿀 수 있는 채널을 몇 개쯤 만들어 두고 일을 끝내면 다른 채널로 의식을 옮길”것을 권한다.

높은 이상을 갖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 “향상심” 또한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 결국 자기 폐쇄적인 상태에 빠져버린다면 이상과 향상심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 책에서, 분량상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대목은 의외로 그의 독서론, “고뇌와 독서 – 책을 읽는 방법과 고전 읽기”이다.

부모님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던 시절에는 굳이 반항은 하지 않더라도 반사적으로 부모님 말에 반대하기 마련이므로 책을 읽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부모님의 말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으니 대신 책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책은 혈연관계가 아닌 제 3자이므로 사회의 일원으로서 객관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부모에게 배우는 것보다 좋은 부분도 있습니다.

진득하게 학문적인 목적으로 읽는 책과 조금 시간을 들여 통독하는 책, 그리고 세간의 화제가 되는 책을,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균형있게 읽어간다. 신문은 전국지와 지방지를 하나씩 구독한다. 기초가 되는 소위 “말린 것”과, 새로 유입되는 지식인 “날 것”을 함께 읽어가는 방식을 다룬다. 인문학적인 단단한 기반을 딛고 서서 시류와 역사를 읽었던 위인들의 삶을 비추어 본다. 이와 같은 과정들을 통해 자신의 삶 자체를 단단하게 만들어가며, 동시에 소외와 차별, 지역간의 격차, 사회관계자본과 일, 그리고 자신의 관계르 성찰하고, 나아가 같은 업종은 물론 다른 업종의 사람들과도 다양하게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것, 이와 같이 강상중이 말하는 비즈니스퍼슨으로서의 현대인이 스스로를 지키며 일하는 방식은, 어떤 면에서 좀 더 폭넓은 세계관을 갖고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과정과 같다.

본문에서 저자는 빅터 프랭클의 “삶의 물음에 예 라고 대답하라”와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와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권했다. 다섯 중 셋은 아직 읽지 못했으니, 기회 되면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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