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하면 떠오르는 것은 어사 박문수, 혹은 춘향전. 거지꼴로 나타난 암행어사가 탐관오리의 악행을 밝혀내고, 마패를 높이 들면 사방에서 나졸들이 쏟아져 나와 관아를 접수하는 어사 출도는, 당대의 사람들이 생각했을 악한 관리에 대한 징치이자 그 시대의 카타르시스였을 테지만.
현실적으로 어사가 출도지에 갈 때 까지의 일에 대해 다룬 이야기는 많지 않다. 도성 밖에서 자신이 어디로 가게 될 지 알게되고, 집에도 사실을 알리지 못한 채로, 갑자기 거지꼴을 하고 먼 길을 떠났다가 더러는 출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병에 걸리거나 강도를 당해 죽기도 하는데도. 그런 점에서 이번에 유승진 작가님이 저스툰에 연재하고 있는 이 “해서암행일기”는 좀 특별하다.
숙종조의 황해도 어사였던 박만정은 어사로서 황해도의 민생을 돌아본 기록인 “해서암행일기”를 남겼고, 이는 보물 제 574호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이 웹툰은 바로 이 “해서암행일기”를 저본으로 삼아, 박만정의 행보, 아니, 암행어사의 개고생 일지를 보여주고 있다.
박만정은 이야기 속 암행어사처럼 억울한 사연을 풀어주고 탐관오리들을 무찌르며 정의를 구현하는 수퍼맨이 아니다. 그는 갖은 고생을 하며 신분을 감추고 일행을 이끌고 암행에 나서고, 쌀이 떨어져서 곤경에 처하여 밥을 빌어먹거나 아는 관리에게 쌀을 얻으며 돌아다닌다. 관리인 그들의 암행길이 고달픈 이상으로, 데뷔 이후 일관되고도 집요하게 조선 중기와 임란 전후의 시대를 그리는 작가가 보여주는 시대는 엄혹하고 비참하다. 오뉴월에 서리가 날리고, 칠월에 눈이 내렸다는 기록마저도 이 암담한 시대에 대한 은유가 아닌가 싶을 만큼. 귀엽고 동글동글한 그림체로 그려진 이 어설픈 어사 박만정은 숙종 앞에서 사고를 치고, 몇 번이나 신분을 들킬 뻔 하고, 백성들의 곤경에 괴로워하다가 , 자신의 손자가 죽었다는 비보까지 들으며 힘겨운 여정을 계속한다. 이 이야기의 끝에 반드시 “암행어사 출도요!”하고 외치며 탐관오리를 징치하는 카타르시스 넘치는 장면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힘이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