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서 공유되고 있는 모 “진보계열, 노동당, 남성, 페미니스트” 저자의 “우리집의 가사노동 육아노동 분담기”를 읽고 아주 헛웃음이 나왔다. 특히 “나는 가사 및 육아노동 분담을 위해 아내에게 전업 작가의 삶을 살라고 꼬드겼다”며, 일간지 기자인 아내를 회사 그만두게 설득했다고 자랑하는 대목을 읽으며 대체 왜 이 사람은 “성 평등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면서 자기가 가사하기 싫다고 아내를 경력단절시켰다고 주장하는 글을 쓰고 있나 곰곰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뭐 정말로 “자기는 집에 있는데 아내가 출근하면 살림과 육아를 자기가 독박쓸까봐 아내를 퇴사시킨”, 게 사실일 수도 있지. 근데 그런 말을 굳이 해야 할 이유도 모르겠거니와. 마치 아내가 자신의 뇌주름(난 이 표현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게, 자기 입으로 자기를 뇌섹남이니 뇌주름이 어떻니 하는 사람 치고 정말로 뇌섹남은 없다는 게 정설 아닌가.) 에 잘도 속아넘어가는 사람이라도 된 것 처럼 말하는 게 참 불쾌하기만 했다. 남편 설득에 넘어갔든 아니든 아내분은 자기 책을 더 잘 쓰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집필에 전념한 열정적인 사람일 수도 있을텐데, 자신의 허세를 위해 아내를 후려쳐서 남는 게 뭐가 있지? 아내분이 느꼈을 (참혹한) 모욕감?
나 진짜 싫은게 회사 아저씨들이, (가족과 어떻게 섹스하냐 같은 소리는 기본으로 싫어하고) 자기 아내 후려치는 것. 전업주부 아내라면 알뜰하지 않다거나, 살림을 못한다거나, 아침밥을 안 차려준다거나, 혹시 직장에 다니는데 자기보다 돈까지 잘 벌어서 앞의 명분을 써먹을 수 없게 되면 뚱뚱하고 성격이 나쁘고 남자같이 소리를 질러댄다고, 마누라 무서워서 살겠느냐며 술마시면서 욕하는 거. 그런 아저씨들 의외로, 한 사무실에 한둘은 있지 않나? 무슨 사무실 필수품도 아닌데. 그런 걸 아내를 사랑하는 거라든가(뭐라고?!?!?!?) 알량한 남자의 자존심이라든가 뭐 붙이는 헛소리야 많습니다만 그런 알량한 자신과 살아주는 아내에 대한 존중이 없어.
그래서 난 그런 말 들으면 “와, 내 남편이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 난 그냥 탈탈 털어 개털로 만들어서 이혼할거야. 그런 소리 듣고 어떻게 사냐.”고 하지. (그리고 분위기가 싸늘해짐)
올 초에 나는 세이와 좀 많이 싸웠다. 어떤 이들에게는 놀랍겠지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네 월급날에 수고했다 고맙다고 말하고 치킨을 시켜주는데 너는 왜 내 월급날 및 각종 원고료 들어오는 날에 치킨은 고사하고 고맙다는 말도 안 해?”
처음 한두 번은 농담같이 말했다. 그 다음에는 석달쯤, 월급날 및 원고료 들어오는 날들마다 짜증을 냈다. 그러다가 마침내 정색을 하고 말했다.
“너 아내의 월급날에 고생했다는 소리 안 해서 이혼당하고 싶냐. 내겐 존중의 문제고 네가 날 존중 안 하면 내가 어떻게 나올 것 같냐. 나는 네 월급을 존중하는데, 나는 너랑 똑같이 직장생활 하고, 그리고 글 써서 추가로 매달 꼬박꼬박 더 벌어오기까지 하는데, 내 월급을 존중하는 게 인간의 도리가 아니냐. 그래서 내 노동과 내가 벌어오는 월급에 대해 좀 경의를 표할 생각이 있냐 없냐.”
물론 세이는, 좀 더 빨리 알아차려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여튼 이 시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월급날 및 월말에 고마워하게 되었다. (……) 내 원고료가 월말에만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원고료 중 제일 큰 덩어리들이 들어오는 날이니까 그 정도로 넘어가기로 했다. 여튼, 나의 돈벌이에 감사하지 않아서 시달렸던 그 세이는, 사실 가사의 8할과 육아의 절반을 하고 있다. 직장생활은 똑같이 하지만 내 부업까지 하면, 내 소득이 세이의 소득보다 높다는 이유로. (우리 집은 전년도에 돈 많이 번 사람이 가장이고 가사는 소득비율로 나눠서 하고 있다.)
이야, 난 그러고 살아서 그런지, 가사 독박쓰기 싫어서 일 잘하고 자기보다 글도 잘 쓴다는 기자 출신 아내를 경력단절 시켜버렸다는 허세를 부리며 아내를, 자신의 뇌주름과 얄팍한 책략에 넘어간 듯이 후려치는 진보계 아저씨의 이야기를 읽으니 참으로(…..) 웃기지도 않는다……. 가사노동이나 경력단절에 대한 고도의 돌려까기일 가능성도 한숟갈 정도는 있겠으나, 임신과 출산과 가사노동과 경력단절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서 설령 돌려까기 위한 의도적 위악이었다고 해도 그런 식의 빈정거림은 불쾌감만 조성할 뿐이지.
PS) 그 다음에 올라온 게시물 – 아내의 퇴직금을 생활비로 쓰려고 멋대로 계산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재충전을 위한 여행을 가겠다고 해서 자기도 데리고 가라고 했다는 이야기 – 까지 읽고 나니 가사노동과 경력단절에 대한 고도의 돌려까기 같은 건 결코 아닌 것 같아서 더욱 한숨이 나온다.
PS2) 노동자단체 “다함께”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그깟 야동 보여준 걸”같은 발언을 하셨더라는 제보가 있었다. 아니 잠깐, 난 이제 저 저자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페미니즘”같은 거 쓰겠다고 나설까봐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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